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예배하기 운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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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2014. 11. 11.

<청개구리 운동 17>

 

청개구리 운동은 한국 교회가 잘못하는 것을 뒤집자는 것이지요. 그 중의 열일곱 번째로 <바르게 예배하기 운동 1>을 시작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한다"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신약 시대에는 주로 우리의 영혼이 주께 경배한다는 의미에서 영혼의 무릎을 꿇어 절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연혼에는 무릎이 없지요. 그러나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구약 시대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나 재림 이후에는 실제로 우리 몸을 굽혀 엎드려 경배 하겠지만, 지금은 주께서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의 영혼이 주께 경배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의 자격으로는 이 절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신 성자의 구속 사역의 공로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하려면 성령님께서 십자가와 우리를 연결시켜 주어야 하므로 성령님 안에서가 아니면 하나님께 경배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님 안에서 성자의 구속의 공로에 의지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배는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성령적인 것, 즉 영적인 일이고, 성자의 구속에 의존하는 것이니 구속이 적용된 결과이므로 구속적인 것이고,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것이니 삼위일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가 아닌 예배는 모두 다 잘못된 것이고,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참으로 영적인 것이고, 구속적인 것이며, 삼위일체적인 것이 되도록 끊임없이 성령님께 의존해서 경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구속된 사람들이 창조와 구속에 감사해서 이 일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땅한 예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속되지 않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집회는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 집회를 많이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도자들 중심의 모임은 예배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따라서 소위 "열린 예배"라는 표현이 없어지도록 하면서) 우리의 예배가 참으로 영 안에서 구속에 근거한 삼위일체적 예배가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