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신학과 성시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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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와 기독교

2010. 11. 19.

 춘천에서 성시화 운동에 힘쓰시는 분들과의 지상 인터뷰 내용을 미리 소개합니다. 생각과 활동에 여기서 제시한 것이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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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사역에 힘쓰심에 감사드리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 보기 원합니다.

 

 

     1. 공적 신학이란 무엇인가?

 

 

공적 신학이란 넓게는 사회의 공적인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생각과 활동 전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어 왔고, 특히 개혁신학에서는 항상 사회 전체를 생각하며 그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혁시키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생각과 활동이 있어 왔습니다. 요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각과 활동을 보면 개혁파 그리스도인들과 개혁파 교회가 이 사회 속에서 과연 어떤 생각과 활동을 하여 왔는지가 명확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서 개혁파 기독교인들과 또 기독교인들 자체가 줄어들자 일부에서는 사회 문제를 제외시키려는 생각이 나타나기도 하여 개혁파의 강조점들에서 벗어나는 일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교회와 성도만을 대상으로 한 논의가 아니라 불신자들을 포함한 이 세상 전체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일부이거나 소수인 상황에서도 이 세상을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새로운 신학으로 나타난 것이 소위 공적 신학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있어온 상황;l 서구에서는 새로운 상황이 되어서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의 130여 년간 다문화적이고 다종교적 상황 가운데서 사회에 기독교적 목소리를 내고 그 영향을 미쳐 보려고 했던 한국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서구 교회를 향해서 일정한 말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성경적인 반응을 보일 수만 있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과 세계 기독교계의 공적 신학 논의에 참된 기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 사회의 공적 문제들

 

 

여러 가지 공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요즈음 특히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생명 윤리에 관한 문제, 즉 인간 생명의 시작은 언제로 보아야 하느냐? 그 끝을 언제로 보아야 하느냐, 소위 안락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상이 말하는 존엄사라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배아 복제 실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낙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와 동성애, 성전환자에 대한 문제, 인권 문제, 사형제도 존치와 폐지에 관한 문제, 통일에 대한 논의 등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공적 논의의 문제이므로 이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기독교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에서 한 가지 문제만을 뽑을 수는 없고, 근자에 논의되는 문제로 차별 금지법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이라는 어귀를 넣을 것이냐의 문제가 심각한 논의의 문제가 된다고 여겨집니다. 2007년도에 이 어귀를 포함한 차별 금지법을 만들려고 할 때 여러 분들의 노력으로 이 어귀가 삭제된 법률안이 만들어진 것과 같은 일이 지금도 시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어귀가 빠진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서 그 법 제정과 시행에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귀가 포함 된 입법안이 나와서 우리가 차별금지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입법이 되기 전에 미리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어구가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공적인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일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모든 이들이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의 해심을 가지고 논의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자체 안에서 논의되는 명확한 성경적 견해를 분명히 하고 그것이 기독교적 입장임을 분명히 천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믿지 않는 분들도 이런 입장에 가장 가까운 입장에 서서 따라 올 수 잇게끔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공통적 논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줄기 세포 연구의 경우에 있어서는 배아 줄기 세포 연구로 난치병을 치료한 사례가 하나도 없으나 암 발생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 대신에 성체 줄기세포를 사용한 치료 사례가 많으며 이는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윤리적 문제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홍보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도 동성애가 유전이 아니며 그렇게 타고 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 근거로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성애를 허용할 경우 다음 세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지요.

 

그리고는 이에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종의 시민운동을 벌여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4. 공적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성시화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첫째는 각 각의 그리스도인들과 각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어 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있지 않을 때 이 세상은 우리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각 교회와 그 지체들이 진정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될 때만 성시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시화가 다른 방식으로는 전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5. 성시화운동관계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실 말씀은.

 

 

전투적인 자세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만 다른 분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공경적인 자세와 태도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방식이 되지 못합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에 의지하여 연약하게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때만 기독교적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무례한 기독교”와 “무례한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벗어나야만 우리가 하는 말과 주장이 의미 있게 전달 될 수 있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힘이 있음, 숫자가 어느 정도 됨, 국회의원이나 공직 선거에 미칠 수 있는 힘이 많음 등에 의존하는 활동은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늘 낮아진 위치에서 섬기는 마음으로 우리 지역 사회를 섬겨 나갈 때만 성시화 운동이 의미를 지니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성시화 운동, 조용히 각 교회당에서 기도하는 성시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무례한 십자군 운동으로 오해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