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들의 성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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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7.

<월드뷰> 265 (2022년 7월호): 106-10에 실린 글을 여기도 올려서 여러 분들이 읽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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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4):   죄인들의 성화(1)

 

키에르케고어(S. Kierkeggard)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 죄인들(sinners)을 성화시켜 성자들(saints)로 만드는 일이라고 한 바 있다. 어쩌면 이것이 창조보다 더 놀라운 일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다루면서 그 출발점으로서의 칭의를 생각한 후에는 성화(聖化)를 다루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는 데서 나오는 흔히 칭의하는 믿음이라고 언급되는 이 참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그것이 점점 성화되는 삶이다.

 

            단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의 관계

 

믿음으로 단번에 칭의된 사람은 이제 일생 전체를 거쳐서 점점 성화되는 과정[,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있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하는(예를 들어서, 고전 1:2; 2:11, 10:14 ) 성경의 용례가 있어서 우리들은 또한 칭의에서 곧바로 오는 단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  positional sanctification)를 인정하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표현을 따라서 표현하는 것이다. 단정적 성화는 우리가 그에게 속해 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때문에 성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비하게 연합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의가 전가 되었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다고 선언[칭의]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의 거룩하심 때문에 이미 거룩하다”[단정적 성화]. 이 단정적 성화에 근거해서 성도들의 점진적 성화가 있게 된다. 단정적 성화는 주로 (우리가 그에게 속하는) 그리스도 때문에 하는 말이고, 이는 칭의와 함께 또는 논리적으로 그 직후에 단번에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점진적 성화는 칭의와 단정적 성화에 근거해서 우리 안에서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오랜 과정이다.

 

 

            성화는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성화는 우리들로 하여금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경건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사는 일에 열심 있게한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내면에서 우리의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우리 존재 전체와 삶의 방식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살게 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다른 것이 어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성화의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행하는 내용이다. 성경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여기며 그것을 수행하는 것에서 우리가 성화의 과정에 있는 지가 드러난다.

 

또한 그렇게 성경에 있는 것을 힘써 행하는 동기와 원동력이 그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다. 이 세상 사람들이나 그런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어떤 일을 하며 정죄 받아 벌을 받지 않으려고 어떤 일을 피하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그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점차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모든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성화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아주 명료한 시금석이다. 매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이 일을 과연 무엇 때문에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과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을 면밀하게 의식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을 극복하고 순전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다.

 

이것을 또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이 그 열매를 내는 것이라고 힐 수 있다. 그러므로 성화는 열매이다. 칭의하는 믿음의 열매가 점진적 성화이다. 이를 바울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5:6)이라고 한다.

 

동일한 구절을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는 서로 다르게 강조한다. 천주교회는 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5:6)을 칭의, 즉 그들이 의화(義化)라고 부르는 것과 연관시킨다. 그들에 대해서 개신교회에서는 천주교회는 칭의와 성화를 섞어서 의화라고 주장하는 것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한다. (이전에 살펴 본 바와 같이)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이 강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extra nobis)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해서만 칭의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주장한다. 이것이 기독교회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만”(solus Christus)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주장하고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sola gratia)을 높이고, 이를 믿음으로만”(sola fide)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을 오직 성경에서 배워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의존해서 믿고 그에 의존해서 살기를 원한다. 여기에 참된 기독교의 주장이 있다. 이를 참으로 믿는 칭의하는 믿음은 사랑의 역사(役事)”(works of love)라는 열매를 낸다는 것이 개신교회의 이해다. “사랑의 역사때문에 구원을 얻거나 그것이 최소한의 공로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만 믿은 신앙은 당연히 사랑의 역사를 낸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의도에 충실하게 믿는 것이라고 기독교는 주장한다.

 

우리의 이런 사랑의 역사는 믿음이라는 선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니 선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수행된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 자체만 따지면 부족한 것이 많으나 그것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로 감싸시고 덮으신다는 뜻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의 역사는 우리의 칭의에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다(they do not count toward our justification). 우리들은 우리가 그 어떤 사랑의 역사를 하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공로의 적용을 받아 칭의되었다고 성경이 선언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루터와 여러 개혁자들이 강조한 바와 같이 먼저 선한 나무가 되어야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에라스무스와 천주교회가 말하듯이 선한 열매를 맺다보면 선한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 존재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이 먼저 있어야 하고 중생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칭의함을 받아야 사랑의 역사라는 열매를 낼 수 있다.

 

            성화되는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하려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우리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형식은 우리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삶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겠다는 기본적 태도가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자기 사랑이 아닌 하나님 사랑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추구하고 행한다는 것과 연관되는 기본적 태도이다.

 

이런 기본적 태도들 가지고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성경 공부를 통해서 추구해 나가야 한다. 진지한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그가 이루어 가시며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사도록 하신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과 깊게 교제하면서 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간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바가 우리 일생의 사명이 되고, 그 일을 제대로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성경의 교훈에 비추어 판단하여 그 일에 힘쓰는 것이 우리가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인간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소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애쓰는데, 나름대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소원을 가지고 애쓰는 것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것을 자신이 이루겠다고 애쓰지 않는다(이것이 시편 131편의 진정한 의미이다!). 또한 실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격다짐하면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가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를 늘 점검하며 성찰하게 된다. 이것이 넓은 의미의 자아 성찰”(self-examination)의 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자신이 원하여 추구하여 나가는 형태를 가지게 되어야 한다. 각자가 소원을 두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부족하고 때때로 잘못 판단하고 잘못된 일도 행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가는 이들에게 성령님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떤 것인지 분별하게 하여 바른 소원을 가지고 나아가게끔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소원을 가지고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실 행하게 하신다는 말을 그렇게 힘을 주신다,” “그렇게 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이 우리의 성화의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 소원을 두고 행하게”(2:13)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어떤 것을 하였음을 발견하면 속히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것을 깨닫게 하셔서 책망하시고 바르게 해 주시는”(딤후 3:16 참조)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책망 받고 바르게 고쳐 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딤후 3:17). 이것에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딤후 3:15-17). 물론 이런 책망하심(rebuking)과 바르게 하는 것(correction)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심(teaching)과 의로 훈련하는(the training in the righteousness) 과정이 모두 다 성경님께서 성경을 사용하셔서 하시는 성화의 수단들이다.

 

           나가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힘입어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서 성경 가운데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부지런히 배우면서 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세계관과 사상을 형성하면서 잘못된 모든 것들을 고쳐가는 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매일 매일 죽기까지 이런 성화의 길에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죽을 때 우리의 영혼이 온전히 성화되며(12:23로부터의 합리적 추론), 우리의 몸은 그리스께서 재림하실 때에 온전히 성화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부활을 몸의 구속이라고(8:23) 표현하신 진정한 의도가 여기에 있다. 이미 구속함을 받은 우리의 몸이 온전히 성화되는 것은 부활 때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점차 성화되어 가는 지금 여기서의 삶”(the life here and now)도 의미가 있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서 계신 그 하늘에서 온전히 성화된 영혼으로 사는 그 하늘에서의 삶”(the life in heaven)도 의미 있고, 우리의 몸까지 온전히 성화된 부활한 몸으로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the life in ‘the new heaven and new earth’)도 의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