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산(廣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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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트레킹

2022. 5. 13.

 

 

 

 

 

 

 

 

 

 

 

 

 

 

 

 

 

 

 

 

 

 

 

▲ 광덕산(廣德山)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난리가 나거나 불길한 일이 생기면 산이 운다고 전해진다

 

 

 

 

 

 

 

 

 

 

 

 

▲ 옛날에 한 젊은이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와서

    소리나는 곳으로 가봤더니 큰 바위밑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물이 흘러 나왔던 이 바위를 사람들이 장군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부용은 이매창(1573~1610). 황진이(1506~1544)와 더불어 조선후기의 3대 시기(詩妓)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부안의 이매창이나 송도의 황진이와는 달리 김부용은 그 묻힌 곳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난 1974년 작가 정비석이 조선일보에 "명기열전"을 연재할 때 발품을 팔아 이곳 광덕산 기슭에서 무성한 잡초에 묻힌 김부용의 묘를 찾아내어 세상에 알렸다

천안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묘비석과 안내비목을 세우고 천안예총과 문인협회에서는 매년 추모 다례행사를 하고 있지만

확실한 고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아직 도지정문화재로는 지정이 되지 못하고 있다

 

김부용(金芙蓉)은 평안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글을 배우고 10세 때에 당시(唐詩)와

사서삼경을 익힐정도로 영특했으며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11살 때에 부모님을 잃고 오갈데 없어진 부용은 그곳 퇴기(退妓)의 양녀로 들어가 12살에 기적에 올라 기생이 되었다

김부용이 김이양을 만난 것은 김이양이 77세에 평양감사로 부임을 했던 때였는데 그때 부용의 나이 19세 였다

김이양은 문장가였으며 풍류를 아는 호남아였고 당대 이름을 떨치던 안동김문의 세도가 이기도 했다

김이양은 시문과 가무에 뛰어난 부용의 재능을 인정하여 운초(雲楚)라는 시명을 지어주고 가까이 두고 아꼈다고 한다

시를 매개로 마음을 통할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알아주고 또 자신을 아껴주는 김이양대감에게

조실부모하고 백척간두에 내던져진 듯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김부용에게 김이양 대감은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든든한 존재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두터운 신분의 벽과 58년이라는 긴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사람 사이에 깊은 믿음과 사랑이 싹텄으며 부용 또한 자신을 알아 주는 김이양대감을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러

존경하고 흠모 했으리라 짐작된다

 

 

       勝妾容    첩의 얼굴보다 고음

 

芙蓉花發滿地紅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 가득 붉어라

人道芙蓉勝妾容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 더 예쁘다네

朝日妾從提上過    아침 녁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如何人不看芙蓉    사람들이 부용화는 안 보고 내 얼굴만 보네

 

 

        春風    봄바람

 

垂楊深處依開窓    수양버들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小院無人長綠苔    님 없는 뜰엔 푸른 이끼만 길게 자라고

簾外時聞風自起    주렴 밖에 가끔 봄바람 절로 일면

機回錯認故人來    님 오시나 속은 것이 몇 번이던고

 

 

김이양이 호조판서가 되어 평양을 떠나 한양으로 돌아간 뒤 소식이 끊기자

부용은 그립고 애절한 마음이 담긴 보탑시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을 지어 인편으로 김이양에게 전한다

시를 전해 받은 김이양은 부용을 기적(妓籍)에서 빼내 양인신분으로 만들고 한양으로 불러올려 정식으로 부실을

삼고 남산 아래 숲이 우거진 곳에 "녹천당(綠泉堂)"이라는 초당을 짓고 나이를 떠나 서로의 시세계를 이해하며 깊은 애정과 존경으로 새삶을 시작했다

 

 

     芙蓉相思曲    부용상사곡

 

別  이별하니

思  그립습니다

路遠  길이 멀어지니

信遲  소식이 더딥니다

念在彼  마음은 그곳에 가 있는데

身留玆  몸은 여기 있습니다

羅巾有淚  비단수건은 눈물에 젖건만

雁扇無期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아득합니다

香閣鐘鳴夜  향각에서 종소리 들려오는 밤이나

練亭月上時  연관정에 달이 떠오를 적에

依孤枕驚殘夢  쓸쓸히 베게에 누웠다가 남은 꿈에 놀라고

望歸雲遠離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니 멀리 떨어져 있음이 슬픔니다

日待佳期愁屈指  낮엔 만날 날 기다리며 손 꼽아 수심에 잠기고

晨開情札泣支頤  새벽엔 정다운 편지 보며 턱을 괴고 우옵니다

容貌憔悴把鏡下淚  용모는 초췌해져 거울을 보면 눈물만 흐르고

歌聲鳴咽對人含悲  목소리도 흐느끼고 사람 기다리기가 이다지도 슬픔니다

銀刀斷弱腸非難事  은장도로 약한 목숨 끊는 일을 어렵지 않으나

珠履送遠眸更多疑  꽃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는 일도 의심이 생기네요

朝遠望暮遠望郞何無信  아침에 기다리고 저녁에 기다려도 임의 소식은 없습니다

昨不來今不來妾獨見欺  어제도 안 오시고 오늘도 안 오시니 첩만 홀로 속는지요

浿江成平陸後鞭馬過否  대동강이 평지가 되면 말을 타고 오시렵니까

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  장림우거진 숲이 바다로 변한 뒤에 배를 타고 건너 오시렵니까

見時少別時多世情無人可測  만남은 적고 이별은 많으니 세상 인정은 헤아릴 수 없고

好緣短惡緣長天意有誰能知  좋은 인연은 짧고 악연은 길고 하늘의 뜻을 누가 알겠습니까

雲雨巫山行人絶仙女之夢在某  함께 잠들던 곳 행인 발길 멈추었는데 눈길 마주친 이 누구며

數聲良甥奈樓月弄玉之情屬誰  같이 노닐던 곳 피리소리 끊겼는데 정을 나누는 이 누군지요

欲忘難忘强登浮碧樓可惜紅顔老  잊자 해도 잊지 못해 부벽루에 올라 예쁜 얼굴 늙어만 가고

不思自思乍倚牡丹峯每歎綠髮衰  생각 말자해도 절로 생각 나 몸을 모란봉에 기대 귀밑 솜털 쇠해져 상심하네

獨宿空房下淚如雨三生佳約寧有變  홀로 빈방에 잠들며 눈물이 비오듯 하나 삼생가약 어찌 변할 수 있으며

孤處深閨頭雖欲雪百年貞心自不移  홀로 규방에 살며 검은머리 파뿌리 된들 백년 정심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罷晝珉開紗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낮잠을 깨어 창을 열고 화류소년을 맞아도 했으나 모두 무정한 손님이고

推玉枕攬香衣送歌無者莫非可憎兒  베게를 밀고 향옷 입고 가무하다 보내도 모두가 가증한 사내 뿐입니다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豈如是  천리밖 임 그리는 아픔이여 군자의 얇은 정은 어찌 이런지요

三時出門望出門望悲裁賤妾苦懷果如何  세번씩 문밖을 내다보는 애처러운 천첩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  바라건데 대장부 속히 돌아 오셔서 구연의 촛불아래 흔연히 대해 주시고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哀魂月中泣相隨  연약한 여인이 슬픔을 머금고 죽어 혼자 밤새워 울지 않게 하소서

 

 

부용과 인연을 맺은지 15년이 되는 1845년에 김이양이 9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부용의 나이 33세였다

김이양이 세상을 떠난 후 부용은 일체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김이양과의 인연을 회상하면서 거문고와 시를 벗하며

16년을 더 살다가 "내가 죽거든 태화산 기슭에 잠들어 있는 대감마님의 발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녹천당(綠泉堂)에서 49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김부용은 운초시집(芸草詩集)과 오강루(五江樓)등의 문집에 350여수의 한시(漢詩)를 남겼다

 

 

         落 梅    지는 매화

 

玉貌氷肌冉冉哀    옥같은 얼굴 얼음같은 살결이 애틋하고 여위었는데

東風結子綠生枝    봄바람에 열매 맺고 푸른가지 돋았네

纏綿不斷春消息    그치지 않고 봄 소식을 알려주니

猶勝人間恨別離    인간세상의 한스런 이별보다 오히려 나아라

 

          暮春出東門    저문 봄날 동문을 나서며

 

日永山深碧草薰    낮은 길고 산은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一春歸路沓難分    봄이 가버린 길이 아득하여 분별하기 어렵네요

借問此身何所似    그대에게 묻노니 이내 몸이 무엇 같아보이나요

石陽天末見孤雲    저녁노을 하늘 끝에 외로운 구름같아 보이네

 

 

부용의 묘 왼쪽 골짜기 어딘가에 김이양(金履陽)대감과  정실부인인 완산이씨(完山李氏)의 합장묘가 있다고 하여 숲속을

한참이나  헤메였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는 길이  많이 아쉽다

아직도 내 발길을 기다리는 미답지가 너무 많은데 

언제 여기로 또 발걸음을 할 수 있을런지.................

 

 

 

 

▲ 태화교를 건너 부영묘로 가는길에 지나치는 자광당의 돌담이

    멋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