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적 사유의 개발을 요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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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대학교

2021. 9. 14.

<합신은 말한다> 2021년 9월호에 실린 글을 여기도 게재하여 많은 분들이 읽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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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합신과 같은 성경적으로 건전한 신학교를 다니는 유익중 하나는 그 과정에서 (1) 기본적으로, 이전보다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며, (2) 바른 신학과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일의 하나로 이번에는 (3) “성경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훈련 받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대개 보수적인 신앙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며 존중합니다. 그래서 성경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살려고 합니다. (요즈음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교회를 망가뜨리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존중한다는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여기면서 그 내용에 신경 쓰면서도, 그 계시가 주어진 방식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리하여 의도하지 않게 성경을 무시간적으로 다루기 쉽습니다. 바로 여기서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문제들 중 하나가 나타납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성경신학적 사유입니다.

 

소위 개혁파 성경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92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의 성경신학 교수로 초빙되어 갈 때부터 성경 신학을 특별계시의 역사”(the history of the special revelation)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 계시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그것을 탐구하는 것도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주어진 본문의 계시가 과연 어떤 계시의 시기에 주어진 것인지를 잘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 말을 무엇보다도 후대의 계시를 이 앞 시대에 집어넣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주어진 계시의 시기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를 잘 찾은 다음에 그 다음 계시가 이 계시와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생각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 후에 계시가 종국적으로 밝게 드러나 신약 시대의 밝히 드러난 계시와 과연 어떤 관계를 지니는 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 바른 모형론(typology)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때 성경 자체에 그런 시사가 있는 것을 연결시켜야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그저 같은 단어가 있다든지, 같은 색이 사용되었다든지 하는 것 때문에 연결시키는 것은 결국 성경을 무시간적으로 취급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문제를 당대의 계시 시대로부터 생각하지 않고, 상당히 무시간적으로 생각하던 세대주의자들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는 후대의 계시를 이 앞선 시대에 계시에 넣어서 해석하면서 아벨의 동물 희생제사는 피 흘림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다고 잘못 해석해 왔던 것입니다(스코필드 주석 성경).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 안에도 이런 가르침이 오랫동안 퍼져 있었습니다. 보스(Vos)를 읽고 성경 신학을 강조하던 우리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사람들은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 합신에 들어 와서 신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합신에 있으나 합신에 있지 않는 듯이 생각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부디 우리가 성경을 성경신학적으로, 즉 계시사를 염두에 두면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이제 이를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성경신학적 사유를 잘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보스의 <<성경 신학>> [서울: CLC, 1985]에 대한 역자 후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가 힙신에서 공부한다는 진정한 의미가 잘 나타나게 됩니다. 성경의 어떤 본문이든지, 주어진 본문을 그 시대에 부합하게 생각하되 결국 그 계시가 신약 계시와 어떻게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까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합신을 졸업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아직 잘 안되어 있으면 아직 졸업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부디 그런 학우들이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