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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1908] 디지털 기술과 사회 연대 / 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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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소식·이슈

2019. 8. 12.

■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디지털 기술과 사회 연대

바리 (정보인권연구소, 철폐연대 회원)

 

 

사회 변화는 어떻게 올까. 기술은 해방에 어떤 존재일까. 이십여 년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렵다.

최근 몇 년 간 대중적으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싸움이 즐거운 때도 있었다. 함께 싸우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 해방, 그리고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그간 인권에 대한 여러 문제의식은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불편러’들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렇지만 불편러들이 기존의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이들의 ‘불편’을 불러오게 된다. 파업하면 국민이 불편하고 집회시위 소음으로 주민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연대’는 불편을 함께 참는 것이라고들 이야기했다. 사회 연대는 불편함을 참는 것, 이른바 ‘톨레랑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싸움을 모두의 싸움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불편을 감수하고 나아가 응원하는 힘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불편함이 다른 사람의 불편함과 충돌할 때 우리가 연대할 수 있을까.

 

이십년 전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만들었던 활동가들은 인터넷으로 사회 연대를 꿈꾸었다. 우리는 연대의 힘을 알고 있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96·97 총파업에서 만났다. 1996년 크리스마스 휴일 이튿날 새벽 6시, 집권여당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만이 은밀히 국회에 모였다. 이들은 7분 만에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노동법 개정안은 지금의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었다. 안기부법 개정안은 2년 전 폐지되었던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일부 수사권을 부활시키는 내용이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두 달간 벌어진 농성과 집회에 수백만 명이 참가하였고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런 소식을 잘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PC통신과 인터넷에 익숙했던 젊은 활동가들이 총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컴퓨터를 들고 모였다. 이 새로운 기술로 총파업을 지지하는 사회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노동악법, 안기부법 전면철회를 위한 통신지원단’을 구성하였다. 온라인 서명운동과 국민적인 블랙리본운동을 제안하고 국문과 영문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언론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소식이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었다.

 


* 96·97 총파업 통신지원단 홈페이지 [출처: 필자]

http://strike.nodong.net/strike9697/index.html#kctust


 

파업이 끝난 후로도 활동을 같이했던 온라인 이용자들과 사회단체들은 계속 활동하는 데 뜻을 모았다. 사회운동을 ‘통신’으로 ‘지원’하는 상시적인 단체가 필요했다. 사회운동 소식이 온라인을 통해 정부의 검열을 넘어서 널리 전파되고 소통되면 사회 연대가 널리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발기인과 추진위원으로 십시일반을 보탰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오늘날의 연대는 쉽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불편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운다. 이 모든 싸움에는 분명 해방으로 가는 길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싸움으로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그 원인이 사회 구조 깊숙이 숨겨져 있다.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두의 해방’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두의 싸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른 이들이 나의 불편함 해소를 지지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함께 싸울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참아내는 방식의 사회 연대를 넘어설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함께 싸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서는 사회 변화에 이를 수 없다. 바우만이라는 학자는 오늘날의 사회 연대에는 개인의 연대를 넘어서는 집단의 연대가 필요하고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고민도 20년 전보다 진전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해방으로 가는 동지라고 생각한 이들은 그 믿음을 실현시키는 데에 자신의 청춘을 보냈다. 그것은 그때 필요했던 사회운동이었다. 당시 인터넷 또한 초창기여서 이 기술의 발전 경로에 사회운동이 개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글이 창립했던 때도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설립되었던 1998년으로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새 지구적인 자본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고 공공성은 무력하게 해체되어 갔다.

1996년 개악된 노동법에서부터 야금야금 진행되어 오던 신자유주의 고용 유연화는 이제는 마침내 모든 고용을 해체하겠다는 야망에까지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클라우드 슈밥은 자신의 책에서 모든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지 않은 미래를 그린다. 차량플랫폼 우버의 기사처럼 모두가 그때그때 플랫폼에 고용되는 미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둘러싼 모든 규제를 완화할 것을 주장한다.

 

그런 미래는 벌써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을 위해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를 해체하고자 했다. 기업이 소비자와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제한 없이 쓰겠다는 것이었다. 개인정보 보호를 공약으로 삼았던 지금 정부도 기업의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하겠다 한다.

올해 부쩍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채용 면접을 진행하는 회사가 늘었다. 과거보다 똑똑한 로봇이 산업 현장에 더 많아지고 사람의 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이 흑인을 차별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편향을 드러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목소리나 고민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대한 신화만 넘쳐난다. 특히 공공부문이 인공지능으로 사람을 뽑고 범죄를 예측하고 수사하겠다고까지 하는데 사회적인 검증 절차가 없다. 마구 도입되는 인공지능의 책임 문제를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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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23. 정보인권연구소 출범행사 [출처: 필자]


 

지금 사회운동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디지털 기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노동자와 소비자, 여성이 자신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관점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이 서로 소통된다면 사회적 힘으로 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기술은 물론, 그 배경에 있는 힘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가장 아쉬웠던 것이 독립적인 연구 역량이었다. 공론장에서 시장 논리에 맞서는 반론이 너무나 드물다. 많은 연구자들이 대부분 정부와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에서 발주자의 요구에 따른 연구에 주로 편향되어 있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일방적인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20년 전 사회운동 연대를 위해 디지털 기술 환경에 개입했던 이들은 이제 이 디지털 기술에 대한 또 다른 개입을 준비하기로 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정보인권연구소에 참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노동자, 소비자, 여성 그리고 시민사회 관점에서 정보인권을 지지하는 대안적 정책을 연구하고 생산해 보자고 또다시 뜻을 모았다. 4차 산업혁명의 정체를 파악하고, 불편함을 제기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회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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