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회의체들(2): 시찰회와 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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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2021. 12. 25.

시찰회와 시찰”. 월간 고신 생명나무(20221월호): 25-29에 실링 글을 여기에 다시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보도록 합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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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노회를 돕는 회의체로 시찰회에 대해 생각하려고 한다. 시찰회의 기본적 성격은 노회와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각 교회를 살피면서 여러 교회들이 여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목회와 치리 아래 있으며, 따라서 여러 교회들이 사실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잘 드러내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멀리 있는 바울이 그 교회의 정황을 살피면서 디모데전후서를 써 보내어 같이 목회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이, 디도가 그레데에 있으면서 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도 바울이 그레데 교회에서 모든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어떤 분들을 장로로 성도들이 선임해야 하는 지 등에 대해서 디도서를 써서 구체적인 가르침을 베푼 것과 같이, 각기 다른 교회들이 모두 다 비슷한 가르침과 체제 아래서 목회적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 치리회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종교 개혁 이전의 교회들의 상황을 살피면서 그와 대조해 보기로 하자.

 

        감독제와 노회 체제의 대조

 

종교 개혁 이전에 지교회들은 각 교구의 주교의 감독 아래 있었다. 이런 제도에서는 상하 관계가 아주 분명해서 주교(감독)이 명하는 바에 각 교회의 장로, 즉 신부님은 물론이거니와 온 교회가 그 치리 하에 절대 복종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각교회에서 견신례(confirmation)를 하는 때는 반드시 주교가 와서 해당 성도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운다고 생각하였다. 각 본당의 장로(신부)의 섬김도 주교(감독)의 임명권 아래 있었다.

오늘날의 천주교회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천주교회에서는 자신들의 제도를 다음 같이 설명한다.

 

"신품권(神品權, ordo)에 의한 교계제도는 신품성사로 이루어지는 주교(bishop), 사제(priest), 부제(deacon) 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재치권(裁治權, jurisdictio)에 의한 것은 사목에 관련되어 입법, 사법, 행정권을 가지는 교황과 주교이다. 그러나 이 재치권은 부분적으로 사제와 부제에게도 위임될 수 있기 때문에 교계제도는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을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교계제도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교회 조직의 제도적 질서이다."(교계제도에 의한 가톨릭 교회,” available at: https://m.blog.daum.net/jiyoung3316/3483?category=834388)

 

이와 같이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이나 오늘이나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이 입법, 사법, 행정권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특히 더 높은 성직자의 말은 물론이거니와 주교가 명령하는 것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제2 바티칸 공의회 결정문의 표현으로는 교계제도가 신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체계가 아니고 교회에 봉사하는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주교직은 독재권력이 아닌 횡적인 협력과 조정을 통한 단체적(Collgialis)인 것이며, 신부는 개인적인 주교 대리역이 아닌 주교를 중심으로 한 단위를 이루는 단체(Presbyterium)”라고 한다(김상재, “교계제도의 기원”, 가톨릭 신문2235 (200123), 21, available at: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174887.). 그래서 주교직이 횡적 협력과 조정을 통한 단체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한 사람 주교의 결정이 그 교구 안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종교개혁을 하면서 루터() 교회(Lutheran church)와 성공회(Anglican church), 그리고 성공회로부터 나온 미국의 감독교회(episcopal church)와 영국과 온 세상의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는 이런 횡적 협력과 조정을 좀 더 강조하고 드러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감독제도(episcopal system)를 유지하여, 감독이 상당한 권한을 가지도록 되어 있다.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려고 한 것이 노회 제도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천주교회에서도 성경의 용어이기에 장로의 회(presbyterium)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기에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에서는 장로의 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기 원하여 교회 제도까지도 개혁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노회 제도 시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시찰(視察)에 있다.

 

         시찰이란 무엇인가?

 

시찰(視察, visitation)은 말 뜻 그대로 선정된 시찰 위원들이 지교회들을 방문하여 과연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 그런 식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를 테면, 시찰은 교회에 대한 심방(visi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교우의 집을 목회자들인 목사와 장로님들이 심방하여 과연 말씀대로 사는지 여부를 살피고 목회적 돌봄을 베푸는 것과 같이, 각 교회 공동체를 노회에 속한 목사님들이 심방하여 살피고 목회적 돌봄을 베푸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찰은 사랑의 목회적 돌봄의 하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가 시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찰을 받지 않아도 되는 교회는 없다. (같은 단어인 “visitation”을 학교에 적용할 때 그것을 장학(獎學)이라고 번역한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에서 세운 시찰 위원들이 교회도 시찰하고 교회가 세운 학교들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는데, 학교에 대한 돌봄이 오늘날 세속 학교에서도 하고 있는 "장학"이다).

<도르트 교회질서 제 44>에서는 이를 구체화하면서 몇 명의 목사님들, 적어도 나이가 있고 경험이 있고 적합한 목사님 2을 시찰 위원으로 세우고, 이 시찰 위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도시뿐 아니라 시골의 모든 교회들을 매년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 다음 사항들을 잘 살피도록 하고 있다. (1) 목사님들과 당회원들과 교사들이 자기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교리의 순수함에 머물고 있는지, (2) 교단 교회가 채택한 법을 모든 면에서 잘 지키고 있는지, (3)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잘 세워지도록(edification=upbuilding) 하고 있는지, (4) 청소년들이 잘 가르침을 받아 언행에서 최선을 다해 성화되는 것이 나타나는지, (5) 나태한 자들을 때에 맞게 형제와 같이 권면하는지, (6) 조언과 조력으로 모든 것을 화평과 덕을 세우는 것에 이르게 하는지, (7) 모든 성도들이 교회와 학교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 처신하며 돕는지.

시찰할 때에 살펴보아야 할 이 7가지 사항을 통해서 그 교회에 대한 목회적 돌봄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를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참된 목회가 무엇이며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타난다. 이런 일들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이다. 오늘날 소위 성공한 목회의 기준과 이를 비교하면서 회개하고 우리 개혁파 선배들이 성경적 원칙에 근거해서 이루려고 하던 목회의 방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수고하여 교리의 순수함이 지켜지고 나타나고 있는지이다. 교리에 무관심한 현대 교회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둘째는 교단의 법이 지교회 안에서 모든 면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셋째로 성경이 말하는 대로 교회가 잘 세워지고 있는지가 핵심이고 제일 포괄적인 부분이다. 이에 더해서 넷째로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 잘 이루어져서 그들이 참으로 성화되고 요구한 기준 향해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다섯째는 치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나태한 자들에게 때에 맞는 권면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이다. 여섯째는 그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 대한 조언과 조력으로 교회 안에 화평과 덕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성도들이 교회와 학교를 위해 최선으로 돕는 지이다. 이 마지막 항목의 교회와 학교는 아마 교단 전체로서의 교회를 뜻하고 그 교단이 운영하는 신학교를 포함한 학교들, 특히 각 교회와 연관된 학교들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41조의 비추어 볼 때 후자의 경우에 좀 더 방점이 찍힐 수 있다). 이는 각 교회들이 여력이 있으면 그 지역에 참된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를 교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시사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제대로 하는 교회가 교회로서 잘 세워지고 있는 교회라고 하고 있다. 시찰은 바로 이 일을 진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시찰회

 

그런데 이렇게 교회들을 잘 돕기 위한 시찰이 그저 1년에 한번 방문 때만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상설 모임으로 시찰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도르트 교회질서 41>에서는 인접한 교회들로시찰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찰회는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모이도록 하고 있고, 각 교회는 시찰회에 목사 1인 장로 1인을 적절한 신임장과 함께 파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찰회는 각교회를 대표하는 총대가 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임이다. “각 시찰회는 목사가 교대로 주재하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그 동일한 모임에서 선출된 목사가 주재해야 한다. 그러나 동일인이 연속하여 선출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로써 한 사람이 독주하지 않는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주재하는 사람을 그 시창회의 의장(moderator)이라고 한다. 이 의장은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1) 각 회에서 당회가 소집되고 있는지; (2) 교회적인 권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3) 가난한 자와 학교가 돌봄을 받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4) 당해 교회가 올바른 조정을 위해 시찰회의 판단과 도움이 필요한 어떤 것이 있는지. 그러므로 시찰회로 모여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은 교회의 상황을 같이 나누게 되어 있어서 시찰의 모든 교회를 같이 목회하는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전에 종교개혁 초기 츄리히(Zurich)에서 하던, 또는 제네바의 목사회가 히던 말씀 선포와 그에 대한 상호 도움이 시찰회에서 이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앞선 시찰회에서 명령을 받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짧은 설교를 해야 하며, 이를 다른 사람들이 판단해야 하며 거기에 부족한 어떤 것이 있다면 지적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영적 성숙함을 전제로 하며 모든 교회의 설교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며, 교리적 순순성이 보존되도록 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회를 앞둔 마지막 시찰회는 노회에 갈 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하여 노회의 총대로 섬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모든 시찰회는 (위에서 언급한) 시찰 위원들이 자신들의 봉사를 계속하도록 하되 시찰회의 판단으로 시찰 위원이 해임될만한 사유가 없고, 또 유익하다고 판단하면 계속 연장할 수 있다.”(44)고 규정하여 3개월에 한 번씩은 목사님과 장로님 1분씩 모여서 각교회의 상황을 살피면서 동시에 1년에 한 번씩은 각교회가 시찰을 받도록 하여 함께 성장해 나가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나가면서

 

이번에 살핀 시찰과 시찰회에 대한 규정은 감독제도를 제거한 교회들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를 이루는 방식으로 제시된 것이다. 우리들은 이점을 깊이 숙고하며, 그 정신이 살아나도록 우리들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시찰회는 있다고 말만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시찰회라는 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한 시찰은 사랑의 정신으로 각 교회를 돌보는 것이다. 성숙하며 개혁 신학에 충실한 어른들이 계셔서 우리 교회를 정기적으로 시찰하시면 얼마나 유익할지를 생각해 보자. 이를 현재적 용어로 하면 분기별로 목회 컨설팅(pastoral consulting)을 받는 것이다. 17세기 우리 선배들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제안하고 실천한 것이다. 모든 분들이 다 점점 더 성숙해 가고, 성경과 개혁파 가르침에 충실해 가는 그런 시찰회를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