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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울프 2014. 8. 27. 17:16

비단섬과 황금평도(평안북도 신도군)

 

* 비단섬 : 1958년 신도지구간척사업으로 만든 인공섬. 신도+마안도(대한민국 가장 서쪽에 있는 섬) 등

* 황금평도 : 옛 황초평도.

 

화도, 임도, 류초도 (평안북도 신의주시)

- 임도 : 옛 임도(任島)와 신도(新島)가 퇴적으로 합쳐진 섬.

 출처 : 북한지역정보넷

 

출처 : 구글어스

 

다지도, 어적도, 구리도, 수구도 (평안북도 의주군)

- 다지도 : 옛 검동도(黔同島), 난자도(欄子島), 다지도(多智島), 마도(麻島)가 퇴적 등으로 합쳐진 섬. 다지도 중

서호리(옛 검동도, 난자도) 지역은 의주군에, 다지리(옛 다지도, 마도) 지역은 신의주시에 속한다.

- 어적도 : 옛 어적도(於赤島)와 승아도(勝阿島)가 퇴적으로 합쳐진 섬.

 

 

출처 : 한국 브리태니커

 

 

수구도(水口島) : 평안북도 의주군 북쪽에 있는 압록강의 하중도(河中島).

압록강의 퇴적작용으로 섬의 좌우 양쪽 끝이 중국 고루자(古樓子) 마을에 붙어 버린 섬인데,

동아일보가 2004년 7월 9일 기획기사에서 섬의 이름에 대한 정확한 확인 없이 "고루자섬"이라고 쓰고,

"구리도보다 상류에 있는 고루자섬의 경우 퇴적 작용으로 대륙에 붙어 버렸지만 북한과 중국이 양분해 점유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아래 중국지도에서는 섬의 이름을 "水口島"(수구도)로 쓰고 "(朝)"라고 표기해 섬 전체가 한국영토임을 밝히고 있다.

수구도에 관한 이같은 오보를 2009년 2월 5일 조선일보 [태평로]에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그대로 베껴 썼는데,

이것이 현재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해당기사에서는 어적도(於赤島)를 한글로 "우적도"로 적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어(於)"를 간체자로 "우(于)"로 적는데, 기자가 이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 실제 북한과 중국이 나누어 점유하고 있는 섬으로는 두만강의 하중도인 매기도(每基島. 함경북도 경원군)가 있다.

매기도는 작은 물길로 둘로 나뉘는데, 북한측 부분은 매기도, 중국측 부분은 왕가타자도(王家坨子島)라고 한다.

이 둘 사이에는 1972년에 두나라가 세운 국경비가 있다. 이것은 원래 세웠던 비가 홍수로 쓸려가서 다시 세운 것이다.

 

 

 

 

압록강과 압록수는 같은 강인가?

 

한국의 사학계는 고대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압록수와 압록강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무엇이 문제가 되어 이러한 오류가 발생되었는지 원인을 밝혀보기 위해서 압록수와 압록강에 대해서 심층 분석하기로 한다.압록수는 패수와 함께 시대에 따라 국경을 구분하는 국경선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압록수와 압록강은 그 원류와 경유지가 전연히 다른것이다.그런데도 어거지로 이름만 옮겨 역사왜곡을 두둔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이것을 어찌 역사학자들만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것인가. 그 책임의 원천은 국력에 영향을 받은 정치가들에게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외세의 간섭을 받는일도 없으니 학자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라고 봐야 한다.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왜곡된 내용을 두둔하고 왜곡된 내용을 사수하려고 한다면 나라와 민족에게 씻지못할 죄를 범하는것이다.무엇이 잘못된것인가? 먼저 압록강에 대한 자료를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서 옮겨 소개하고 이어 압록수에대한 자료를 《고려도경》에서 옮겨 비교분석하기로 한다.이러한 절차는 대동강 평양을 구평양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신평양으로 볼것인가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것이다.만약 이 자료에서 대동강 평양이 신평양으로 밝혀진다면 우리가 찾고있는 구 평양은 신평양의 서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답이 나오는것이다.

 

 

압록강 /압록강 수계도

 

길이 925.502㎞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이다.

국경하천으로서의 길이는 806.503㎞이며, 유역면적은 6만 3,160㎢인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속하는 유역면적은

3만 1,226㎢, 중국에 속하는 유역면적은 3만 1,934㎢이다.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쪽에 솟은 명당봉(明堂峰:1,800m) 북동계곡에서 발원해 지경천(地境川)·웅이강(熊耳江)을 합치면서

북류한다. 혜산시 강구동에 이르러 백두산 장군봉 남서계곡(지금까지 알려진 압록강의 발원지)에서 발원한 보혜천(普惠川)과

합류해 서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감입곡류하며, 삼수천·장진강·후주천·후창강을 합류한다.

다시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 부근에서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중강천·호내강·자성강·삼풍천·장자강·위원강·초산천·충만강·

동천·남천·영주천·구곡천·합수천·당목천·삼교천을 차례로 합한 뒤

평안북도 용천군 진흥노동자구 남쪽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압록강의 명칭은

<신당서 新唐書>에 "물빛이 오리 머리색과 같다 해 압록수(鴨綠水)로 불린다"는 기록에서 유래하며,

<삼국사기>에는 압록수(鴨淥水)로, <삼국유사>에는 압록(鴨綠)·안민강(安民江)으로,

<고려사>에는 압록강(鴨綠江)·마자수(馬訾水)·청하(淸河)로, 광개토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로,

<당서 唐書>에는 염난수(鹽難水)로,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대총강(大摠江),

<대동수경>에는 대총강(大總江)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야루[鴨綠]로 불리며, 중국 쪽의 주요지류는 훈장 강[渾江], 아이허 강[靉河] 등이 있다.

그리고 지류의 호칭은 하(河:7개소)·강(江:3개소)·강(溝:66개소)·자(子:5개소)·수(水:1개소)로 표기하고 있다.

(출전: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압록수(鴨綠水) :《高麗圖經》.

《고려도경》번역: 한국고전번역원

 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리를 흘러가다가(요동에서 500리 거리에 있고로 고쳐야 함,)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요동지》에는 요동과 요서란 지명의 경계를 요하를 기준으로 동서를 정한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요동을 깃점으로하는 모든 거리는 요양의 서쪽 400리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 근거는 《후한서 군국지》에 요동군까지의 거리는 3600리이고 현도군인 요양까지는 4000리라는 기록에 의한것이다.

 

아래 지도는 청말민국초의 양수경(楊守敬)이란 지리학자가 그린 《역대험요도(歷代險要圖)·전한지리도(前漢地理圖)》

요서 등 분도에 그려진 지도이다. 이 지도는 "古墨今朱"의 기법으로 옛 지명과 오늘날의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대조할 수 있도록 그린 역사지도이다.

지도는 중국국가수자도서관(中國國家數字圖書館) 수자방지자료고(數字方志資料庫)에서 캡쳐한 것으로

이 그림에 숨겨진 마크에 의해서도 출처가 분명한 지도임을 보증한다.

중국에서는 디자털데이터를 수자(數字)라고 한다.

 

 

압록수의 위치를 밝히는 <去遼東五百里>를 제대로 분석만 하여도

압록수가 요양의 동쪽 100여리에 있는 청하(淸河)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압록수 동남 천여리는 대동강 평양의 위치와 일치한다.

이로서 대동강 평양은 서쪽에서 옮겨온 신 평양이란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제 구 평양을 현 평양의 서쪽에서 찾는 일만 남는것이다.

만약 현 평양의 서쪽에서 구 평양을 찾는다면 누가 옳은 해석을 하였는지가 판가름날 것이다.

 

압록수는 요동에서 500리 거리에 있다는 것은 요동 요서를 구분하는 요하의 동쪽으로 500리를 말하는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기록은 《요동지》에 상세히 설명되어있다.

따라서 요하에서 요양까지의 거리가 400리임으로 요양의 동쪽으로 100리 거리에 압록수가 있다는 말이다.

지도에서 요양의 우측에 보이는 청하는 압록수의 다른 이름이다.

이 물의 일부는 소요수가 되고 일부는 개주하를 경유하는 마자수가 된다.

 

 

[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

<14>압록강섬들을 찾아

[기사입력 2004-07-08 18:50:00 기사수정 2009-10-09 19:08:36]

 

《강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좁은 개울 건너편에 널찍한 논과 수십 채의 초가집이 있다.

논일을 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는 농부들과 개울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누런 잡초만 무성해 쓸모없는 땅이라는 뜻의 황초평(黃草坪)으로 불린 섬이

언제부터인가 황금평(黃金坪)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대규모 관개공사와 간척사업으로 북한에서 단위경지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기름진 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청(淸)이 영유권을 다퉜던 황금평은 압록강에 점점이 떠 있는 하중도(河中島) 중 하나.

올가을에도 이 섬은 황금빛 벼이삭으로 뒤덮일 것이다.》

● 모래톱 제외한 ‘진짜섬’은 40여개

강의 수량에 따라 섬이 되기도 하고 물에 잠기기도 하는 모래톱까지 포함하면 압록강의 하중도는 205개나 된다.

항상 강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섬’은 40여개. 가장 큰 섬이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돌렸던 위화도이고

두 번째로 큰 섬이 황금평이다. 중국인들은 하중도를 장신다오(江心島)라고 부른다.

북한과 중국은 1962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서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의 하중도 를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중국에서 발간된 압록강 지도에는 위화도(12.27km²)와 황금평(11.45km²)은 물론 다지도(9.55km²), 구리도(6.6km²),

우적도(4.1km²), 유초도(2.82km²) 등 큰 섬들이 모두 북한 땅으로 나타나 있다.

그중 우적도는 퇴적작용으로 아예 중국 쪽에 붙어버려 지금은 사실 섬이라고 할 수도 없고,

황금평도 거의 중국 쪽에 붙어 있다. 그러나 두 섬 모두 북한이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

 

● ‘관광지 위화도’는 북쪽만 볼 수 있다

위화도가 보이는 중국 단둥(丹東)시 강변엔 수십 척의 유람선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그 유람선을 타면 북한의 신의주 앞 50여m 지점까지 바짝 다가간다.

강가에서 머리를 감는 북한 아낙들의 모습도 쉬 볼 수 있다.
취재팀은 모터보트를 타고 위화도에 접근했다. 위화도의 북한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자 그들도 익숙한 일인 듯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답했다. 그래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려 했지만 보트를 모는 중국인은 기겁을 한다.

위화도 북쪽은 배를 타고 볼 수 있어도 남쪽은 안 된다는 것.

위화도와 북한 본토 사이의 물길로는 배를 몰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압록강은 원칙적으로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가 공유하지만, 조선 섬과 조선 본토 사이의 물길은

조선의 내하(內河)이므로 그 사이로 배를 몰면 영토 침범이 된다.”

 

● 월경한 취재팀에 당황한 북한 주민

단둥에서 압록강을 따라 자동차로 1시간쯤 시골길을 달리면 강폭이 20m 이내로 줄어들면서

하이룽(海戎)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 앞에 황금평이 보인다. 강물이 빠지는 오전엔

황금평과 대륙의 구분은 사라진다.
“가깝기야 우리 쪽에 더 가깝지. 하지만 저곳에는 오래전부터 조선 사람이 많이 살았어. 그랬으니까 조선 땅이 됐겠지.”

이곳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건너편 북한 초소의 군인들이 종종 바지를 걷고 강을 건너와 음식이나 옷가지를 얻어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취재팀도 북한 초소를 멀리 피해 강 건너 황금평을 밟아 보았다. 강변 제방 위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북한 주민이

월경한 취재팀을 보자 황급히 초소 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취재팀은 여유 있게 중국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 탈북 막으려고 중국의 섬 개발 말려
취재팀은 단둥으로 돌아와 다시 배를 빌려 압록강 일대의 섬들을 둘러봤다.

 취재팀과 동승한 압록강 선박관리담당 중국 공무원은

“조선은 자국 소유의 큰 섬들을 잘 개발했지만 중국은 개발할 만한 섬을 갖고 있지도 않고

개발을 시도한 적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위화도에서 바다 쪽으로 3km 정도 내려오면 거의 유일하게 중국이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웨량다오(月亮島)가 있다.

북한이 개발을 반대해 공사가 늦어졌다는 중국 공무원의 얘기가 흥미롭다.
“단둥시가 웨량다오를 개발하려고 한 건 10년 전쯤이다.

이에 조선은 ‘섬이 개발되면 조선 사람들의 탈출이 쉬워지고 경비는 어려워진다’며 개발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 바람에 최근에야 겨우 공사를 시작했다. 조선의 자국 섬 개발에 중국이 반대한 경우는 없다.”

 

● 강은 공유하나 섬은 공유하지 않아
북한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하를 빼면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이 공유하고 있다.

조중변계조약에도 압록강 공유가 명문화돼 있다.

또한 양국이 1961년 맺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목재 운송에 관한 의정서’도 압록강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의주 동북동쪽 80km 지점에 있는 평북 삭주군의 수풍수력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

일제와 그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의 공동출자로 1943년 말 완공된 수풍댐은 6·25전쟁 때 시설의 70%가량이 파괴됐으나

전후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댐을 복구해 지금까지 발전소를 공동운영하면서 전기를 나눠 쓰고 있다.
그러나 섬은 다르다. 구리도보다 상류에 있는 고루자섬의 경우 퇴적 작용으로 대륙에 붙어 버렸지만

북한과 중국이 양분해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영유권 구분이 분명하다.

 

● 북한에 유리하게 정해진 섬 영유권
압록강 하중도의 역사도 순탄치는 않았다.

1895년 청나라 사람들이 황금평에 넘어와 갈대를 베어 가자 조선 관리들이 이를 막으면서 양국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은 조중변계조약을 맺으면서 어떤 기준으로 하중도를 나눠 가졌을까.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 섬들에 누가 오래 살았는지를 기준으로 영유권을 정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17세기부터 실시된 청의 봉금정책으로 압록강 일대의 섬들에 중국인들이 터 잡고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어서

농사가 가능한 큰 섬은 자연스레 조선인들의 차지가 됐고, 그래서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선점 효과를 내세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압록강 하중도 영유권은 확실히 중국보다 북한에 유리하게 결정됐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그 땅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우리 땅인 압록강 하중도를

둘러싸고 향후 영토분쟁이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하천연구소 이형석 소장의 진단이다.

단둥=특별취재팀

 

낭만 울프님 안녕하세요 .압록강 유역의 섬들에 대하여' 이 기사가 어디 신문인지 알 수 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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