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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1912] 염산누출 사고로 확인한 시화공단 화학사고 대응 체계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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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이슈

2019. 12. 6.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염산누출 사고로 확인한 시화공단 화학사고 대응 체계

유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지난 8월 8일 시화공단에서 염산누출 사고가 있었다.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반월시화공단에서 염산누출 사고는 2017년에도 한 건, 2018년에도 한 건 있었다. 모두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에서 사용하다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두 건을 포함하여 반월시화공단에서 발생하는 화학사고가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꽤 많은 언론이 다뤘다. 유출된 가스가 광범위하게 퍼져 주변의 많은 노동자와 작업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월담도 처음에는 언론을 통해 사고를 알고 대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단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응을 시작했지만, 월담이 그동안 화학사고를 다뤄본 적이 없어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먼저 사고 지역을 찾아 노동자와 사업주 들을 인터뷰했다. 확인해야 할 부분을 정리하여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지자체(시흥시)와 환경부(시흥합동방재센터) 면담을 진행했다. 그렇게 조사를 진행하면서 평가 지점을 남겨봤다.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폐업된 사업장에서 저장탱크와 연결된 파이프 손상으로 방류벽 내 염산 누출(폐기물 약 8톤 회수)”라고 적혀 있지만, 한 줄로 정리하기에는 고민해볼 지점이 많았다. 여전히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빈 공장에 남아 있던 염산

 

사고가 난 공장은 2002년부터 한 전자업체가 사용하다가 2년 전 폐업하여 비어 있던 곳이다. 이제 막 새 업체가 인수하여 사용하려던 중이었다. 8일 새벽 저장탱크와 연결된 파이프가 손상되어 염산이 누출되고 염화수소 가스가 주변 공장들에 넓게 깔렸다. 이 파이프가 왜 손상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고, 노후 때문이라고 환경부는 추정하고 있다. 가스가 발생하자 바로 앞 공장에서 철야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이상한 냄새가 나 119에 신고를 했다. 정부부처 담당자들이 현장에 나왔을 때에는 이미 한 차례 반응이 일어난 후 안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지정폐기물 수거업체들에 연락을 취했지만 새벽 시간이라 작업을 할 업체는 없었고, 아침이 되어 11시쯤 수거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한 번 더 가스가 발생하여 반경 50미터 이내 대피 조치가 이루어진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수거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정부의 사고 대응은 마무리 되었다.

월담은 사고 현장 반경 약 70미터 안에 있는 업체와 식당을 돌며 노동자와 사업주로부터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가 일어난 공장은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들던 곳이었지만, 주변에는 주로 금속부품을 가공하는 소규모 공장이 모여 있다.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 가장 먼저 건강상 문제를 제기했다. 사고 당시 가스 때문에 구역질이 나거나 눈이 따갑고 어지러움을 느낀 노동자들이 많았으며, 피부 발진이나 배뇨통을 호소한 사람도 있었다. 사업주들은 주로 납품 차질 문제를 호소했다. 철로 만든 제품이 녹이 슬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출근해야 했던 사업장도 있었다. 식당은 사고 당일 영업을 아예 하지 못했으며 오염된 식자재를 다 폐기해야 했다.

같은 골목에 위치한 가까운 공장들은 그나마 사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염산 수거작업 중 다시 한 번 가스가 발생하자 대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골목에 입구를 두고 있지 않은 공장들 중에는 사고가 일어난 것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출근해 보니 기계에 녹이 슬어 있었지만 원인을 몰랐던 경우, 갑자기 역한 냄새가 났지만 원인을 모르고 일하다가 집에 가서 뉴스를 보고 나서야 사고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허가받지 않은 공장

 

간단히 사고 경위와 과정을 살펴보기만 해도 많은 의문이 생긴다. 먼저, 폐업한 공장에 왜 염산이 남아 있었을까? 폐업한 공장은 유해화학물질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화학물질을 얼마나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환경부의 지도‧점검도 없었으며, 폐업하고 나서 염산을 방치하고 떠났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화학물질관리법상 염산은 ‘유독물질인 사고대비물질’로 분류된다.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는 환경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물질인 사고대비물질’의 경우 연 100킬로그램 이하로 사용하면 허가가 면제된다. 정보공개청구 결과에 따르면 수거한 염산 및 폐산의 양이 6~7톤(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 기록에 따르면 8톤)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양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허가 면제 대상일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환경부의 입장은 연간 사용량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사업주가 허가를 받지 않으면 실제 어떤 화학물질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염산을 판매하는 업체도 이 사용업체가 허가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관리감독 체계 밖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환경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공단의 폐업한 공장들을 전수 조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관리감독 체계 밖에 있어 사고를 예방할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고와 같은 경우를 방지하려면 적어도 폐업 시 현장조사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알 수 없었던 사고

 

새벽에 처음 가스가 발생했을 때는 공식적으로 사고를 알리는 과정이 없었다. 알릴 만큼 위험하고 긴급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했을 때 왜 기계와 자재에 녹이 슬어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기숙사도 있고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스가 유출된 사실 자체를 알 수 없었다.

아침에 염산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했을 때에는 반경 50미터 이내 대피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를 알리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같은 골목에 있는 사업장의 경우 직접 방문하여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외에는 차량 방송을 진행했다. 문제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로 기계를 가동하는 소리가 크거나 사무실에서 문을 닫고 일하는 경우였다. 게다가 공단에는 난청이 있는 노동자들과 한국어를 수월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아 차량 방송만으로는 충분한 대응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난이 미치는 영향의 범위가 넓은 경우 해당 지역에 있는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처럼 그 범위가 좁은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는 체계가 현재 없다고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영향 범위 안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주민과 사업주의 연락처를 확보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현재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지도 중요하다. 대피한 노동자와 사업주 들은 그들이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 이외에 화학사고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전달받을 수 없었다. 정부는 이 사고가 ‘소규모 화학사고’이기 때문에 수습작업을 중심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의 성격과 필요한 대처를 판단할 정보는 사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체계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판단은 정부가 하고 나머지는 따르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만약 화학사고가 발생해서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도 업무를 계속하라고 지시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주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고 어떠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필요한 대응이 신속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일을 계속하면 안 되는 위험한 상황이라면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자신 있게 그 권리를 행사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민주노조가 있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 현행법과 상관없이 사업주의 지시가 곧 판단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반월시화공단에서는, 정부가 화학사고에 따른 필요 조치를 충분히 전달하여 노동자의 권리와 사업주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염산유출 사고가 있었던 공장 [출처 월담].jpg

염산유출 사고가 있었던 공장 [출처: 월담]

 

 

감각의 차이

 

조사 과정에서 사고 지역 피해자들과 정부부처 담당자들 사이의 감각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정부부처 담당자들에게 이번 사고는 그렇게 크거나 심각하지 않은 ‘소규모 사고’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들이 의문을 품거나 피해를 호소하는 많은 문제들이 이미 그들에게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항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월담 조사 결과 아침에 발생한 가스로 통증을 호소한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발생한 가스의 수치를 측정했을 때 위험한 정도로 값이 나오지 않았기에 의료 지원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조치가 없었다. 물론 정부부처 담당자들도 사고 현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계속 가스에 노출되어 있던 것은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정부부처 담당자들이 ‘지금 발생한 가스의 위험 요소는 어떤 것이 있고 현재 수치가 어느 정도이니 나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 것’이라는 판단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주변 지역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판단을 할 정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접근이 대응 과정 전반에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이게 무슨 가스고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몸은 아프고 병원에 가보지 않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피해자들이 있을 때, 수치가 위험한 정도로 측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곁에서 의문을 해소하고 측정된 수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해도 되는 것인지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간극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간극 속에서 그들을 어떻게 우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어려운 점

 

이번 화학사고에 대응하면서 느낀 곤란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소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화학사고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면담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원하는 자료를 다 구하기도 어렵다. 정부부처 스스로도 기록을 남기지 않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대응 내역도 있었다. 화학사고 대응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면 ‘어느 부처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을 빨리 내리고 그나마 필요한 정보를 더 확보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역량이 부족함을 느꼈다.

화학사고가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의 문제도 있다. 염화수소 측정치가 기준치 미만이라서 이루어지지 않은 조치들이 많다. 주변 공장 노동자들은 수습 이후에도 계속 냄새가 나서 괴로운데 실제로 가스가 아예 측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조치들이 있음을 제기해야 하지만, 피해자들의 경험과 이 측정치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그 기준 자체가 너무 높게 잡혀있는 것인지, 측정기의 정확도 문제인지(그렇다면 이번 사고에 사용된 측정기는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다른 가스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실제로 냄새의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겼지만, 확인하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화수소는 노출된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그 영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너무 늦게 알았다.

 

 

앞으로

 

정부는 반월시화공단에서 1년에 두 차례 화학사고 대응훈련을 하고 있지만, 이 훈련이 공단의 노동자와 주민 들의 화학사고 대응역량을 키우는 것과는 사실 관계가 없다. 규제를 피해 화학사고 위험을 높이는 사업주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고 상황에 대해 알 권리‧사고 대응에 참여할 권리‧피해구제 절차를 알고 책임을 요구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월담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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