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깊이 있는 , 그래서 우리는 종잡을 수도 없을 것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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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과의 대화

2014. 12. 15.

<너무도 깊이 있는 , 그래서 우리는 종잡을 수도 없을 것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거스틴의 삶에서도 그러하다. 어머니를 떠나고 속이면서 까지 수사학 교수로서의 더 높은 출세를 바라면서 로마로 간 어거스틴은 중병에 걸려서 1년을 비참하게 보내고, 학생들로부터도 실망한다. 그런데 그 때 어거스틴은 심마쿠스의 눈에 들었고, 당시의 발렌티아누스 황제가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를 뽑으라고 하자 384년 심마쿠스는 어거스틴을 추천하게 된다. 밀라노 궁정에 있는 황제가 기독교에 옹호적인 정책을 쓰지 않도록 여러 면을 생각한 추천이었고, 이교도인 (그리고 암브로시우스의 사촌인) 심마쿠스로서는 자신의 관용 정책을 황제에게 설명하도록 하기에 적절한 대변인으로 어거스틴을 생각한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다.

 

 

                                                <발렌티누스 1세 황제의 모습이 새겨진 동전>

 

 

                                 (밀란의 수사학 교수를 있도록 한 발렌티누스 2세,

                  Flavius Valentinianus (371 –392), commonly known as Valentinian II)

 

이때 마니교도들도 심마쿠스에게 어거스틴을 추천한 것 같다. 마니교도들은 어거스틴이 마니교 청문자의 집에 숙박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들에 속해 있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밀라노에서 어거스틴을 진정한 기독교도가 되도록 결단하게 하셨다. 384년 가을 밀라노에 도착한 그는 395년 늦은 봄 어머니 모니카가 밀라노에 도착 할 때 기독교의 예비신자가 되기로 결정하고 (어쩌면 이 때까지는 한 편으로는 출세를 위한 야망 때문에, 또 한 편으로는 어머니 모니카를 위해서 그리 했을 수 있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에 의해 고민하고 근심하다가 결국 387년 4월 24일에는 세례를 받았다.사람들은 다 자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나(이 경우에 궁정이 있는 밀라노에 수사학 교수를 뽑도록 지시한 발렡니누스 황제, 황제에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거스틴을 추천한 밀라노 시장인 심마쿠스, 심마쿠스에게 어거스틴을 추천한 마니교도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 했던 어거스틴)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