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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울프 2015. 2. 25. 19:24

충남 예산의 가야산(伽倻山 677.6m)

 

 

가야산(伽倻山 677.6m)은 칠갑산에서 북진하는 금북정맥 상에 솟아 있다.

금북정맥은 홍성을 지나 삼준산을 빚어 놓은 다음, 노적봉 ☞ 가야산(일명 가사봉) ☞ 석문봉 옥양봉을 들어올리고는

두 가닥으로 나뉘어져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은 일락산을 들어올린 후 서산 앞바다로 가라앉고,

옥양봉에서 북동으로 달아나는 산릉은 상왕산을 빚어 놓고, 그 여맥을 당진 평야에다 묻는다.

 

가야산은 예산군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가사봉 북쪽 2km 거리인 석문봉(653m)을 오르는 데 그친다.

그러나 예부터 이곳 주민들은 석문봉을 주봉으로 해서 생각해 왔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와 가야사터에 맥을 대고 있는 봉이 바로 석문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야산 산행은 남연군 묘가 있는 상가리에서 옥녀폭포가 있는 일조암계곡을 경유하여

석문봉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산행코스에 변화를 주기 위하여 일조암계곡으로 석문봉에 오른 다음에는 서산 들판이 시원하게 터지는

북동릉을 타고 옥양봉에 이른 다음, 쉰길바위 능선을 경유하여 다시 남연군묘 앞으로 내려서기도 한다.

정상 돌탑에서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물이 맑고 계곡이 좋은 용현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현재 용현자연휴양림 조성)

 

주변에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등 백제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개심사쪽에서 서산목장을 거쳐 마애삼존불과 보원사↔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원하게 뚫려 가야산을 한 바퀴 돌면서 가야산의 진면목을 구석구석 볼 수 있게 됐다.

용현계곡 총연장 4km의 남짓한 도로를 따라가면 산과 수려한 계곡이 이어지고,

계곡입구마다 빠짐없이 들어서 있는 저수지와 산 위쪽에 위치한 절들이 정취를 더한다.

 

 

일반적인 산행은 가야산 정상은 민간인 출입금지지역이라 남연군묘 왼쪽 저수지가 있는 계곡 위쪽 동네뒤로 올라가

중간 안부에 오른 다음 오른쪽 능선을 타고 석문봉을 오름으로서 가야산 정상을 대신한다.

석문봉에 오르면 돌탑이 세워져 있으며 옥양봉쪽으로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가는 능선은 안부로 푹 꺼졌다가 바위가 많은 옥양봉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들 봉우리들은 산에서 느끼는 거리감이 항상 그렇듯이 상당히 먼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1시간 미만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다.

가야산 쪽으로 암릉을 이루고 서남쪽은 단애를 형성하였다.

 

또한 석문봉에서의 하산코스는 서릉을 타다가 북릉으로 방향을 잡은 뒤 안부로 내려가면

용현계곡으로 가는 길과 일락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용현계곡으로 내려서서 개울을 따라

1시간10분쯤 가면 용현계곡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관리사무소에서 부터는 넓은 찻길이 닦여져 있다.

 

이 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보원사지가 나온다.

보원사지는 옛날에 큰 절이 있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보원사지 5층석탑과 부도비, 부도, 석조 등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운산행 버스(하루 5회 출발)를 탈 수 있다.

운산에 가면 서산, 홍성, 예산 등 모든 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보원사에서 2km쯤 떨어진 계곡 하류 협곡건너 산비탈에는 백제의 미소로 너무나 잘 알려진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삼존마애불상이 있는 이곳에서 수정봉 - 옥양봉 - 석문봉 -일락산을 이어

다시 원점회귀하는 코스도 각광받고있다.(약 7시간)

상가리 주차장남연군묘관음전옥양봉등산로석문봉원효봉상가리저수지남연군묘(왕복 5시간30분)
◐ 상가리 주차장 남연군묘 삼거리 좌측길 저수지 옆 돌담집 계곡 가야산, 석문봉 갈림능선

우측 석문봉길 ☞ 석문봉 문다라미 돌탑 ☞ 옥양봉 하산길남연군묘

상가리 주차장 남연군 등산로 개설 기념비 관음전 입구 쉰길바위 옥양봉 능선 석문봉

일조암계곡옥녀폭포 ☞ 등산로개설 기념비남연군주차장(약 7km, 4시간)

◐ 가야산 서쪽 등산로 : 서산I.C - 운산면 서산마애삼존불상 수정봉 옥양봉 석문봉 일락사

보원사지 서산마애삼존불상

 

 

 

예산 6경, 가야산

 

가야산은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덕숭산도립공원의 일부에서 뻗어나간 줄기가 솟구쳐 일으킨 산으로,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신라 때에는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제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서산/예산 가야산(678m)

충남 예산에서 서해안으로 나가면 덕산온천과 수덕사를 감싸 안으며 서 있는 가야산의 장관을 만난다.

가야산은 예산군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1973년 수덕산, 원효봉, 석문봉과 함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가야산은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며 광활한 내포평야를 굽어 살핀다.

역사 현장의 체험장이자 풍수지리의 보고이며 깨달음의 산이다. 충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금북정맥의 핵심으로

동으로는 예당평야, 서로는 서해안(서산시)과 태안반도를 거느린다. 평지에 우뚝 솟아 남북으로 달리는데

산 높이는 400~600m급으로 높지 않으나 산자락만큼은 치마폭처럼 넓다. 주변에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 등

백제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산경도를 보면, 청양에서 북진하는 금북정맥이 백월산(394m), 용봉산(381m), 수덕산(495m)을 지나

노적봉, 가야산(677.6m)을 솟구친 뒤 석문봉(653m)에 이르러 북동쪽으로 옥양봉을 분한 채,

주능선은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 사이의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 이어간다.

일락산(521m)은 이 북쪽 능선의 약 1.8km 거리에 솟아 있으며, 일락산에서 계속 북진하는 금북정맥은

약 5km 거리인 상왕산(307.2m)에 이른 다음, 그 여맥을 운산면 들판에 가라앉힌다.

 

 

 

'백제의 미소길',

 

상가리에서 대문동 쉼터 ∼ 가야산 수목원 ∼으름재 쉼터 ∼ 백제의 미소공원 ∼ 퉁퉁고개 쉼터 ∼ 소나무 쉼터 ∼

보원사지를 거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마애삼존불로 이어지는 6.5㎞의 코스이다.

백제 미소의 길에는 맨발체험 황톳길, 소공원 7곳과 연못 2곳, 공연장과 가야산 자생식물원이 갖춰져 있다.

곳곳에는 또 불교 및 백제문화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야산은 조선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내륙 깊숙한 하천을 이용해 보부상 등의 상거래와 문화 전파가 왕성했다고 한 내포(內浦) 지방의 중심지다.

상가리에 남연군묘가 있다. 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다. 풍수가를 통해 이곳이 명당임을 간파한 대원군은

가야사라는 절을 불태우고 경기 연천의 아버지 묘를 옮겨 왔다. 독일인 오페르트가 1868년 4월 조선과의 통상 문제를

흥정하기 위해 이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워낙 단단해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크게 노한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 강화했다.

 

서산 쪽에는 사적 316호 보원사지가 있다. 고려 초 전후에 창건돼 사라진 이 절터에는

보물 102호인 석조를 비롯해 103호 당간지주, 104호 오층석탑, 105호 법인국사탑 등 보물이 여럿 있다.

멀지 않은 고양이바위에 대한 전설도 내려온다. 이 바위와 개천 건너편 숲속의 쥐바위는 상극인데

둘 사이에 다리가 놓이면서 보원사 일대 모든 절이 망했다는 것이다.

가야산에서 사라진 사찰과 암자가 100개에 달했다고 하니 전설이 제법 그럴듯하다.

 

이 길의 백미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이다.

백제 불교미술의 정수이다. 옛날 주민들 사이에 "좌우에 부인 둘을 거느린 바람둥이 부처상"이란 불경스러운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고 할 정도로 친근한 모습이다.

 

 

 

상가리 미륵불,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생부 남연군의 묘 왼쪽 산기슭에 있으며 골짜기를 향하고 있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돌기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머리에는 풀과 꽃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은 길쭉하며 양 볼에 두툼하게 살이 올라있다. 왼쪽 어깨를 감싸며 입은 옷은 선으로 새겼으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양 팔은 몸에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었고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대고 있다.
이 불상에 표현된 양식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이런 유형의 불상은 충청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남연군의 묘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으로 규모는 약 5,590㎡이다.

풍수지리설을 믿은 대원군 이하응이 한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년(헌종 10)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報德寺)라 이름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道文)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

 

 

가야산 가야봉(伽倻峰, 678m)

 

충청남도 서산시의 해미면예산군 덕산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현 동쪽 가야산의 서쪽 1리'라는 내용이 최초의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에서는 "가야산은 현 동쪽 11리 지점에 있는데 상왕산(象王山)과 서로 연해 있다."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서는 "현 동쪽에 있으며 홍주 월산(月山)으로부터 와서 산맥이 북쪽에서 떨어진다."

되어 있다. 『조선지도』,『청구도』,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에도 가야산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동여도』에는 '가야산(加耶山)'으로 한자가 다르게 적혀 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호산록』에는

"부처의 서적을 참고해 보면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본래 불서 가운데서 유래된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 가야산 이름은 불교에서 유래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야산이 거명될 때에는 반드시 상왕산도 함께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지도는 물론이고 『조선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에는 가야산과 상왕산이 각각 다른 봉우리로 묘사되어 있다.

『호산록』에 "가야산은 이름이 둘인데 '상왕산(象王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은 오직 가야산이라고 일컬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도 "가야산은 일명 상왕산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내용을 종합하면 가야산은 주봉이고, 상왕산은 가야산의 한 봉우리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봉우리를 지칭할 때에는 가야산과 상왕산이 다른 산으로 인식되지만,

여러 봉우리를 아울러 하나의 산체로 인식할 때에는 가야산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