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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해안이나 강가에는 신목神木과 신당神堂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해안을 벗어나 산악지역으로 가면 돌제단石祭壇이 목신木神과 함께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창원시 동읍 봉산리 산 46에 위치한 돌제단은 해발 100m 높이에 위도 35°16'25"N 경도 128°41'53"E에 있다. 돌제단을 2010년 찾았을 때, 마을 전체에서 한 분만이 돌제단의 위치와 제단의 역할을 설명하신 분을 만났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도 못하고 고인돌로 알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전통 신앙은 잊혀진 존재가 됐다. 봉산리 돌제단은 자여역自如驛을 책임지던 문관 종육품인 찰방察訪이 제관이 되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산신에게 빌던 국가의 행사가 이루어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를 아는 이가 없다. ..
거창군에서 유일한 강씨 재실인 청은정聽隱亭의 기록을 보고 우선순위 1위로 정하고 찾아갔다. 위성지도로는 아무리 찾아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양평리 가네들 마을에 있다.”는 『거창의 누정문화』 만 믿고 거창읍으로 갔다. 『거창의 누정문화』가 청은정聽隱亭을 찾았을 때 “건물이 퇴락하여 무너지기 직전이고 정자의 현판과 기문은 마을에 사는 후손들이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볼 때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에 살고 있는 강씨할머니를 만나 물었더니 모두 마을을 떠났고 건물은 헐고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청은정聽隱亭은 가남 강세순의 유허로 가조 동산리에 있던 것을 1924년 그 손자 연수가 옮겨 세우고 강학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기록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창군 유일의 강씨재실姜氏..
진주시 금곡면 인담리 1099-1(무선산로464번길 41)에는 진주강씨 은열공의 20세 되는 강달姜達을 향사하는 재실 인지재仁智齋가 있는 곳이다. 이 인담仁澤마을의 입향조 강달姜達 추모한 후손들이 건축한 인지재仁智齋의 대문에는 경모문景慕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본 당인 재실에는 인지재仁智齋란 이름으로 편액했다. 인지재仁智齋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고 대청에는 최낙도崔洛道가 찬한 인지재기仁智齋記와 후손 극환克煥이 지은 인지재운仁智齋韻이라는 편액도 걸려 있다. 仁智齋記 晋治南二十里許 有仁澤里 山高土厚 地僻泉 明君子 可居之世也 姜氏 東方若姓晋陽之大閥也 通政大夫 諱達 殷烈公 諱民瞻 二十世孫 遭壬亂 避于南下入居焉 是爲始居之祖也 性 敦厚涥實常耕讀爲務 不 以外物爲心世間 當貴功名之事浮雲視也 若也儉於己而厚於人里人咸稱 長德..
의령읍 무전리 455-1(무전로 105-24)에는 진주강씨 박사공파 재실인 의양재宜陽齋가 있는 곳이다. 의양재宜陽齋에는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조선 말기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강영신姜永臣이 찬한 의양재상량문宜陽齋上樑文이 걸려있어 집안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 수 있다.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기둥에도 주련은 없다. 대청의 문미門楣에는 의양재상량문宜陽齋上樑文만 걸려 있다. 지인이 이 재실과 인연이 있어 함께 방문하게 됐는데 함께 가지 못했다면 상량문上樑文을 보지 못해 엉터리 문장을 수정도 못하고 노출 시킬 뻔했다. 宜陽齋上樑文 惟歲乙丑二月初九日丙戌 前參書姜永臣 謹齊沐敢昭告于 上樑之神伏以 觀花石 貽謨敢妄 履霜露怵惕爰立 子姓善述之戒 蓋前世之未遑 丙舍禹謨之方 冝後人之己任 恭惟我六代祖考護衛府君 弧于漢北 宅於嶠南 世家望於..
의령군 의령읍 무전리 437(무전로 112-3)에 위치한 봉양재鳳陽齋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을 도와 의령宜寧, 삼가三嘉, 합천陜川 등을 회복하는데 공이 큰 초정草亭 강언룡姜彦龍을 향사享祀하는 재실齋室이다. 의령 무전리에 봉양재鳳陽齋를 지은 것은 이곳 뒷산 350m지점에 초정강공草亭姜公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봉양재의 대문인 솟을삼문에는 편액이 없고 본당에는 봉양재鳳陽齋라 이름했으며 편액의 글씨는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1877~1955) 공公이 썼다. 기둥에는 주련이 없고 대청의 문루에는 이중철李中轍¹⁾이 찬한 봉양재기鳳陽齋記와 공암孔巖 허찬許巑²⁾이 찬한 봉양재상량문鳳陽齋上樑文이 걸려 있다. 대청의 정면에는 강언룡 선생이 받은 교지가 걸려있다. 鳳陽齋記 鳳德山南方之有名靈岳也 支分各走..
함안 월촌리 정암에서 남강을 넘어 의령으로 진입하는 남강변의 우뚝 솟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정암루鼎巖樓는 1978년 중수했다. 정암루 내부에는 당시 군수 정계수鄭桂守가 중건기문을 짓고 남상구南相九가 글씨를 쓴 중수기가 걸려있다. 정암루 아래의 남강에는 우리나라 3대 부자가 탄생한다는 솥바위鼎巖가 있어 유명해 졌는데 이곳이 옛 정암진 나루이다. 이 정암진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갈대 사이에서 강을 오르던 왜구들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곳이다. 정암루중건기 鼎巖樓重建記 산과 물이 어울리는 곳에 絶勝이 많으나 鼎岩같이 생김이 奧妙하고 秀麗한 곳은 찾기 어렵다. 이 고을 眞山인 闍崛山 뫼줄기 東으로 내려와 龜龍山에 봉우리 짓고, 숨이 차서 智異山 흘러온 南江물을 ..
합포구 완월동 609-75번지의 비탈사면 위에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보이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 비석은 완월동 장군천 상부에 속하는 지역으로 학룡사 뒤편 절개지 위에 있다. 비석의 동쪽 방향에 『군철용지수육 軍鉄用地水六』이라는 한자로 쓴 여섯 글자가 있다. 군사용 철도부지라는 것은 알겠는데 『수육水六』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지인이 알려온 인터넷에 군철용지라 검색하면 블로그가 나온다 길래 검색하니 대곡산 능선을 따라 철鐵, 군철용지軍鉄用地, 군철용지수軍鉄用地水 등 여러개의 비석들이 소개 되어 있다. 합포구 지역을 잘 아는 지인에게 이 비석에 대해 물었더니 옛 마산으로 오는 철도를 왜육군들이 건설하여 사용했는데 당시 철도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대곡산과 경남대 일대를 물 공급지로..
웅천 명동 115번지(명제로324번길 25-9) 집 뒤쪽에 있는 삼포마을 신당神堂은 할매신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12m를 표시하고 위도 35°05'42"N 경도 128°43'48"E을 가리킨다. 삼포마을 신당神堂은 삼포마을 뒷산의 초입부에 위치하여 마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서는 신당神堂을 찾기가 쉽지 않는 곳이다. 신당神堂을을 보려고 찾아왔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물으니 이장에게 허락을 받고 신당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삼포마을 이장 집으로 찾아갔다. 이장의 안내로 신당을 찾게 됐다. 신당을 보려면 웅천 명동 115번지 집을 지나야 하는데 집주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마당을 지나 집 뒤쪽으로 접근하면 바로 나타난다. 신당神堂은 시멘트블록으..
군북면 박곡리 306(박곡3길 59)에는 진주강씨姜氏齋室 박사공파 후손으로 박곡리 입향조이신 가선대부嘉善大夫 강상주姜祥周를 분향하는 재실 우모정寓慕亭이 있다. 이곳을 구글지도는 위도 35°16'19.5"N 경도 128°17'38.2"E를 가리킨다. 우모정寓慕亭은 근래에 짓다 보니 함안루정록咸安樓亭錄에는 기록이 없는 곳으로 박곡리의 강씨재실을 찾다 보니 만나게 된 곳이다. 솟을대문에는 치경문致敬門이라 편액했고, 본 재실은 우모정寓慕亭이라 이름했으며 4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다. 우모정寓慕亭 좌우에는 방을 넣었고 가운데는 마루로 했는데 마루 위에는 우모정기寓慕亭記, 우모정상량문寓慕亭上樑文과 원운原韻, 차운시次韻詩 5구가 걸려 있다. [해문] 전문 古樂無聲惟孝悌 옛 음악 소리 없이 오직 효제로 남고 松陰繞砌..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 757번지 봉전마을에는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63m를 표시하고, 위도 35°07'02"N 경도 128°08'59"E라 표시한다. 영모재永慕齋는 봉전마을 입구의 산속에 위치하는데 도로명주소는 없다. 그리고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이다 보니 마을 원주민이 아니면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다. 봉전마을에 처음 찾아간 모원재의 종손을 만나 물었더니 이곳을 알려줘서 찾게 됐다. 영모재永慕齋를 사진으로 남겨 왔지만 은열공파의 재실이라는 사실만 알았지 이 건물이 영모재永慕齋라는 것을 안 것은 영모재이건기永慕齋移建記를 보면서 확신하게 됐다. 대문에도 편액은 없고 재실에도 아무 편액이 없다. 아마도 이곳 역시 도둑이 들어 편액까지 훔쳐간 것으로 보인다..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 1029(문정로 104-7)번지 봉동마을에는 진주강씨의 재실인 후산재後山齋가 있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49m를 표시하고, 위도 35°07'39"N 경도 128°08'32"E라 표시한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분은 후손으로 비워 두었던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게 된 것은 도둑이 재실에 들어와 문짝을 훔쳐가고 여러 가지 집기들도 도둑 맞았기 때문이라 한다. 인근의 강씨 소유 다른 재실은 편액까지 훔쳐가는 바람에 혹시 후산재도 편액을 도둑 맞을까 염려하여 떼 놓았다고 한다. 그래도 편액 하나라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자 어렵게 가져온 것이 ‘봉강정사鳳岡精舍’라는 편액이었다. 후산재後山齋 이전에는 봉강정사鳳岡精舍로 사용하다가 이후 새로운 이름을 가진 것이 후산재 였던것 같다. 후산..
산청군 생비량면 화현리 1349-7(진산로2273번길 46-12)은 진주강씨 어사공御使公의 후예인 은암공隱菴公 강세재姜世載를 향화香火하기 위해 지은 재실齋室 대산재大山齋가 위치한다. 은암공隱菴公은 의령宜寧에서 이곳 산청군 사대士大마을로 이거移居한 입향조이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77m를 표시하고, 위도 35°20'59"N 경도 128°04'21"E라 표시한다. 대산재大山齋를 방문하기 위해 생비량면 화현리를 찾았지만 의외로 넓은 지역이라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다가 방화마을에서 물었더니 사대마을의 위치를 알려 준다. 그렇게 찾은 대산재大山齋는 마을에 들어서면서 바로 찾았으나 대문이 잠겨있어 열쇠를 가진 분을 수소문하니 사대마을 이장이라 해서 겨우 담장을 넘어 대산재大山齋에 접근했다. 사대마을은 진양강..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420-7(구룡로1길 94)에는 강기룡姜紀龍의 아들 감정監正 강우황姜遇璜을 향사하는 진주강씨 재실인 정강재鼎岡齋가 있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24m를 표시하고, 위도 35°18'54"N 경도 128°17'02"E라 표시한다. 원래 정강재鼎岡齋는 홍의장군紅衣將軍 기념공원을 건설하면서 새롭게 건설한 도로에 포함되어 지금의 위치인 정암리 백야마을 입구로 옮겼다. 지금 그 자리에는 기로계耆老契 11분을 소개하는 유촉비遺囑碑가 있다. 정강재鼎岡齋는 낮은 돌담장으로 경계를 표했고 대문은 없으며 4간의 정통 한옥인 기와집이다. 5개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렸고, 중앙에 정강재鼎岡齋라 편액 했으며, 편액과 주련의 글씨는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가 썼다. 내부에는 정강재창건사실기鼎岡齋創建事實記, ..
창원시 진해구 명동 665은 웅천 벗섬(우도友島)의 북쪽 끝인 주방파제와 일직선으로 마주하는 곳으로 신단神壇이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5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는 위도 35°05'18.7"N 경도 128°43'22.3"E라 표시한다. 벗섬(우도友島)은 음지도 남쪽에 있는 섬으로 자동차 길은 없지만 음지도陰地島에서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보행자 다리를 건설하여 육지도 아니고 섬도 아닌 그런 섬이 된 곳이다. 아직도 명동도선장에서 배가 운행하고 있으며 주방파제까지의 거리는 876m로 주민들은 배를 이용한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은 55m이고 면적은 101.402m²이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양이고 마을은 섬의 서쪽면을 따라 길게 형성되었다. 벗섬이라 부르면서 우도友島라고 표기하는 것은 일제에 의..
진해구 수도동 산82에는 웅천熊川 수도水島마을의 당산으로 신당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GPS고도계가 해발 43m를 표시하고 위도 35°05'00"N 경도 128°44'52"E라 표시한다. 수도水島는 고려사 「원종4(1262)년 2월」 조항條項에는 ‘왜구가 물도勿島에 침범하였다.’고 해서 ‘물섬’의 표기를 ‘勿島’로 하고 있다. 이는 ‘물섬’를 ‘勿島’로 차자 표기되었다가 경상도속찬지리지부터 ‘수도水島’로 표기를 했다. 웅천 앞 바다의 작은 섬에 수질이 좋은 물이 많이 나서 ‘물섬’으로 불렀던 것이 섬 이름으로 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 수군이 이 섬에서 물을 공급 받았다고 전한다. 섬의 넓이는 46.4km², 해안선의 길이는 2.669km이다. 2015년에 섬 탐방으로 이곳 수도를 온 적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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