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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울프 2014. 7. 19. 17:06

백두산 트레킹 및 관광지도


백두산(2744m)은 민족의 영산이지만 남의 땅(중국)을 거쳐 가야한다.

그 기구한 운명 때문에 일생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6~8월은 백두산 여행의 최적기다. 평균 기온이 16도에 불과해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다.

또 이 시기에는 천지를 온전하게 구경할 확률이 높다.

겨울에는 입산조차 어렵지만 여름에는 80%의 확률로 천지를 감상할 수 있다.

백두산 여행경로는 천지를 중심으로 북파코스·서파코스로 나뉜다.
서파는 완만한 고산지대를 이루고 있는 반면 북파는 산세가 험준하다.

대신 북파코스는 백두산 최고봉인 천문봉까지 차를 타고 움직일 수 있어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코스다.

 



이도백하(河)는 백두산의 도시다.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창빠이산)이라고도 하고, 그냥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도백하는 백하(白河)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두 '백하'라고 하는데 하천이 너무 많다보니 순번을 부여해

투도(일도), 이도, 삼도…십팔도, 이십 몇 도까지 있다.

백하는 이도백하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백두산의 모든 시내를 뜻하기도 한다.

 

이도백하(河)는 백두산(, 중국명 山) 북쪽 비탈에 위치하여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 되는 마을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江) 상류의 이도백하(河) 강변에 있어 이런 지명이 붙었다.

삼림이 전체 면적의 94%에 달하며 삼림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장백낙엽송을 비롯한 경제적 가치가 높은 30여종의 수목이 자란다.

광물자원으로는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생긴, 구멍이 많고 가벼운 돌인 부석()이 풍부하다.

건축재료 등으로 쓰이는 부석은 홍콩,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된다.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며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약 1km)인 백하(河) 마을과 함께 백두산 관광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장거리 버스와 열차가 오갈 뿐 아니라 저렴한 가격의 숙소나 식당이 많아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백두산으로 향하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관광버스를 탈 수도 있어서, 백두산 관광 성수기인 6~9월에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마을 곳곳에서 보이는 미인송()도 이도백하의 명물이다.

미인송은 곁가지가 많지 않고 위로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2744m)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 창바이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원래는 화산활동을 하는 산이었으나 이미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 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

전체 면적중 1/3은 중국의 영토로,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북파코스]


산문 매표소에서 입장료(보험료 ¥5와 입장권 ¥120)를 구입하고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보통 지프를 이용한다. 지프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20여 분을 달리면 천지에 닿는다.

백두산은 주변의 산을 갑자기 뚫고 솟아나온 형상이다.

지프는 천지에서 약 30m 이르는 곳까지 올라가고,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천지의 둘레는 14km이며, 천지 주변에 16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이 천지 너머로 북한군 초소가 드문드문 보이며,

천지에서 배를 탈 수 있지만 천지도 중국과 북한 영토로 나뉘어져 있어 중국영토 안에서만 가능하다.

백두산은 6월 말까지도 눈이 남아 있고 9월에 첫눈이 내리는 추운 곳이다.

그러므로 입산할 수 있는 기간이 6월말∼9월초의 약 3개월 남짓이므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시기 안의 일정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용문봉에서 내려다 본 천지


천지(天池)

백두산 산정에 있는 자연호수로 용왕담이라고도 한다.

면적 9.17 제곱 킬로미터, 둘레 14.4km, 최대 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이다.

칼데라(caldera)호인 천지 둘레에는 장군봉을 비롯한 화구벽 오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이 화구벽에서는 남쪽의 불목이라고 하는 파극을 통해서만 호반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호반 일대에 약간의 평탄한 땅이 있을 뿐 그 밖에는 깎아세운 듯한 절벽뿐이다.

여름철에는 사슴, 곰 등의 짐승이 물을 마시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호수의 수온은 섭씨 10도 내외이고 빈영양호이므로 식물성 부유생물, 작은 곤충류, 몰속 이끼류가 살고 있으며

어류나 파충류는 서식하지 않는다.

 서파능선쪽의 제운봉에 5호 경계비를, 맞은편 관면봉쪽인 동쪽능선에 6호 경계비를 설치해 국경으로 정함.

백두산의 천지는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호수 북쪽의 한 곳이 터져서 물이 흘러나가는데 달문이라고 하며,

호수는 여기서 부터 650m를 흘려내려 용암벽에 막힌 후 길이 36m의 장백폭포를 이루면서

협곡을 만든 다음 송화강으로 유입된다.

호반의 동안과 남쪽 산기슭의 송화강 상류인 탕수평에서 온천이 솟아난다.

 


 

 

 

왼쪽이 천문봉, 직진하면 비룡폭포(중국쪽 말로는 장백폭포)~달문~천지

 

5호경계비가 있는 곳에서...

 

백두산 경계는 조선 세종때 중국과 맺은 국경조약에 의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라고 되어있었다.

현재 백두산에는 경계비가 1호부터 8호까지 천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설치되어있다.

 

1962년 중국과 북한의 국경조약에 의해 5호와 6호를 직선으로 연결했을때 왼쪽은 중국령,

오른쪽은 북한령으로 국경을 정하고 있다.

천지의 물도 서쪽의 5와 동쪽 관면봉의 6호 경계비를 경계로하여

둘로 갈라 동쪽은 북한물, 서쪽은 내물이라 주장한다.

 

 

용문봉

 

오른쪽 아래가 천지의 달문이다.

왼쪽 끝부분이 제5호 경계비가 있는 곳으로 저곳에서 산에 올라

옥주봉~마천봉(2,631m)~청석봉(2,662m)~백운봉(2,691m)~금병봉(2,603m)~관일봉~차일봉(2,596m)을 거쳐

달문쪽으로 하산한다고...


 

멀리 하얀 세로선이 북한군 초소라고...

 

 

 

 정상에 기상관측소가 보인다.

 

 

 기상관측소. 일기예보는 불가능한 것이 이곳 날씨라고...

 

차량에서 내려 정상으로 오르는 관람객들

 

천문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지

 

 

 

 


 

 


 

 

 

 

 

 

 

 



백두산 북파의 상세 지형도

 

 

 

장백폭포

양강도 삼지연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백두산에 있는 장대한 폭포.

16개의 산봉우리가 천지 기슭을 따라 병풍 모양으로 천지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물이 흐르며, 물은 1,250m까지 흘러내리는데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빨라서 먼 곳에서 보면 하늘을 오르는 다리를 연상하게 하여 사람들은 이를 '승사하'라고 부른다.

승사하는 개활지를 따라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

 

꼭대기에서 36m 아래까지는 곧게 쏟아져 내리며, 그 아래에서는 비탈진 벼랑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떨어진 물은 송화강으로 유입된다. 200m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폭포 옆에는 천지를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낙석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백두산에는 장백폭포 외에 백하폭포, 동천폭포 등이 있다.

북방의 모든 폭포는 봄에서 가을까지 물이 있어 장관을 이루지만 겨울이면 물이 언다.

장백폭포만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흘러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장백폭포에 오르기 전 온천수가 지하에서 솟아오른다

 

안개가 점점 밑으로 내려오는 중

 

장백산 표지석

 

 

 

 

 

장백산 입구 안내소

 

장백폭포 입주 주차장에 다다르니 멀리 안개에 쌓인 백두산이 신성해 보인다.

 

천지(눈이 많이 남아 있다. 골짜기 사이에 있는 눈은 만년설)

 

옥주봉

 

옥주봉과 마천봉

 

왼쪽으로 흰 눈과 얼음이 둥둥 떠있는 곳이 달문이다
천지의 물이 유일하게 흘러 나가는 곳으로 비룡폭포(중국쪽 말로는 장백폭포)로 떨어진 후 송화강을 이룬다.
이곳 사람들은 비룡폭포(중국측 말로는 장백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흘러 가는 곳을 "북파"라 한다.

 

백두산 영봉

 

측면에서 바라본 영봉

  

애기금매화 밭에 사스래나무

 

 

저 아래 먼곳에 천문봉, 비룡폭포(중국쪽 말로는 장백폭포) 갈림길 입구. 숙소 뒷쪽에 소천지...연못

 

 

 

 

[서파코스]



서파는 셔틀버스에서 내려 1440개의 계단을 약40분 오르면 천지

* 계단을 두 사람이 드는 가마타고 오를시 편도 4만원, 왕복 8만원 수준임.

 





 

 

 서파, 버스로 오르기 위해 조성된 도로

 

 

 

 

서파 백두산안내소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서파계단 1440계단

 

 

 

 

금강대협곡

 

서파에서 백두산 천지를 관광하는 코스에는 “금강대협곡”이 있다.

이 협곡은 총 길이가 80km에 달한다고 한다.

천지가 만들어질 때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들었다는 이 협곡은 그 실체를 모르다가

몇 년 전에 태풍으로 원시림들이 뽑혀나가자 이를 정리하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숲속은 자작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무마다 간단한 설명이 들어있는 안내판이 있다.

중국에서는 장가계의 십리화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백산(백두산)의 나무와 꽃을 훼손하면 엄청난 벌이 뒤따른다.

나무를 위하기를 사람목숨보다 중하게 한다니 이곳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했구나 싶다.

협곡을 돌아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만들어 흙은 전혀 밟지 않고 돌아볼 수 있도록 돼있다.

협곡의 깊이는 50m정도 되었고, 괴암괴석이 곳곳에 서 있었다.

협곡 양쪽으로는 금방이라도 흙과 돌들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약 2km가 관광 코스로 개발되어있으며 중강 중간에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짧은 시간으로 인해 전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정신없다.

원시림 그대로인 협곡주변의 삼림(森林)이 바람에 뿌리가 뽑혀져 枯死한데로, 枯木은 고목대로 쓰러져 누워있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시간 약 30분)

 



백두산 서파로 더 유명한 금강대협곡은

용암이 분출되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계곡을 만들어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빚어낸 신비한 풍경이 지금은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는 생태 지역이 되었다.

금강산 만물상에 비견되는 천하제일 풍경이다.



금강대협곡 쉼터







연리지, 미인송과 자작나무의 뿌리가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





금강대협곡(300년 전 화산 폭발 때 형성된 협곡)

길이 70km, 너비 300m, 106m의 깊이를 지니고 기암괴석이 많은 동양의 그랜드캐년.

V 자 협곡의 장엄함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지만 일부의 모습이 다는 아니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폭발을 일으킬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 세월 풍화에 씻겨 이루어진 것으로

협곡 주의로는 원시림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협곡 바닥에는 맑은 물이 흘러간다.
협곡의 크기는 폭이 평균 120m이며 깊이는 평균 80m이고 길이는 10km이다.


 






 


셔틀버스로 금강대협곡에 도착하기전 잠시 제자하(梯子河) 입구.

제자하는 지각변동으로 지면이 갈라져 형성된 지하에 물이 흐르는 계곡모양이

사다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제자하(梯子河)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긴 암석 사이의 틈새로 흐르는 계단모양의 물줄기.

제자하(梯子河)는 제운봉(梯雲峰) 양측에서 발원한 대소 제자하가 합쳐져 이루어진 강물로 작은 협곡이다.

강물의 바닥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횡단면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으며 발원지 하상(河床)이 험난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층층으로 나누어 보이는 모습이 계단과 같다고 하여 ‘제자하’[the ladder river]라고 불린다고 한다.

작은 규모인데다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으나 깊이가 20-30m이란다.

지하하(地下河)라는 별칭도 있는데 이는 제자하의 물이 지하 깊숙이 스며 흐르기 때문에

지면 위에서는 바위틈 사이로 구비 구비 굽어 흐르는 작은 개울 모양으로 넓이가 2m 안팎인 모습만 보이고,

일부는 그 조차도 암석으로 가려져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구려 유적지와 산수가 좋은 통화(通化)


심양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정도 거리에 있는 통화시는

길림省 남부에 있는 도시이다.

기차타고 이도백하를 거쳐 백두산을 갈 때는 통화를 들러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통화에서 이도백하로 갈 때 기차가 고지대로 올라가는 코스라서

기차가 천천히 달려 시간이 두배정도 소요되어 저녁에 타면 새벽에 이도백하에 도착한다.

저녁때 역에 가면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심양에서 기차 타고 가는 길은 (여름) 양쪽에 옥수수 밭을 볼 수 있다.

끝이 안보일 정도의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다.

그래서 동북 3성은 옥수수 값이 좀 싼 것일까? 곳곳에 옥수수 판매를 한다.

또한 이곳에서 집안과 환인 등의 지역이 가깝기 때문에 옛 고구려 수도 부근이었기에

곳곳에 유적지가 많이 있는데도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인구는 약 30만 정도인 소규모 도시이다.




吉林省 개요


길림성은 동북의 중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러시아, 동남쪽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18만 7400㎢(남한 9만 9538㎢), 인구는 2703만 명(2003년 기준)

행정구역은 길림성내의 시는 8개(장춘시, 길림시, 사평시, 통화시, 백산시, 백성시, 요원시, 송원시)가 있으며,

별도로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


길림성은 풍경이 독특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장백산(백두산)으로 하여

이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날리고 있다.

성(省) 내에는 자연자원이 아주 풍부하며 일정한 공업기초와 편리한 교통조건 및

선진적인 체신, 통신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국내외 각계 인사들이 투자하고 무역을 진행하는 이상적인 곳이다.

특산물로는 녹용, 산삼, 장뇌삼, 인삼, 담비 모피, 유리공예, 새털그림 등이 유명하다.

길림성은 금, 니켈, 동, 석유등의 저장량이 비교적 많아 중국의 오래된 공업기지중의 하나로 중대형 중소기업이 많은 편이다.

기계공업, 석유화학공업, 의약공업, 식품공업. 야금공업, 삼림공업은 6대 우수 산업이다.

교통 길림성내의 철도교통은 종횡으로 교차하여 운송거리가 전국 3위이다.

장춘을 중심으로 도로교통은 성 내외로 방사형으로 뻗어있고

북한과 러시아의 항구를 빌려 직접 동해를 드나들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동남부에 있는 연변지방(이전의 간도지방)에 성립된

중국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로, 자치주내 조선족은 81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0.7%를 차지하고 있다.

연변지역은 조선시대말부터 조선족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되었으며,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승격되었다.

1991년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옌지·투먼·둔화·룽징·훈춘 등의 5개시와 안도·허룽·왕칭의 3개현을 관할하고 있으며,

자치주의 소재지는 옌지(延邊)이다.

면적 4만 2,700㎢.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 지도

 




압록강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에
“물빛이 오리머리의 색과 같아 압록수라 불린다”압록강의 유래가 나온다.
강은 길이만 해도 803㎞, 유역면적은 6만3160㎢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발 아래로 오래 전 한반도 역사의 한 줄기였던 압록강이 유유히 흐른다.

압록강은 우리 민족 근원의 강이자, 시간의 강이며, 역사의 강이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 부근에서 발원한 이 강은

압록강 중류인 북한과 중국 둥베이 지방(東北地方·滿洲)을 관통하며 자유파행하여

서해로 나아가는 장장 2000리의 거대한 물줄기다.

‘압록강’이란 표지석 앞에서

그려지지 않는 고구려 옛 신화의 땅과 강 건너 북한의 산하를 마주한다.

이 땅은 본래 우리 민족의 옛 땅, 고구려의 땅이다.

BC 37년 건국된 고구려는 AD 668년까지 705년 동안 수도를 네 곳으로 정하고 세 번 천도를 한다.

고주몽이 맨 처음 수도를 정한 곳은 홀본지역, 즉 환인(현 중국 요녕성 환인현 오녀산성)이었고,

2대 유리왕 21년에 이르러서 고구려는 이곳 집안(集安)으로 천도하며 두 번째 수도로 정한다.

이는 이 지역이 북방임에도 불구하고 온난한 기후조건과 앞으로 흐르는 압록강의 중심에 위치해

온갖 산물과 문화가 집결하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편의 산지 지형을 이용한 방어적 입지가 도읍을 구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고구려는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427년)까지 400여년간 이곳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이룬다.

때문에 아직도 집안에는 국내성과 환도산성 등 수도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옛 고구려의 성터가 남아 있고,

장군총, 광개토왕릉, 광개토왕비를 비롯해 모두 약 1만2000기에 이르는 고구려 양식의 거대한 무덤군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은 지난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압록강에는 항상 강 위로 드러나 있는 ‘진짜 섬’이 40여개 있고,

강물의 유량에 따라 사라지고 나타나는 하중도(河中島)가 205개 있다.

1962년 김일성-주은래는 조·중 변계조약에 따라 압록강 수역을 공유지화하여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하면서,

대부분의 섬들이 북조선의 땅으로 공인되었다.

 



* 하중도(河中島) : 하천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흐르는 방향이 바뀌어 퇴적물이 쌓이면 생기는 섬이다.

주로 큰 강 하구에 잘 생긴다. 모랫등, 안섬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서울 한강의 여의도, 밤섬, 노들섬, 선유도, 서래섬, 난지도가 하중도이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다리

압록강 단교

 

압록강에는 두 개의 철교가 있는데

하나는 신의주와 연결되는 "조중친선우의교(朝中親善友宜橋)"이며 또 하나는 관광지로 개발된 "단교(斷橋)"이다.

‘동양 제일의 국경 명물’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압록강 철교는

1911년 조선 총독부에 의해 건설된 압록강 최초의 철교이다.

중국쪽의 4칸의 다리는 그대로 보존되어 역사적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1943년 5월에 압록강 철교에서 상류 쪽으로 70m 지점에 신철교(新鐵橋)가 복선으로 건설(943.3m)되어 개통되었다.

이 다리는 현재까지도 운행되고 있는데,

오전에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후에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차들이 통행하고 있다.

 

단교는 본래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가 1908년 8월 만주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중에서 약 51만명의 인력을 동원, 1911년에 완공한 것으로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보급로로 활용되었다.

길이는 944m, 총 12교각으로 9번째 부터는 강을 오르내리는 범선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90도 회전가능한 개폐식으로 만들어 열면 십자(十字)가 되고, 닫으면 일자(一字)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1932년 통계에 의하면 보도 통행자만도 연간 260만 명이였다고 한다.

1934년 11월부터 교량보존을 이유로 개폐를 중지했는데,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그 기념으로 단 한번 연 일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국군이 압록강가까지 진격하자

모택동이 중공군의 개입을 결정, 이 다리가 중요한 군사 요충지가 되었고,

미군의 B 29기가 이 철교를 폭격하게 되었고, 금처럼 일부 교각만 덩그라니 남아 단교가 되고 말았다.

단교 입구에는 한국전쟁 당시 군사령관이었던 팽덕회와 중공군의 동상이 있으며

중국인들은 이곳을 애국주의, 공산주의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이렇듯 한국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즉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돕은 전쟁이라고 미화하여 한.중간 역사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국인에게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 그리고 한국전쟁의 뼈아픈 민족사가 이 단교에 남아 있다.



조중우의교(朝中友宜橋)

1937년 재래교의 상류쪽 100m지점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여 착공하여

1943년 4월 개통하였다.

복선형 철교로 건설된 이 다리는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조중우의교(朝中友宜橋 : 중국에서는 중차오유이차오中朝友宜橋라 부름 )로 개칭했다.


항미원조전쟁기념관


중국입장에서 바라본 "6.25전쟁"觀

"항미원조전쟁은 새로운 중국이 건립된 초기에, 중국인민이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
조선인민을 돕고 국가안전 보호를 위해 진행된 반침략전쟁이다.

1950년 6월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즉각 무장간섭을 진행했고, 동시에 제7함대를 파견해 중국타이완 해협에 침입했으며,

중국정부의 거듭된 경고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전쟁의 불길을 압록강변까지 태웠다.

1950년10월, 조선인민은 극단적인 어려움에 처했고, 중국의 안전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위원회와 마오쩌둥 주석은 조선노동당과 정부의 요청과 중국인민의 소망을 근거로,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고, 집과 나라를 지킨다"는 정책을 결정하고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했다.

애국주의, 국제주의와 혁명영웅주의의 깃발을 높이들고, 전쟁터로 출발해, 조선군민과 어깨를 나란히 해 침략자들과 맞섰다.

2년 9개월의 처절한 싸움끝에 마침내 열세한 장비로 현대기술장비를 가진 미국을 선두로 한 "연합국군"을 물리쳐,

조선전쟁의 휴전을 달성했다.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을 지켜냈고,

극동과 세계평화를 수호했으며, 국제정세에 깊고 큰 영향을 낳았다."





요녕성 개요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남부의 성.

위치 :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남부. 면적 151,000km2. 인구 약 4138만(1997). 성도(省都)는 선양[瀋陽].

1954년에 랴오시성[遼西省]과 랴오둥성[遼東省] 일부의 합병으로 랴오닝성이 성립되고,

1956년에 러허성[熱河省]의 동부를 병합하였다.

남동쪽으로 압록강을 끼고 한국과 국경을 접하고, 북동쪽으로 지린성[吉林省],

북서쪽으로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및 허베이성[河北省]과 접하며, 남서쪽으로는 보하이해[渤海] 및 황해에 면한다.


요녕성은 중국 동북지역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는 요하(遼河)가 흐르며 남쪽으로는 발해와 황해가 있고, 동북쪽은 길림성(吉林省)과 인접하고 있으며,

서북쪽은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와 남서쪽은 하북성(河北省)과 인접해 있다.

동남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다.

총 면적은 15만㎢ 가운데 약 1/3 이 평지이다.

지형은 해발 800m전후의 산지와 500m이하의 구릉지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m이하의 평원이 약 33%를, 그밖에 수면 및 기타지역이 약 7%를 차지하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철도간선 경합선이 성내에 뻗어 있으며 성도인 심양(瀋陽)과 대련(大連)사이는

전장 375㎞에 달하는 본격적인 고속도로가 뻗어 있어서 일반 도로에 비하면 퍽 좋은 편이다.


 


요녕성의 도시중에는 천연의 항구인 대련, 단동(丹東) 등이 있으며,

심양에는 최근에 새롭게 공항이 만들어졌다.

경제기술개발구로 지정된 대련을 비롯하여 철강의 도시 안산 노천굴의 탄광으로 알려진 무순이 있어

중화학공업이 급속히 발전을 이루고 있다. 농업은 근래에 쌀이 많이 생산되고 사과며 포도의 재배도 활발하다.

요동만에 면한 해안지대에는 새우와 조개류의 양식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대련에 수출하고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요하, 태자하, 낙동강, 대릉하, 대 양하 등이 있으며

이를 포함한 대·소 하천 360여 개가 요녕성내에 흐르고 있다.

주요 산맥으로는 천산산맥이 북의 본계 마천령 남쪽의 연산관에서 남의 여순의 노철산까지 총 340㎞에 걸쳐

요녕반도를 가로 지르고 있으며, 장백산맥의 일부분이 요녕동북의 저산지대를 이루며 뻗어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산으로는 천산, 의무려산, 노노아호산, 봉황산(鳳凰山) 등이 있다.

기후는 임해지역으로 온대대륙성기후에 속하며 4계절이 뚜렷하다.

연평 균 기온은 7∼11℃이며 최고기온은 32℃, 최저기온은 -30 를 기록하고 있다.

무상기간은 평균 120∼130일에 이르고 있다.




▷ 심양[瀋陽]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닌 古都로서

북경, 상해, 천진에 이어 중국의 4대도시이며

중국에서 가장 큰 중공업 도시로 인구는 600여만명이고, 문화·교통·교육의 발달하여

동북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심양은 전국시대때 부터 역사에 등장하지만 우리에게는 청나라의 개국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양 동쪽에 '신빈현'이란 곳에서 청태조 누루하지(1559-1626)가 태어났고, 이곳이 후금을 세운 곳이다.
누루하치가 죽은 뒤 그의 넷째 아들 황태극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다.
1635년에 여진 각 부의 칭호를 폐지하고 '만주'라고 하였다.
다음 해에는 국호를 '청(淸)'으로 고쳤으며, 9년뒤 5월에는 황태극의 아홉번째 아들 복림이

청조의 3대 황제, 청세조가 되면서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 행정, 도로 교통

심양시는 화평, 심하, 대동, 황고, 철서, 동릉, 신성자, 우홍, 소가툰 등 9개 구가 있으며

신빈, 현급시와 遼中 등  3개현을 포함하였다.
도로교통은 6개의 철도간선, 5개의 국가급 도로, 9개의 국내외 항공도로가 교차되며,

남쪽으로는 한반도, 서쪽으로는 중원대륙으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 산업기술인력

심양시는 중국최대의 중공업도시로

400개 과학 연구소, 800여개의 민간연구소, 28개의 대학 등 많은 질 높은  과학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기, 기계, 금속, 군사공업이 발달되었다.


■ 인구와 민족

심양시의 총 인구는 680만명이고 그 중 시내인구는 476만명이다.

심양시는 많은 민족이 거주하는 지구로서 한족 이외에 만족, 조선족, 회족, 몽고족 등 32개 소수 민족이 거주한다.

그 중 만족, 조선족, 회족의 인구가 가장 많다.


■ 산업

심양시는 중국 최대의 중공업도시로서 전기기계, 금속, 군사공업이 발달되었다.

■ 기후

심양은 온대 대륙성 기후에 속하고

계절풍의 영향이 매우 크고 4계절이 분명하고 기후 변화가 비교적 크다.

연평균 기온은 8.1℃이며, 겨울은 길고 추운 편이며 봄철은 날씨가 빨리 따뜻해지며,

여름철은 덥고 비가 많이 내려 습도가 많으며 가을철은 짧고 날씨가 시원하다.

7월달 평균기온이 제일 높고 기온은 24℃,

1월달의 기온이 제일 낮고 기온은 -8.5℃이다.

 

 

청나라의 수도 ‘심양’(瀋陽)

요녕성의 성도(도청 소재지)인 심양은

중국에서 북경, 상해, 천진, 중경에 이어 중국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큰 도시인 만큼 중국 동북부의 문화, 경제, 교통, 금융, 산업, 과학 및 정보중심지 뿐만 아니라,

중국 최대의 중공업 기지를 가지고 있다.

여름은 덥고(31도) 겨울은 매우 추운(-25도) 도시인 관계로 겨울철 여행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이 지역은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고구려 역사 탐방을 하기위해 제일 먼저 발을 들여놓는 곳이다.

물론 다른 지역도 있지만 심양을 많이 찾는다.

심양의 옛 이름은 봉천(奉天),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다.

일찍이 전국시대부터 개발되어 한대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뒤에 고구려의 영토에 있다가

다시 당의 지배하에 들어 심주가 되었다.

청나라가 세워지자 1625년 요양에서 심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1634년 청 태종 누르하치는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으며,

1644년에 베이징을 국도로 정한 뒤에는 이 곳을 배도(陪都)로 삼았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와 일본의 동북 침략이 시작되자 심양은 침략의 목표가 되고,

러일전쟁때는 공격의 목표가 되었던 곳이다.

1932년에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면서 도시명이 봉천으로 개명되었고,

그 후 일본의 동북 지배에 있어 주요기지로 커지면서 만주국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심양으로 바뀌었다.

심양은 동북지역에서 항공과 철도 중심지로 다른 도시와 연결이 잘되어 있다.


千山导游图

세계문화유산이며 자금성의 축소판 '심양고궁(瀋陽故宮)'

시내 동부의 중가(中街)에 근처에 있으며

전체 건물은 300여간 20여개의 뜨락으로 되어있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2개의 궁전중의 하나로서 청의 초대 황제 누르하치와 2대 황제인 태종이 건축한 황성으로,

1625년 시작하여 1636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북경의 고궁과 비교했을 때 규모는 작지만 돌아 보는데는 넉넉히 2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안에서 구경할때는 황제나 황후처럼 옷을 대여하여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제3대 황제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에는 동북 지방을 순회할 때 황제가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내부는 동· 중· 서 로(路) 크게 나뉘고, 출구는 남쪽에 있다.

동로에는 고궁을 대표하는 대정전이 있으며, 황제와 신하들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중로에는 숭정전, 봉황루, 청령궁 등의 주요 궁전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숭정전은 2층 팔각형이 특징으로 되어 있으며 특별한 의식이 있거나 알현할 때, 봉황루는 연회가 있을 때에 사용했다.

서로에는 황제의 도서관이나 무대가 있다.

북경의 고궁까지 가지 않아도 고궁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청나라 2대 황제의 능이 있는

'북릉공원(北陵公園)'

651년에 완성된 청 태종 황태극과 효단문황후의 릉이다.
처음에는 소릉으로 불렸다. 능의 배치는 3개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마비(下馬碑)에서 정홍문까지가 제1부분, 정홍문에서 방성까지가 제2부분,

능의 주체부분인 방성(보정(寶頂)은 반달모양의 월아성(月牙城)이 제 3부분이다.

건물은 융은전(제사 지내는곳), 융은문, 명루, 지하궁전이 있다.

입구 부분 사자상을 보고 어느 쪽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맞춰보는 재미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북릉공원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기도 한다.





청나라 초대황제 누르하치 묘가 있는

'동릉공원(東陵公園 = 福陵)'


1629년에 건립된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와 황후 예허나라씨의 능이며 동릉(東陵)이라고도 한다.

능묘까지는 108개의 계단이 이어지는데 계단을 올라가면서 옆의 소나무를 살펴보면

흘러간 시간을 잊게 할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뒤로는 천주산이 있고 앞으로는 혼하(강)에 접하고 있다.

강희제와 건륭제 때 증축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건물은 정홍문, 패루 및 방성이 있다. 지하궁전에는 왕과 황후의가 매장되어 있다.

이곳 역시 시민들의 공원으로 이용되어 아침으로 태극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중국의 유일한 코리아타운

'서탑가(西塔街)'


심양에서 “코리아 타운”으로 불리운 곳이다.

심양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탑이 있는데, 코리아타운은 서탑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서탑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골목마다 한국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물건과 옷 등 백화점,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라 계속해서 번창하고 있다.

또한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배달되는 한국물품은 거의가 이곳에서 배송된다.





▷ 대련[大連]


대련은 중국 요동반도 남단에 위치하고, 황해 발해와 인접해 있으며,

뛰어난 자연환경과 수련한 해안 경치를 지니고 있다.

대련의 여름은 덥지 않고 겨울은 춥지 않고

날씨는 매우 사람의 마음에 들어 중국의 유명한 피서지이다.

대련 지역의 인구는 모두 500여만 명으로 시가지는 빌딩이 숲을 이루고 초목이 무성하며,

교통이 편리하고 시가지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해상화원"이라 칭송되어 진다.

대련은 풍부한 공업기초와 비교적 완전한 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대련은 나날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대련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대련 금주구 마교자에 위치한 경제기술개발구에는 이미 외국기업들이 근 300개가 있다.
대련이 매년 개최한 "상품교역회", "아카시아축제"와 "국제의상의 날"은 모두 대련 개혁개방의 새로운 면모를 나타낸다.
현재 대련은 이미 중국 북방의 가장 개방된 도시가 되었으며,

또 동북3성과 내몽고자치구의 대외개방에 대한 "창구"이기도 하다.
대련은 또 중국 북방의 교통 중심지로 도로와 철도가 종힝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련항은 세계 150여 개 나라와 무역수송을 하고 있다.

대련의 주수자 국제공항은 국내 31개 주요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경, 후쿠오카, 서울, 홍콩 등지로 항공노선이 연결되어 있다.
심양에서 대련까지의 고속도로는 대련을 동북으로 관통하는 간선도로와 연결되게 한다.
대련에는 국내 각지의 요리와 특색 있는 외국 요리들이 모두 집결되어 있다.

▷ 집안[集安]

집안은 고구려가 400여년을 도읍지로 정하고 웅혼한 기상을 펼쳤던 역사적인 곳으로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꼭 가봐야 할 선조들의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낮은 산들에 빙 둘러싸인 집안시에는 1만개 이상의 고분이 있다.

집안시의 인구는 약 25만명이며 이중 연변동포는 약 2만명으로 음식은 물론 교통.숙소.언어 사용에도 큰 불편이 없다.
지금까지는 개인여행지보다는 학술조사단이나 단체관광객이 주류를 이뤘으나

앞으로는 동북지방을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들의 단골 여행길이 될 전망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90% 이상이 고구려 유적과 북한 땅을 바라보기 위해 찾는 한국인이다.
남쪽 한국 관광객들과 중국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식당과 노점상에서는

“맛있어요! 싸요! 한국 돈 받아요!”라는 말로 호객을 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 환인[桓仁]

중국 북부 요령성에 위치한 환인현은

만주족 자치구로서 3547㎢의 면적에 총 30만의 인구중 30%가 만주족이며, 한인을 비롯 모두 14개 민족이 있다.
혼강(渾江)이 중심부를 흐르고, 삼림, 수자원, 광산 등 각종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단동에서 차량으로 4시간 거리이며 무엇보다 환인의 지명도를 크게 높인 것은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성의 터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인데,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 등재되었다.



▷ 단동[丹東]

단동시는 압록강을 끼고 동서로 발달된 도시이다.
국문공원, 압록강공원, 압록대교, 압록강유람, 위화도, 신의주 전경(육안 및 망원경), 금강산공원, 문화광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 심양에서 단동까지 기차 소요시간 - 5시간 20분
※ 조선족 민속의 날  - 매년 5월2일 금강산 공원에서 개최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단동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단동페리’는
1998년 7월24일, 첫출항 인천 ↔ 단동간 여객 및 화물운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11,000톤급 여객선으로 Rolling방지 및 횡추진 장치로 승객의 안전과 정확한 화물운송으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천항에서 출발, 주 3회(월,수,금) 운항하고 있다.

 


단동은 ‘동쪽을 붉게 물들인다’는 뜻이다.
옛 이름은 안동이었고, 1965년에 단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압록강 하구 부분의 신의주 바로 맞은 편에 있으며,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되고 있다.

고대로부터 한반도와 만주, 중국을 잇는 길목이어서, 역사상 한중 관계의 많은 사건들이 바로 이곳, 단동에서 벌어졌다.

고구려가 조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자 공략했던 서안평이 있고,

고구려의 방어선을 넘기 위한 당군의 기습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또한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 있는 ‘위화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도 유명하다.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통로로도 그 의미가 깊다.

단동시는 중국 요령성에 속하는 도시로 한반도와 접한 곳이다.

우리나라와는 북한의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신의주와 단동을 이어주는 신의주대교(압록강교)는

6.25 전쟁때 미군에 의하여 폭격된 다리로 한 곳은 끊어진 다리도 있다.

유람선을 탈 수 있으며 신의주 도시가 바로 코앞에 있다.

고로 북한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동시(구 안동시)는 중국 현대의 국경도시로써

경공업, 방직, 전자, 관광, 항만의 특색을 갖춘 연해개방도시이다.

요령성 남동쪽 압록강변에 위치한 단동시는 남으로 황해, 동으로는 조선반도와 육해면에서 인접해 있다.

 면적은 1.5만 평방 킬로미터이며 동항시, 봉성시, 관전현, 그 밖의 세 개구를 관할하고 총 인구는 245만명에 달한다.


단동은 지정학적으로 월등한 동북아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황해, 발해, 경제권의 중요한 일익으로 중국, 한국, 일본과 육지로 행하는 통로로 평가되어

중국에서 유일한 변경(국경) 연해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과 한국간 경제활성화에 힘입어 단동은 중국과 한반도를 직결하는 창구로 새로운 투자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풍부한 물자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단동시는

산림피복율이 61%에 달하고 있으며, 목재 축적량은 800여만 입방미터이고 이용가능한 광산물도 56종이나 된다.

매장량이 3억톤에 달하는 붕소자원은 전 중국 고체붕소 매장량의 94%를 점하고 있다.

중국 단동에는 하천댐도 많은데 수질이 월등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1인당 담수량을 가장 많이 점한 도시로 평가되며,

단동의 수산물, 산나물과 야생 약재도 중국내외 여행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단동의 인프라시설은 비교적 완비하게 갇추어져 있다.

철도는 모스크바, 평양을 연결하고 있어 한반도 개통이 실현되면 서울, 부산까지 바로 연결이 가능하다.

항공편으로는 상해, 광주, 북경, 성도 등 국내 10여개 도시를 직행하는 항로가 오픈되어 있다.

대동항만은 현재 세계 30여개국 항만과 해상무역이 실현되고 있으며,

한국 인천과 주 3회 페리선도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동- 심양, 단동- 대련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전력에서는 수력, 화력, 풍력발전을 완비하여 연간 발전량은 124만 ㎾로 집계된다.

단동의 산업도 상당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

현재 단동에는 1600여개의 기업에서 3000여종의 상품들이 출하되고 있다.

비스코스섬유, 화공업 등 제조업은 전국이나 전성에서는 상당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단동시 연간 수출액은 6.45억 달러로 전성 수출 도시중 세번째로 평가되고 있다.



단동 관광자원도 특색을 갖고 있다.
단동의 평균기온은 9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1000밀리의 강우량을 보인다.

또한 국보급 풍경, 명승구, 자연보호구, 국가산림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하온천도 10여개나 된다.

국제급 표준 골프장도 오픈되어 있다.

단동은 중국의 우수 관광도시로 주목 받고 있다.

단동의 대외 개방 소프트도 월등하다.

중국정부의 비준으로 단동시는 연해 개방도시와 연방(국경) 경제합작구라는 특혜를 받고 있다.

외국 상인들이 단동 진출에 편리한 여건을 마련하고자 단동시에서는 서비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단동에 진출한 3차 산업체는 471개로 집계되고 세금이 포함된 이윤이 2.2억원을 창출하고 있다.

단동시와 한국 인천시에서 공동개발한 0.5㎢의 인천 산업단지에

10개소의 한국 기업체가 진출 준비를 시도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금강산(錦江山) 공원

중국 요녕성 단동시에는 우리나라의 金剛山과 똑 같은 錦江山(해발 300m)이라고 하는 산이 있으며,

1905년조성된 시 북쪽 산등성이에 자리한 해발 137미터의 시민공원이다.

원래 鎭江山공원으로 불렸던 곳이다.

 

단동시의 중심부에 있으며 산의 정상에는 단동 시내와 북한의 신의주가 한 눈에 바라 보이고

팔각정 정자인 금강정이 자리잡고 있어 이곳 금강정에서 매년 단동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민속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여기 공원의 입구 우측편에는 궁중의 정원을 모방하여 만든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아침 산보차 나온 주민들이 악기도 불고, 연못의 금붕어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열사 동상이 우뚝 서있는 산 중턱의 요동해방열사기념탑 주변에는 송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의 정상에는 단동시내와 압록강을 마주한 신의주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팔각정정자인 금강정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정에는 매년 단동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민속축제가 펼쳐진다.  


 

▷ 안산

요녕성 중부에 위치한 안산은

중국의 중요한 철강공업기지로서 예로부터 '중국의 강철도시'로 이름났다.
천산은 안산시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유명한 풍경명승구이다.
사원, 산석, 원림을 한 산에 집대성한 천산은 동북의 '모든 산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

풍경구내에는 180여개의 경관이 있다.
천산의 중부에서 발견된 천연 불상의 높이는 70m나 되었다.
매년 6월이면 천산대불제가 거행된다.


 

 

박작성(泊灼城, 虎山長城)

 

중국 수,당의 침략에 대비해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성곽으로

단동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30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 중국에서 중국성 형태의 성곽으로 새로 축조한 후

지금은 만리장성의 동단이라 주장하고 있다.

성곽의 축조 지형으로 단동쪽 서쪽방향을 방어하기 위해 호산의 서쪽 지형으로 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곽의 모양은 동녘을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다만 성안에 고구려의 옛 우물 유적지가 남아있는 것은 중국측도 인정하고 있다.

 

 

◈ 중국측 설명

세계적 유산인 중국의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북한과 중국을 접경으로 두고 있으며 단동시에서 북쪽으로 약 31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최고봉은 146m이다.

약 500여년전 명성화 5년(1469)에 세워 졌으며, 명대 만리장성의 최동단 기점으로 확인 되었다.

한 면은 산으로 삼면은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산 형세가 마치 누워있는 호랑이 모습과 같다 하여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 불리어 진다.

 

박작성(호산산성) 전경. 중국 단동


고구려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축조한 장성으로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지만 전형적인 고구려 축성법을 이용한 장성으로 알려짐.

1990년대 이전까지 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산해관은 '관내(關內)'와 '관외(關外)'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한(漢)문화의 영향이 미쳤던 '원래 중국 땅'이 산해관 서쪽 '관내'였으며

'관외', 즉 만주는 중국 땅이 아니었던  곳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압록강에 맞닿은 단둥 호산에는 베이징의 팔달령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규모의 장성이 세워져 있다.

최근 중국이 장성 동쪽 기점이 이곳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곳은 정말 '만리장성의 동단(東端)'이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박작성(泊灼城)' 항목에서

'현재 단둥시 동북쪽의 호산산성에 비정(比定)된다'고 해 놓았다.

'비정'이란 '옛 지명과 현재의 지명을 1대1로 연결해 추정한다'는 뜻이다.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은 서기 648년 당태종(唐太宗)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었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1998년 이곳에 와 보니 깊이가 11m가 넘는 대형 우물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었다"며

"지금까지 압록강 하구 일대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산성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원래 이곳에는 명나라 때의 봉화대가 있었지만 장성은 없었고 요동변장의 끝도

훨씬 북쪽인 봉성(鳳城·옛 고구려 오골성) 일대였다"고 했다.

중국측이 만리장성을 압록강까지 닿게하기 위해 '가짜 유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4년 이곳에 '호산장성'을 증축하고 '호산장성 역사박물관'을 새로 만들면서

고구려 박작성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물관 안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설명을 붙였을 뿐 아니라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이어 그린 지도도 전시했다.

 

 

왜 중국은 그런 일을 한 것일까?

노기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국에서 국경 문제를 연구하는 변강학(邊疆學)이 대두하면서

동북쪽 변강학자들이 요동변장을 만리장성에 포함시켰다"며

"이제는 중국에서 요동변장과 만리장성이 별개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했다.

동북쪽 변강학자들은 동북공정의 주체였다.


호산장성 역사박물관이 문을 연 2004년 5월은

중국 당국이 집안(集安)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역사 왜곡에 힘쓰던 시기였다.

노 위원은 "요동변장의 만리장성 편입은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명나라가 변장 너머 만주에 있던 여진족까지도 확고하게 통치를 했다는 것을 넘어서서,

조선 초기 북진정책을 통해 확보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땅까지도

'원래 명나라 땅이었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번 발표에 대해

"오래전에 논리개발이 끝난 '만리장성 동단 연장론'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요동과 만주가 역사적으로 유구한 중국의 영토라는 강변은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통째로 가져가려는 동북공정의 논리라는 얘기다.

 

 

단둥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곳에는 고구려의 유적지 `박작성(泊灼城)`이 있다.

중국 측에서 만리장성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며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중국성 형태의 성곽으로 축조해 고구려의 흔적이 지워진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중국 요녕성과 길림성의 옥수수밭에 대하여...

길림성과 요녕성(단둥, 통화, 송강하와 집안)을 향해 달리는 국도변에는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백두산에 가서 무엇을 보고왔냐?"라고 물으면 "옥수수 밭이요!" 라고 대답할 정도로 보이는게 옥수수 밭이다.

옥수수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먹지 못하는 뿌리부터 대까지...

이들 옥수수의 주 용도는 고량주의 원료와 사료 그리고 땔감이라고 한다.

 

동북 3성으로 불리우는 길림성과 흑룡강성, 요녕성은 중국의 주요한 알곡생산지역의 하나이다.

그중 흑룡강 남부로부터 길림성 전역을 포함하고 나아가서 요녕 북부를 포함하는 지역은

같은 위도에 있는 미국의 옥수수 생산지대, 우크라이나의 옥수수 생산지대와 더불어

세계 "3대 옥수수생산지대"로 불리우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 길림성은 "중국 옥수수 생산지대"의 대부분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길림성이 2010년에 알곡생산량의 새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중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2.11억톤이라고 한다.

중국축산네트워크에 의하면 95%의 자급자족을 하지만 그래도 700만톤 이상을 미국 등지에서 수입을 하고 있느나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간혹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부녀자나 집안의 아이들이 소 고삐를 길게 매어 소에게 풀을 뜯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소를 끔찍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이는 역으로 소가 돈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기 이전의 모습과 일치한다.

또한 이곳은 아직도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이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가 들어오면 그 많은 농사인구를 놀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과거 한국에서 농기구 공장이 들어갔지만 실패하고 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축을 키우면 돈을 주는데, 소한마리. 양 한마리, 닭 몇백마리 단위로 계산을 해서 돈을 준단다.

그래야 식품의 공급에 차질이 없기 때문이란다.

 

수풍댐

수풍댐은 1941년 최초로 발전을 했는데 당시로는 세계 최대인 1호기 용량 10만 kw였다.

1943년부터는 6호기까지 완공되어 60만킬로를  만드는 높이 106미터, 길이 900미터의 동양 최대 발전소가 되었다.

수풍댐은 6.25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70%가 파괴되었으나 소련의 지원을 받아 복구하여

1958년부터는 원래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낙후되어 처음수준의 30%정도만 발전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백두산트래킹 가는데
많은 도움이되는것 같아 스크랩합니다 ~~
좋은 추억 만드는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6월 중순에 백두산 관광을 계획하고 있어 검색하다가 낭만울프님의 블로그를 찾았는데
지도 및 관광지의 역사 설명, 사진도 정말 잘 찍으셨네요..
다른 사이트 찾아서 웹질 안해도 될 만큼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네요.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해 저는 8월말경에 다녀왔는데, 어떠한 코스를 잡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멋진 추억만들기를 바랍니다.
낭만울프님^0^.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자유여행이 아닌 여행사 패키지로 백두산 상품을 찾다보니

대련-단동-환인-통화-북파-이도백하-서파-통화-집안-단동-대련 코스는 버스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것 같고요.
장춘-이도백하-북파-연길-용정-장춘 코스는 서파가 생략되어서 아쉽고요..
목단강-이도백하-서파/북파-연길-용정-도문-목단강 코스가 가장 좋을것 같아 보입니다.

6월~8월 기온이 평균 16도라 하셨는데, 일반적으로는 7~8월에 다녀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6월에 가면 혹시 백두산 날씨가 많이 추울지? 야생화는 많이 피어 있을런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안전하고 복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드보라님이 선택한 코스로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최상의 코스를 선택한듯 하군요~^^
백두산 주변의 시내도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백두산은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종잡기 어렵습니다.
제가 갔을때도 갑자기 날씨가 급강하해서 자켓을 입어야했으니까요~
야생화도 주변에 많이 피어 있어 눈호강하고 오시리라 믿습니다.ㅎㅎ
즐거운 여행하시고 소망하는것 많이 이루고 오시기 바랍니다.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잘되여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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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초보라서
자료를 참으로 자세하고 폭 넓게 잘 정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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