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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eople 2016. 10. 12. 15:04



시드니(Sydney)는 오스트레일리아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서 도시권의 인구가 약 475만명이다.

시드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행정도시이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식민지가 있던 자리이다. 그

 식민지는 영국에서 온 선단 퍼스트 플리트(First Fleet)의 선장인 아서 필립(Arthur Phillip)에 의하여 시드니 코브(Sydney Cove)에 1788년에 세워졌다. 시드니는 행정구역상 센터럴시티역 주변의 1개 행정자치구(Council)의 명칭으로 시드니 주변 지역의 주소에서는 시드니(Sydney) 라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캔버라이다. 2000년에는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가 되었다.









역사

시드니 항구 연안에는 적어도 4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정착했다.

시드니라는 이름은 당시 영국의 각료였던 시드니경(卿)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럽인의 관심이 이 지역으로 생긴 것은 1770년 제임스 쿡의 포트 잭슨 만의 발견 이후이다. 영국의 아서 필립 선장은 사상 초유의 "화물"을 머나먼 대륙으로 이송해야 했다. 그는 영국에서 추방된 죄수 700명과 선원 450명을 11대의 배에 나눠 싣고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해안까지 7개월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1788년 1월 18일, 11대의 배는 다른 뱃사람들이 배를 정박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추천해 준 곶(串)에 도착했다. 영국인에 의한 최초의 이주민은 1788년 1월 20일아서 필립 총독에 의해 시드니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호주 최초의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필립은 처음 이 땅을 알비온이라고 부를려고 했지만, 시드니 후미에서 유래한 "시드니"가 일반적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시드니 만은 쿡이 지은 것으로, 그의 후원자였던 시드니 경 (시드니 자작) 토마스 타운젠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 설립을 허가하는 특허장이 시드니 경의 알선으로 교부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신식민지의 초기의 인구는 1000명을 겨우 넘는 정도였지만, 당시는 유배지로 인구 대부분은 죄수였다. 1822년에는 벌써 은행, 시장, 발달한 도로망, 경찰조직을 갖춘 마을이 되었다. 1833년, 마을의 행정은 3명의 행정관의 손에 운영되어 1842년에는 자치체가 되었다. 1847년에는 죄수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3.2%에까지 내렸갔다. 당시 시드니에는 유럽에서 매주 배가 들어왔으며, 영국이나 다른 유럽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죄수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따라, 상업 활동이 왕성해졌다. 처음에는 벽돌 제조와 제재에 한정되어 있던 제 2차 산업의 발전은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자유무역 정책이 현지 공업의 안정을 저해했기 때문으로 지적되었다.

1901년의 연방 성립후, 자유무역 정책은 유명무실해졌고, 각 주간의 긴밀한 제휴 하에서 주간 교역이 현저한 진전을 이루었다.


골드러쉬

시드니는 19세기 전반까지는 호주 6개의 영국 식민지의 중심으로 명실상부한 최대의 도시였다. 1851년뉴사우스웨일즈 주빅토리아 주에서 금이 발견된 최초의 골드 러시가 이루어 지면서 시드니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골드러시와 영국 본국과의 사이 대권 항로에서 멜버른이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멜버른이 발달 속도를 높여 19세기 후반에 시드니는 제 2의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전통적인 경쟁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멜버른은 호주의 최대 도시이자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근현대

20세기가 되면서 시드니가 다시 멜버른 인구를 추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드니는 국내 최대의 도시로 계속 자리 잡고있다. 1970년에서 1980년대, 호주연방 준비은행과 호주 증권거래소와 함께 시드니의 CBD는 분명히 국내 최대의 금융 도시가 되어 멜버른을 제쳤다. 도시 지역의 확대와 함께 인구의 교외화가 진행되어 도시 지역의 서쪽은 도심에서 60 km 이상 떨어진 블루 마운틴 기슭에 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20 세기 전반에 걸쳐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을 더욱 크게확장되었고, 유럽과 이후 아시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시드니의 도시 지역은 확대를 계속했다. 시드니의 특징인 다양한 국제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가 주된 요인이다.


지리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동쪽 기슭의 포토 잭슨 만(시드니항) 및 보타니만에 접하는 항만 도시이다. 사방은 장대한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어 동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블루 마운틴, 북쪽으로 호크스베리카와, 남쪽으로 로열 국립 공원이 있다. 게다가 시드니는 많은 후미나 해안을 가지고 있다. 본다이 비치는 특히 유명한데 시내에서 가까운 포토 잭슨 만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세계 최대의 천연의 입강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풍부한 자연이 풍족한 시드니이지만, 자연 재해인 지진은 인체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무감 지진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엔터테인먼트

시드니에서는 많은 이색적인 축제와 호주 최대의 사회 문화 이벤트가 개최된다. 예를 들면,

국내 최대의 예술 축제인 시드니 페스티벌(Sydney Festival)은 매년 1월에 개최된다.

이외에도 비엔날레 오브 시드니(Biennale of Sydney)는 1973년부터 계속 현대 미술 축제로 자리를 잡아 왔고,

빅 데이 아웃(Big Day Out)은 락 페스티벌이다.

시드니 마디 그라스(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에서, 시드니 영화제(Sydney Film Festival) 등 많은 영화제와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Sydney Royal Easter Show)는 시드니 올림픽 공원에서 개최된다.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 결승전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즐길 수 있다. 호주 패션 위크(Australian Fashion Week)는 매년 4,5월에 개최된다. 또한, 새해 전야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Australia Day)의 축전은 국내 최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부표준시 기준으로 매년 1월 1일 0시에 오페라 하우스 주변과 시드니 달링 하버 주변에서 세계 최대의 새해 맞이 불꽃놀이가 매년 실시된다.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시드니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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