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할 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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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와 기독교

2000. 10. 4.

2000년 10월 3일과 10월 4일에 우리들의 마음에 가장 와 닫는 안타까운 일을 든다면 과연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이스라엘에서 일어 난 유혈 총격전과 그에 따른 경악, 그리고 이에 따라 잠시 나타난 휴전일 것이다.

프랑스 기자가 잡은 한 소년의 죽는 모습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더욱 이스라엘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카메라와 언론 매체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케 하는 이런 상황은, 또 다시 이런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얼마나 더 안타까운 상황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매체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후에 다시 생각하기로 하자).

일단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런 세계 안에서 살아 가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이런 살인과 유혈극의 궁극적 원인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이들의 죄와 그에 따른 비난만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론, 가까운 원인을 찾고, 그에 근거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때는 이런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긍극적 원인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리네 모두의 죄악 가운데서 찾고,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하는 회개를 하나님께 올려야 한다.

이렇게 회개하는 이만이 이런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의 길에로 나아 갈 수 있다. 문제의 궁극적 원인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미움과 증오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온 것이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생각한 것이든지, 그것도 아니면 오랜 세월 동안 얻은 어려운 경험의 반영에서 나온 것이든지, 결국 문제는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누군가와는 이 하늘 아래 같이 서 있을 수 없다는 의식과 함께 나타나는 이런 증오와 미움은 급기야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담긴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증오와 미움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 가운데서 해결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계속해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계시까지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계시를 존중하거나,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이들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려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에 의존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를 버리려는가, 아니면우리들도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마는 미움과 증오를 더 키워가려는가?

이 시대에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을 귀 있는 이들에게 이 도전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