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현실 모두를 중시하는 성경 독자들로서의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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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2005. 8. 25.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중요시하며 성경을 배우고 성경에 근거하여 모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Book,” 즉 “the people of the Bible”)이다. 이렇게 성경이 우리의 중심이다(text-centeredness).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는 항상 구체적인 상황(context)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어떤 점에서 이 점은 오늘날 상당히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선 진술의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객관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모든 해석은 다 상황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상당히 상대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성겨 읽기와 연구가 모두 구체적 상황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무엇보다 먼저 성경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1. 성경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태도의 중요성


우리는 우리들이 처해 있는 정황들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으로부터 동일한 메시지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성경 메시지의 절대성과 성경의 객관적 해석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에 대해 객관주의적(objective)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모든 종류의 해석학적 의심(hermeunitical suspicion)과 해석학적 상대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오늘 날에는 별로 환영 받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모든 해석이 상대적이며 상황 의존적임을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성경의 객관성(objectivity)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즉, 그 어떤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이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려면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성경의 부정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강조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본질적, 내용적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계시의 사실성, 성경이 역사로 제시하고 있는 사실들의 역사성, 그 사건에 붙박여 있는 신적 기원을 지닌 의미,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삶과 존재 전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풍성한 함의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사건의 객관적 역사성과 그 의미의 신적 불변적 성격과 같은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는 이런 것을 누구나 성경으로부터 배워 알며 이런 토대를 가지고서 구속받은 이들로서 구원함을 받은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탐구하는 것이다.


2. 성경의 실존적 의미의 중요성


따라서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는 그저 싸늘한 머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 분의 뜻을 잘 알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 말씀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요구하는 말씀이요, 우리의 삶과 행동을 위한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을 온전한 지성과 사랑하는 감정과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서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서 제 모습을 잊어버리고 성경을 읽기 이전의 자신의 관심사에로 되돌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바라보고서 곧바로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이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 존재 전체에 요구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성경은 우리의 모든 존재 전체를 다 들어서, 즉 우리의 실존 전체를 가지고서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existentiality). 그럴 때에야 1940년대 이후로 유행했던 실존주의적 해석의 주관성에서 벗어나되, 성경의 전 실존적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싸늘한 죽은 정통주의에로 나아가지 않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3.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의 정황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의식의 중요성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실존 전체를 들어 집중해야 할 성경 연구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이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객관성과 우리 존재 전체에의 요구라는 실존적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이 일이 구체적인 정황성(contextuality)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여 지금 여기서 주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그 의도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대해 주께서는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구체적인 정황에서 어떻게 하나님 백성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시는 지를 찾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1) 무엇보다 먼저 앞서 말한 성경의 객관성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전 포괄적인 의도 전체, 즉 하나님의 전 경륜(the whole counsel of God)을 알려고 해야 하며, (2) 우리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 정황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3) 이런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에 일치하는 하나님 백성의 생각과 행동 지침을 찾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따라서 성경과 함께 신문과 집지와 동시대적 정황과 미리에 대한 다른 이들의 예측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구체적 정황 속에 성경에서 배운 하나님의 뜻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우리의 성경 해석 보다는 그렇게 해석된 성경의 의도를 적용하고 응용하는 정황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인간 배아 복제 문제에 대해 성경은 직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없다. 또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 19세기 그리그도인들조차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1997년 이후, 즉 복제 양 돌리(dolly) 이후에 사는 우리, 더구나 동물에게 사용했던 체세포 복제 기술을 인간 난자와 체세포에도 적용하여 체세포 핵 치환 기술로 인간 배아를 형성시켜 소위 인간 복제 배아를 생성해 내고, 그로부터 배아 줄기 세포를 추출해 내는 일이 이 한국 땅에서 온 세상을 향해 자랑스럽다는 듯이 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정황성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1)

 

그런 문제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객관적 연구에 근거한 기독교 세계관이 아주 명확히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폭 넓은 적용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2) 만일에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성경을 열심히 일고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인간 배아 파괴 현상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거나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같이 이런 생명 공학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일만이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하면서 동조해 나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과 정황을 무시하고 성경을 그야말로 무시간적으로 다루는 이들로 되고 말 것이다. 그런 태도는 결국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결과를 내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구체적인 현실을 명확히 살펴야만 한다.3)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현실을 무시하고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이 세상의 문제와 죄악성에 대해서는 뱀 같이 지혜로우나, 그에 물들지 아니하며 오히려 해로울지라도, 핍박을 감수하면서도 주께서 의도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진정한 성경의 독자들이 될 수 있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