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회의체의 교회 회의체로서의 필요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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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2021. 10. 29.

「월간 고신 생명나무」 (2021년 11월호): 58-62에 실린 “교회 회의체의 교회 회의체로서의 필요조건들”을 여기 올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같이 실린 윤석준 목사님과 성희찬 목사님의 글도 참조하여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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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회의체의 교회 회의체로서의 필요한 조건들

 

교회 회의체들은 과연 어떤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 <도르트 교회질서>는 교회 회의체의 성격을 잘 드러내기 위해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생각할 몇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따라 가면서 그 규정의 빛에서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성해 보기로 하자.

 

         1. 교회 회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시작하고 감사함으로 마쳐야 함.

 

첫째로, 교회 회의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시작해야 하고 감사함으로 마쳐져야만 한다(32)고 규정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는 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고 감사함으로라는 말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의는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쳐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종교개혁의 전통 속에 있는 교회들이 교회 회의를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치는 것은 바로 이런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때 예배와 회의를 각기 다른 행위로 보되, 동시에 그 둘을 서로 연결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회의는 예배가 아니고 예배는 회의가 아니다. 교회 공동체가 예배할 때가 있고, 회의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진행해야 한다. 너무 급하다고 회의만 해서도 안 되고, 예배했다고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회의는 예배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쳐야 하니 그 참석자들이 예배하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회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 회의체들이 진정 교회의 회의체들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모든 중요한 회의를 하기 전후에 예배하는 형식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예배가 그 가운데 있는 회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예배와 회의는 이질적으로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극단적으로 나가 회의할 때에 예배를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속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노골화하여 나타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두 가지 반성을 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종교개혁적 선배들이 얼마나 예배하는 일을 중요시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예배하기 싫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쳐서 모든 일을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치는 것을 아주 당연히 분명하게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들의 예배가 과연 우리의 회의의 정신을 지배하는 지를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배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회의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반성이 선행 되어야 다른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것임

 

둘째로, 교회의 회의체로 모여서 회의할 때 우리들이 그저 개인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파송한 교회의 대표로 참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확대 회의체들에 교회의 총대로 파송된 사람들은 그들을 보낸 교회, 즉 그들을 보내 회중들의 서명이 있는 신임장(credentials)과 지시사항(instructions)을 가지고 와야 하며(33), 그렇게 신임장을 제출하고 파송 교회의 의지를 담은 신임장을 회의체에 제출하고서야 총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들만이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다(33). 실제로 도르트 총회에서도 신임장을 제출하지 않는 분들은 공식적 총대에서 배제된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신임장을 제출하고서 최종적으로 도르트 총회에 참석한 네덜란드 교회 대표자들을 포함하여 외국 대표자들까지 모든 참석자들의 명단은 다음에 잘 정리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articipants_in_the_Synod_of_Dort).)

 

이는 노회와 대회나 총회로 모여서 회의를 할 때 그 회원들은 그저 자신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대표로 참여하여 교회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회의에서의 활동이 교회적 활동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회의에 임하여야 한다.

 

우리도 형식적으로는 총대들을 받는 일을 한 후에 회의를 시작한다. 때로는 이것을 이용하여 정치적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는 선의로 만든 제도를 악한 인간들이 악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사람들이 문제이다. 좋은 제도를 우리의 부패한 인간성이 망가뜨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3. 회의에서 의장직과 서기직의 의미

 

회의를 할 때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를 하서 그 회의를 원할하게 하기 위해 시작할 때 먼저 이 회의의 의장을 선출한다. 특히 대회나 총회 때는 이 일이 아주 필수적인 것은 그 회의체가 설립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개혁파 교회(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대회나 총회로 모일 때는 지난 번 총회의 폐회(閉會) 때에 대회나 총회가 파회(罷會)된 것으로 여기기에, 새로운 회의를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그 회의체를 조직하는 일을 한다. 먼저 각 노회에서 파송된 대표자들의 신임장을 접수하고 그들을 각 노회의 의견을 대표하는 총대로 인정하여 그 이름을 불러 회원들이 확정된 후에 그 회의를 주재할 의장(President)을 선출한다. 그러므로 이 의장은 오직 그 회의 기간 동안에만 의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35조 마지막 부분 참조). 서구에는 그 회의가 마친 후에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대회장이라고 하거나 총회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 있다면 예를 들어서 작년 총회로 모일 때 의장을 하셨던 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칭호나 예우나 기능이 있는 것은 거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이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여기면서 이 우리에게 있는 이런 이상한 현상을 없애도록 참으로 거국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교회 회의체의 의장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도르트 교회 질서 제 35조에서는 의장의 할 일을 다음 네 가지로 명시하고 있다. (1) 그 회의에서 다룰 의안들을 진술하고 설명하는 일, (2) 모든 참석자들이 말할 때 일정한 질서를 가지도록 돌아보는 일 (, 회원들이 질서를 지키면서 공정한 발언권을 얻어 의사를 표하게 하는 일), (3) 다른 사람들을 헐뜯거나 너무 격렬하게 말하는 분들을 잠잠케 하는 일, (4) 그 말을 따르지 않으려는 분들을 바르게 치리하는 일(properly to discipline them). 이것이 회의의 의장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한 마디로, 의장은 회의가 잘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의 의견을 나눌 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해당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발견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는 일로서 이 회의를 한다는 인식, 이 회의를 주관하시는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인식을 전 회원들이 공유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부디 우리에게 이렇게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으로서의 교회 회의에 대한 인식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렇게 의논해 나가는 과정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인식 가운데서 이 회의에서 논의되는 일 가운데 기록될만한 일들을 신실하게 기록”(keep a faithful record of that which deserves to be recorded)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서기를 선출하도록 했다. 이는 그저 잊지 않기 위한 것이거나 우리의 필요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시는 일, 특히 회의 과정에서 하시는 일을 잘 기록하려는 의도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역사 의식 이상의 의미가 서기의 기록 활동에 작용하는 것이다.

 

        도르트 교회 질서를 포함된 개혁파 교회 회의의 의의

 

도르트 교회 질서에서 교회 회의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폈으니, 이런 인식을 가진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의 입장은 고대로부터 있어 온 신약 교회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감독이나 감독들이 그저 규정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대표자들이 같이 하나님의 뜻을 배운 대로 지혜로 모아서 결정하여 교회의 여러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임을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는 분명히 하는 것이다. 특히 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여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다. 이것이 감독제(Episcopal system)와의 큰 차이이다.

 

둘째로, 따라서 이 회의체들의 의장(president)은 자신이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고 오직 회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회의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인도하는 사람이다. 의장은 감독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장로교회나 개혁파 교회의 감독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 통치 체제가 대의제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을 따라가는 교회의 한 부분임을 이런 회의체의 의장됨을 통해서도 잘 드러내야 한다.

 

셋째로, 각 교회 회의체의 의장은 그 회의 기간 동안에만 의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회나 총회는 그 회의가 폐회(閉會)되면 파회(罷會)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대회나 총회가 파회된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회장, 총회장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잘못하면 천주교회의 주교회의 의장이나 감리교 감독회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장로교회의 총회장이라는 종교 개혁에 반하는 의식이 나타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그런 의식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자들을 따라서 주교라는 것이 별도로 있다고 하지 말자고 하는 우리들이, 또한 감독회장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하는 우리가 감리교회의 감독회장에 해당하는 것이 총회장이라는 생각하고 말한다면 우리가 사실은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르트 교회 질서 같은 것은 사실상 무시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도르트 교회 질서의 이 부분을 다루면서 우리의 의식 가운데서 각 교회 회의체의 의장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하고, 심지어 용어도 박윤선 목사님께서 그리하자고 아주 강하게 요청하셨던 것처럼 당회의장, 노회의장, 그리고 총회의장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박윤선, 헌법 주석(서울: 영음사, 1983)를 전체적으로 보되, 특히 157 이하를 보라.)

넷째로, 지금도 주께서 우리를 통치하시기에 우리들의 교회에 대한 주님의 통치를 회의 과정을 통해 찾아간다는 의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순종을 많이 이야기 해 왔다. 그러나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도 점차 소홀(疏忽)히 하고, 더 나아가서 그 원리를 우리들의 구체적 정황에 적용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 가는 과정으로서의 회의를 통해 순종해 가는 일은 처음부터 매우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때가 진정한 순종을 해 나가야 할 때라고 여기면서 교회 회의체를 중요시하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배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