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우리말 어원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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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8.

 재미있는 우리말의 어원(語源)





성질 중에 자의성(恣意性)이란 것이 있다. 말이 처음 생길 때, 사물과 이름, 뜻과 말소리의 결합이 누군가 자의적(= 임의적)으로 붙여서 되는 성질을 말한다. 그러나 거기엔 필연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의적으로 시작한 언어가 언중들의 동의를 얻어 사회성을 얻게 되고,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것(역사성)이 언어가 걷는 길이다. 그런 과정에서 문명의 발달로 새 말이 자꾸 생기고, 새로 생긴 말에는 어떤 필연적 이유도 있게 된다. 이를 말의 어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말의 어원을 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어원을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 또한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말의 어원에는 많은 이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때가 많이 있다. 말의 어원을 아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어원을 통해 그 말 속에 담긴 선인들의 얼을 엿볼 수도 있다. 부분적이지만 이 장에서 다룬 말의 어원들을 통해 재미있고 윤택한 언어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
 
가게
작은 규모의 물건을 파는 집을 뜻한다.
‘가게’는 원래 한자어 ‘가가(假家: 임시로 지은 집)’에서 온 말이다.
큰 것은 어물전처럼 전(廛)이라 하였고, 다음은 점방처럼 방(房)이라 하였으며, 구멍가게처럼 규모가 작은 것을‘가가(假家)’라 하였다. 그 ‘가가’가 변음되어 ‘가게’가 되었다.

가물치
‘-치`는 물고기를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천자문에서,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그 ‘가물 현’의 ‘가물’이 오늘날 `검다`의 뜻이다. 고어에선 `검다`를 `감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가물치`는 결국 `검은 고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字가 붙는 물고기는 비늘이 있는 물고기이고, ‘치’자가 붙은 물고기는 비늘이 없는 물고기다. (오징어, 문어, 고등어 등은 예외).
또한 '치'로 끝나는 것들은 고유어(꽁치, 넙치, 준치, 멸치 등)이고, '어'로 끝나는 것들(붕어, 잉어, 숭어, 방어 등)은 한자어이다.

가을
사계절의 세 번째 계절을 뜻하는 ‘가을’은 ‘벼가을’, ‘보리가을’, ‘밀가을’처럼
본래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일을 뜻하였다.
이로부터 ‘가을’은 농작물을 주로 수확하는 계절로서의 ‘가을철’을 뜻하게 되었다.

갈매기살
고깃집에 웬 갈매기인가 하고 ‘갈매기살’하면 바다 갈매기를 떠올리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다. 갈매기살‘은 돼지 내장의 ‘횡격막(橫膈膜)’에 붙어 있는 고기다. ‘횡격막’은 폐의 호흡을 돕는 근육성의 막인데 우리말로는 ‘가로막’이라고 했다.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란 뜻이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을 ‘가로막살’이라고 한다. ‘가로막살’은 얇은 껍질로 덮여있는 근육질의 힘살로 다른 부위의 고기보다 질기기 때문에 이 부위를 기피해 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로막살’을 모아 껍질을 벗긴 뒤 팔기 시작하였다. 그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다. 이 ‘가로막살’을 상품화하여 팔면서부터 ‘갈매기살’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가로막살 → 가로마기살 → 가로매기살 → 갈매기살
이런 언어적 유추 과정을 거쳐 오늘날 ‘바다 갈매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재미있고 엉뚱한 ‘갈매기살’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갈보
‘갈다’는 ‘교체交替’의 뜻이다. 여기에 ‘울보, 먹보’하듯이 어떤 행동을 천할 정도로 자주한다는 뜻의 ‘ -보’ 라는 접미사가 붙어 된 말이다. 즉 이 사내 저 사내 갈아 치우기를 잘 하는 여자란 뜻으로 웃음과 몸 파는 여자를 ‘갈보’라 하였다.
오늘날, ‘매춘부(賣春婦)’니 ‘창녀(娼女)’니 하는 한자어가 이에 해당하는 말이다.

감쪽같다
우리 민담에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곶감이다. 우는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칠 만큼 달고 맛있는 게 곶감이다. 그 곶감을 누가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 빨리 먹어 치우고 말끔히 흔적이 없게 한 데서 생긴 말이다.
오늘날, `(고치거나 꾸민 것이) 표가 나지 않게 완벽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강강술래(강강수월래)
전라도 해남 지방에서 여자들이 한가위 밝은 달밤에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뛰노는 우리 고유의 민속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는 주장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적을 속한 위한 전술에서 비롯되었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 이순신 장군 관련설에서 나온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强羌遂月來, 江江水越來, 羌羌水越來, 强强須來) 등이 있다. 대체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니 경계를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둘째, 강강은 단순한 여음이거나 두드리는 악기의 의성어라는 주장이다.
셋째, ‘강’은 전라도 방언으로 원(圓)을 뜻하며, ‘술래’는 순라(巡邏)를 의미하는 것으로, 술래잡기를 하듯 원을 그리며 돈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수레바퀴처럼 감고 감으라는 뜻의 ‘감감수레’가 ‘강강술래’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이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다만 이순신 장군 관련설은 역사적 사실과 정황에 맞춘 민간어원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표준어는 ‘강강술래’다.
해남 지방 강강술래 민요의 노랫말은 이렇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
하늘에서 달 떠 온다 강강술래
달 우에는 별도 총총 강강술래
구름 속에 숨은 달은 강강술래
혀만 삐쭉 물었구나 강강술래
꽃도단포 화단 치마 강강술래
맵시 좋게 잘라 입고 강강술래
마당 좋고 동무 졸(좋을) 때 강강술래
신명털이나 하고 가세 강강술래

개차반
‘차반’은 예물로 가져가는 맛 좋은 음식이란 뜻으로, 흔히 새색시가 근친하고 시집에 올 때에 정성껏 잘 챙긴 음식이다. 똥이 개에게는 차반과 같다고 비유한 말로, ‘하는 짓이나 마음씨가 더러운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접두사 ‘개-’가 결합한 말은 진짜보다 좋지 않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와 같은 단어로 ‘개떡, 개죽, 개꿈, 개나리, 개살구, 개머루, 개꽃(철쭉)’ 등이 있다.

개평
조선 중기부터 조선 말엽까지 쓰이던 ‘상평통보’라는 엽전이 있었는데, ‘상평(常平)을 줄여서 `평`이라 하였다. 그러니 `평`은 곧 돈을 뜻했다. 주로 놀음판에서 딴 것 가운데 조금 얻어 가지는 일, 또는 그렇게 가진 공것을 뜻하는 말로 딴 돈 중에서 대개는 낱돈으로 주기 때문에 낱 `개(個)` 자를 써서 `개평(個平)’이라 했다.
‘개평’이 경기도 ‘가평의 떡’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발음의 유사성으로 유추한 민간어원설일 뿐이다.

거덜나다
조선시대에 사복시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거기서 말[馬]을 맡아보던 종을 ‘거덜’이라 했다. 궁중에서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물렀거라’하며 큰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사람들을 몰아세우다 보니 자연히 우쭐거리며 몸을 흔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잘난 체 거드름 피우는 것을 ‘거덜거리다’라고 하게 되었다.
또, 이렇게 ‘흔들흔들 한다’는 뜻이 더욱 발전하여 ‘사업(살림)이나 물건이 흔들리어 결딴이 나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자고로 거드름 피우는 것은 망조다. 경계할 일이다.

거울
거울이 없던 시절엔 냇물이나 우물을 거울로 삼았다. 얼굴을 물에 비춰보면 거꾸로 보였을 것이다. ‘거꾸로’의 옛말이 ‘거구루’였다. ‘거구루’가 ㄱ이 탈락하고, 동음이 생략되어 ‘거구루 → 거우루 → 거울’로 된 것이다.

건달(乾達)
‘건달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하늘나라의 음악을 책임진 신(神)의 이름이었다. 이 ‘건달바’는 향내를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와 연주를 하고 살았다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악사(樂士)나 배우까지 ‘건달바’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동안 ‘건달’을 ‘광대’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건달바’는 ‘건달’로 어형이 축소되었고, 의미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트집 잡기를 잘하는 사람’ 또는 ‘밑천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흔히 주먹 세계에서 ‘건달’과 ‘깡패’는 다르다 하며, 건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건달바’가 노래나 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신이라는 어원에 근거하여 ‘한량’쯤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更)을 치다
옛날에 밤 시간을 알리는 한 방법으로 경(更)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점(點)에는 꽹과리를 쳐서 시간을 알렸다.
경은 하룻밤을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 다섯으로 나누었는데, 삼경은 지금으로 치면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고, 이 때에는 북을 28번 쳤다. 이것을 인정(人定)이라 하며, 인정이 되면 도성의 사대문을 걸어 잠그고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수상한 사람이 인정 이후에 돌아다니다 순라군에게 잡히면 순포막으로 끌려가서 여러 가지 심문을 받은 후 죄가 없으면 오경(五更) 파루(罷漏)가 친 뒤에 풀려났다. 이런 사실에서 인정 이후 끌려갔다가 파루 친 뒤까지 순포막에서 경을 치르고 나왔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호되게 혼쭐이 나다’ 뜻으로 `경을 치다`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또 다른 ‘경’의 어원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자자(刺字)’라는 형벌이 있었다. 자자란 고대 중국에서부터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 때까지 행해졌다. 이 형벌을 경(?)이라 했다. `경을 친다`는 것은 곧 도둑이 관아에 끌려가서 `경`이란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호되게 꾸중을 듣거나 심한 벌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고구마
고구마는 원래 중미 지역이 원산지로 일본 대마도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고구마란 이름도 그 때 함께 들어왔다.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고오꼬오이모`라고 했으며, 여기서 `고오꼬오`는 효행(孝行)의 뜻인 일본말이다. 그리고 `이모`는 `감자` 종류다. 대마도의 가난한 백성이 병약한 부모를 고구마로 봉양했다고 하는 전설에서 생겨난 이름이 `고오꼬오이모`이며, 이 말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의 `고구마`라는 말이 되었다.

고리짝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한 사람이 살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으레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다.
`고리짝`이 `고려 적(고려 때)`이 오랜 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그 뜻을 잃어버린 단어임을 알았더라면,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말하였으리라.
옛날이야기는 말 그대로 오래된 이야기다. 그 오래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고려 시대`를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고소설이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에` 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숙종 때는 우리의 고대소설이 발아한 초창기 시대다.
이처럼 옛날이야기를 조선 시대에서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시작했던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옛날 옛적 고리짝에`로 변화된 것이다. ‘고리짝’은 ‘고려적’이 변한 말이다.

고수레
원래 무당이 굿을 할 때,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씩 떼어 던지는 짓, 또는 그때 내는 소리를 뜻한다.
고수레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 중 숙종 때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었다는 『규원사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신시 시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高矢)씨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짓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들에서 농사짓고 산에서 나물을 캐던 사람들이 고시 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음식을 먹을 때면 `고시네`라고 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고시네 → 고시레 → 고수레` 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근방을 다스리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하게 해 달라는 기원의 뜻도 들어 있어 근처의 잡귀나 동물들에게 너희들도 먹고 물러가라는 주술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추
고추가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이름은 고초(苦草)였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쓴 풀`이라고 하겠는데, `고초`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소리의 변화(이화 작용)를 일으켜 `고추`가 되었다. 고추의 그 길쭉하고 뾰족한 모양에 착안하여 그와 비슷한 남자의 상징을 ‘고추’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오늘날 매운 고추를 ‘청양고추’라 하는데, 이는 매운 고추로 유명한 경상북도 ‘청송’과 ‘영양’에서 한 글자씩 따서 ‘청양고추’라 부르게 되었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비롯되었다 함은 잘못이다.

곤죽
밥이나 땅이 몹시 질퍽질퍽한 상태, 일이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곤죽은 곯아서 썩은 죽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밥이 몹시 질거나 땅이 질척질척한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나아가 사람의 몸이 몹시 상하거나 늘어진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술을 곤죽이 되도록 퍼 마셨군`과 같이 쓰인다.

골탕먹다
`크게 곤란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다`는 뜻이다.
골탕이란 원래 소의 머릿골과 등골을 맑은 장국에 넣어 끓여 익힌 맛있는 국물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골탕을 먹는 것은 맛있는 고기 국물을 먹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곯다`라는 말이 골탕과 음운이 비슷함에 따라 ‘골탕’이라는 말에 `곯다`라는 의미가 더해지고, 또 `먹다`라는 말에 `입다`, `당하다`의 의미가 살아나서 `골탕먹다`가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 남모르는 큰 손해를 입게 되어 곤란을 겪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곶감
‘곶감’의 ‘감’은 물론 과일의 하나인 ‘감’을 뜻한다. 그리고 ‘곶’은 ‘곶다’의 어간 ‘곶-’이다. ‘곶다’는 현대국어에서는 된소리가 되어 ‘꽂다’로 되었다. 그래서 일부 방언에서는 ‘꽂감’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한다.

과메기
과메기는 청어를 말려서 만드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 관목의 ‘목’이 포항 지방의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되어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였고, 다시 ‘ㄴ’이 탈락되어 ‘과메기’로 굳어졌다.
과메기는 음력 동짓날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온마리를 엮어 그늘진 곳에 말려 만드는 것이다. 곧 냉훈법으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동결 건조 식품이다. 지금은 모양에 따라 배를 따서 뼈만 발라낸 ‘배진 것’, 통째로 짚으로 엮은 ‘엮걸이’ 두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그 정도면 약과(藥果)
과줄이라고도 하며, 밀가루를 꿀물이나 설탕물에 반죽하여 과줄판에 박아 찍어낸 것으로 주고 제사에 쓰이는 다과가 약과(藥果)다.
그 맛이 달고 고소하며, 딱딱하지 않아서 누구라도 수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 정도면 약과`라는 말은 어떤 일의 정도가 약과를 먹는 일처럼 수월하고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그 정도면 식은 죽 먹기다`가 있다.
‘약과는 누가 먼저 먹을지 모른다’는 말은 약과는 제사에 쓰이는 음식이므로 누가 먼저 죽어서 약과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글’은 동사 ‘긋다’의 어간 ‘긋’에 그 어원이 있다.
지난날 ‘긋’은 ‘귿’으로 표기되다가 ㄷ - ㄹ의 교체 현상(듣고 - 들으니, 묻고 - 물으니 등 오늘날 ‘ㄷ’불규칙)에 따라 ‘글’이 되었다. ‘금’, ‘그림’도 같은 어원에서 된 말이다. 결국 ‘글’은 어떤 도구로 그어서 된 것 이라는 뜻으로 된 말이다.

김치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치무리 담그기를 ‘염지(鹽漬)’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漬)’가 소금물에 담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소금을 뿌린 채소 등을 재워두면 안에 있는 수분이 빠져 나와서 채소가 국물에 침전되는 것을 보고 ‘?????ㅣ(沈菜)’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菹를 ‘딤?ㅣ 조’라 하였다. (후에 ‘저’로 읽힘)
결국 ‘?????ㅣ → 딤?ㅣ → 짐치(방언) → 김치(부정회귀 현상. 대체로 역구개음화. 질 → 길 등)로 변하였다. 결국 김치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 것을 뜻하였다.

꼬마
중세어에서의 우리말 ‘고마’는 아내 있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여자로 시앗, 첩(妾)을 이름이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고마’는 오늘날처럼 ‘키 작은 어린 사람’이 아닌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 ‘고마’가 된소리되기와 의미 변화를 일으켜 오늘날 ‘꼬마’가 되었으며, ‘꼬마둥이’, ‘꼬맹이’라고도 부른다.

꼬투리
`꼬투리`는 콩과 식물의 씨가 들어 있는 껍질을 뜻하는 말로, 씨앗의 모태가 된다는 면에서 어떤 이야기나 사실의 실마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꼬투리를 잡다`는 남의 잘못이나 문제가 되는 실마리를 틀어쥐다 는 뜻이다.

꼭두각시
꼭두각시는 원래 우리나라 고대 민속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형을 말한다.
꼭두각시에서 ’꼭두‘는 ’꼭뒤‘라고도 하는데 뒤통수의 한가운데나 꼭대기를 가리키는 말이고,’각시‘는 젊은 색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꼭두각시는 머리 꼭대기에 기괴한 탈을 쓰고 노는 여자 광대를 가리켰다. 그러던 것이 점차 그 뜻이 넓어져 나무로 깎아 만든 젊은 색시 인형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상야릇한 탈을 씌운 이 인형은 그 자체로 움직이지 못하고 반드시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날 무조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나 정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괴뢰(傀儡), 망석중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반정(中宗反正)을 꾀하던 날 밤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연산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소홀한 채 술과 놀이만 일삼던 임금이었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자 나라는 점점 어지러워졌다.
"허어, 왕께서 허구한 날 술과 계집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오."
"그러게 말이오. 옳은 말을 하는 신하는 멀리하고 간신들의 아첨에만 귀를 기울이니 원!"
"뜻 맞는 사람끼리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임금을 몰아내든지 해야지,"
"쉿! 누가 듣겠소. 자,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한 데서 얘기합시다!"
연산군의 그런 행동을 보다 못한 몇몇 신하들이 비밀리에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희안, 박원종 등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뜻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오늘 밤 모두들 박원종의 집으로 모이시오.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점검해 보아야겠소."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성희안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각자 어떤 일을 맡겠으며, 준비에 차질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말해보시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달빛도 없는데다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촛불도 켜지 않은 터라,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성희안은 가만히 모인 사람들을 세어보았다. 놀랍게도 모이기로 한 사람보다 한 명이 더 많은 게 아닌가.
"박 대감, 엄탐꾼이 들어와 있소."
박원종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염탐꾼이 있다면 내일 벌이기로 한 큰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염탐꾼은 보이지 않았다.
"성 대감,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
성희안은 말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성희안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던 박원종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성 대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내일 큰일을 위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정말 자세히 보니 보릿자루였다.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갓과 도포를 벗어 놓아 영락없이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허허,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하다니...!"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그저 듣고만 있는 사람을 가리켜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 하게 되었다 한다.

끈 떨어진 망석중
의지할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나, 물건이 못 쓰게 되었거나, 일이 그만 허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망석중이’는 나무로 다듬어 만든 인형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당겨 춤을 추게 하는 ‘망석중이놀이’에 나오는 인형이다.
옛날에 주로 음력 4월 초파일 연등 행사에서 무언 인형극인 ‘망석중놀이’를 하였는데, 망석중, 노루, 사슴, 잉어, 용 따위의 인형이 사용되었다.
이 ‘망석중놀이’는 송도의 유명한 기생인 황진이가 당시에 30년 동안 면벽수도를 했다는 명승인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일을 풍자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망석중은 끈을 매달아 움직이기 때문에 끈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남을 지나치게 희롱한다는 뜻으로 `망석중 놀리듯 한다‘라고 쓰기도 한다.

 
(나)
 
나쁘다
`나쁘다`는 본래 `낮+브다`로 이루어진 말로서 `높다`의 반대로 낮은 상태를 뜻하였다.
오늘날은 ‘나쁘다’는 높고 낮음의 고저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어떤 가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전이되어 `기준에 못 미친다`, `질이 낮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난장
`시골에서 정한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간 서는 장‘, 또는 ’한데다 난전을 벌여 놓고 물건을 파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는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과거를 볼 때가 되면 오로지 급제를 위해 수년 동안 공부를 한 양반집 자제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 없이 들끓고 떠들어 대던 과거 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 과거 시험장의 난장에 빗대어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없이 된 상태를 일컬어 ‘난장판’이라고 한다.

날샜다
‘날샜다’라는 말은 원래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었는데, 차츰 일반 사람들도 이 말을 쓰게 되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 밤이 나오는 장면은 꼭 밤에만 찍어야 했는데, 찍고자 하는 내용을 미처 다 찍지 못하고 날이 새면 할 수 없이 하루를 기다려 그 다음날 밤에 다시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거나 잘못되거나 예상처럼 되지 않고 빗나갔을 때를 가리켜 ‘날샜다’라고 하게 되었다.

남방셔츠
`남자들이 여름에 양복저고리 대신 간편하게 입는 웃옷`을 가리킨다.
`남방(南方) 셔츠(shirts)`가 줄어서 된 말로, ‘남방’은 동남아 지역을 가리키며, 그 곳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옷 모양을 소매가 짧고 통풍이 잘 되도록 헐렁하게 만들어 입는다. 날씨가 더운 남방 지방 사람들이 주로 입는 모양의 옷이라는 뜻으로 된 말이다. 줄여서 ‘남방’이라고도 한다.

남산
‘남산’이라 하면 남쪽의 산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남(南)`은 `앞 남`이었다. 즉 `남산`은 `앞산`이란 의미로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이다. 그러므로 ‘남산’은 그 고을의 주산(主山)이 된다. 그래서 대체로 어느 고장이나 ‘주산’인 ‘남산’이 있다. 서울의 ‘남산’은 경복궁이나 여러 궁궐에서 보면 조선시대 한양의 ‘주산’였던 것이다. 그리고 좌청룡우백호 배산임수가 명당자리인 것이다. 한편 `북’은 `뒤 북`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간다는 뜻이었다.
애국가 중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할 때 남산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주산인 남산의 의미를 새로이 새겨 볼 일이다.

남산골 샌님
살림이 궁핍하여도 살아갈 궁리를 못하고 글만 읽는 가난한 선비를 비웃어 이르는 말이다.
옛날 서울 남산 밑에는 몰락한 구차한 ‘생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생원’은 소과에 급제한 선비 또는 나이 많은 선비에 대한 존대어였다. 그 ‘생원’이 ‘샌님’으로 되었다.
남산골 샌님을 ‘딸깍발이’라 했는데, 샌님들이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나온 말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의 허생도 남산골 샌님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국어학자 이희승의 <딸깍발이>란 수필도 남산골 샌님들의 가난한 가운데 지조를 예찬한 글이다.

낭만浪漫
낭만은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기보다는 주로 정서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뜻하는 말이다.
낭만의 원래 말은 프랑스의 로망(roman)이다. 그것이 일본 사람들이 낭만이라고 한 것이다. 로망이라는 말과 비슷한 한자음을 찾아 쓴 게 낭만(浪漫)이었다. 음을 빌려 쓴 가차인 셈이다. 그 일본식 외래어가 우리말에 그대로 들어와 굳어진 것이다.

너스레
`떠벌려 늘어놓는 말솜씨`를 뜻하는 말이다.
흙구덩이나 그릇의 아가리 또는 바닥에 물건이 빠지지 않도록 걸쳐 놓은 막대기를 ‘너스레’라고 한다. 너스레를 늘어놓듯이 그럴 듯하게 떠벌리는 말을 ‘너스레’라 하게 되었다. 흔히 `너스레를 놓다(떨다, 부리다)`라고 쓴다.

넋두리
`불만이 있을 때 주절거리는 소리`을 뜻한다.
원래는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하여(빙의 상태) 하는 말을‘ 넋두리’라 하였다. 무당이 하는 넋두리가 차차 뜻이 확대되면서 그냥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푸념'도 같은 유래의 말이다.
넋걷이: 굿을 하여 죽은 사람의 넋을 거두어들이는 일, 또는 그 노래.
넋대: 무당이 물에 빠져 죽은 넋을 건지는 데 쓰는 장대.
넋반: 무당이 넋을 담는 데 쓴다고 하는 소반.

노가리
명태의 새끼를 말한다.
명태는 한꺼번에 매우 많은 수의 알을 깐다 한다. 명태가 많은 새끼를 까는 것과 같이 말이 많다는 것을 빗대어 쓰기도 한다. 노가리의 수만큼이나 말을 많이 풀어 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가 된다. `노가리 풀다`, `노가리 까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노다지
바라던 광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 광맥, 또는 그 광물을 뜻한다.
구한말(舊韓末), 한국을 다녀간 한 외국인 루벤초프가 그의 탐험기(探險記) 속에서, "이 나라는 금이 노출되어도 캐지 않는 나라이며, 특히 북방 연해는 금의 고지였다"라고 씀으로하여, ‘은자(隱者)의 나라(Nation Hermit)’ 는 ‘황금의 나라(Nation of Gold)’로 이미지가 바꾸기 시작했다. 외국 여러 나라들이 눈독을 들였던 한국의 산야(山野)에 깔린 광맥은 외국 사람에 의해 개발되고, 그래서 한국의 금덩이는 외국으로 흘러나가게 된다. 그와 같이 금광에서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상자에 쓰인 글씨가 "NO TOUCH"(노 터치: 손대지 마시오)
라는 것이었다. 이 ‘노터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아가는 사이 와전(訛傳)되어, 드디어는 지금의 ‘노다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다지 캐려는 사람이, 다른 데 정신은 없고 오직 한 군데에만 신경을 쓴 데서 이 ‘노다지’는 ‘늘’ 혹은 ‘언제나’와 같은 뜻으로도 쓰이게 된 것이다.

노들강변
‘노량’의 한자는 백로 로(鷺)에, 징검돌 량(梁)이다. 그래서 `노량`은 `노돌`이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노들`로 변했다. 거기에 `강변`이 덧붙은 것이다.
이 `노들강변`은 옛날에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였다. 그래서 이 `노들강변`은 애환이 많이 깃든 곳이요, 민요로까지 불려진 것이다.
‘노들강변’ 민요는 중국의 신모(申某)가 가사를 지었고 문호월(文湖月)이 곡을 붙였다는 노래로, 한국에 들어와 완전히 한국 민요로 토착화하였다. 9박자의 세마치장단에 의한 맑고 경쾌한 노래이다. 가사는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無情歲月)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로, 세상의 한(恨)을 물에 띄워 보내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 놀이 , 놀음
`놀다`의 어간 `놀-`에서 온 말들이다. 각각 `놀 + 애`, `놀 + 이`, `놀 + 음`으로 분석될 수 있다. `사람`, `삶` `살림`이 모두 `살다`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노래, 놀이, 노름`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놀이`는 그럴 듯한데, `노래`나 `노름`이 `놀다`에서 나왔다는 인식은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안 드는 단어일수록 대개는 그 단어가 만들어진 역사가 오랜 것들이다.

녹초가 되다
`아주 맥이 풀리어 늘어지다`라는 뜻이다.
녹초는 `녹은 초`를 뜻한다. 초가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흐물해지거나 보잘 것 없이 된 상태를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누비옷
누빈 옷감으로 지은 옷으로 주로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다.
본래는 스님들이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넝마의 헝겊 조각을 기워서(納) 만든 옷(衣), 즉 `납의장삼(納依長衫)`에서 나온 말이다. 납의가 `나비`로 소리 나다가 이것이 다시 `누비`로 정착된 것이다. ‘누비’의 원형은 `납의`로서 누덕누덕 기워 만든 옷을 말한다. 여기에서 `누비다`라는 새로운 바느질 양식이 나오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종횡무진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눈시울
눈의 언저리의 눈썹이 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울’은 원래 고깃배 가장자리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길게 타원형으로 된 배의 가장자리 모양이 눈과 입 모양을 연상시켜 `눈시울` `입시울`이라 했던 것이다.

‘니마’ 는 태양신을 뜻하는 말에서 제사를 지내는 군왕을 뜻하는 말로, 상대방을 높이는 접미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상응하는 ‘고마’는 물과 땅의 신으로서 생산을 맡는다. 니마는 단군의 아버지 신, 고마는 어머니 신에 해당한다 하겠다.
‘님’은 따지고 보면 태양신 곧 광명의 신으로 숭앙되었으며 따라서 ‘-님’ 이라고 부르는 우리 언어 관습의 밑바탕에는 상대방을 태양신과 같은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로 쓰일 때는 아직까지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임’이 표준어로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님’으로 쓰고 있음으로 표준어 사정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다)
 
단골집
늘 정해 놓고 다니는 집을 말한다.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불렀다. 늘 정해 놓고 거래하는 집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단골집’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났다.
우리의 민속신앙은 전통적으로 귀신이나 자연물을 섬기는 샤머니즘이었다. 이런 무속신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신이라 하여 많은 배척을 받았으나 아직도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동네마다 대나무에 깃발을 꽂아 놓은 집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무당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표지이다.
옛날에는 가족 중에 병이 들거나 집안에 재앙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굿을 하는 것을 ‘푸닥거리’라고 하며, 병이나 재앙의 원인이 되는 살(煞)을 푼다는 뜻에서 ‘살풀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굿을 할 때마다 늘 정해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무당이 그만큼 가까운 존재였음을 말해 준 것이라 하겠다.

담배
담배는 1492년에 스페인의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상륙하여보니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진 것이 오늘날 담배의 시초이다. 그러나 담배는 이미 기원전부터 중남미 대륙에 야생종으로 분포되어 있었고,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이전부터 아메리카 인디오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래된 연대와 경로에 대해서는 고정된 설이 없지만, 국내 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1608년부터 1816년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지금의 신대륙에 처음 상륙했을 때, 그 곳의 원주민들이 마른 담배 잎을 선물했다고 한다. 콜럼버스 일행은 처음에는 그 용도를 몰랐으나 원주민들이 불붙은 잎 뭉치를 들고 다니며 피우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한두 번 피워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여송연(Cigar)의 기원이다.
그로부터 20∼30년 후 담배의 원산지인 멕시코의 아즈텍족 추장이 유럽에서 온 탐험가에게 선물한 갈대 담배가 궐련(Cigarette)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길이는 한 뼘이 훨씬 넘었고 갈대 줄기에 담배와 향기 나는 식물을 섞어 만든 것으로 바깥 부분은 목탄을 발랐고 입에 무는 부분이 움푹 파인 모양으로 만들어 졌었다 한다. 그 이후로 갈대를 구하기가 힘들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갈대 대신 종이로 싸는 방법을 개발하여 오늘날의 궐련과 거의 유사한 모양의 담배를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수백 년 동안 주로 스페인 사람들이 사용하였고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파이프 담배와 여송연이 유행하였다 한다.
오늘날과 같은 필터 담배는 처음에는 비싼 터키산 담배 잎에 필터를 부착하여 ‘러시아식 담배’로 불리며 1850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1854년의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포로로부터 빼앗은 이 담배 맛을 본 영국군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러시아식 담배’ 를 찾게 되었고,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일본에 최초로 담배를 소개한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인데,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일본인들 사이에 급속하게 번져나가서 2년 만에 금연령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초창기에는 주로 양반 계급과 고관대작 등 부유층 중심의 기호품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담배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인조실록」(仁祖實錄)에 나온다.
지봉 이수광(芝峰 李粹光)의 「지봉유설」(芝峰類設)에는, 벌써 오늘날 쓰이고 있는 ‘담배’비슷한 말이 나온다. ‘담바고는 남령초(南靈草)라 하는데 근년에 일본에서 온 것이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인조 때의 명신이자, 우리나라 담배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계곡 장유(谿谷 張維)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담배 피우는 법은 본디 일본에서 온 것이니, 일본 사람은 이를 ‘담박괴(淡泊塊)라 하였다’라고 써 있다. 윤기진(尹起晉)의 대동기년」 (大東紀年)에는 장유(張維)가 처음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痰破塊(담파괴)’라는 표기가 나온다.
그 이후, 민요에서 보이는 ‘담바구타령’ 같은 것도 보이니, 포르투갈어 ‘토바코’가 일본의 ‘다바코’를 거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사이 ‘담바구’가 변음 되어 ‘담배’로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담배’는 오늘날 외래어라는 의식이 들지 않은 귀화어 집합에 드는 말이다.

대포
`큰 잔 또는 큰 잔으로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커다란 탄환을 멀리 내쏘는 화기(火器)를 뜻하는 대포에서 크다는 뜻을 빌려와서 다른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왕대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일식집에서 ‘정종 대포’라는 것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댕기풀이
`관례나 혼인을 하고 나서 동무들에게 한턱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관례를 치르면 그 동안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던 머리를 틀어서 상투를 올리게 되고, 혼인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를 올려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각, 처녀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이 때 땋은 머리를 묶고 있던 댕기를 풀게 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도깨비
도깨비의 어원은 ‘돗’ (종자)과 ‘아비’ (아버지. 남자)의 합성어이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도깨비는 원래는 사람에게 재물을 가져다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귀신도 사람도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도깨비는 강시 같은 중국의 ‘귀(鬼)’나 혹 달린 일본의 ‘요괴’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깨비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된 것은 장난기와 심술이 많고, 도깨비불로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하며 숲이나 바다. 강처럼 물기가 많은 곳에 산다. (과학적으로 이를 인燐이라는 원소로 보기도 한다)

도루묵
`은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하던 도중에 처음 보는 생선을 먹게 되었는데 그 맛이 별미였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고 하므로, 그 이름이 맛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다 하여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고 고치도록 했다. 나중에 궁중에 들어와 `은어` 생각이 나서 다시 청하여 먹었으나 예전과 달리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가 ‘은어’를 ‘도로 묵’이라고 하라 했다 전한다. 이런 유래로 인해 `도로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발음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 한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허사가 되었을 때 흔히 `말짱 도루묵‘이라 한다.

도무지
‘아무리 해도, 전혀, 아주’라는 뜻의 부사로 쓰이는 말이다.
구한말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엄격한 가정의 윤리 도덕을 어그러뜨렸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그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도모지(塗貌紙)`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물을 묻힌 한지(韓紙),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 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도무지`는 이런 끔찍한 형벌에서 비롯하여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인 `도모지’가 변음(이화작용) 되어 ‘도무지`가 되었다.

도토리
‘돝[猪돼지 저]’ 이 ‘도톨’로 여기에 명사화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도토리’가 된 것으로, ‘돼지(멧돼지)가 먹는 밥’의 뜻이었다. ‘상수리’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도토리’가 ‘상수리’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음식 중 도토리묵은 사실은 상수리묵이다.

독도
독도’와 관련된 명칭은 시대에 따라 문헌에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성종 때의 ‘삼봉도(三峰島)’, 정조 때의 ‘가지도(可支島)’, 19세기 말 이후의 ‘석도(石島)’, ‘독도(獨島)’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 현지 주민들은 ‘독섬(즉, ‘돌섬’)’이라는 조금은 색다른 명칭에 익숙하다. 이 ‘독섬’은 ‘石’을 뜻하는 ‘독’과 ‘島’를 뜻하는 ‘섬’이 결합된 순수 고유어이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한다. 조선조 말(1883년) 울릉도에 대한 개척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하였다는 점에서, 울릉도와 인접한 돌로 된 섬을 자기 지역 말로 ‘독섬’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문헌에 보이는 ‘석도(石島)’는 바로 우리말 ‘독섬(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자어 ‘독도(獨島)’는 ‘독섬’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독’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자 그저 음이 같은 ‘홀로 독(獨)’ 자를 이용하여 엉뚱한 ‘외로운 섬’이 되고 말았다. 이로 보면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고 ‘돌로 된 섬’일 뿐이다.
한편, 일본 사람들은 17세기 이후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아마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아서, 독도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그러한 명칭을 부여한 것일 터인데 지금도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기에 그러한 명칭이 제대로 어울리나, 독도에는 소나무는커녕 어떤 나무도 없어 ‘송도(松島)’라는 명칭이 무색하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후 일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명칭에 아주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울릉도를 ‘죽도’ 또는 ‘송도’라고도 하고, 독도를 ‘송도’ 또는 ‘리앙쿠르島’라고도 하다가, 1905년 이후에는 독도를 ‘죽도’로, 울릉도를 지금과 같이 ‘울릉도’로 부르게 되었다.
울릉도를 가리키던 ‘죽도=다케시마’가 돌연 독도를 가리키게 되어 실제 독도에 대한 명칭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독도’에 대한 자기네 이름(즉, ‘송도=마쓰시마’)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니 역사적 사실을 들추지 않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도 엉뚱한 외로운 섬이란 뜻의 ‘獨島’보다는 ‘독섬’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표기함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팔이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
아는 것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기술이나 물건을 파는 것을 `돌팔이(돌다+팔다)`라 했다. 돌팔이 무당, 돌팔이 의사, 등의 말이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동냥
`거지가 돈이나 물건을 구걸하는 일`을 뜻한다. 한자말인 동령(動鈴)에서 온 말이다.
원래 불가에서 법요(法要)를 행할 때 놋쇠로 만든 방울인 요령을 흔드는데 이것을 동령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중이 쌀 같은 것을 얻으려고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에서 동령을 흔들기도 했다. 지금은 동령대신 목탁을 두드리지만 동냥이라는 말은 이렇듯 중이 집집마다 곡식을 얻으러 다니던 ‘동령’에서 비롯한 말이다.
한편 `가을 중 싸대 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을이 되면 농민들이 곡식을 수확하게 되고, 그러면 중들은 때맞춰 시주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데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닌 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동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동냥아치’라고 부르는데, 이는 ‘거지’와 같은 뜻으로 속화된 것이다.

동티
`잘못 건드려 스스로 재앙을 사다`의 뜻이다.
원래 흙이나 나무를 잘못 다루다가 지신(地神),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입어 재앙을 당한다는 뜻의 민속 용어였던 것이 일반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동티’는 ‘동토(動土)’라는 한자말이 변해서 된 말이다.

돼지
접미사 ‘-아지’가 붙으면 ‘새끼’의 의미가 된다.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도야지 등이 이렇게 된 말이다. ‘도야지’가 축약되어 ‘돼지’가 되었다.
고어에서 `돝`은 어미 돼지이고, `도야지`는 새끼 돼지였는데, 후에 `돝`이 사어가 되면서 ‘도야지’가 축약된 `돼지`가 `돝` 대신 표준어가 되고, `도야지`는 방언이 되었다. 그래서 가축 중에 `돼지`만은 새끼 돼지의 명칭이 따로 없다. 본래는 새끼 돼지를 일컫던 말이 돼지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어의가 확대되어 쓰이게 된 것이다.
사람 중에 가망성이 없다 할 때 ‘싹아지 없다’의 ‘싹아지’도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두레
부락 단위로 조직된 집단적 노동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두레’는 ‘두르다’에서 유래한 말로 어간 ‘두르’의 ‘ㅡ’가 탈락하고, 접미사 ‘-에’가 결합한 말이다.
민속놀이 두레도 이와 같은 뜻으로 빙 둘러서서 논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딴따라
노래, 악기, 춤 따위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요즘 연예인에 해당한데 천시하여 ‘딴따라’라 불리던 시대가 있었다.
`딴따라`는 영어의 `tantara`의 음을 빌려 온 것으로 나팔이나 뿔나팔 등의 소리를 말한다. 그래서 이 소리를 빌어 와서 `딴따라`라고 하였다. 국어의 의성어가 아닐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국어에 `딴따라`라는 의성어는 없다.

고어 동사 ‘ㅂ디다(찌다)’의 어간에 명사화 접미사 ‘-기’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ㅂ디기 → 떼기 → 떠기 → 떡’으로 변화된 것으로 ‘찐것’이란 뜻이다.

뚱딴지
엉거시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름으로 일명 ‘돼지감자’라 불린다.
생김새나 성품이 돼지감자처럼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오늘날은 본래의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마)
 
마누라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였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은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르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직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이다.
옛날 모계 사회에서는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 불렀다.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이다.
‘마누라’를 ‘마주누어라’의 준말로 보는 것은 ‘술’이 ‘술술 넘어 간다’해서 ‘술’이라 한다는 식의 발음의 유사성에 근거한 언어유희일 뿐이다.

막간幕間
원래 `막간`은 연극에서 한 막이 끝나고 다음 막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동안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이 `어떤 일의 한 단락이 끝나고 다음 단락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동안, 바쁜 중에 여유나 틈이 조금 생긴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망나니
옛날에 사형을 집행할 적에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을 맡아 보던 사람을‘망나니’라고 불렀으며, 주로 중죄인 중에서 뽑아 썼다. 고로 망나니는 으레 성질이 포악하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이 그 구실을 담당하게 마련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막된 죄수라는 뜻의 ‘망나니’가 지금은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 말이나 행동이 막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하였다.

매무새
`매무새`라는 말은 끈을 `매다`의 어근 `매`와 다발로 묶는다는 뜻의 어근 `뭇`과 명사화접미사가 ‘애’가 결합하여 `매(結)+뭇(束)+애(接尾) > 매무새`라는 어형을 이루게 되었다.

멍텅구리
멍텅구리는 본디 바닷물고기 이름인데, 못 생긴 데다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판단력이 약하고 시비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먹통
목재나 석재에 먹으로 표를 하는 도구가 있다.
먹통이 지니고 있는 `까맣다`라는 이미지 때문에 주로 말이 안 통하는 어리석은 사람, 바보, 멍청이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면목面目
'면목(面目)'은 원래 불교에서 전래한 말로 본래 면목은 사람마다 다른 게 아니고,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면목'이란 말은 자신의 본모습, 불성을 제대로 간직한 모습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낯, 체면, 남에게 드러낼 얼굴'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명태
명태와 관련된 민간어원설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함경도 명천에 성이 ‘태’라는 고기잡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낚시로 이상한 물고기를 잡았는데, 아무도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고을 사람들은 명천의 ‘명’과 고기잡은 사람의 성 ‘태’를 결합하여 ‘명태’라 하였다는 이야기다.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에서 나는 명태의 생물은 보지 못하고 배를 째서 마른 것만 보았기 때문에 마른 명태는 ‘북어’, 강원도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는 ‘강태’, 겨울에 통째로 얼린 것은 ‘동태’라 부르게 되었다.

모꼬지
‘모꼬지’는 대학가에서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고, ‘모임’도 ‘모꼬지’란 고풍스런 말로 바꾸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어 쓰인 어휘다. ‘모꼬지’는 국어사전에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로 풀이되어 있다. ‘모꼬지’는 최근에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다. 이상화의 시‘나의 침실로’의 ‘마돈나 지금은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야 돌아가려는도다’라 하여 ’목거지‘가 보인다.
‘모꼬지’는 ‘모이고 갖추는 일’, 즉 ‘모임을 갖추는 일’을 뜻하는 ‘??지’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여러 형태로 나타나다가 오늘날의 ‘모꼬지’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모이는 일, 잔치나 식사 대접 등을 통한 모임, 연회(宴會), 향연(饗宴)의 의미로 쓰인다.

목적目的
공작새 깃털에 있는 `눈 모양의 과녁`을 가리켜 생긴 말이다.
오늘날,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대상(목표)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무꾸리
무꾸리는 `묻는+거리`에서 나온 말이다. 굿을 할 때 각각의 마당을 부정거리, 칠성거리, 제석거리, 대감거리, 성주거리, 장군거리 등으로 부르는데, 점을 칠 때 특히 무당이나 판수처럼 신을 모시는 사람에게 길흉을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무녀리
‘무녀리’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문(門)+열+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짐승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비실비실하고 몸이 허약한 편이다. 이에 빗대어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비유할 때 많이 쓴다.

무동 태우다
`사람을 목 뒤로 올려 태우다`의 뜻이다.
농악에서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사람 어깨 위에 올라서서 아랫사람이 춤추는 대로 따라 추는 놀이가 있는데, 이 때 어깨 위에 올라선 아이를 `무동(貿童)`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태우는 것을 `무동舞童 태우다`라고 하게 되었다.
‘무등 태우다’는 잘못 쓴 말이다.
같은 뜻의 순 우리말로는 목 뒤로 말을 태우듯이 한다고 해서 `목말 태우다`라는 말이 있다.

무명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왔을 때 왕이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들었던 대로 `무미엔`(중국 발음)이라 했다.
이 `무미엔`이라는 발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비슷한 발음이 나는 한자 ‘무명(武名)’으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은 뜻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쓴 가차인 셈이다.
무명씨를 심어 그 목화에서 나온 무명실로 짠 면직물을 `무명`이라 한다. 무명은 광목, 옥양목 등과는 그 종류가 다른 우리나라 토속 직물로 조선시대에 옷감과 이불의 재료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무쇠
무쇠는 `물쇠`에서 나온 말로서 무른 쇠라는 뜻이다. 강철보다 쉬 녹아서 생활용품 따위를 주조하는 데 널리 쓰인다.
그런데 강하고 굳센 것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무쇠를 매우 강한 쇠로 알고 있다.

무좀
‘좀’은 고어의 ‘촘'으로 벌레 이름이다. 보통은 ’좀벌레‘라고 하는 것인데, 나무, 곡식, 옷, 종이 따위를 쏘는 벌레의 하나다. '무좀'은 '물좀’이 ‘ㅈ’ 앞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다. 즉 물집이 생기도록 하는 좀벌레라는 뜻이다.

무지개
‘물+지게’, 즉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문처럼 보이는 현상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지게’는 ‘문’을 뜻하는 고어이다. ‘물지게’가 ㄹ이 탈락하고, ‘지게’는 ‘지개’로 변음되어 ‘무지개’가 되었다.

물레
`물레`는 우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의 손자 `문래(文來)`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문래`가 목화에서 씨를 뽑는 기계인 씨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솜으로 실을 잣는 재래식 기구를 `물레`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문래의 동생 문영이 천 짜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하여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짠 천을 ‘무명’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는 그 훨씬 이전인 김해토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문익점 손자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은 민간어원설이 아닌가 한다.

미루나무
처음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나무`라 했던 것이 차차 `미루나무`라는 발음이 일반화됨으로써 표준어 사정에서 `미류나무` 대신 `미루나무`를 표준어로 지정하였다.

미리내
‘미리’는 옛말 ‘미르’에서 온 말인데, 용이란 뜻이다. ‘내’는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고. ‘미리내’는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이 된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고, 하늘로 올라간 용이 살만한 곳은 은하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은하수가 마치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은하수를 ‘용이 사는 시내’, 곧 ‘미리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미망인
[春秋左氏傳]에 이런 얘기가 있다.
초(楚)나라 영윤(令尹:재상)인 자원(子元)이 돌아간 문왕(文王)의 부인을 유혹할 양으로 부인의 궁전 옆에 자기 관사를 짓고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만들었다는 ‘만(萬)’이라는 춤을 추게 하며 풍악을 울렸다. 이에 문왕 부인이 말했다.
“선군(先君)은 이 무악(舞樂)을 군사 훈련 때에 한해서 썼다. 이제 영윤이 이것을 원수 갚는 일에 쓰지 않고 이 미망인 옆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부인의 시종(侍從)이 이 말을 자원에게 고했다. 자원도 여기서 마음을 돌려 수레 6백대를 끌고 정(鄭)나라로 쳐들어간다. ‘未亡人’은 여기서 처음 쓰였으며, 죽지 못해 사는 여자라는 뜻으로 과부가 자기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었다.
따라서 원래는 남이 '미망인'이라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요즘은 대체로 남편을 먼저 여읜 부인을 일컫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미숫가루
미숫가루는 쪄서 말린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뜻하는 `미시`와 `가루`가 합쳐진 말이다. `미시` 자체가 쪄서 말린 가루를 뜻하므로 `미싯가루`는 `가루`라는 같은 말이 중복된 말이다.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을 볶거나 쪄서 맷돌에 갈아 고운 체에 쳐서 만든 가루로 ‘미싯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불리다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서 `미숫가루`가 표준어가 되었다.

미역국 먹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解散)’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解産)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解散)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다.
직장을 잃거나, 시험에 떨어진 것을 ‘해산 당한 것과 같이 생각하여 ’미역국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다.

미장이
옛날에는 진흙으로 벽면을 바르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미장이’는 원래 ‘니(泥, 진흙 니)’에다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천한 직업인을 뜻하는 한자어 ‘장’(匠)이 붙은 ‘니장’(泥匠)에 사람을 뜻하는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단어다. 그래서 ‘미장이’는 ‘니장이(泥匠이)’였는데 어형이 바뀐 말이다. ‘미쟁이’는 비표준어다.

미주알고주알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고주알’은 뜻과 관계없이 운을 맞추기 위한 첨가어다.
꼬치꼬치 캐는 것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민며느리
`앞으로 며느리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다가 기르는 계집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날에 시집 안 간 처녀를 미리 데려다 기르며 일을 시키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며느리를 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런 어린 며느릿감 처녀를 `민며느리`라고 했다.
`민`은 아무 꾸밈새나 덧붙여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그리고 민며느리라고 하면 `민머리`인 채로 데려 온 처녀를 말한다. ‘민머리’는 쪽을 지지 아니한 머리를 뜻하므로 시집 안 간 처녀를 이르는 말이다.
 
 
(바)
 
바가지 쓰다
조선말 개화기 이후에 중국에서 `십인계`라는 노름이 들어왔다.
이 노름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엎어 놓은 뒤에 물주가 돈을 감춘 바가지 수가 적힌 바가지에 돈을 건 사람은 못 맞춘 사람의 돈을 모두 가지며, 손님이 못 맞출 때에는 물주가 다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가지에 적힌 수를 맞추지 못할 때에는 돈을 잃기 마련이어서 `손해 보다, 피해를 당하다`라는 뜻으로 `바가지 쓰다`라는 말이 생겼다.

바둑
중국에서 생긴 바둑은 논어(論語)에 ‘바둑을 두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란 공자의 말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라 한다. 이 바둑을 중국에서는 혁(奕)으로 썼는데, 이는 양자강 부근의 방언으로 원래는 위기(圍棋: 바둑알로 에워싸다)라 했다. 이 바둑을 우리나라에서는 배자(排子: 늘어놓는 것)라고도 했다.
배자(排子)는 ‘排돌(배독)’이라고도 불렀는데, 돌의 방언이 독이다. 배자>배돌>배독>바독>바둑(이화작용)으로 변해 온 것이다.

바라지
일을 돌봐 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라지`는 원래 불교 용어로 절에서 영혼을 위하여 시식(施食)할 때에 시식법사가 앉아서 경문을 읽으면 그 다음의 경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 또는 그 시식을 거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속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지의 무당의 노래에서 으뜸 무당이 부르는 노래 사이사이에 뜻 없는 말로 받는 소리를 일컬어 ‘바라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 후 바라지가 일상용어로 자리 잡게 되면서 뒤에서 일을 돌봐 준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런 뜻에서 자식 바라지, 옥바라지, 뒷바라지 등의 말이 생기게 되었다.
*시식(施食): 부모나 그 밖의 외로운 혼령을 위해 음식을 올리며 경전을 읽는 일.

바람맞다
원래 ‘바람맞다’라는 말은 중풍에 걸렸다는 것을 뜻했다. 중풍(中風)의 풍(風)이 바람을 뜻하는 한자말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풍에 걸리면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비참한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남에게 속거나 약속이 어그러졌을 때의 손해나 허탈감을 중풍에 연결시켜서 ‘바람맞았다’고 하게 된 것이다.

바람서리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있다. 이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바람서리`이다. `바람 風, 서리 霜`이다. `바람서리(風霜)’즉 어떤 시련이나 역경에도 남산의 소나무는 꿋꿋한 기상으로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작사된 것이다.

바보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밥+보`에서 `ㅂ`이 탈락된 형태이다.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체언이나 어간의 끝에 붙어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따라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다.
같은 이치로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비속어)을 쓰기도 한다.

박수
중부 이북 지방에서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서, 몽골어 `박시(baksi)`가 그 어원인 듯하다. `박시`는 `지혜로운 자` 또는 `스승`을 뜻하는 말로서 라마교의 라마승도 `박시`라 한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제사장인 무당이 바로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였던 것처럼, 우랄 알타이족의 남자 무당은 대개 그 명칭이 박수와 같거나 비슷하다.
`박수`를 그 앞에 성을 붙여서 `김 박수``이 박수`하는 식의 호칭으로 쓰기도 한다.

박쥐
`박쥐`는 원래 `밝쥐`였다. `눈이 밝다`는 뜻으로 `밝-`이 쓰인 것이다. 박쥐가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포착하여 방향을 조정해서 야간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니까, 그 전에는 `눈이 밝은 쥐`로 이해했을 만도 하다.

박차를 가하다
일의 진행이 빨리 되도록 힘을 더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말을 탈 때 기수의 구두 뒤축에 달아 뒤로 뻗치게 하는 쇠로 만든 물건을 박차(拍車)라 한다. 박차의 끝에 달린 톱니바퀴로 말의 배를 차서 빨리 달리게 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박차를 가한다`는 말은 한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과 같은 뜻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해서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것과 같이 일이 빨리 성사되도록 열과 성을 더하는 것의 의미로 쓰인다.

반죽이 좋다
쌀가루나 밀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놓은 것을 반죽이라 하는데, 반죽이 잘 되면 원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 말은 지금은 성품이 유들유들하여 쉽사리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얼굴이 잘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발목이 잡히다
이 말은 본래 씨름판에서 쓰던 말로서, 상대편에게 발목을 잡히면 꼼짝없이 번쩍 들려서 모래판에 나둥그러질 판이 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남에게 어떤 단서나 약점을 잡혀서 꼼짝 못하게 된 상황이나 어떤 일에 꽉 얽매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경우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방자구이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를 뜻한다.
방자는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 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박달나무
[三聖記全] 상편 첫머리에는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시원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
우리말 '밝다'의 어간 ‘밝’의 한자 ‘白(흰/환할/밝을 백)’의 자음 ‘백’이 끝소리 ㄱ이 탈락되어 ‘배달(倍達)’의 ‘배’로 변했고, 삼국시기까지의 ‘달(達’)은 山 또는 高의 뜻이었다.
이 내용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배달(倍達)은 백달(白達)의 ㄱ탈락이고,
박달(白達)은 백달(白達)의 모음변형이며,
백달(白達)은 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 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
배달민족은 백산(=배달)민족, 곧 백두산 민족이다.
‘박달’과 ‘배달’에 대한 어원설은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첨언해 둔다.

백일장白日場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실시하던 일을 백일장이라고 했다. 이 때 백일은 百日(100일)이 아니라 `낮`을 뜻하는 백일(白日)이다.

번갈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번(番)을 갈마들어(갈음하여)`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관청 등을 지키거나 하는 일을 `번 선다` 또는 `번 든다`고 하였다. 지금의 일직이나 숙직과 같은 제도라고 하겠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서로 교대도 해가며 번을 서곤 하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번번이(番番-)`도 같은 어원에서 생겨난 말이다.

벽창우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청송과 ’영양‘의 고추가 맵다 하여 ‘청양고추’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결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청양고추’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말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나아가 비유적으로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라
보라색은 그 어원이 몽골어에 있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에는 여러 가지 몽골의 풍습이 성행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를 길들여서 사냥을 하는 매사냥이었다. 이때 사냥을 잘하는 새로 알려진 매에 여러 종이 있었는데, 그중에 널리 알려진 것이 송골매라 불리는 해동청과 보라매였다. 보라매는 앞가슴에 난 털이 담홍색이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몽골어 `보로(boro)`에서 온 말이다. 앞가슴에 보라색 털이 나 있는 매를 일컫는 `보라매`라는 이름에서 `보라`가 색깔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보람차다
`보람`은 원래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딴 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두드러지게 하여 두는 표를 말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유형의 물체를 가리키던 것이 차차 마음속에 느껴지는 어떤 흡족한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보람차다’, ‘보람있다’가 이런 의미다.
읽던 곳을 표시해 두기 위해 책갈피에 끼워 두는 줄이나 끈을 ‘보람줄’, 같은 용도의 종이를 ‘보람종이’라고도 한다.

보름
보름이 ‘바라다’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이는 보름을 한자로 望(바랄 망, 보름 망)이라 하고, 보름날을 망일(望日), 보름달을 망월(望月)이라 하고, 보름 사이를 망간(望間)이라 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크고 둥근 달을 ‘바라다(望)’ 보는 시기를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보름이 ‘밝음’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전라도 쪽에서는 ‘넋을 잃고 무엇을 바라보는 상태’를 가리켜 ‘뭣을 보라꼬 있냐?’라고 한다. 이 말들은 옛날에는 ‘아래 ㅏ’가ㅏ/와 /ㅗ/로 쓰였던 것으로, 오늘날에는 /ㅏ/ 로 바뀐 것을 표준어로 삼지만 방언(제주)에서 ‘아돌(아들)’ 소나이(사나이)처럼 종종 /ㅗ/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밝다’의 옛말 ‘복다’의 /ㄱ/ 이 탈락되어 ‘복>보’으로 변하였고, 여기에 명사화 접미사가 결합한 것으로 ‘보롬>보름’으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름보기
`애꾸눈이`를 놀리는 말이다.
애꾸눈이는 눈이 한 쪽밖에 없으므로 남들이 보는 것의 절반만 본다는 생각에서, 결국 정상인과 비교하여 한달에 보름밖에는 못 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보리동지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벼슬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봉건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서민 계급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자리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들을 일러 흔히 보리를 주고 벼슬을 샀다 하여 보리동지라고 조롱하곤 했다. 때로는 어리무던하게 생긴 사람을 농으로 이르는 말도로 쓰인다.
* 동지(同知): 조선 시대 `지(知)`의 다음 가는 벼슬로 경연, 예문관, 춘추관, 의정부, 삼군부 등에 딸린 종 2품에 해당하는 벼슬 이름이었다.

복불복福不福
복불복(福不福) 은 말 그대로 유복(복 있음)과 무복(복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로, 똑 같은 경우와 똑 같은 환경에서 있더라도 여러 사람의 운이 각각 차이가 날 때에 쓰는 말이다. ‘복걸복’이니 ‘복골복’이니 하는 것은 잘못이다.

볼장 다 보다
‘볼장 다 보다’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장을 다 둘러보아서 이제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일이 틀려 버리다. 일이 끝장나다는 뜻으로 쓰인다.

봉사
봉사는 원래 조선조 때 관상감, 전옥서, 사역원 등에 딸린 종 8품의 낮은 벼슬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봉사 직책에 장님들이 많이 기용되었기 때문에 그 후 벼슬 이름이 그냥 장님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

봉창 두드리다
봉창은 방벽이나 부엌의 벽에 구멍을 내고 종이로 바른 창을 말한다. 이 창은 단순히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이기 때문에 주로 방의 아래쪽에 내며, 여닫을 수가 없다. 잠꼬대를 하면서 이 봉창을 두드린다 해서, 상황이나 사리에 맞지 않게 엉뚱한 딴 소리를 할 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하게 되었다.

부대찌개
해방 후에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고기를 ‘부대고기’라고 했는데, 그 부대고기를 넣고 끓인 찌개가 바로 ‘부대찌개’가 된 것이다.

부랴부랴
`불이야 불이야`가 줄어서 된 말이다. 즉 불이 났다고 소리치면서 내달리듯이 매우 급히 서두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리나케`라는 말도 같은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 불씨가 귀할 때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데 빨리 쳐야 불이 일어나게 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부리나케`는 `불이 나게`가 바뀐 말이다. 즉, `불(火)+이(토씨)+나(出)+게`의 구조를 가진 말이다.

부질없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 때,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기를 여러 번 해야 했다. 횟수가 많을수록 더욱 단단한 쇠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물렁물렁하고 금세 휘어지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불질(이)없다’가 변해서 된 ‘부질없다’라는 말은 쓸데없고 공연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부채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치다’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를 묶은 ‘채’자가 어우러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뜻이다.
부채를 한자로는 ‘선(扇)’이라 하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호(戶)’자와 날개를 뜻하는 ‘우(羽)’자가 어우러진 말이다.

부처
부처의 본래 발음은 `붓다`이다. `붓다(Budha)`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진실하고 어진 사람`이란 뜻이다. 이것이 중국을 거쳐 오면서 한자식 표기(假借)인 `불타(佛陀)`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불타>부텨>부처로 변하였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총칭하는 보통 명사이다. (석가모니의 본래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부처`란 말은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부처`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북망산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 낙양 땅에 있는 산 이름이다. 후한(後漢) 시대 이래 이곳에 무덤이 많았기 때문에 `북망산 간다`는 말이 곧 죽는 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불현듯
`갑자기,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의 뜻을 지닌 말이다. 낱말 분석을 해 보면 `불 + 현 + 듯`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혀다`는 `켜다`의 옛말이다. 따라서 불을 켜면 갑자기 환해지듯이 어떤 생각이 갑자기 일어날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비가비
'비가비'란 말의 어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무계출신을 '가비(甲)'라 하는데 무계가 아니니까 '非가비'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가비'라는 말이 무계 출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입증하는 예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당패에서 거사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사람을 '모가비(某甲)'라 부른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갑(甲)'이라는 말이 어떤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두 번째는, 원래 기생방에서 일반인들을 '비가비'라 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권번(기생조합)이 판소리의 주요 전승 기반이었음으로 이러한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볼 때, 무계 집단에서 배출된 기생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두 집단에서 공통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비가비 광대의 등장배경  
비가비 광대가 본래 광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회적으로 천시 받는 길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양반 중에서도 한량이었다. 양반으로서 직접 연행(演行)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공연물을 감상하고 품평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으며 풍류를 즐기는 자가 바로 한량인데, 그들 중에 직접 연행을 담당하는 광대의 길로 들어선 한량이 바로 '비가비‘인 것이다.

비위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합친 말이 ‘비위’로, ‘지라와 밥통’, 또는 음식에 대한 기분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나아가 ‘아니꼽고 싫은 일을 당하여 견디는 힘’의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비위가 당기다. 비위가 좋다. 비위가 상하다. 비위를 맞추다 등으로 쓴다.

비지땀
`힘든 일을 할 때 쏟아지는 땀`을 이르는 말이다. 비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서 헝겊에 싸서 짤 때 나오는 콩물처럼 많이 흘리는 땀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빈대떡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로는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에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져’에서 빈대떡이 나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빈대떡은 본디 기름에 부친 고기를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올려놓을 때 밑받침용으로 쓴 음식인데, 그 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의 떡이 ‘빈대떡’으로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댓골’이라 하였는데 그 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빈자들)에게 던져 준 데서 왔다는 설 등이다.
 
 
(사)

사나이
‘사나이’의 옛말은 ‘?나?ㅣ’(?+아?ㅣ)이다.
‘?’은 남자를 의미하고, ‘아?ㅣ’는 아이를 말한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장정의 뜻인 丁을 ‘?’이라 새기었다.
어원으로 볼 때 사나이는 남자 아이를 이르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은 남자 일반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냥
`사냥`은 본래 한자말 `산행(山行)`에서 나온 말이다. 『용비어천가』125장에 보면 `낙수(洛水)에 산행(山行) 가 이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쓰인 ‘산행’이 곧 ‘사냥’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조선 중기 때의 중국어 학습서인 최세진의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초간본에서도 `산행`으로 표기하고 있다.『박통사언해』중간본에 `산영`으로 바뀌고, 그 후 `사냥`으로 바뀌면서 한자어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유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산과 들로 다니면서 활이나 덫으로 짐승이나 새를 잡는 일을 가리킨다.
오늘날 등산을 뜻하는 ‘산행(山行)’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사또
지난날, 각 도에 파견된 문무관리를 이르는 말로 원래 `사도(使道)`라고 불렀다. 이것이 된소리되기 과정을 거쳐 `사또`가 되었다. 백성이 고을의 원(員)을 높여 이르는 말로 두루 쓰이었다.

사람
동사 ‘살다’의 어간에 명사화 접미사 ‘암’이 결합하여 된 말이다.
사람이란 말은 ‘살아있는 것’(=생명체)의 뜻에서 생겨 사상의식을 가지고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인간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엇다.

사랑니
`입 속의 뒤쪽 맨 구석에 나는 작은 어금니`를 말한다.
사랑니는 대개 다른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새로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사람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몹시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사랑하다
`사랑하다`는 본래 `생각하다`는 뜻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생각 사(思)`에 `헤아릴 량(量)`을 쓴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온 말이다. 이제는 한자어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유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사랑하다`는 `무엇인가를 귀중히 여기고 아낀다.`는 뜻으로만 쓰인다.
‘사랑하다’의 우리말 고어로는 ‘괴다’가 있었다. ‘사랑’은 ‘굄’이었다.

사리
흔히 일본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사리`는 `사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실 같은 것을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것을 말한다.
`몸을 사리다`로 쓰일 때는 `어려운 일은 살살 피하며 몸을 아낀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국수나 새끼, 실 등을 감은 뭉치를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다.

사명당 사첫방
`매우 추운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명당(사명대사)은 조선 선조 때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의 활약을 과장한 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맺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는데, 그 때 왜왕이 사명당을 태워 죽이려고 구리로 집을 지어 가두고 사면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나 사명당은 네 벽[四壁]에 서리 상(霜)자를 써 붙이고 방석 밑에 얼음 빙(氷)자를 써 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방이 타기는커녕 방안에 얼음이 얼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몹시 추운 방을 가리켜 `사명당 사첫방`이라고 하게 되었다. 사첫방의 `사처`는 `하처 (下處)`가 변해서 된 말로, 점잖은 손님이 객지에서 묵는 집을 가리킨다.
같은 유래에서 나온 말로 `사명당이 월참(越站)하겠다`는 속담이 있다. 사명당이 길을 가다가 쉬지도 않고 지나쳐 버릴 정도로 방이 매우 춥고 차다는 뜻이다.

사이비似而非
한자로 표기하면 似而非 이다(같을 似, 어조사 而, 아닐 非). 같으나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언뜻 보기에는 진짜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짜인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어느날 맹자의 제자인 만장이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사람(향원)을 덕을 해치는 사람이 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에 맹자는, "그런 사람은 특별히 비난할 만한 점이 없고, 성실한 데다 청렴결백한 것 같이 보여 세속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천한 일에 아첨하고 이 더러운 세상에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을 곡식의 싹으로 혼동할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을 붉은색으로 혼동할 것을 염려해서이다. 내가 향원을 미워함은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덕을 잘못 알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
맹자의 말을 들은 만장은 비로소 공자의 가르침을 깨우쳤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의 표현에서 ‘사이비진술’이란 말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이육사의 광야에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을 사이비진술이라 한다. 같으나 같지 않은 의인법이다. 이 때 사이비진술은 시적진술을 의미한다.

산통 깨다
`일을 그르치게 하다`는 뜻이다.
길이 10cm 가량의 향목(香木)이나 금속 혹은 대나무를 베어 괘(卦)를 새긴 것을 산가지 또는 산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대를 넣는 통을 산통이라고 한다.
점을 칠 때 산통을 대여섯 번 흔든 다음 산통을 거꾸로 들면 그 구멍으로 산가지가 나온다. 이 산가지의 괘로 점을 치는 것을 산통점이라고 한다. 이 때 산가지를 집어넣는 산통을 깨 버린다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틀어 버린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살림
살림은 불교 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 산림은 원래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켰는데, 이 말이 소리내기 좋게 음운변화(자음동화)를 일으켜 ‘살림’으로 변하여 일반 가정집의 생활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것까지 뜻하게 되었다.

삼삼하다
음식 맛이 싱거운 듯하면서 맛이 있다는 뜻과 잊혀지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뜻이 또렷하다의 뜻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야! 그 여자 삼삼하게 생겼더라’ 할 때는, 사물의 됨됨이나 생김새가 그럴듯하다의 의미로도 쓴다. 이 경우에는 감탄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삼수갑산을 가다
`매우 힘들고 험난한 곳으로 가거나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에 있는 고장으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국내에서 가장 추운 지대에 속한다. 겨울에는 평균 영하 16~18도에 이르고 눈이 수척의 높이로 쌓인다고 한다. 또한 교통이 불편하여 옛날에는 유배지로 유명했다.
‘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 삼수와 마찬가지로 매우 춥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다. 두 지역 모두 지형이 험한 데다 유배지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삼수갑산을 가다`고 하면 아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삼십육계
`달아나는 것이 상책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손자 병법의 36가지의 책략 중에 적이 너무 강해서 대적하기 힘들 때에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비겁하게 달아난다는 뜻을 담아서 많이 쓰고 있으나 원래는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권토중래捲土重來)이 옳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작전상 후퇴인 셈이다.

삼천리강산
우리나라 국토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다.
우리 국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의주까지 천 리,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 천 리라 해서 강산이 삼천리에 걸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삼천리강산`이라 할 때, 그 거리를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종적인 거리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거리는 2천 리에 지나지 않는다. 국토를 횡으로 가로지른 거리인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의 천 리가 더해진 것이다.
여기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더해지면 ‘삼천리금수강산’이 된다.

삼천포로 빠지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그르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첫째,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이다.
둘째, 진해에 해군기지가 생긴 이래 해군들에 의해 나온 말로, 진해에서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도중에 삼량진에서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잘못하여 삼천포 가는 것을 갈아타는 바람에 귀대 시간을 어겨 혼이 나는 병사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는 설이다.
셋째,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삼천포로 가는 손님과 진주로 가는 손님이 함께 탄다. 기차가 계양역에 닿게 되면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한다. 이 때는 반드시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몇 호차로 옮겨 탈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진주를 가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하여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어 생긴 말이라는 설이다. 위 세 가지 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지금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삼팔따라지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된 말이다.
노름판(짓고땡)에서 세 끗과 여덟 끗을 합하면 열한 끗이 되는데, 여기서 10단위를 떼면 한 끗이 된다. 한 끗을 따라지라고 부르며, 매우 낮은 끗수에 해당되어 별 볼 일 없는 패를 잡은 셈이 된다.
해방 직후 북쪽에서 토지개혁이나 종교 문제 등으로 남쪽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빈털털이이거나 의지할 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삼팔선을 넘어온 이들의 신세를 노름판에서 말하는 가장 낮은 끗수인 따라지에 빗대어 `삼팔따라지`라고 하게 되었다.
흔히 키와 몸이 작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따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따라지인생’이라고 하며, 남에게 매여 자유 없이 사는 목숨을 `따라지목숨`이라고도 한다.

삿대질
삿대는 배를 저을 때 쓰는 장대이다. 그러니까 삿대질은 원래 삿대로 노 젓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말다툼을 할 때 상대편의 얼굴에다 주먹이나 손가락을 내지르는 것이 마치 삿대로 배질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삿대질’이라고 쓰게 되었다.

샅샅이
샅은 두 다리의 사이나 두 물건 사이의 틈을 가리킨다. ‘샅샅이’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석구석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새끼
이 말은 본래 시아우를 가리키던 `시아기`가 변하여 된 말이다.
`시아기`는 본래 남편의 아우인 시동생이 어리기 때문에 생긴 말이었는데, `시아기`에서 `새기`(축약)로, 그리고 `새끼`(된소리되기)로 소리가 변하면서 본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새끼`란 말은 동물의 `어린 것`이나 `놈`이란 뜻의 욕으로 쓰이고 있다.

서낭당
서낭은 마을의 터를 지켜주는 신(神)인 서낭신이 붙어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낭신은 원래 성황(城隍)에서 온 말로서 한 나라의 도성을 지켜주는 신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토속신으로 변하여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같은 유래 때문에 아직도 마을 어귀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곳을 서낭당, 성황당, 성황단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서낭신을 마을과 토지를 지켜주는 신으로 믿고 섬겨왔는데, 마을 어귀 큰 고목나무나 바위에 새끼줄을 매어놓거나 울긋불긋한 천을 달아놓고 그 옆 작은 집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당집을 서낭당이라 했다.
때로는 당집 없이 큰 고목나무에 울긋불긋한 천이나 새끼가 매어 있는 것만도 서낭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낭당 앞을 지날 때는 서낭신에게 행운을 빌며 돌을 하나씩 쌓아 놓기도 하고, 잡귀가 달라붙지 말라는 뜻에서 침을 뱉고 가기도 한다.

서울
서울은 본래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서나벌(徐那伐) 등으로 부른 데에서 비롯한 말이다. 서울의 `서`는 높고 신령스럽다는 뜻이며, `울`은 ‘벌’이 변음된 것으로 넓고 큰 벌판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15C 국어 표기는 ‘셔블’이었는데, ㅂ순경음이 ‘우’로 변한 것이다.

선비
심신 수련을 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가리키는 고조선시대의 호칭이다. 백제의 수사, 고구려의 선인, 신라의 화랑과 비슷하다.
따라서 `선비`는 학문과 인격을 닦은 사람으로 학식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을 존대하는 말로 쓰였다.

섣달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섣달이란 설이 든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 1월에 해당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한 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중에는 동짓달, 즉 음력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다.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력 12월 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호전현상)과 같은 현상이다. 지금은 음력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설렁탕
서울 용두동쪽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 터에 선농단(先農壇)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지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後織氏)를 제사 지냈던 곳이었으니 농경민(農耕民)다운 습속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해마다 절기가 봄으로 접어들 때, 즉 경칩(驚蟄)이 지난 돼지날(亥日)을 가려 지낸 이 제사에서는, 적전지례(積田之禮: 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의례)을 행했으며,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조선 왕조 성종(成宗) 6년(1475) 정월에, 임금께서 이곳에 납시었다. 종친 월산 대군(月山大君)에 재상 신숙주(申叔舟)도 끼었으며, 거기에 서민이 합세하여 밭을 갈았다. 그러고서 백성을 위로하여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이때 선농단(先農壇)에서 먹게 된 국밥 을 ‘선농탕’(先農湯)이라 이름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된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 ‘설렁탕’에 대한 일반적인 어원론이 되고 있다.
성냥
불을 켜는데 썼던 `성냥`은 마치 고유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자어였다. 즉 `셕뉴황석(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성냥`이 된 것이다. 성냥의 원료는 유황이다.
옛날에는 대장간을 ‘성냥간’이라고도 했다.

소나기
함경도(咸鏡道)쪽 사투리로 천둥을 ‘소낙’이라 한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한바탕 요란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소낙이→소나기’거나 ‘소낙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질이 소낙 같다‘ 하는 말은 성질이 급하다는 뜻인 동시에 천둥과 같이 요란한 것도 아울러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낙’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손’의 ‘악’이었다고 생각해 봄직하다. ‘손’은 날짜 따라서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면 손 없는 날을 택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고약한 귀신이 ‘손’이다. ‘악’은 모질게 내뿜는 기운이나 성이 났을 때 ‘악을 쓴다’는 바로 그 ‘악’이다. 그러므로 천둥은 ‘손+악→손악→소낙’으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나기’가 ‘소 내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흥미본위의 민간어원설이다.

소매치기
옛날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두루마기 따위 웃옷의 좌우에 있는 옷소매는 품이 크고 넓어서 흔히 그 안에 돈이나 다른 귀중한 물건들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옷소매 안에 있는 돈이나 물건을 훔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손 없는 날
‘손을 타지 않는 길일(吉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사를 하거나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 어른들이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손`은 날수(日數)에 따라 4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손은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있고, 3이나 4가 들어가는 날은 서쪽에 있다. 그리고 5나 6이 들어가는 날은 남쪽에 있고, 7이나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있다. 9와 10이 들어가는 날은 하늘로 올라가 있으므로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 손도 타지 않는다는 9일과 10일이 길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음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송곳
`송곶`이란 말은 본래 소나무로 만든 Qy족한 것을 의미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송곶`이 `송곳`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송곳`이란 말에서 소나무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 송곳은 쇠로 만든 뾰족한 것으로서 무엇인가를 뚫을 수 있는 도구를 가리킨다.

흔히들 사주 명리학은 통계학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명리학은 한 사람의 운명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거쳐서 가게 될 시공간(time-space)을 음양오행이라는 일종의 부호(code)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해석하고 추리하는 나름의 강력하고도 엄밀한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계학이 아니다.
명리학자들은 명리학을 술수학(術數學), 줄여서 술학(術學)이라고 부른다. ‘술수’란 ‘수’를 다루는 기술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의 수(數)라는 말은 사실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 한자어 수(數)는 우리말 속에 너무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할 수 있다’ ‘그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 등등의 문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의존명사‘수’가 사실은 한자어(數)다. 우리말 속에 너무도 많이 들어가는 탓에 아예 그것이 한자어임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수’란 어휘는 가능성(probability) 내지는 경우(case)의 수를 의미한다. 즉 ‘할 수 있다’는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가능성)를 다루는 기술인 명리학은 통계(number)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운명 철학인 셈이다.

수라
임금에게 올리는 진지라는 뜻으로 궁중에서 일컫는 말이다.
`수라`는 몽골어 `술런`에서 온 것으로 본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때, 태자들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水刺`로 적는데, 이는 단지 `수라`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가차(假借)일 뿐 별다른 뜻이 있는 말은 아니다.

수릿날
단오 명절`을 달리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음력 5월 5일, 즉 단오를 나타내는 우리말인 수릿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해서 먹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은 전통적으로 수리취(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엉거시과의 풀)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며, 이 말 자체가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해 오는 동안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날을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수릿날 정오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던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리취로 떡(단오날 먹는 절편을 수리취떡이라 함)을 해 먹지만 옛날에는 쑥으로 떡을 해 먹었다. 단오니 단양이니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붙인 이름이니 지금이라도 ‘수릿날’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수수
이 말은 한자어 `촉서(蜀黍)`에서 온 말이다. `촉서`의 중국식 발음이 `쒼쒼`인데 전라도 지방에서는 수수를 ‘쑤시’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수수가 우리나라로 전래될 때 전라도 지방으로 들어온 것 아닌가 싶다. `수수`는 중국 이름 `쒼쒼`에서 온 말로 우리말처럼 되어 쓰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수작
‘수작(酬酌)’은 한자의 뜻처럼 원래는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 ‘남의 언행’을 하찮게 여기어 이르는 말로 쓰인다. 이는 술좌석에서 술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실없는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부터 부정적 의미로의 뜻이 달라진 것이다.

숙제
‘숙제’는 원래 옛날 서당에서 시회(詩會)를 열기 며칠 전에 내준 시나 글의 제목이었다. 그런데 서당이 없어지고 대신 학교가 생겼으니,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을 숙제라고 하게 되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해 볼 문제 거리’를 숙제라고도 한다.

술은 찹쌀을 쪄서 차게 식힌 뒤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이 때는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거품이 괴어오르는 화학적인 발효현상이, 옛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을 보고 난데없이 물에서 불이 붙는다는 생각에서 ‘수(水) +블[火 불의 고어]’의 합성어를 만들었고, 결국 ‘수블’에서 ‘ㅂ’이 유성음 사이에서 ‘ㅜ’로 변하고, 동음생략이 일어나 ‘수블>수울>술’로 변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하여 ‘술’이라 한다는 것은 언어적 유추에 불과한 것이다.

술래
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차례를 당한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밤에 궁중과 서울 둘레를 순시하는 것을 순라(巡邏), 그리고 그런 군인을 순라군이라고 했다. 순라가 변해 술래가 되었으며, 찾으러 다닌다는 행위의 유사성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스승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중을 스승이라 하고 있다. 스승은 ‘師?승’이란 말로서 일찍이 불교가 번성했던 고려시대부터 쓰이던 한자어였다. 본래 중들을 존경하여 ‘?승’이라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스승은 선생님이란 뜻으로 고유어처럼 굳어졌다.

시냇물
본래 `시냇물`은 `실[谷]+내[川]+ㅅ(사이시옷)+물[水]`이 합쳐져서 생긴 말이다.
`실`은 `곡(谷: 골 곡)`의 뜻으로 ‘ㄹ’이 탈락하여 ‘시’가 되었고, 거기에 ‘내’와 ‘물’이 결합한 합성 명사다. 합성 명사 중 앞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면 사이시옷이 들어간다. 아직도 고유지명에 `실`이 `밤실` ‘고라실’ 등 무척 많다. 결국 `시냇물`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이란 뜻이다.

시앗
고어에서‘?’는 밖[外]이나 남[他]을 뜻하였다.
?집(시집), ?어미(시어미), ?아비(시아비) 등에 쓰이는 것과 같다.
‘앗’은 고어 ‘갓’에서 ‘ㄱ’이 탈락한 것이다. ‘갓’은 ‘가시’에 어원을 둔 것으로 ‘꽃’, 즉 ‘여자’를 뜻한 말이었다.
‘시앗’은 원래 ‘바깥꽃’, 죽 ‘남편의 꽃’이란 뜻으로, 후에 남편이 얻은 첩을 본처가 이르는 말로 쓰이었다.

시치미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말이나 짓을 뜻하는 말이다.
옛날 매 사냥에서 주인을 나타난 표지를 매의 꼬리 위의 털 속에다 소뿔로 얇게 만든 명패(매 주인의 이름을 새긴 패)를 매달았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한다. 따라서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지금과 같은 뜻이 생겨났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딱 잡아 뗄 거야?’라고 할 때의 `잡아떼다`라는 말도 원래는 `시치미를 잡아떼다.`라는 말에서 `시치미`가 생략된 말이다.

실랑이
서로 옥신각신 하는 짓을 뜻하는 말이다.
실랑이는 ‘신래위’에서 나온 말이다. ‘新來)’는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이란 뜻이다. 신래위(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다루며 노는 모습)를 남들이 못살게 굴거나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뜻이 되었다.

심금心琴을 울리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심금(心琴)이란 마음의 거문고란 뜻이다. `심금`이란 말이 나오게 된 유래는 부처님이 설하신 `거문고의 비유`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스로오나`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한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스로오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를 본 부처님이 그에게 거문고를 비유하여 설했다.
"스로오나야, 거문고를 쳐본 일이 있느냐?"
"예."
"거문고의 줄이 팽팽해야 소리가 곱더냐?"
"아닙니다."
"그렇다. 스로오나야, 거문고의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늘어지지도 않아야 고운 소리가 난다. 그렇듯 수행이 너무 강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하면 게을러진다. 수행은 알맞게 해야 몸과 마음이 어울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하였다.
마음의 거문고인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바로 이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다른 사람의 감동적인 행적을 보거나 듣거나 읽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감동의 울림을 거문고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심상(尋常)치 않다
심상(尋常)은 고대 중국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심(尋)은 8자 길이를 뜻하며, 상(常)은 16자를 뜻한다. 우후죽순처럼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들고 일어나던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심상(尋常)의 땅`을 가지고 다투게 되었다. 평수로 따지면 한 평 남짓한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심상은 짧은 길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곧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심상이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본래의 뜻보다는 ‘보잘것없고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곧 `작은 일이 아니다.` `예사롭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십팔번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토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주하치반(十八番’)에서 온 것이다. 일본의 에도(江戶) 시대에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카와단주로(市川團十郞) 1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 죽은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카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해져 오는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하는 교겐(狂言 :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주하치반’이라 했다(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 또는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썰매
‘썰매’는 한자어 ‘설마(雪馬)’의 음이 변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눈 위에서 달리는 말[馬]’이란 뜻이었다. 눈 위에서 타는 미끄럼 도구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쐐기를 박다
나무를 V자형으로 깎아서 나무로 짠 물건의 틈새를 박아 연결 부분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나무못을 가리킨다.
쐐기는 보통 사물의 네 귀퉁이가 물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건의 틈새에 박아 넣어 두 물건의 사이를 벌리는 데 쓰기도 한다.
나무틀이나 이음새에 쐐기를 박으면 움직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을 확정할 때 분명히 한다는 뜻으로 쓴다. 또는 남이 일하고 있는 도중이나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끼어들어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하거나 이야기를 중단하게 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쓸개 빠진 놈
쓸개는 담이라고도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기라고 한다. 따라서 ‘담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비겁하고 줏대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씨가 먹히다
베를 짤 때 가로 줄을 씨줄, 세로 줄을 날줄이라고 한다. 이때 가로 줄을 이루는 씨실이 잘 먹어들어야 베가 잘 짜진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조리가 있고 실속이 있는 말을 했을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긍정적인 대화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대화에서 ‘씨도 안 먹힐 소리’ 등으로 많이 쓰인다.

씨알머리가 없다
씨알은 새의 종자 알이나 곡식의 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씨알머리가 없다`는 말은 근본 태생을 모를 정도로 혈통이나 종자가 낮다는 뜻이다.
‘씨알머리’는 ‘씨알’의 낮은 말로, 특히 사람을 욕할 때 ‘그 사람의 종자’의 뜻으로 쓰는데, ‘씨알머리가 없다’는 혈통이 못하고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것이 없어서 건방지고 예의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
 
아낙네
'아낙'은 '안'과 '악'이 결합된 것이다. '안'은 '안해'의 '안'이나 '안 사람'의 '안'처럼 '內'의 뜻을 가지며 동시에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낙'은 '안악'으로도 표기되었다.
'-악'은 '-억'과 함께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데, 주로 작은 것을 뜻할 때 쓰인다. '터럭'(털 + -억), '주먹'(줌 + -억), '뜨락'(뜰 + -악), '쪼각'(쪽 + -악)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악'은 '장소'와 '사람'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안악'이 '내정(內庭)’의 뜻을 잃고 '안뜰'에 그 자리를 넘겨준 뒤에 이 '안악'에 '-네'가 붙어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네’는 ‘나그네’에서처럼 사람을 뜻한다.

아름답다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알다(知)’라는 동사 어간에 ‘-음’접미사가 붙은 ‘알음’에 ‘-답다’ 접미사가 붙었다는 견해다.
또 하나의 견해는 동사 ‘안다[抱]’의 어간 ‘안’에서 파생된 ‘아름(抱)`의 명사에 `-답다`가 붙어서 형용사가 되었다는 견해다. ‘한아름’도 같은 경위로 된 말이다.
 
아리랑
민요 ‘아리랑’에 대한 어원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그만큼 그 뜻이 모호한 것이다.
먼저 ‘아리랑’의 어원을 한자어 ‘我離郞’으로 보고 ‘나의 낭군과 이별한다’ 뜻으로 보는 설이 있다.
고유어로는 ‘아! 리앙이여’라는 뜻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그밖의 ‘나의 리앙’등으로 보는 것 등등이다.
조선 말 지주 박좌수의 머슴 ‘리랑’과 몸종 ‘성부’의 애절한 사랑에서 빚어졌다는 배경설화도 있다.
어쨌거나 ‘아리랑’은 애절한 사랑의 이별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지방마다 다른 아리랑 민요가 있지 않나 싶다.

아사리판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사리’는 토박이말 `앗다(奪)`의 어근 `앗`에 조사 `을`이 붙고, 그 아래 `이`가 붙어 `앗+을+이`가 되고, 여기에서 `아사리`로 바뀐 말이다. 곧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또 한편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 ‘아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모습을 피상적으로 보면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매우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무질서한 현장을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아수라장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 용어로 ‘아수라’는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아수라는 욕심 많고 화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생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수라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은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아양을 떨다
이는 원래 `아얌을 떨다`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은 여자들이 겨울 나들이할 때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떨면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그래서 귀여운 행동이나 말로 시선을 끄는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안달이 나다
`안달`은 `안이 달아오르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안`은 온갖 장기가 있는 `몸 속`을 가리키는 말이니, 이 말은 곧 속이 타서 달아오른다는 뜻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속을 태우며 안타깝게 고민하는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안성맞춤
경기도(京畿道)의 안성(安城) 고을은, 옛날부터 유기(鍮器)로 알려져 있다. 유기그릇을 안성에 맞추면 주문자의 뜻대로 잘 만들어졌으므로 거기에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는 민간어원설로 보이지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타깝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안` 은 `마음` 이란 뜻이다. 이처럼 `안` 이 `마음`의 뜻으로 쓰이는 말에 `애가 타고 마음이 갑갑하다`라는 `안쓰럽다`는 말이 있다. `안타깝다`는 `마음` 이란 뜻의 `안`에 `답답하다` 의 옛말인 `답깝다` 가 붙은 `안답깝다` 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간어원설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선조 세종 때 경상북도 청송에 `안탁갑` 이라는 노처녀가 있었다. 임금님에게만 시집을 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던 `안탁갑` 은 드디어 세종의 빈이 되었는데, 너무도 안탁갑에게 빠져 있는 임금을 걱정한 신하들은 그를 청파동으로 물리쳤다. 그런데 임금의 행차 소식을 들은 `안탁갑`은 행차의 길목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온 미음을 올렸다. 세종은 이 미음을 단숨에 마셨는데 그 때 두 사람의 괴로움은 말이 아니었다. 그 후 사람들은 몹시 괴로운 일을 나타낼 때 `세종과 안탁갑의 사이 같다`란 표현을 썼는데, 이 애절한 사연에서 `안타깝다` 란 말이 생겼다는 슬픈 사랑이야기다.

알나리깔나리
아이들이 서로 상대편을 놀리는 말이다. `알나리`는 벼슬을 한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을 농담 삼아 `아이 나리`라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며, `깔나리`는 ‘알나리’와 더불어 운율을 맞추기 위해 별다른 뜻 없이 덧붙인 말이다. `얼레리꼴레리`나 ‘얼라리꼴라리` ’얼레꼴레리` 같은 말은 다 `알나리깔나리`가 변해서 된 말들이다.
 
암죽
`낟알 가루나 밤으로 묽게 쑨 죽`을 가리키는 말이다.
암죽은 `밤죽`이 변한 말이다. 밤죽의 `밤`이 `밤→왐→암`의 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암죽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밤으로 쑨 죽을 ‘암죽’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쌀이나 다른 낟알을 가지고 쑤는 것까지 두루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산모가 젖이 부족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일 형편이 되지 않을 때 주로 암죽을 먹여 키운다.

압구정
한강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는 압구정동(狎鷗亭洞)은 바로 그 강변에 있었던 세조(世祖) 때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의 정자 이름 압구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임금을 받들어 세움으로써 네 개의 공신(功臣)을 겸하고, 두 임금의 장인이었으며 최고의 벼슬인 영의정을 수년 동안 거침으로써 도합 73년간이나 벼슬길에서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韓明澮)는 벼슬에 뜻이 없었다는 세평을 듣고 싶어 짐짓 이곳에 정자를 짓고 갈매기[鷗 ]와 친하게 놀다[狎]는 뜻으로 압구정이라 이름 지었던 것이다.

애매모호曖昧模糊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애매하다`는 벌은 받았으나 실은 죄 없음을 뜻하는 말로 `애꿎다`, `억울하다`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런데 일본말 한자어로 `애매`가 있는데, 이 말은 우리가
쓰는 한자어인 `모호`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식 한자투에 익숙한 일부 지식층이 두 말을 잘못 결합하여 쓰던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불분명하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는 `애매하다` 또는 `애매모호하다`라는 말 대신 본래 우리말 `모호하다`라고 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단법석惹端法席
여러 사람이 한 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뜻하는 말이다.
`법석(法席)`은 원래 불교용어로 `법회석중(法會席中)`이 줄어서 된 말이다. 대사의 설법을 듣는 법회에 회중(會衆)이 둘러앉아서 불경을 읽는 법연을 일컫는 말로서 매우 엄숙한 자리를 뜻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숙한 자리에서 무슨 괴이한 일의 단서(端緖)가 야기(惹起)되어 매우 소란한 형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야단법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야단법석’의 야단을 野壇으로 쓸 때는 ‘야외에서 베푸는 법회’의 뜻이 된다.
 
야호
`야호`는 독일 알프스 지대에서 쓰던 `johoo`란 의성어가 어원이다. `야호`는 고립됐을 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조난신호로 흔히 쓰였다. 한국에는 20세기 들어 `야호`란 구호가 수입돼 등산객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호연지기의 상징처럼 되었다.
옛날 신선이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호랑이를 부를 때 ‘야, 호[虎; 범호]’하고 불렀다는 웃지 못할 민간어원설도 있다.
 
《설문(說文)》에 병을 고치는 풀을 약이라고 한다 하였다. 이로 보아 약의 시초가 식물성인 초목으로 시작되어 ‘艸’자 밑에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뜻의 락(樂)자를 붙여서 ‘藥’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 ‘약’의 뜻이 식물이 지니고 있는 자극성(맵거나 쓴맛)을 말하며, ‘약이 오른 고추’, ‘잎에 약이 올랐다’ 등의 용례로 보아 그와 같이 약이 오른 풀이 인체에 대한 약리작용이 있는 것을 알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물질을 ‘약’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약오르다
`화가 나다`의 뜻이다. 원래 약초가 잘 성숙하여 독특한 자극성 성분이 생기는 것을 `약이 오르다`고 하던 것이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의 성질을 뜻하게끔 되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독한 기운이 뻗친다는 면에서는 서로 통하는 표현이다.

음식을 먹은 후에 `양이 찼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양`은 `질량`의 `량`, 즉 한자어 `양`이 아니다. 이 `양`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양`은 `위장`이라고 할 때의 `위`에 해당하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쇠고기 중에 `곱창`도 있고, `양`도 있다. 그래서 `양이 찼느냐?` 하는 것은 `위가 찼느냐?`는 뜻이다. 즉 `배가 부르냐?`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곱창`의 `곱`은 `기름`이란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눈곱`의 `곱`과 같은 것이다.
`곱창`은 `곱`+`창`으로 기름이 많은 창자이다.
`폐`는 우리말로 `부아`(옛날에는 `부하`)였다. 그래서 `부아가 난다.`고 한다. 화가 나면 숨을 크게 들어 마셔서 `허파`가 크게 불어난다. 그래서 `부아가 난다`는 `화가 난다`는 뜻이 되었다. 우리 국어에서는 이렇게 신체 부위를 가지고 감정을 표시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머리가 아프다. 골치가 아프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귀가 가렵다. 귀가 따갑다. 눈꼴이 시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손이 근질근질한다. 애가 탄다. 애간장을 녹인다. 핏대가 난다 등등의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

양말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 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나 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랄 것이다.
`양철 양동이 양은 양재기 양회 양행 양복, 양장, 양궁, 양단, 양담배, 양란, 양배추, 양버들, 양식, 양옥, 양장, 양잿물, 양주, 양초, 양파, 양화점 등등.
‘양말’의 ‘말’은 고유어 ‘말기’(둘러서 덧댄 부분)의 줄인 말이다.
양치질
양치질`의 `양치`는 `양지질` 즉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다. 고려시대의 문헌 <계림유사>에도 `양지`(버들 楊, 가지 枝)가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이 나타나고 있다.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이다. (이 `양지`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원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져 가면서 서양의 ‘양’에 `이`의 한자인 `치`가 연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치약’으로 이[齒]를 닦는다는 뜻으로 착각하게 되어 ‘양치질’이 된 것이다.
 
어깃장을 놓다
`어떤 일을 할 때 끼어 들어서 참견을 하거나 훼방을 놓다`는 뜻이다.
부엌이나 광의 문처럼 비교적 곱상하게 다루기 힘든 곳은 판자를 연결해서 널쪽문을 해 단다. 그 중에서도 튼튼하게 문짝에 가로 홈을 파고 띠를 끼워서 띠와 널을 못 박아 붙이는데, 자칫 일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각선으로 붙이는 띠목을 어깃장이라고 한다. 어깃장을 대각선으로 붙이는 모양에 빗대어 어떤 일을 어긋나게 한다는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어른
‘어른`은 `얼운`이라고 했다. 이것은 `얼우다[嫁: 혼인 가]`의 어간 `얼우-`에 명사형 접미사가 붙은 말로 `얼우다`는 결혼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따라서 `얼운`은 `혼인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옛 문헌을 보면 이미 `어린이’와 ‘늙은이`가 많이 등장한다. 단지 `어린이`라는 잡지를 처음 만들어 널리 알렸을 뿐이다. `어린이`는 `어린 사람` 즉,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훈민정음 어지(御旨)에도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라고 쓰이고 있다. `어린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다가 `어린 사람(나이가 적은)`이란 뜻으로 어의가 전성된 말이다.

어리굴젓
`간한 굴에 고춧가루를 섞어 얼간으로 삭힌 굴젓`을 가리킨다. 충남 서산군 부석면 간월도에서 채취되는 굴은 지형적으로 간만의 차가 심해서 늘 바다 속에만 잠겨 있지 않고 하루 4~7시간은 개펄 속에 묻혀 햇볕을 받고 자란다. 이 때문에 양식한 굴은 1년이면 엄지손가락 만하게 크지만 간월도 굴은 3년 정도 큰 뒤 캘 때에도 2~3cm밖에 안 되고 거무스름한 빛깔을 띤다. 굴은 햇볕을 쬐면 생장이 중단되기 때문이며, 이런 굴을 두고 보통 `강굴`이라고 한다. 이러한 간월도 강굴은 적당한 기온과 염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자란 다른 지방의 굴보다 훨씬 고소하며, 물날개(굴에 나 있는 털)가 잔잔하고 그 수가 많아 고춧가루 등 양념 배합률을 높여주기 때문에 독특한 맛을 낸다. 어리굴젓은 이렇게 자란 굴을 이물질이나 땟국물을 빼내기 위해 깨끗한 바닷물로 씻은 뒤 7% 정도의 소금으로 희석시켜 섭씨 15~20도 정도의 발효실에 보름간 넣어둔다. 고춧가루로 주로 양념을 해서 `얼얼하다`, `얼큰하다`는 맛의 표현이 어형 변화를 가져와 `어리굴젓`이 되었으며, 조선조 때 무학대사가 이태조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600년 이상 된 식품으로 추정된다.

어버이
`업+엇+이` 로 된 말이다. 고려 속요 [사모곡]의 별칭인 [엇노리]에서 보듯 `엇` 은 `어머니` 를 뜻하는 말로, `엇` 에 접미사 `-이` 가 붙은 `어시` 는 `어이`로 변천한다. 그런데 사모곡 중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에서의 `어이` 는 `어버이`를 뜻하고 있는데, 이는 모계사회에서 여자가 대표성을 띠었던 것의 반영이로 볼 수 있다.
`어버이` 는 `어머니` 란 `어이` 에 아버지를 뜻하는 `업` 이 붙어서 된 말(업+어이)이다. 그러기에 `어버이` 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말이다.

억장(億丈)이 무너지다
억장(億丈)은 본래 억장지성(億丈之城)의 줄임말로 성의 높이가 억 장이 될 정도로 퍽 높이 쌓은 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억 장이나 되는 높은 성이 무너질 정도로 엄청난 일을 말한다.
오늘날, ‘억장’은 ‘가슴’의 속된 말로 한자어라는 의식 없이 쓰이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다’는 몹시 분하거나 슬픈 일이 있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얼간이
소금에 조금 절이는 것을 `얼간`이라고 한다.
‘얼간’에 사람을 뜻하는 ‘이’가 결합되어, ‘얼간이’는 제대로 절이지 못하고 대충 간을 맞춘 것처럼 다소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으로, `됨됨이가 변변치 못해 모자라고 덜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얼굴
`얼굴`은 15세기에서도 어형은 `얼굴`이었으나 `몸 전체`, `형상`, `형체`, `모습`, `틀`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5세기에 쓰인 `몸얼굴[體格]`, `밑얼굴[原形]` 등의 합성어를 통해서도 `얼굴`이 몸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인물을 고르는 표준인 `身言書判(신언서판)`의 `身`이 바로 `얼굴`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얼굴`은 17세기에 와서 `안면顔面`이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안면`은 `몸 전체`에 포함되는 한 부분일 뿐이다. `몸 전체`에서 `몸의 일부`로 의미가 변한 것은 결국 의미 적용 범위가 축소된 현상으로 설명된다. 15세기에 ‘안면’을 뜻하는 말로는 ‘낯’이 있었다. 지금은 서로 같은 뜻으로 쓰인다.
‘얼굴’은 ‘얼’의 ‘굴(=통로)’의 뜻이 있는 말이다. 누구나 얼굴이 예쁘기를 바란다. 진정 예쁜 얼굴은 ‘얼’이 고운 사람의 얼굴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얼버무리다
‘이 말 저 말을 뒤섞어서 어름어름 분명하지 않게 하다`는 뜻이다.
`얼`은 명사나 동사 앞에 붙어서 `덜 된`, ‘여러 가지가 뒤섞여’, ‘대충’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원래 `얼버무리다`고 하면 여러 가지를 대충 섞어 버무린다는 뜻이었다.그러다 사람이 말을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엑스 세대
영어에서 엑스(X)는 미지수의 기호로 쓰이는 글자로 알 수 없고 불확실한 것을 뜻한다.
캐나다의 작가 더글러스 쿠프랜드가 <엑스 세대>라는 책을 내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쿠프랜드 식으로 하면 엑스 세대란 196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세대들로 기생세대가 잘 이해하기 힘든 신세대를 뜻한다.
 
여리꾼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손님을 끌어 들여 물건을 사게 하는 중개인`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 육주비전의 상인들은 아들에게 문서를 다룰 줄 아는 정도의 글자와 상인들끼리만 통용되는 변말을 배우게 한 다음 15세 무렵에 다른 가게의 심부름꾼으로 내보냈다. 일종의 상인 수업을 받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스무 살 남짓 되어 장사에 대한 요령을 터득하고 훌륭한 상인이 될 재질이 보이면 따로 가게를 내어 독립시켰다. 그러나 나이가 들도록
독립을 하지 못하면 `열립(列立)`으로 나서야 했다. ‘열립’은 상가 앞에 늘어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가게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리꾼’은 ‘열립’이 `여리`로 변하고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꾼`이 덧붙은 것이다. 그리고 여리꾼이 가게 안으로 손님을 끌어 들이는 것을 `여립켜다`라고 한다. 요즘 샌드위치맨이라고 하여 상가나 술집 앞에서 요란한 복장을 하고 앞뒤로 점포 이름을 알리는 글을 써 붙이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사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야간 유흥업소들이 채용한 ‘삐끼’들도 현대판 여리꾼이라 할 수 있겠다.
 
여보
`여보`의 어원은 `여기(此處)`의 `여`에 `보다(視)`의 어간 `보-`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 보오’의 뜻으로 오늘날 부부간의 호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여보세요`는 이 `여보`에 `-세요(해요체)`가 덧붙여진 말이다.
 
열통 터지다
재래식 화장실에 어느 정도 대소변이 쌓이면 그걸 퍼내야 한다. 오물을 치우기 위해선 커다란 작대기로 그 속을 휘휘 젓는데 그때 메탄가스가 발생해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것을 ‘열통’이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열통 터지다`의 열통을 사람의 가슴 한복판에 화나 열을 돋우는 어떤 장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열통은 위에서 말한 대로 재래식 변소에서 끓어오르는 메탄가스를 말한다.
`열통 터지다`는 말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폭발할 지경이거나 폭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염병할
`일이 뜻대로 안 풀려 혼자 투덜대거나 남을 심하게 나무랄 때 쓰는 욕`이다.
염병은 장티푸스와 같이 높은 열이 나는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염병, 즉 장티푸스에나 걸리라는 뜻을 담은 욕설이다. 지금은 장티푸스 같은 병이 큰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옛날에는 고치기 힘든 전염병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염병에 걸리면 서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전염을 막는 유일한 길이었다. 상대가 염병에 걸려서 가까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염병에 땀 못 낼 놈’이란 욕이 있는데, ‘괴로워하다가 죽을 놈’이라는 뜻으로 상대를 저주하는 말이다. 염병이 그만큼 무섭고 괴로운 병이었던 것이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남의 어려운 사정보다 자기에게 닥친 작은 일을 더 크고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엿 먹어라
`상대방에게 모욕적으로 이르는 상스러운 말`이다.
‘엿’은 남사당패의 은어로, 여성의 성기(性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말의 욕설 중에 성기와 관련된 말이 많듯이, 이 말도 남사당패의 은어를 빌려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엿’을 엿장수의 ‘엿’으로 잘못 알고, ‘엿’이나 먹으면서 조용히 있어라 정도의 뜻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본래의 뜻을 안다면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영감
`늙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정3품과 종2품의 벼슬아치를 영감이라고 일컬었으며, 그 이상의 벼슬아치를 대감이라고 했다. 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관원 및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나랏님이 은전으로 베풀어 준 벼슬인 ‘수직’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 맡은 일이 있던 직책은 아니고, 그냥 노인을 우대해서 이름만 내려준 벼슬에 불과했다. 수직이라는 벼슬을 받은 노인들도 영감이라고 부르다가 차차 나이 든 어른을 높여서 모두 영감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군수 영감, 판사 영감 하듯이 관료사회에서는 자신들끼리 서로 높여 부르는 말로 쓰기도 한다.

영덕대게
조선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축산항 죽도(경북 영덕군 축산면)가 영덕대게의 원조로 기록돼 있다. 해방 후에는 영덕군 강구항에 대게 통조림 가공공장이 생겨 강구항이 집산지가 됐다.
동해 바다 속에는 태백산맥과 마주 달리는 해양산맥이 있다. 이중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는 바위로 이루어져 갯벌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뿐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왕돌잠`이라고 부른다. ‘왕돌잠’은 다리가 길고 속살이 많으며 쫄깃쫄깃한 맛이 나는 대게의 서식지로 국내에서 해양환경이 가장 적합한 곳이다.
울진 후포항과 구룡포항에서 경쟁적으로 대게 어획량을 늘리고 있지만 역사성 때문에 `울진대게` `구룡포대게`는 `영덕대게`의 명성에 밀리고 있다. 매일 아침 7~8시 강구항에는 대게 입찰이 벌어진다. 영덕대게 중상품으로 손꼽히는 것이 박달대게다. 살이 실하고 맛이 풍부한 박달대게는 1백 마리당 2~3마리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희소가치가 있다.
요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영덕과 울진의 대게에 대한 원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오금을 박다
무릎의 구부리는 안쪽 뒷무릎이 ‘오금’이다. 오금은 사람이 중심을 잡고 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체 부위다. 오금을 툭 치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하는데, 여기서 `오금을 박는다`는 말이 나왔다. 상대가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단단히 이르거나 을러 놓다는 뜻으로 쓰인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비롯한 말이다.
양혜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나라에 대해서 진심을 다할 뿐입니다. 하내가 흉년이 들거든 그곳(하내)의 백성들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곳(하동)의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이 흉하거든 또한 그러합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과 같이 하는 자가 없는데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더하여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하여 많아지지 않으니 어찌된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 말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을 쳐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접해지면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도망하되 어떤 자는 백 보를 가서 멈추고, 어떤 자는 오십 보를 가서 멈추어 (자신이)오십 보를 간 것으로써 백 보를 간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
양혜왕이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이 또한 도망친 것입니다.’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오빠
‘오빠’는 ‘오랍아’에 어원을 둔 말로 ‘오라비’를 부르는 말이다.
‘오랍’은 남자 동기간을 뜻하는 옛말이다.
‘오랍아>옵아>옵바>오빠’로 변천했다. ‘오누이’는 오랍과 누이의 합성어다.

오지그릇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다음 오잿물을 입히어 다시 구운 질그릇이다.
오지그릇은 원래 `오+질그릇`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오질그릇`에서 `ㄹ`이 탈락된 말이다. 여기서 `오`는 `까마귀(烏: 까마귀 오)`를 나타낸다. 즉 진흙으로 빚어서 구어 낸 질그릇의 빛깔이 마치 까마귀처럼 검붉은 윤이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자로 `오자기(烏瓷器)`라고도 한다.

오지랖이 넓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오지랖이 넓은 옷은 그만큼 다른 옷을 덮을 수밖에 없다.
‘오지랖이 넓다’는 남의 말에 잘 참견하거나 염치없는 짓을 잘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옴니암니
사소한 것까지 캐거나 따지고 드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옴니’는 어금니가 변해서 된 말이고, ‘암니’는 앞니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리고 ‘옴니’의 `옴`은 ‘어미’를 뜻하는 `엄`이 변한 말이다. 이(齒)는 다 같은 이인데 구태여 어금니니 앞니니 하며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미주알고주알’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자질구레한 것까지 좀스럽게 따지는 모양, 또는 그렇게 드는 비용까지도 뜻하게 되었다.
옹헤야
‘옹헤야’는 오래 전부터 민중들이 즐겨 부른 가요다.
‘옹헤야’는 ‘올해야’라는 부름말인 셈이다.
올해야말로 꼭 풍년이 들 것이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외동딸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윷놀이에서 한 동만으로 가는 말을 ‘외동무니’라고 하며, 줄여서 그냥 ‘외동’이라고도 한다. 외동무니처럼 하나만 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며, 같은 이치로 외동아들이라는 표현도 쓴다.

용빼는 재주
`용빼는 재주`의 `용`은 전설상의 동물인 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을 가리키는 ‘녹용’의 준말이다. 살아 있는 사슴의 머리에서 이 녹용을 뺄 때는 날랜 솜씨와 묘한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술을 일러 `용빼는 재주`라 한 것이다.
`용빼는 재주`, `용빼는 재간` 등으로 널리 쓰이는 이 말은 남다르게 큰 힘을 쓰거나 큰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수철
볼펜심 등에 있는 통통 튀는 스프링처럼 `용수철`은 탄력성 있는 용수(龍鬚) 즉 용의 수염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하다
`용(龍)이 어떤 일을 하다`에서 나온 말로, ‘재주가 참 좋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신령스러운 용이 일을 했으니 일이 매우 훌륭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용은 예로부터 길조의 상징이었으므로 용꿈을 꾸는 것은 더없는 길조였다.

우두머리
지금은 `우두머리`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마치 `두목(頭目)`이란 한자어처럼, `도둑의 괴수(魁首)`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우두머리`란 단어는 비칭이 아니었다. 그냥 평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경칭도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한자어인 `위두(爲頭`할 위, 머리 두)에 고유어인 `머리`가 합쳐진 합성명사다. `위두머리`는 보통 위가 되는 사람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 `위두머리`의 `위`가 단모음화 되어 `우`가 됨으로써, 오늘날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우라질
`우라질`의 본디 형태는 `오라질`이다. 이 말은 몹시 미워하는 대상이나 잔뜩 맞갖지 않은 일에 대하여 욕으로 하는 말이다.
`오라`는 도둑이나 죄인을 결박하던 붉고 굵은 줄을 가리키는 말이고,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결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라질`이란 ‘나쁜 짓을 하여 오라를 질 만한’이라는 뜻이었다.

우물
‘움’에서 나오는 ‘물’, 또는 그런 샘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움물`이 동음생략이 되어 `우물`이 된 것이다. 지금도 방언에서는 `우물`을 `움물`이라고 한다.

육개장
육개장’의 ‘개장’을 ‘개장국’이라고도 한다. ‘개장’에 ‘국’이 덧붙은 것이다. 개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그 개고기를 이용한 탕을 많이 먹었고, 그 결과 ‘개장’에 ‘탕’이라는 일반적 의미가 덤으로 부여되었다. 요즘에 그저 ‘보신탕’을 ‘탕’이라고 불러도 의미가 통하듯이, 예전에는 ‘탕’하면 ‘개장’을 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장’이 ‘탕’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띠게 되자, 다른 ‘육탕’의 명칭도 ‘개장’을 근거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육개장’은 ‘개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이용하여 끓인 ‘육탕’을 뜻하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육개장’은 ‘소탕’이나 ‘우탕(牛湯)’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하나, 그만큼 ‘개장’이 보편화 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육시랄
일이 뜻대로 안 풀려 혼자 투덜대거나 남을 심하게 나무랄 때 쓰는 욕이다.
`육시를 할`이 줄어서 된 말로, 육시라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육시`는 옛날의 형벌 방법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에 다시 참형(斬刑)을 가하는 육시(戮屍: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형벌)와 사지를 말에 묶어 각기 달리게 하여 머리, 몸통, 사지로 찢어 여섯 토막이 되게 하는 육시(六屍, 六弑)가 있었다. 본래의 뜻을 살펴볼 때 매우 끔직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저주어린 욕설임을 알 수 있다.

으악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일제 말엽 암울했던 시절, 김능인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이 곡을 붙여 고복수가 노래를 부른 「짝사랑」의 첫절이다.
첫 절의 첫 귀에 나오는 「으악새」가 「풀」이냐 「새」냐 라는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악새」를 「억새풀」이라고 알고 있다. 그 근거는 1990년 이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에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이듯, 모든 국어사전에는 억새의 사투리가 「웍새」라고 되어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는 것까지만 찾아보았지,「웍새」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 같다. 억새는 산이나 들에 나며 줄기, 잎은 지붕을 이는 데, 또는 소나 양의 먹이로 쓰이는 풀이다. 그런 억새가 슬피 운다는 것도 이상하고, 산이나 들에 있어야 할 억새의 배경이 여울이나 강물같이 물과 관계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물가에 억새 비슷한 것은 갈대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평안도 사투리에 「왁새」라는 새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왁새」의 표준말은 ‘왜가리’이다. 왜가리는 남쪽(오스트레일리아)에서 봄철(3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논이나 강가 또는 호숫가에서 물고기 조개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고 살다가 가을철(10월)에 돌아가는 여름새이다.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짝사랑」의 가사와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으악새가 떠나가야 할 가을이 되어 슬피 운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1992년에 나온 <우리말 큰사전>에는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도 되고, 왜가리의 사투리이기도 하다고 되어 있다.
억새의 사투리가 「웍새」고 왜가리의 사투리가 「왁새」다. [으악새]라는 소리가 [웍새]에 가까우냐 [왁새]에 가까우냐가 문제이다. 아무리 봐도 [으악새]는 [왁새]에 가깝다. 그러므로「으악새」는 「왜가리」라는 새를 의미하는 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을씨년스럽다
을사보호조약(1905)으로부터 나라 망한 한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변하여 `을씨년스럽다`가 된 것이다.
보기에 탐탁하지 않고 몹시 쓸쓸하다. 살림이 보기에 가난하다. 소름이 끼치도록 싫거나 지긋지긋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면수
쥐노래미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이름이다. 이면수는 찬물에 사는 어종으로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북동부에 분포한다. 관북지방(마천령북쪽, 즉 함경북도 지방)에 사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물고기를 잘 낚았다는 데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비롯했다. 옛날 강원도 동해안에 사는 부자가 비싼 이면수로 쌈만 먹다가 망했다고 하여 `이면수 쌈 먹다가 천석꾼이 망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맛이 좋고 비쌌다고 한다. 이면수의 표준어는 ‘임연수어’다.
그런 유래가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지금 대다수 언중들이 ‘이면수’라 하는데, 굳이 유래를 따져 사람 이름인‘임연수’를 표준어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바지
원래 이바지는 잔치한다는 뜻이다. 결혼이라는 큰 잔치를 치른 사람이 가져온 떡을 ‘이바지떡’이라고 한다. 나라에 공헌한 사람이 많으면 나라에서 잔치를 벌여준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게 힘쓰는 것을 ‘이바지 한다’고 하게 되었다.
이판사판
이판사판은 (일이나 상황이)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이 있었다. 조선 왕조의 억불(抑佛) 정책으로 하여 승려는 특히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점점 더 푸대접을 받게 된다. 유학자(儒學者) 가운데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큰 흐름은 멸시 그것이었다. 그에 견디지 못하여 황폐해진 절도 있었으나 많은 절들은 그 어려움을 딛고서 한편으로는 절의 운영·유지에 애를 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선(修禪)과 강경(講經)에 힘썼다. 이때 절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절일을 관장하는 승려들은 자연히 공부(참선·강경)할 기회를 잃게 되어 무식해졌으며, 절일은 젖혀둔 채 공부만 하는 승려들은 불경에는 밝아져 갔으나 세속과는 담을 쌓음으로써 현실적인 일에는 소극적으로 되면서 어두워져 갔다.
누군가 출가를 하고자 할 때는 이판이든 사판이든 그 어느 쪽인가를 가려야 하게 되어 있었고, 이판승과 사판승의 갈등의 골은 깊어 갔다. 급기야 이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기까지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이판사판이란 말이 생겼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
`인구에 회자되다`의 ‘인구’는 사람의 입, 회자는 회[膾]와 구운 고기[炙]란 뜻이다. 사람들이 회와 구운 고리를 좋아하듯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훌륭한 글이나 명성 등이 사람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릴 경우에 ‘인구에 회자되다’ 라는 표현을 쓴다.
 
 
(자)
 
자린고비
민간어원에 보면, 옛날 충주 지방에 이씨 부자가 있었는데, 어찌나 구두쇠였던지 제사 때마다 지방에 `고비(考 ?)` 즉 `죽은 아비 考`, `죽은 어미 ?`를 써서 매년 기름에 전 똑 같은 지방을 썼다고 한다. 지방은 제사를 지내고 태워 없애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그만큼 인색한 부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절은고비’란 말이 생기고, ‘절은고비>저린고비>자린고비’로 바뀌게 되었다.
이 말은, 종이(지방)를 태우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는 인색함을 책망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하찮은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절약하는 정신을 높이 사 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자웅을 겨루다
본래 역(曆)에서 나오는 자웅(雌雄)은, 자(雌)는 밤을, 웅(雄)은 낮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훗날 자웅은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낮과 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비유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양상을 나타낸 말로 ‘자웅을 겨루다’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막상막하의 서로 비등한 힘을 가진 상대끼리 승부를 겨루는 것을 가리킨다.

자치동갑
‘나이가 한 살 틀리는 동갑`을 이르는 말이다.
자칫하면 동갑이 될 뻔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아래로 혹은 위로 한 살 차이가 나는 경우에 쓰인다. 같은 뜻으로 어깨동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이 차가 적기 때문에 서로 키가 비슷하여 어깨를 나란히 겨눈다는 뜻이다. 자치동갑끼리는 서로 친구로 하기로 하고 말을 트고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잔나비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
우리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성이`(원숭이 猿, 원숭이 猩)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이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었다. 그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猿`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어두에 붙고,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된 것이다.

잡동사니
안정복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인데, 이것저것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내 안정복은 이것저것 잡다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모아 책을 한 권 엮었는데, 그 책 이름을 <잡동산이>라고 했다.
바로 이 <잡동산이>에서 여러 가지가 한데 뒤섞였다는 뜻의 `잡동사니`라는 말이 나왔다.

장가가다
`남자가 혼인을 하다`의 뜻으로, 말 그대로 남자가 장가(丈家 : 장인, 장모의 집)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시대에는 모계중심 사회의 유습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가 신부 집에서 일을 해주고 첫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독립해 나가도록 했었다. 지금은 이러한 풍습이 없어졌지만 말에는 아직도 그 유습의 흔적이 남아 있고, 또 구식 결혼 후에 신랑이 사흘 동안 신부 집에 묵는 것도 그 유습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장로(長老)
기독교의 '장로(長老)'는 불교에서 전래한 말로, 본디 이 말은 '지혜와 덕이 높은 스님'이란 뜻이었다. 현재 기독교에서는 '선교 및 교회의 운영에 참여하는 성직의 한 계급'을 뜻한다.

재미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흥취`를 뜻하는 말이다.
재미는 원래 자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란 뜻을 지난 한자어 `자미(滋味)`에서 나온 말이다. 자미가 우리말의 `ㅣ` 모음역행동화 현상에 의해 `재미`로 변하면서 말뜻도 함께 바뀌게 된 것이다.

점심
점심은 선종(禪宗)에서 선승들이 수도를 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듯 아주 조금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음 심(心), 점 점(點)을 쓴 것이다. 이처럼 점심은 간단하게 먹는 중간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들 중식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점을 찍다
`어느 것, 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나타내거나 마음속으로 정하다`라는 뜻이다.
관원을 선임할 때에 삼망(三望 : 벼슬아치를 발탁할 때 셋을 추천하는 일)의 후보 가운데서 한사람의 이름 위에 임금이 친히 점을 찍어서 뽑는 것을 `낙점(落點)`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임금이 낙점을 하듯이 자기마음에 드는 대상을 고르는 것을 `점을 찍는다`고 하게 되었다.

점잔
`무겁고 야하지 않은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형용사 `점잖다`에서 온 말(명사)이다. 점잖다는 `젊지 아니하다`가 줄어서 된 말인데, 15세기 국어의 `졈다`는 `어리다`의 뜻이었다. 따라서 `점잖다`는 `어리지 않다`, 즉 어른스럽게 행동거지가 의젓하다는 뜻이다. (현대어 ‘젊다’가 ‘졈다’에서 온 말이다.) 흔히 `점잔을 빼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은 나이는 젊은데 ‘짐짓 점잖은 척 해 보인다’는 뜻으로 쓴다.

정곡을 찌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正鵠)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候)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으면 포후(布候), 가죽으로 만들었으면 피후(皮候)라 했다.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진 과녁의 한가운데 그려진 검은 점을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했다. 정(正)은 본래 민첩한 솔개의 이름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인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맞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히기 힘든 부분인 정 가운데를 맞혔을 때 `정곡을 맞혔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곡은 과녁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말로는 `적중(的中: 과녁의 가운데)이 있다.
활쏘기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정곡을 찌르다’는 `어떤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제비초리
‘뒤통수의 골에 뾰족하게 내민 털`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제비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의 안심에 붙은 고기는 `제비추리`라고 한다.

젠장할
`젠장할`은 `제기 난장을 맞을` 이 줄어서 된 말이다.
`난장`이란 정해진 형량 없이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매로 치던 조선시대 고문을 말한다.
일이 뜻대로 안 풀려서 투덜거리거나 다른 사람을 욕할 때 쓴다.

젬병
`해놓은 일이나 물건이 형편없거나 잘못 되었을 때` 이르는 말이다.
‘전병’이 변해서 된 말이다. 전병은 찹쌀가루 밀가루 수수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번철에다 둥글고 넓게 지진 떡을 말하며 우리말로는 `부꾸미`라고 한다. 전병을 납작하게 지져 놓아 볼품없이 된 모양을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조바심
`바심`은 `타작한다`라는 뜻의 말로서 `조바심`은 `조를 타작하다`라는 뜻이다. 조는 귀가 질기므로 어지간한 정도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굉장히 노력을 기울어서 해야 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조를 타작하는 마음처럼 무척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조바심`이라 한다.

좀이 쑤신다
좀벌레가 몸을 쑤셔대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을 ‘좀이 쑤신다’라고 하게 되었다.

종간나 새끼
`(함경도 지방에서) 상대방을 얕잡아 이르는 욕설`이다.
`종갓나`는 함경도 사투리로 `종살이를 하는 가시내`라는 말이다. 즉 종년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경멸하여 욕설로 쓰는 말이다.

주걱
‘주걱’은 ‘죽(粥) + 억’으로 분석된다. ‘-억’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터럭’이 ‘털 + -억’으로 되어 있고, ‘주먹’은 ‘줌 + -억’으로 되어 있는데, ‘주걱’에서 분석되는 ‘-억’도 이와 같은 것이다. 죽 같은 것을 푸는 데 쓰는 도구가 ‘주걱’이다. 밥을 푸는 것은 ‘밥주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밥주걱’의 생김새 때문에 여러 단어가 생겨났다. 턱이 유달리 길고 앞으로 굽은 턱을 ‘주걱턱’이라고 하고, ‘구두’를 신을 때 쓰는 도구도 주걱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구둣주걱’이라고 한다.

주마등
`사물이 몹시 빨리 변하여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
등(燈)의 외피(外皮) 중심을 철사 끝에 머물게 하고 속에서 타는 촛불의 열기가 한쪽 방면으로만 빠져나가게 하여 그 힘으로 빙빙 돌게 한 것을 주마등이라고 한다. 등에다 말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돌아가면 등에 그려진 말이 저절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주마등이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변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흔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와 같이 쓴다.

쥐뿔도 모른다
` 아무것도 모른다`의 뜻이다.
옛날에 한 노인이 짚으로 자리를 매고 있는데 작은 쥐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였다. 이에 노인이 짚에 붙어있는 벼를 훑어주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면서 노인과 쥐가 친해지고 쥐는 점점 자라서 강아지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쥐가 노인으로 변해서 가족들을 속이고 진짜 노인을 집에서 내쫓았다. 집에서 쫓겨난 뒤 이리저리 걸식하면서 떠돌아다니던 노인은 어느 절에서 스님을 만나 사연을 이야기하고 고양이 한 마리를 얻었다. 몇 해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고양이를 풀어서 마침내 요망한 쥐를 잡았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은 불러 한바탕 야단을 친 다음에 아내를 따로 불러서 `지금까지 쥐좆도 모르고 살았느냐?`라고 힐난을 했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 중에 여자가 같은 이유로 쫓겨났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본래 위치를 찾은 다음 남편에게 `쥐씹도 모르고 살았느냐?`고 따졌다는 것도 있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앞 뒤 분간을 못하는 사람을 일러 `쥐좆(또는 쥐씹)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생겨났으며, 표현상 성기(性器)를 나타내는 부분을 은유적으로 둘러서 `쥐뿔도 모른다`고 하게 된 것이다.

지랄한다
`마구 법석을 떨거나 분별없는 행동을 하다`의 뜻이다.
지랄은 원래 간질병을 뜻하는 말이다. 간질병의 증세는 대체로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다. 정확한 사리분별 없이 날뛰는 사람의 행동을 간질병의 발작 증세에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지사(知事)
'도지사(道知事)'를 줄인 말로 쓰는 '지사(知事)'는, 원래 불교용어로 '일(事)을 알다(知)', '업무를 관장하다'의 뜻인 범어(梵語) 'karma dana'의 한역(漢譯)이다.
중국에서는 절의 집사나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을 '지사(知事)'라고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5품에서 6품까지의 지방관직과 2품에서 5품까지의 중앙관직에, 조선시대에는 정2품과 종2품 중앙관직에 '지사'라는 명칭을 썼다. 오늘날 ‘도지사’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지아비 지어미
원래 `집`의 관형격(소유격) 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15세기)의 문헌에 보면 `짓아비, 짓어미`였는데 19세기말에 와서 `짓`이 `지아비, 지어미`가 되었다. ‘ㅅ’이 유성음 사이에서 반치음의 과정을 거쳐 탈락한 것이다. ‘짓’은 ‘집’의 뜻으로 사이시옷이 들어가면서 본래 받침은 약화되어 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아비, 지어미`의 본디 뜻은 `집아비, 집어미`인 셈이다.

지치다
`피곤하다`는 뜻으로 곧잘 `지치다`란 말을 쓴다.
그런데 이 `지치다`란 말은 원래의 뜻이 `설사하다`란 뜻의 ‘즈다’에서 온 말이다. 설사하는 행위의 결과로 신체에 나타나는 탈진상태를 `지치다`라 하였는데, `피곤하다`는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설사(泄瀉)가 훈몽자회에도 ‘지칠 설’, ‘지칠 사’로 되어 있다.

직성이 풀리다
`소망이나 욕망 따위가 제 뜻대로 성취되어 마음이 흡족하게 되다`의 뜻이다.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 본다는 별을 가리켜 직성이라고 했다. 그 차례는 제웅직성, 토직성, 수직성, 금직성, 일직성, 화직성, 계도직성, 월직성, 목직성의 아홉 직성이 있다. 이 직성에는 흉한 직성이 있고 길한 직성이 있다. ‘직성이 풀리다’는 직성(直星)의 변화 여부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생겨난 말이다.

쪽도 못 쓴다
상대해보지도 못한 채 기가 눌리어 꼼짝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씨름판에서 나온 말이다. 씨름판에서 상대한테 배지기로 들렸을 때, 자신의 발등을 상대의 종아리 바깥쪽에 갖다 붙이면, 상대가 더 들지도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힘은 힘대로 빼면서 애를 먹는다. 이런 기술을 `발쪽을 붙인다`라고 하는데 그런 기술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을 때 `쪽도 못 쓴다`라고 한다.
또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혹할 정도로 반하여 꼼짝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차)
 
찬물을 끼얹다
이 말은 본래 흘레붙은 개들을 떼어놓을 때 쓰던 방법이다. 족보 있는 개가 종자도 모를 남의 개와 어울렸을 때 그 새끼를 밸 것을 염려하여 찬물을 한 동이 끼얹어 떼어놓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참 진행 중인 일을 중단하게끔 하는 말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면서, 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색하게 되거나, 신나게 일하고 있는 중에 그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어떤 요인이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을 말할 때 쓴다.

참치
다랑어는 영국에서는 튜나(tuna)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마구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랑어를 참치라고도 부른다. 이 참치라는 명칭은 해방 후 해무청 어획 담당관이 당시 동해연안에서 ‘참다랭어’라 부르는 것을 잘못 알고 물고기를 뜻하는 ‘치’를 ‘다랭어’ 자리에 붙여 ‘참치’로 보고서에 기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참치`의 우리나라 표준명은 ‘다랑어’다. 생물학회와 교육부에서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표준 명으로 결정하고 국정교과서에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활용하고 있다. 구미인들은 다랑어의 살색이 백색에 가까운 담홍색인데다가 그 맛이 닭고기 맛과 같다고 해서 다랑어를 바다닭고기(Sea-Chicken)이라고도 부른다. 구미인들은 통조림 원료로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다랑어 생선회를 <마구로 사시미>라고 부르면서 바다 생선회 중의 일품으로 상미(賞味)하고 있다.

창피하다
체면 깎일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한자어 창피(猖披)에서 온 말로, 원래 옷을 입고 띠로 매지 않은 채 헝크러진 모습이라는 뜻에서, 이는 남에게 보이기에 체면이 깎이는 일이므로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말이다. 창(猖)은 기운이 넘쳐 미쳐 날뛰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로, 猖狂(창광)이라거나, 전염병이라든지 옳지 못한 세력들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는 것을 뜻하는 창궐(猖獗)과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피(披)는 풀어헤치다는 뜻으로, 풀어헤치면 속의 것이 드러나게 되므로, 속에 감추어진 무엇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피(披)라고 한다. 이는 남 보기에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둥벌거숭이
`두려운 줄 모르고 철없이 덤벙거리나 날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벌거숭이는 `벌거벗은 사람`이라는 뜻 외에 ‘붉은 잠자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벌거숭이가 천둥이 치는데도 두려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닌 데서 생겨난 말이다.

천애고아
`천애(天涯)`는 `천애지각(天涯之角)`의 준말로 하늘의 끝이 닿는 곳과 땅의 한구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하늘과 땅처럼 서로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서, ‘천애고아’란 서로 아무 인연이 없는 곳에 내던져진 고아를 가리킨다. 즉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핏줄이나 부모가 없이 오직 자기 혼자 남겨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철부지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인 ‘철’은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 곧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그 뒤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말인 ‘부지(不知)’가 붙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애 같은 사람을 일컬어 ‘철부지’라고 하게 되었다.

청기와 장수
`저만 알고 남에게는 알리지 않아 어떤 일을 자기 혼자서 차지하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청기와 굽는 법을 알아냈으나 이익을 혼자 차지할 생각으로 아무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죽었다. 그 바람에 후세에까지 그 비법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말이다.

촌닭
좀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이 큰 도시에 오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 닭이 기웃거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촌스럽고 어수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촌닭’이라고 하게 되었다.

총각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處女)` `총각(總角)`이란 한자어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 `처녀`는 그 단어 속에 `여`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한자 `總(총)`은 지금은 `다 총` 등으로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 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이다. `각`은 물론 `뿔 각`이다.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머리를 `총각`이라고 했다. 이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다. 옛날에는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하고 불렀다.

추파
‘추파(秋波)’란 가을철의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으로 잔잔하고 곱게 뜬 여자의 눈길을 말한다.
오늘날 ‘추파’라는 말은 은근히 남자의 마음을 사려고 알랑거리는 기색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추호(秋毫)도 없다
추호(秋豪)의 한자는 ‘가을 秋, 터럭 毫’로, 본래 가을 짐승의 털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털갈이로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데 그 가늘어진 터럭 하나조차도 없을 정도라니 아주 없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흔히 아주 적거나 거의 없는 것을 강조해서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치가 떨린다
너무 분하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 때 흔히 이를 악물거나 이를 간다. 그런데 이를 너무 악물거나 갈게 되면 이가 흔들린다. 그래서 ‘치(齒)가 떨린다’라는 말이 생겼다.
 
 
(카)
 
케케묵다
‘케케묵다’는 ‘켜켜이 묵다’에서 비롯되었다. ‘켜’는 포개어진 층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가령 시루떡을 찌면서 ‘켜’를 두껍게 안친다고 할 때 등에 쓰인다. 먼지 따위가 켜켜이 앉게 되면 자연히 ‘켜켜 묵은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의 시작은 가시적(可視的)이었다. 그러나 케케묵은 것이 반드시 가시적인 데 그칠 수만은 없다. 사람의 생각도 새로운 물결이나 지식 같은 것으로 씻어내지 않으면 거기 켜켜이 먼지가 앉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켜켜이 묵은 생각’이 된다. 이 때는 추상적(抽象的) 의미가 되는 것이다.

코리아
고려가 통일국가를 이루고 문물이 발달하여 세계로 알려지면서 서방 세계에서 고려를 ‘코리아’로 부르게 되었다. 원래 스펠링이 Corea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자기네 서방 이름인 Japan의 이니셜인 J가 C보다 뒤에 있는 것을 꺼려 J보다 뒤에 있는 K로 고쳐 Korea라 한 것이다.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외국어 국호를 Corea로 고치는 것은 시급하고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큰손
`사채놀이나 주식 투자를 크게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같은 뜻을 지닌 일본말 `오오데(大手)`를 직역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따라서 말 전체는 순우리말이지만 그 뿌리는 일본말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깡패를 흔히 `어깨`라고도 하는데 이 말도 ‘어깨’란 뜻의 일본말 `가다`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타) 

태질을 하다
이삭을 떨 수 있게 만든 농기구인 개상에 곡식 단을 메어쳐서 터는 것을 태질이라 한다. ‘메어꽂다’는 뜻을 가진 `태질을 하다`란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농기구가 발달한 지금은 이 말을 농사용어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에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세차게 메어치거나 집어던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고 있다.

터무니없다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다`의 뜻이다.
터무니는 원래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이다. ‘무니’는 지금의 ‘무늬’라는 말이다. 터를 잡았던 흔적이 없다는 말이니 전혀 근거가 없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토끼다
`도망가다`의 뜻으로. ‘토끼(兎)+다’로 결합된 말이다. 토끼가 잘 달리는 특성에 빗대어 `도망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를 만들게 되었다. 비슷한 조어(造語) 방식으로 생긴 말로, `신(靴)+다`, `띠(帶)+다`, `자(尺)+ㅣ+다(재다)`, ‘안 +다’, ‘품+다’ 등이 있다.

토를 달다
`토`라 함은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을 쉽게 알기 위하여 한문 구절 끝에 붙여 읽는 우리말로서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한다. `토씨`라고 쓰기도 한다. -하야, -하고, -더니, -하사, -로, -면, -에 등이 토에 해당한다. 예: 有朋이 自遠訪來하니 不亦樂好아
오늘날에 얘기 중에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에 뒤에 덧붙여 하는 얘기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퇴고(推敲)
퇴고란 문장을 다듬고 어휘도 적절한가를 살피어 고쳐 쓰는 일을 말한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가다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조숙지변수 승퇴월하문(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는 연못 가 나무에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라는 것이었는데, ‘달 아래 문을 민다’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그만 경조윤(京兆尹:首都의 市長) 한유(韓愈)의 행차 길을 침범하였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유는 노여운 기색도 없이 한참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군.’ 하며 가도와 행차를 나란히 하였다(《唐詩紀事》)는 고사(故事)에서 생겨난 말로 이로부터 퇴고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투기
'투기 성향', '투기 심리', '인생 투기', '정치 투기', '아파트 투기', '땅 투기' 등에서 보듯, '투기(投機)'라는 말은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확신도 없이 요행만 바라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또는 '요행히 큰 이익을 얻으려고 행하는 매매 거래'가 '투기'인 것이다.
그러나 '투기'라는 말은 본래부터 그렇게 나쁜 의미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 쓰이던 단어이다.
'투기'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가에서는 '수행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크게 깨닫는 일' 또는 '조사(祖師)'의 '기(機)'와 '학인(學人)'의 '기(機)'가 일치하는 일'을 '투기'라고 한다. 따라서 '투기'는 아주 심오한 수행의 경지를 나타내는 긍정적 의미의 단어였다.

튀기
'혼혈아'를 업신여기거나 낮추어 말하는 단어이다. '혼혈아'보다 '혼혈인'이 더 인격을 존중하여 말하는 단어입니다
'튀기'는 우리 옛 문헌 속에 등장하는 '특이'라는 말의 변형이다.
18세기 문헌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수말과 암소, 수소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것을 특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특이'은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버새',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 등을 지칭하는 명사가 된 셈이다.
이것이 20세기 초 <조선어 사전>으로 이어져 '트기'로 표기되었고, 현대에는 '튀기'로까지 변모된 것입니다.
사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 의미 또한 혼혈 동물만을 뜻하는 말에서 혼혈 인간까지 포함하는 말로 변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조선 정조 때 실학자, 문장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 1741-93)의 시문(詩文)·예론(禮論)·사론(史論) 등을 망라하여 엮은 전집. 71권 33책. 필사본. 1795년(정조 19) 저자의 아들 광규(光葵)가 편집, 간행하였다.

트집 잡다
`공연히 조그마한 흠집을 잡아 말썽이나 불평을 하다`의 뜻이다.
원래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할 물건이나 한데 뭉쳐야 할 일이 벌어진 틈을 일컫던 트집이라는 말이 점차 그 뜻이 전이되어 쓰인 것이다.
 
 
(파)
 
파김치
파김치란 파로 담근 김치로, 파는 원래 잎이 빳빳하고 기운이 세어 만지면 톡톡 부러지지만, 소금기와 함께 여러 양념을 해두면 서서히 기운이 죽어 부드럽게 된다.
처음에는 힘이 있어 강건하던 사람도 일을 많이 하거나 오래하면 몸이 나른해지고 행동도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힘이 들어 기운이 쭉 빠진 것을 가리켜 ‘파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파방치다
`살던 살림을 그만두다`의 뜻이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는 것을 ‘파방(罷榜)’이라 했다. 파방을 하듯이 그전에 있었던 일을 도로 없던 일로 한다는 뜻으로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같은 이유로 일이 깨져 다 끝난 것을 `파방판`이라고 한다.

판문점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板門店)은 원래 이름이 `널문리`다. `판문`은 우리말인 `널문`을 뜻에 맞춰 한자를 빌어 ‘널 板, 문 門’으로 표기한 것이다.
51년 휴전회담장이 되면서 근처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에서 당시 `중공군` 대표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한자로 `板門店`이라고 옥호를 적은 것이 그대로 지명이 된 것이다.
인근의 `널문다리`에는 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 라는 이름이 새로 붙었다.

팽개치다
하던 일을 포기하고 그만 두는 일을 말한다.
팽개는 `팡개`에서 왔는데 팡개는 논에 있는 참새를 쫓는 데에 쓰이는 대나무 막대기이다. 이렇게 논바닥에 팡개를 쳐서 흙이나 돌을 묻힌 다음 그것을 휘둘러 새를 쫓는 것에서 `팽개치다`라는 말이 나왔다.

푸념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길게 늘어놓는 말`을 일컫는다.
원래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신의 뜻(빙의 상태)이라 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에게 꾸지람(=넋두리)하는 것을 일컫던 말이었으나 일반적인 의미로 그 뜻이 변했다.

피죽바람
`모 낼 무렵 오랫동안 부는 아침 샛바람(동풍)과 저녁 높새바람(북동풍)`을 가리킨다. 모 낼 무렵에 이 바람이 불면 벼가 큰 해를 입어 큰 흉년이 들기 때문에 ‘피죽도 먹기 어렵다’고 생각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하)
 
하룻강아지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이다.
그러면 이 ‘하릅’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시골 노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릅’은 소·말·개 등과 같은 짐승의 ‘한 살’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로부터 변형된 것이고 이것이 ‘한 살 된 강아지’라는 의미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속담은 ‘한 살 된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개에게 있어 생후 일년이면 천방지축 까불고 겁 없이 짖어댈 나이이다. 그러니 ‘범’인들 무서워하겠는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라면 무섭고 자시고 할 거 있겠는가. 말은 ‘하룻강아지’로 굳어져버렸지만 의미만은 제대로 알아두는 게 좋겠다.

학을 떼다
`거북하거나 어려운 일로 진땀을 빼다`의 뜻이다.
말라리아를 한자어로 `학질(?疾)`이라고 한다. 그리고 `학을 떼다`는 `학질을 떼다`, 즉 `학질을 고치다`에서 나온 말이다. 학질은 열이 많이 나는 병임으로 자연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는 점에서 어려운 곤경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학을 떼는 것’은 여건 귀찮고 괴롭고 거북한 일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 학질 : 학질모기가 매개는 말라리아 원충의 혈구내(血球內) 기생에 의한 전염병으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고열이 나는 특징이 있어 3일열, 4일열 및 가장 악성인 열대열 등으로 구분한다. 특수한 열과 적혈구의 파괴로 빈혈 및 황달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한가위
한[大]+갑[半分]+?ㅣ(명사화 접미사)가 변한 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그 당시 한가위를 기쁨과 잔치의 날로서 맞이했던 기록이 보인다. 왕녀(王女)가 길쌈을 장려하기 위하여 나라 안의 여자를 두 패로 갈라 7월 보름부터 길쌈 경쟁을 붙여 한 달 뒤인 8월 보름에 우열을 가린 끝에 진편이 이긴편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면서 곁들여 춤과 놀이를 즐기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곧 가위(嘉排)라는 것이었다.
이 한가위의 가위를 ‘가배(嘉排)’라 기록해 놓고 있으나 우리 옛말을 한자로 적어 놓고 있는 것(가차)뿐이다.
이러한 ‘가위’에 크다는 뜻의 ‘한’이 붙어 ‘한가위’라 하였는데 그 한가위는 결국 ‘한가운뎃날’이라는 뜻이었다. 보름날은 한달의 한가운데이고 또 한달의 절반이기도 하지만 8월의 가위는 유독 ‘큰(한) 가윗날’이라는 뜻의 한가위였다. 한자어 추석(秋夕)에 해당하는 고유어인 것이다.

한글
우리글인 훈민정음을 뜻한다.
한글은 세종 28년(1446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우리글을 속칭 언문(諺文), 반절(半切)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런 이름은 모두 당시의 사대부들의 쓰던 한자(漢子)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 뒤 갑오경장 이후로는 국문(國文)이라고 일컬었으나 특정 언어에 대한 명칭이라기보다는 그저 우리나라 글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글을 한글이라고 처음 이름 붙이기는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1913년에 신문관(新文館)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에 집필한 글에서 ‘한글’이라고 표기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널리 인식되지는 못하다가 1927년 2월부터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동인지로 창간된 국어국문 연구 잡지가 `한글`이라는 제호를 달고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또 그 전 년에 창설했던 훈민정음 기념일의 명창인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침과 함께 신문, 잡지 및 강연회 강습회를 통하거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93) 의 보급에 의하여 한글이란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글의 뜻은 글 중에 가장 큰(大) 글, 글 중에 오직 하나(一)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一致)같이 쓰는 글, 글 중에서 가장 바른(正) 글[똑 바른 가운데를 `한`가운데라 함과 같음], 결함이 없이 원만(滿한) 글[입에 꽉 찬 것을 `한입`이라 함과 같음]이란 뜻들을 겸한 것이다.

한참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라는 뜻의 말이다.
두 역참(驛站)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역참과 역참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었다.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경우라 하겠다. 그리고 새참이니 밤참이니 할 때도 `참`도 역참에서 나온 말들이다.
‘한참’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의미할 때도 있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서 ‘밭이 한참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때는 길지 않은 시간, 곧 짧은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참이면 할 일을 뭘 그리 꾸물대냐’등의 경우도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 역참: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관가 등에서 먼 지방에 급한 공문을 전하거나 할 때에 주로 말을 이용했다. 이때에 일정한 거리마다 지친 말을 갈아타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을 역참(驛站) 이라고 했다. 각 역참에 딸려 공문을 가지고 역참 사이를 나르는 사람을 파발꾼(擺撥-)이라고 했으며 파발꾼이 타는 말을 파발마(擺撥馬)라고 하였다. 지하철 3호선의 ‘구파발’은 ‘옛 파발’이란 뜻이고, ‘역참’은 오늘날 ‘역’의 의미다.

함흥차사(咸興差使)
조선 태조(이성계)가 함흥에 있을 때 태종(이방원)이 태조의 환궁을 권유하기 위해 보냈던 사신(차사)을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 초기에 이방원(李芳遠 : 뒤의 태종)이 2차례의 난을 일으켜 혈육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아들 방원에게 실망하여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이에 태종은 태조에게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파견하여 환궁을 권유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부하고 사신으로 오는 자를 모두 죽여 버렸다. 이 때문에 어디 갔다가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을 함흥차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등에 수록된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실록에는 태조가 사신을 죽였다는 기록은 없다.
또 마지막 함흥차사로 갔던 박순(朴淳)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실록에 따르면 그는 함흥차사가 아니라 조사의(趙思義)의 난 때 함경도민을 회유하기 위해 파견된 자로 군중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오늘날은 ‘심부름을 가서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거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행주치마
여자들이 부엌일을 할 때 치마 위에 덧입는 앞치마를 말한다.
임진란이 일어난 이듬해(1593년) 왜적들이 행주산성을 침입할 때 권률장군이 지휘하는 군사가 왜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때 성 주변의 아낙네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다 행주산성 군사를 도왔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년)에 이미 ‘행주치마’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또한 민간어원설에 의한 것이다.

허풍선이
`허풍만 떨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숯불을 피우는 손풀무의 한가지인 허풍선(虛風扇)에서 비롯한 말이다. 허풍선은 손풍금처럼 생긴 풀무의 손잡이를 잡고 폈다 오므렸다 하여 바람을 일으킨다. 허풍선처럼 알맹이는 없고 헛바람만 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헹가래
헹가래는 원래 가래로 직접 흙을 파기 전에 헛가래질로 손을 맞춰보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지만 농기구 가운데 가래라는 것이 있다. 삽 모양으로 생겼는데, 나무로 된 날에다 자루가 박혀 있다. 흙을 파는 날의 끝에는 쇠로 된 보습을 끼워 작업 중 쉬 부러지지 않도록 해놓았다. 외날이 있는가 하면 세 날 짜리도 있다. 밭의 이랑을 짓거나 농로 보수, 집터 고르기 등을 할 때 흙을 퍼서 옮길 때 주로 사용했다.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다른 두 사람이 가랫날의 넓죽한 위쪽 두 귀에 맨 줄을 한 가닥씩 잡고 앞에서 당겨 협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가래꾼들은 본격 작업에 앞서 실수하지 않도록 손을 맞추기 위해 헛가래질을 해보곤 했다. 이 동작을 ‘헛(虛)가래’라고 했는데, 헌가래→헨가래를 거쳐 지금의 ‘헹가래’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여럿이 그 사람의 네 활개를 번쩍 들어 던져 올렸다 받았다 하는 짓’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특히 운동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감독이나 선수들을 헹가래치는 것을 많이 본다.

호랑이
‘호’(虎)는 ‘범’을, ‘랑’(狼)은 ‘이리’를 뜻하는 것으로, ‘호’와 ‘랑’을 합쳐 ‘호랑’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호랑’의 원래 뜻은 ‘범과 이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호랑’이 굳어져 쓰이면서 ‘호랑’ 자체가 ‘범’을 뜻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이다. 물론 ‘이’는 명사 밑에 붙는 접미사이다.

호미곶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 하여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의 해맞이 명소 `장기곶`의 명칭이 `호미곶(虎尾串)`으로 바뀌어 지도에 실리게 되었다.
호미곶은 원래 ‘말갈기’처럼 생겼다 해서 조선시대에는 장기곶으로 불렸으나, 조선 중기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는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 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호미곶의 모양을 묘사했다.
한반도가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호주머니
우리나라에는 호주머니가 없고, 중국옷에는 헝겊을 단 주머니가 있었다. 그것을 오랑캐 호(胡)자를 써서 `호주머니` 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떡`도 마찬가지다.

화수분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아니함`의 뜻을 지닌 말이다.
중국 진시황 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비롯한 말이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십만 명을 시켜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를 채우게 했다.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 지 한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황하수 물을 채운 동이라는 뜻으로 `하수분`이라고 하던 것이 나중에 그 안에 온갖 물화를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재물이 샘솟듯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로운 그릇을 뜻하게 되었다.

환장하다
환장(換腸)은 `환심장(換心腸)`이 줄어서 된 말로서 마음과 내장이 다 바뀌어 뒤집힐 정도라는 뜻이다.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벗어나 아주 달라진 마음을 표현하는 말로서, `미치겠다`와 비슷한 의미이다.

활개치다
새의 두 날개나 사람의 두 팔을 가리켜 ‘활개’라고 한다. ‘활개치다’는 새나 사람이 활개를 치듯이 의기양양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회(蛔)가 동(動)하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뱃속에 있는 회충이 먼저 알고 요동을 친다 해서 생긴 말이다.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썩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후레자식

`배운 데 없이 제멋대로 자라서 버릇이 없는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원말은 `홀의 자식`이다. 즉, 아버지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버릇이 없는 아이라고 상스럽게 낮추어 부르던 말이다.
한편 같은 뜻으로 `호로자식`이르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호로(胡虜)’는 중국 북방의 이민족의 흉노(凶奴)를 일컫는 말로, ‘호로자식’은 ‘오랑케 자식’이란 뜻이다.

후미지다
`무서우리만큼 호젓하고 깊숙하다`의 뜻이다.
물가의 휘어서 굽어진 곳을 ‘후미’라고 한다. 따라서 `후미지다`고 하면 후미가 매우 깊은 곳을 가리키던 것이 점차 확대되어 지금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흐지부지
‘끝을 분명히 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겨 버리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흐지부지'는 단어의 구조로 보아 '흐지'와 '부지'로 분석되는 것으로 어원이 한자어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애지중지(愛之重之), 감지덕지(感之德之), 전지도지(顚之倒之), 좌지우지(左之右之)' 등의 한자어들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흐지부지'의 이전 형태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총독부에서 1920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에는 '흐지부지'란 어형은 올라 있지 않고, 대신 '휘지비지(諱之秘之)'란 한자어가 실려 있다. 그 뜻은 '기탄(忌憚)하여 비밀히 하는 것' 즉 '꺼려서 비밀히 하는 것'의 뜻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줄여서 '휘비(諱秘)'라고 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어서 문세영의 『조선말사전』(1938년)에도 이 '휘지비지(諱之秘之)'가 실려 있고, ① 결과가 분명히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 ② 꺼려서 비밀히 하는 것 이란 풀이가 있는데, '흐지부지'는 여전히 등재되어 있지 않다.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에도 이 '휘지비지(諱之秘之)'는 실려 있는데, '남을 꺼려서 몰래 얼버무려 넘김'이란 풀이가 있다. 그리고 준말이 '휘비(諱秘)'라고 되어 있고, '휘비(諱秘)'는 '휘지비지'의 준말로 풀이되어 있다. 결국 '흐지부지'는 '휘지비지'란 한자어가 그 어원인 것으로 보인다.


         --- 출처 : 흙돌 심재방 시인의

 

 

 

출처 : 도르메세상
글쓴이 : 도르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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