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산행정보

낭만울프 2017. 3. 6. 15:40

모악산(母岳山 793.5m)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모악산은

전주, 김제 일원의 근교산으로, 유명한 금산사와 함께 이 고장 사람들의 당일 산행지로 각광 받는 산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모악산 정상에는 큰 송신탑이 우뚝 버티고 있어 정상일대가 출입금지 지역이어서

송신탑 바로 아래까지만 올라갈 수 있고 정상을 밟을 수는 없다.

따라서 처음 등산하는 사람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

산아래 금산사는 호남 4경의 하나로 10종의 각종 주요문화재를 갖고 있다.

대원사, 수왕사, 심원암, 청연암등의 사찰이 있다.

 

인기명산 [65위]

이른 봄의 3-4월, 가을 산행 순으로 인기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진달래와 철쭉이 유명한 호남 4경의 하나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1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신라 말에 견훤이 이 곳을 근거로 후백제를 일으켰다고 전해짐.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대적광전(보물 제467호)·혜덕왕사응탑비(보물 제24호)·

5층석탑(보물 제27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금산사(金山寺)가 있음.

특히 미륵전에 있는 높이 11.82m나 되는 미륵불이 유명하다.

 

산행 코스

 

[완주 구이방면]

원기리(구이중학교) - 대원사 - 수왕사 - 정상 - 수왕사- 대원사 - 원기리(4시간)

원기리(구이중학교) - 대원사 - 수왕사 - 정상 - 금산사

 

[금산사 방면]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케이블카탑 - 모악산 - 금산사(3시간)

금산사주차장 - 금산사 - 심원암 - 정상 - 수왕사 -대원사 - 원기리 구이중학교(4시간)

금산사 - 심원암 - 케이블카 - 정상 - 천황사 - 중인동 도계리

 

[중인리 도계마을 방면]

중인리 도계마을(1km) - 금선사(2.5km) -능선(2.5km) - 장군제(1.5km) - 정상(1.5km) - 케이블카(2.5km) - 금산사

 

 

 

 

모악산 [母岳山]

 

산세는 정상을 중심으로 전주시 방면 북쪽과 장근재 방면 남쪽,

그리고 금산사 방면 서쪽은 산릉이 길고 부드러운 반면, 동쪽 구이면 방면은 능선이 짧고 다소 가파른 편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금산사 방면을 내모악, 구이 방면을 외모악으로 구분한다.
옛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은

변산하경(邊山夏景), 내장추경(內藏秋景), 백양설경(白陽雪景)과 함께 호남 4경의 하나로,

60만 전주시민과 10만 김제시민을 비롯하여 전국 등산인들에게도 사랑 받아왔다.

무제봉, 장군봉, 눌연계곡, 금동계곡, 선녀폭포 등 자연경관과,

금산사, 귀신사, 대원사, 수왕사, 청룡사, 용화사 등의 사찰들을 비롯하여

미륵신앙의 본거지인 오리알터의 증산교 본부 등이 모악산에 움틀고 있다.

특히 금산사 미륵전 등 보물 10점과 귀신사의 보물 1점 등 보물 11점이 모악산에 집중돼 있다.


산행은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일주문을 지나 이내 만나는 주차장에서

금산사를 향해 포장로를 걸으며 산행은 시작된다.

자연생태 소공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주변 조경이 짜임새가 있다.

5분 뒤 아치형 다리인 해탈교를 건너 금강문에 이어 보제루 아래를 통과해

경내로 들어서면 이구동성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우선 절집의 규모에 놀라고 국내 유일의 목탑형 전각인 미륵전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미륵전 안의 미륵불 높이(11.82m)에 감탄한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가 있는 방등계단, 첫 인상이 다소 이국적인 육각다층석탑 등

빠뜨려선 안 될 귀중한 국보 보물 등 불교유적 10여 점이 반경 100m 안에 널려 있다.

절집 구경이 끝났으면 경내에서 나와 금강교 입구의 경비실을 보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좌측 포장로를 따라 금산사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계곡 건너편은 운치있는 전통 찻집.

하늘을 가리는 단풍나무 터널과 선방 건립공사 현장 그리고 등산안내도를 잇따라 지나면

첫 갈림길. 우측은 청룡사 방향, 차량 통제용 차단기가 있는 좌측으로 간다.

정상까진 3.6㎞.

훼손 방지를 위해 지붕으로 덮어 놓은 혜덕왕사 진응탑비가 눈에 띄는 부도전을 둘러본 뒤

저 멀리 철탑이 보이는 모악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6분 뒤 금동계곡 입구 갈림길.

우측 정상으로 가기 전 좌측 200m 지점에 위치한 일명 '사랑나무'를 잠시 보고 간다.

하나의 가지가 서로 다른 두 나무와 연결돼 있어 일명 '연리지(連理枝)'라 불린다.

한 나무가 죽어도 이웃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연명이 가능해

예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남녀가 이 나무 앞에서 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단다.

되돌아와 이정표 상의 '정상, 심원암' 방향으로 향한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편백과 삼나무 숲길을 3분쯤 가면 심원암 갈림길.

우측 모악정 방향 대신 좌측 심원암 방향으로 간다.

이때부터 비포장로. 야생차 재배지역을 지나면 이내 심원암.

이름 그대로 심산유곡 골짝에 터를 잡고 있다.

통일신라 혜공왕 때 진표 율사가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건립한 호남 유일의 선도량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기 전까지 신도들의 발길이 그칠 새 없었다고 전해온다.

암자 뒤 500m 지점에 북강삼층석탑을 알리는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안 보이던 안내리본과 함께 신록이 울창한 숲길로 접어든다. 오름길의 연속이다.

10분 뒤 북강삼층석탑 갈림길. 잠시 탑을 보고 정상으로 향한다.

산속에 위치해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이 탑에서 탑돌이를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정상을 향한다. 한 굽이 오르면 또 갈림길. 좌측 부도전 대신 우측 제2헬기장 방향으로 오른다.

옛 무덤터로 추정되는 너른터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올라서면 전망대에 닿는다.

얼핏 숲에 가려 있는 듯하지만 올라서면 정면으로 정상이 보인다.

계속되는 산죽 오름길. 숲속에 갇혔지만 골바람이 쉼없이 불어대 견딜 만하다.

곧 또 다른 전망대. 정상은 숲에 가려 안 보이지만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이 하산로이다.

중간의 푹 꺼진 지점이 장근재이다.

시야가 확 트이는 헬기장은 전망대에서 10분 뒤에 올라선다. 정상이 코앞이다.

거대한 KBS 송신 철탑이 흉물스럽게 우뚝 서 있어 험악한 느낌이 든다.

호남의 어머니산 정수리를 짓누르는 형국이다. 꼭 모악산이어야 했을까, 하는 서운한 생각이 앞선다.

그래도 어머니산은 묵묵히 앉아 있다.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전주와 김제를 가르는 좌측 매봉 방향을 뒤로하고 우측 정상으로 향해 내려선다.

3분 뒤 삼거리. 우측 모악정 방향 대신 직진한다. 삼거리에서 정상은 불과 300m 거리.

5분 뒤 송신소가 떡 막고 있다. 좌측 우회길로 올라야 한다.

철조망 옆으로 설치된 침목 및 돌계단을 오르면 갈림길.

좌측 모악산의 또 다른 등산로 기점인 완주군 구이면 가는 길 대신 우측 정상으로 간다.

곧 정상 입구. 접근 금지인줄 알고 올랐지만 뜻밖에 문이 열려 있다.

30년 만에 지난 4월 24일 개방됐기 때문이다.

입구 안내판에 사전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지만 현실은 그냥 올라도 상관없다.

철계단을 올라 정상 송신소 건물 옥상에 서면

동으로 완주땅 구이면의 구이저수지가 들녘과 한데 어울려 목가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고,

북으로 보이는 아파트촌이 전주땅이다.

그 사이 시원하게 내달리는 국도가 남원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이다.

반대편인 서쪽으론 굽이지는 골짜기 끄트머리에 금산사가 앉아 있고

그 뒤로 금평저수지와 드넓은 김제평야 그리고 동진강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려 시계가 산뜻하지 못해 육당 최남선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호남의 전망대

모악산의 진면목을 못 본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정상 바로 아래 울타리로 둘러쳐진 출입금지 지역 안에 정상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삼각점이 있다.

케이블카도 보인다. 직원 출퇴근 겸 자재 운반용이란다.

하산은 나무계단으로 내려선다. 곳곳의 전봇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능선길이 아니라 이웃한 군부대를 피해가기 위한 우회길이다.

8분 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면 비로소 송신소와 군부대를 지나왔음을 알게 된다.

이제 능선길 산행. 3분 뒤 헬기장. 왼쪽 완주 구이 쪽 하산로 대신 직진하며 내려선다. 2분 뒤 전망대.

등로 우측 3, 4m 지점에 위치해 있어 지나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바로 모악산이란 이름을 낳게 한 그 유명한 쉰길바위다.

금산사가 훨씬 더 가까이 보인다. 이후부턴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홀딱벗고새'라 불리는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여유있게 25분쯤 내려서면 장근재.

우측 지름길인 모악정 방향 하산길은 산사태로 인해 아직 정비가 덜 돼 위험하다.

해서 좌측 배재 방향으로 향한다.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된다.

17분 정도 오름길~평길~오름길~평길을 반복하면 본격 내리막이 시작된다.

3분 뒤 내리막 끝이 배재. 우측 청룡사(0.62㎞) 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 돌길이다.

14분 뒤 계곡과 만나고 여기서 4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곧 청룡사 삼거리.

절 구경은 선택사항. 300m쯤 떨어져 있다.

포장로를 따라 14분 뒤 '청룡사'라 적힌 이정석이 서 있는, 이번 산행의 첫 갈림길에 닿고

여기서 10분이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 산행코스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주차장→해탈교→금산사→금강교→모악정·청룡사 갈림길→부도전→금동계곡 입구 갈림길→

     연리지→심원암 삼거리→심원암→북강삼층석탑 갈림길→제2헬기장→정상 삼거리→모악산 정상(KBS 송신소 옥상)→

     헬기장→쉰길바위(전망대)→장근재→배재→청룡사 삼거리→주차장(약 3시간 30분)
◆ 원기리 구이중학교→동골기도원→정상-헬기장→심원암→금산사 (10㎞, 약 3시간 30분)
◆ 주차장→대원사→수왕사(육각정)→금산사주차장 (11 km , 약 4시간)
◆ 상학→대원사→수왕사 →정상→주능선→연불암→중인동 (약 2시간 30분)
◆ 주차장→금산사→모악정→주능→정상→수왕사→대원사→구이상학 (약 3시간)
◆ 금산사주차장→금산사→심원암→정상→천황사→도계리→중인동(11km, 약 4시간)

◆ 주차장-모악랜드-남릉-(4km)→화율봉-(1km)→밤티-(2km)→국사봉-(2km)→밤티-밤티마을-(1.5km)→밤티 정류소

     (10.5km, 4시간)
◆ 원안덕→양생동→임도→안부→국사봉→밤티→농로→원안덕(9.7km, 4시간)
◆ 호남정맥 초당골(운암 막은댐)→모악산 분기점→엄재→국사봉→밤티→화율봉→배재→장근재→(17.2km)→모악산→

     매봉→(4.5km)→유각치(21.7km, 9시간)
◆ 운암삼거리→호남정맥 분기점→엄재→국사봉→밤티재→화율봉→고수재→배재→장근재→헬기장→모악산→

     정상삼거리→신선대→모악정→금산사주차장(8시간)

※ 교통정보
• 호남고속도로 전주IC→전주시내(전북도청앞)→순창방면 27번 국도→원기리 구이중학교 앞 40미터 지나면 모악산 입구 진입로
•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27번 국도-정자 삼거리-운암 막운댐 / 정자 삼거리-49번 국도-엄재 / 백제로-중인동 삼거리-712번 지방도-유각치-금산사삼거리 / 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금산사
• 원기리는 전주 시내에서 평화동을 거쳐 순창으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타고 접근하는 게 좋고, 금산사는 전주 시내 외곽의 중인동 삼거리에서 금산면으로 이어지는 712번 지방도로를 따르거나 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에서 금산을 거쳐 역시 712번 지방도로로 진입한다.

전주-구이-막은댐 상운암행 시내버스 20분 간격 운행.
전주-중인동 금산사행 시내버스 수시 운행.
김제-금산사 시내버스 운행.
김제-원평-율치 시내버스 운행.
전주↔상학, 금산사, 원안덕, 중인동, 운암(시내버스 수시운행)
• 전주에서 27번 국도→구이→구이중학교 지나 관광단지 입구서 우회전→관광단지 주차
주차시설 : 구이중학교 운동장(주말)및 구이면사무소 주차장 사용가능(주차요금 없슴)
문의안내 : 구이면사무소 전화(063)222-0024

 

 

 

 

 

 

 

천년 고도인 전주시 남쪽에 솟은 모악산(793.5m)은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일원에 위치하여 김제시 금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명산

이다.


금산사, 귀신사, 수왕사, 대원사 등을 품은 모악산은 높이 793.5m로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어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호남 4경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고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특히 이곳에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세워지고 10여 점의 각종 주요문화재를 갖고 있는 금산사가 자리하고 있어, 찬란한 불교예술을 살펴 볼 수 있다.
  
모악산을 넘으면 동남쪽 중턱에 대원사, 수왕사 등 사찰이 있고 서쪽으로 귀신사가 있으며, 금산사 입구 금평저수지는 낚시터로도 적당하다.  특히 모악산은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여겨져 증산교의 본부와 더불어 30-40년대 각종 신흥종교 집단지로도 관심을 끌어 기록에 의하면 모악산 기슭에는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등 사찰을 비롯 무려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금산사와 벚꽃은 변산반도의 녹음, 내장사와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더불어 호남의 4경이라고 한다.

 

○ 구이(상학) - 수왕사 - 정상 - 서북능 - 연불암 - 중인동 (8.5km/4시간)
○ 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정상 - 동능 - 송학사 - 구이(7.7km/3시간30분)
○ 구이 - 남능 - 정상 - 장근재 - 배재 - 화율봉 - 금산사주차장 (10km/6시간)
○ 중인리 - 금곡사 - 정상 - 동능 - 송학사 - 구이 상학 (7.5km/3시간20분)
○ 운암 초당골 - 분기점 - 엄재 - 국사봉 - 밤재 - 화율봉 - 배재 - 장근재 - 정상 - 무제봉 - 비단길 - 중인동 (21.1km/11시간)

 

 

 

금산사(金山寺)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무왕 1)에 창건되었으며,

 백제법왕이 그의 즉위년(599)에 칙령으로 살생을 금하고,

그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인의 승려를 득도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는 그 규모나 사격(寺格:절의 품격)으로 볼 때 별로 큰 사찰이 아니었으며,

1492년(성종 23)에 쓴 「금산사오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과거불(過去佛)인 가섭불(迦葉佛) 때의 옛터를 중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에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금산사가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시기는 진표(眞表)가 중창을 이룩한 경덕왕대 이후로 보고 있다.

중창주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의 순제(順濟)에게 가서 중이 되었고,

그 뒤 금산사를 떠나 선계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참회법(懺悔法)을 닦아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계법(戒法:계율을 엄수하는 수행법)을 전해받은 뒤 금산사로 돌아와서 중창을 시작하였다.

762년(경덕왕 21)에 시작하여 766년(혜공왕 2)에 중창을 끝낸 진표는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불(主佛:법당의 중심이 되는 부처)로 모셨고,

금당(金堂:법당)의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서 그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

이 절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法相宗)의 근본 도량이 되었으며, 고려시대에도 법상종에 속해 있으면서

『법화현찬(法華玄贊)』·『유식술기(唯識述記)』 등의 법상종 관계 장소(章疏)들을 간행하였다.
진표의 중창 이후 후백제견훤의 보호를 받아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법상종의 대종사이자 왕사인 혜덕(慧德)이 1079년(문종 33)금산사 주지로 부임하여,

퇴락한 절을 보수하고 새로운 법당을 증축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존하는 금산사의 중요 석물인 석련대(石蓮臺)·오층석탑·노주(露柱) 등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절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간경(看經:경전을 읽음)·법석(法席:법회) 등을 주관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금산사는 규모가 큰 도량이 되었다.

그러나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1601년 수문(守文)은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635년(인조 13) 낙성을 보았다.

그 당시 수문을 도와서 역사에 참석했던 승려는 지훈(智訓)·덕행(德行)·석준(釋俊)·천정(天淨)·응원(應元)·

학련(學蓮)·태전(太顚)·운근(雲根) 등이었다.

1725년(영조 1) 금산사에서 남악(南岳)이 화엄대법회를 열었다.

고종 때에는 총섭(摠攝:주지)으로 취임한 용명(龍溟)이 가람을 일신하여,

미륵전·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였고, 1934년 성렬(成烈)이 다시 대적광전과
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보수하였으며, 1998년 방등계단 앞에 적멸보궁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 머물렀던 고승으로는 진표와 혜덕을 비롯하여 문종의 여섯째 아들로서 중이 된 승통(僧統)
도생(導生), 원나라 왕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던 유식학(唯識學)의 대가 해원(海圓)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절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 1,000여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처영(處英)과 서산의 선지(禪旨)를 이어받았던 태능(太能), 편양파(鞭羊派)의 후계자인 남악·태우(泰宇) 등이 머물렀다.

또한 포광(包光)이 지은 『금산사지』에 의하면, 금산사에서 처음 주지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이

신라 문성왕 때부터라고 하였으며, 그 이전까지는 화상(和尙) 또는 사주(寺主)라고 불렀고,

1592년에는 총섭, 1902년에는 섭리(攝理)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물·유적 중 일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임진왜란 후의 조형들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거대한 사역에 대사(大寺)·봉천원(奉天院)·광교원의 3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총 86채의 당우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없어진 뒤 40년 만에 대사지역의 건물만
재건되었고, 나머지 사지(寺址)는 절의 동북쪽 넓은 지역에 유지만 전해지고 있다.

근년에 월주(月珠)가 주지로 취임한 이래 모든 당우와 도량을 정비하여 수도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500m 밖에 위치하는 일주문을 비롯하여, 금강문·보제루(普濟樓)·미륵전·대적광전·대장전·명부전·승당(僧堂)·

서전(西殿)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였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유물로는 보물 제22호인 김제 금산사 노주, 보물 제23호인 김제 금산사
석련대, 보물 제24호인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慧德王師塔碑), 보물 제25호인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 제26호인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보물 제27호인 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 보물 제28호인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제828호인 김제 금산사 석등, 보물 제827호인 김제 금산사 대장전 등이 있다.

이 중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은 신라시대부터 미륵본존을 봉안했던 금당이다.

신라 때의 형태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거대한 불상의 좌대 아래에 있는 철수미좌(鐵須彌座) 등의 형태로 보아

임진왜란 전에는 거대한 미륵존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적광전은 금산사 내에서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건물 수계(受戒)·설계(說戒)·설법(說法) 등의 법요를 진행했던 곳이다.

이 법당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여 총 28칸의 큰 불전을 이루었으나,

1986년 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1992년 복원하였다.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의 정면 우측에 위치하여, 미륵전을 장엄하게 하던 정중(庭中) 목탑이었다.

1922년 이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 지었지만, 지붕에는 전대 목탑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복발(覆鉢)과 보주(寶珠) 등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내에는 석가모니불과 가섭·아난(阿難)의 제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봉안한 당우로서 1857년(철종 8)에 비구니 만택(滿澤)이 재건하였으며,
나한전은 방등계단(方等戒壇) 바로 옆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계단을 참배할 수 있으므로 일명 계단예배전(戒壇禮拜殿)이라고도 한다.
나한전의 내부 중앙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방등계단 앞에는 1998년에 적멸보궁을 지었다. 일주문은 1975년에 고평용이 건립하였으며,

금강문은 절로 들어가는 두 번째 산문으로서 절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의 화상을 안치한 곳이다.

보제루는 절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루 구실을 하는 건물로서
법요(法要:법회의식)와 강설당(講說堂)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존하는 당우로는 성렬이 1939년에 신축한 종각과 1940년에 신축한 중향각(中香閣),
1943년에 신축한 칠성각, 연대 미상의 송대향각(送大香閣)이 있다.

또한 1999년에 금산사 내의 성보문화재를 보관 전시하는 성보박물관을 경내에 지었다.

석조유물 중 미륵전 우측에 있는 방등계단에는 석종부도가 있다.

이 계단에 부도가 있으므로 탑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계단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방등계단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일반적으로 계단 앞에는 석등을 안치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나,
이곳에 석탑을 건립한 것은 불전의 정중탑(庭中塔:법당 앞 뜨락의 탑)을 건립하는 방식으로 불탑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① 심원암(深遠庵):금산사에서 동북쪽으로 1.5㎞ 지점에 있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635년(인조 13)에 수문대사가 금산사를 중창할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인법당과 산성각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암자이기 때문에 연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원암의 북쪽 산정 0.5㎞ 지점에는 보물 제29호로 지정된 김제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이 있다.

② 용천암(龍天庵):금산사의 동쪽 기슭 1.8㎞ 지점에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지금의 본당인 관음전과 요사는 1974년에 중건한 것이다.

산세가 용이 비천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용천암이라 하였으며,

지금의 법당 자리는 용의 혀에 해당하는 자리라고 한다.

③ 청련암(靑蓮庵):금산사에서 1.5㎞ 거리에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정유재란 이전에는 청사굴(靑社窟)이라고 불렀다.

1959년 극락전과 삼성각, 그리고 두 동의 묘사(廟祠:제사를 모시는 사당)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2년 대법화보살이 중창했다.

④ 부도전(浮屠殿):금산사의 동쪽 0.2㎞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혜덕왕사의 탑비를 비롯하여 남악당선사(南嶽堂禪師)의 부도 등 모두 12기의 부도와 2기의 비석이 있다.

 

 

 

금산사(金山寺)

 

 

금산사석연대

금산사석연대(통일신라 후기), 보물 제23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이다.

1635년에 기록된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백제 법왕 2)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1492년에 씌어진 금산사5층석탑중창기에 의하면

과거불인 가섭불 때의 절터를 중흥한 것이라 하여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금산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62~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어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로 법상종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진표 이후에 후백제 견훤에 의해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고려초 1079년에 법상종의 대종사(大宗師)인 혜덕(慧德)왕사가 주지로 부임해

간경·법석(法席)을 주관하는 장소인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는 등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도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석연대(石蓮臺)·5층석탑·노주 등이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암자와 건물 40여 채가 불타버렸으나

1601년(선조 34)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 완공했다.

조선 고종 때 미륵전(彌勒殿)·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 등을 보수하고

1934년 대적광전·금강문·미륵전 등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다시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며 현재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 절에 남아 있는 유물·유적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조형물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석조유물은 노주(보물 제22호)·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 보물 제24호)·

5층석탑(보물 제25호)·석종(石鐘 : 보물 제26호)·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등이 있다.

또한 미륵전(국보 제62호)·대적광전이 있었고, 그밖에 대장전·명부전(冥府殿)·나한전·일주문·금강문·

보제루(普濟樓)·종각·중향각·칠성각 등의 건물과 수계(受戒)의식을 행하는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자리잡고 있다.

 

금산사대적광전

우리나라 법당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나 1986년 불에 타서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장대석기단 위에 세워진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의 7칸에는 모두 빗살 무늬로 장식된 두 짝 열개문을 달았는데 중앙칸만 출입문이고

나머지는 밑부분에 머름(미닫이 문지방이나 벽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설치한 광창이다.

옆면은 4칸으로 제일 앞쪽 툇간에 한 짝 출입문을 달아 사용했고 나머지는 회벽으로 위쪽에 인방을 가로질렀다.

공포는 내외이출목이며 다포계 공포구성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공간포도 넓은 주간에 1개씩만 두어 특수한 구조로 보이는데 중앙칸만은 공간포를 2개 두었다.

건물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뒷면에 6개의 기둥을 세운 뒤 그 기둥 사이를 후불벽으로 만들었다.

그앞에 불단을 설치하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 2구씩 모두 5구의 불좌상과

그 사이에 보살입상 6구를 안치했는데 이러한 불상의 배치는 매우 독특하다. 그위에는 닫집을 설치했다.

대들보는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졌는데 좌우측면 평주에서 충량이 3개씩 올라가 대들보에 걸리게 하였다.

충량의 형태가 곡선으로 된 점이 특이하며 건물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나약한 맛을 갖게 한다.

천장은 불단 바로 위를 1단 더 높이고 가장자리는 대들보 위 충량 위쪽에 붙여

반자를 꾸며 전체적으로 층급천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건물내부는 낮고 가득찬 느낌을 주고,

건물외부의 정면관도 낮고 옆으로 길게 전개되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 건물은 1705년에 기록된 금산사사적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서

그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되며 18세기경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금산사대적광전 부근의 미륵전(국보62호)

금산사대적광전 부근의 미륵전(국보62호)

미륵전 후문, 창문살에 불에탄 흔적이 있었다.(1986년)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

 

미륵전은 신라 법상종시대에 미륵본존(彌勒本尊)을 봉안한 불전으로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이다.

초창(初創)된 시기나 당시의 건물형태를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진표율사가 중창시에 미륵장육불상(彌勒丈六佛像)을 조성해 3층전인 금당에 봉안했음이

삼국유사와 5층석탑중수기(1971년 발견)를 비롯한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 1705년)·

금산사지(金山寺誌, 1921년) 등에 기재되어 있다.

또 현재도 소조불상(塑造佛像)의 대좌 아래에 커다란 철제 수미좌(須彌座)가 남아 있어

과거의 장육상대좌임을 추측할 수 있다.

 

금산면 금산사미륵전

금산면 금산사미륵전

금산사미륵전, 국보 제62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당시의 불상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건물과 함께 소실된 후 1627년(인조 5) 소조삼존상을 조성하였다.

현건물은 1601년부터 1635년 사이에 수문에 의해 재건된 뒤 4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약 79평,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약 50평,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약 28평 가량 된다.

건물은 총높이가 20m 가량 되는 3층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당초부터 계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구방식은 1층에 고주 4개와 20개의 변주(邊柱)를 세워

이들 사이에는 굵직한 퇴보를 걸고, 그위에 2층 변주를 세우고 이를 다시 고주와 퇴보로 결구하였다.

3층은 고주가 그대로 우주(隅柱)가 되고 그위에 지붕을 올렸다.

 

 

금산사오층석탑(보물 제25호)

높이 7.2m. 이 탑은 금산사 경내의 뒷편 송대라는 언덕에 있는데

불사리가 봉안된 사리계단(戒壇) 남쪽에 있다.

이러한 탑과 계단의 배치방식은 경기도 개성시 근교 불일사에서도 볼 수 있고,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앞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과도 유사한 것으로

사리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금산사5층석탑

 

금산사5층석탑

금산사5층석탑(고려), 보물 제25호, 높이 720cm,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놓인 5층의 방형석탑이다.

갑석과 그 위에 얹힌 1단의 괴임은 판석을 여러 개 짜맞춘 형식이며 탑신부 1층까지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옥개석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 추녀 밑이 넓어졌는데,

중앙에서 모서리를 향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점이 특이하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넓고 경사는 급한 편이다.

탑 전체를 볼 때 2층 이상부터 체감비율이 적은 편이나 1층 옥개가 넓어 안정감을 준다.

상륜부는 5층 옥개석 위의 노반에 갑석형이 넓게 얹혀 있고 신부(身部)에 우주까지 새겨져 있어 6층으로 보기 쉽다.

복발·보륜·보주가 얹혀 있는 상륜부의 모습은 라마 탑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특이하다.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이 작아지고,

상하층 기단의 갑석 위에 판석을 삽입하여 굄으로 삼은 점, 옥개석 추녀 밑선이 곡선으로 된 점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과 관련된 전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늦은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 탑을 1971년 해체·복원할 때 사리구와 묵서의 탑지가 발견되어

1492년(성종 23)에 중창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금산사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높이 218cm. 현재 대적광전 앞 왼쪽에 있으나 원래는 금산사에 속했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 탑은 탑신과 상륜부 일부가 없어져서 원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금산면 금산사6각다층석탑

금산면 금산사6각다층석탑

금산사6각다층석탑(고려 초), 보물 제27호, 높이 218㎝,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평면이 6각형인 이 탑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다각형 석탑의 한 예로서 중요하며

부분적인 장식조각이 섬세하여 공예적 성격이 강한 특수한 탑이다.

이 탑의 층수는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淨惠寺址十三層石塔 : 국보 제40호)의 형태로 미루어 보아

 

13층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으며 대체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사미륵대불상

높이 본존상 11.82m, 좌우협시보살상 8.79m.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미륵전 안에는 764년(경덕왕 23) 진표율사의 시주에 의해

766년(혜공왕 2) 완성된 미륵불상만 있었다고 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이 불상이 타버리자 1627년(인조 5) 수문대사가 조성한 소조삼존상이 모셔졌으며,

1934년 삼존상 중 본존상이 실화로 타버리자 1938년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본존상은 기본적으로 통일신라 불상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기법이나 마무리솜씨에 근대조각의 요소가 가미된 상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불단 밑에는 신라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청동대좌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