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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1908] 최저임금 투쟁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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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이슈

2019. 8. 12.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최저임금 투쟁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최저임금 인상액 240원

 

2020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240원(2.87%) 인상된 8,590원. 노동계와 사용자측 위원, 그리고 공익위원들이 참여한 표결 결과에 따라 경영계가 내놓은 최종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 인상률은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인상률인 2010년 2.75% 인상 이후 최저수준이다. 대통령은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영세자영업자와 재계의 우려를 반영하고 일본의 경제보복 등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인되는 결과입니다”라는 논평을 남겼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재벌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 논평이다.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어버린 시대이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적어도 삶이 유지될 만큼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소박한 바람이 ‘최저임금 1만원’ 요구로 나타났고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것은 그런 바람을 수용한 것이다. 2018년 적용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서 그 기대는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기업과 보수언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기-승-전-최저임금’이라고 할 만큼 모든 문제의 원인을 최저임금으로 돌렸다. 최저임금에 관한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기업은 승리했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 없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은 그런 인식의 반영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지 최저임금 액수를 올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조기퇴직을 하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기에 기형적으로 생계형 자영업 비중이 높다. 또한 산업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하청계열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청업체나 영세자영업자들은 권리를 갖기 어렵고, 그로 인해 저임금으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올린다는 것은 이렇게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했다. 원청의 책임 강화나 원‧하청 구조 개선, 임대료 등 자영업자들을 옭죄는 구조를 개선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2.87% 인상되었다는 것은 원‧하청 구조를 개선할 동력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 2019.7.11. [출처: 민주노총]

 

단기적인 정부 정책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매우 단선적으로 사고했으며, 최저임금 인상과 연계된 영세자영업에 대한 구조 개선, 그리고 원‧하청 구조 개선에 대한 구상을 갖지 않았다. 경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제기된 것이 아니라 지지율을 높이는 정책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자 이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고,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 영세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이를 위한 보조금 지급 등 단기정책만 남발하다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 여론이 나빠지자 바로 최저임금 인상을 포기한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 정책의 후퇴는 2017년 16.4% 인상 직후부터 확인되었다. 정부 여당은 2018년 5월 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개악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했다. 2019년 최저임금이 10.9% 인상으로 결정되자, 정부와 여당이 스스로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공언하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내놓았다. 개악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게 되자 공익위원들을 교체함으로써 최저임금 억제를 시도했고 그 결과가 2.87% 인상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도 재벌 중심의 구조, 저임금에 기반한 하청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저임금으로만 유지되는 지금의 하청 구조와 영세사업장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맹점 원청의 영업이익은 늘어나는데 가맹점주들의 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프랜차이즈 원‧하청 관계가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당시에는 영세자영업을 그토록 걱정하던 정부 여당이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하지 않는다. 유통시장의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 원청 대기업의 단가 인하 압력과 기술 빼가기 등을 규제하기 위한 노력도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속도 조절에 성공했다고 믿고 안심할 것이다. 재벌들에게는 원‧하청 구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었고, 최저임금을 억제해서 영세자영업자들의 불만도 잠재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악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형성되었으니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했다고 지지율이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이후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원했던 노동자들이, 정권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결코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정부가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정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직은 감춰져 있는 이 분노를 정부는 언제 깨닫게 될까?

 

 

민주노총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은 정말로 중요했나

 

2018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한 것이었고 누구라도 많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쟁점도 2018년 최저임금을 당장 1만 원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공약대로 ‘2020년까지 1만원’을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때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당장 1만원’을 요구했다. 사후적 평가이기는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이 이 때 요구를 ‘1만원’이라는 액수에 매달리지 않고, 원‧하청 구조 개선과 프랜차이즈 대리점들의 교섭권 확보 등의 요구를 내걸고 싸웠다면, 그래서 이 싸움이 원‧하청 구조의 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당시는 재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원‧하청 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도 힘을 받을 수 있었다.

2018년 적용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었을 때 민주노조운동은 그 인상폭에 안도했다. 비록 ‘지금당장 1만원’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랐기에 2020년까지 1만 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렇지만 2018년 초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개악안이 제출되면서 다시 투쟁은 시작되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은 기본급이 최저임금이고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고임금 정규직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현실을 감췄고, 민주노총은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고, 따라서 투쟁전선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 이후 최저임금에 대한 기대는 급격하게 무너졌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투쟁은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이 아니었고, 최저임금이 억제됨으로써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은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었다. 최저임금이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이야기되자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낮아졌다. 그리고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공익위원들도 정부에 의해 교체되면서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은 동결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반박하려고 애썼지만, 최저임금이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을 위한 투쟁은 거의 만들어지지 못했다.

민주노조운동에서는 최저임금 투쟁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높아진다. 일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상승과 임금격차 해소에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경쟁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수용하는 경우도 많고, 노동시간 감소 등으로 오히려 임금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의 기준이다. 최저임금이 생활 가능한 임금으로 현실화되어야 지속적인 임금하락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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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30. 사회적총파업 [출처: 철폐연대]

 

 

최저임금 투쟁,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저임금이 올라서 영세자영업자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최저임금이 올라서 기업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도 늘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임금 기준이 되고 있다. ‘적어도 임금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지표로, 그리고 노동자들이 ‘내가 받는 임금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이라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임금이 정당하지 않다고 여길 때 투쟁한다. 그 정당함의 기준, ‘최저임금’이 ‘생활 가능한 임금’으로 현실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으나, 현실에서 개선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다가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고,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기대했는데 기업들이 산입범위 개악을 핑계로 임금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산입범위 개악으로 인해 현장에서 자신의 기대가 꺾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자들에게 일단 기준이 형성되면 그 기준을 무너뜨리거나 후퇴시키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저임금제도를 개악하려고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누는 것으로,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폭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적용제외 확대를 주장한다. 업종별, 기업규모별,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며, 현재는 장애인들만 최저임금에서 적용이 제외되는데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도 적용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임금의 기준 자체를 없애겠다는 의미이다. 임금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지표가 사라지면, 기업 규모나 업종‧고용형태, 노동자 단결의 수준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고, 노동자들은 이 임금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사라진다. 당연히 바닥을 향한 경쟁이 지속된다.

최저임금제도 개악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의 최저임금위원회도 사실상 공익위원이 결정하는 것인데, 정부의 최저임금제도 개악은 그것을 정부 중심으로 바꾸어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결정 구조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정부나 공익위원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결정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는가? 최저임금제도 개악을 막는 투쟁을 넘어서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가 어떻게 되어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을 할 수 있는지, 미조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 구조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최저임금 투쟁은 ‘얼마를 올리는 투쟁’이 아니라 ‘이 임금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묻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얼마를 올리는 투쟁’에서는 기업의 지불능력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임금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묻는 투쟁에서는 ‘노동자의 삶의 권리’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기업이 지불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조할 것인가를 논의하게 된다. 기업의 지불능력에 긴박당하지 않는 임금의 최저기준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운동은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후의 최저임금 투쟁은 ‘인상액’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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