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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2103]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 /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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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소식·이슈

2021. 3. 12.

■ 보통의 인권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

 

이원호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코로나19와 주거 불평등의 심화

 

2021년 새해가 되면서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을 중심으로 한 소비 트렌드가 유행할 것이라는 새해 소비 트렌드 분석ㆍ전망을 내놓았다. 집에서 운동하는 홈트(홈트레이닝), 영업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집에서 소수의 지인들과 즐기기 위한 ‘홈바’, 베란다에서 야외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정원같이 꾸미는 ‘홈가드닝’, ‘베터파크(베란다+워터파크)’ 등 각종 신조어들을 생산해내며, 신(新)소비 트렌드를 소개했다. 집과 경제의 합성어인 ‘홈코노미’가 바이러스 확산 이후 자본주의 소비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며, 경제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안정적 직업군의 사람들은 더 독립적이고 안전한 공간을 추구하며, 더 넓고 독립적인 집과 더 쾌적하고 즐길 수 있는 집에 대한 소비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집에 머물기’, ‘자가 격리’와 같이 모든 사람이 거리두기가 가능한 적정 면적과 위생적인 시설을 갖춘 적절한 집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제시되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서 사실상 배제된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는 한 명 걸리면 다 죽어”라며 노출된 위험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뿐 아니다.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인해 자영업 피고용자, 임시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로 내몰리거나 소득이 급감하고 있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월세로 거주하고 있어 월세 미납에 따른 퇴거 위기에 놓여 있다. 그야말로 코로나 경제위기를 직면한 불안정 노동자들은 ‘해고’와 ‘방 빼’의 이중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집은 언제나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집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집이 누군가에게는 워라밸을 실현할 공간으로,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결정하는 공간으로 간주되면서, 주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2020.6.3. 무주택자의 날 만민공동회 [출처: 빈곤사회연대]

 

가난한 이들의 부고, 삶을 짓누르는 집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이 생사를 가르는 요소가 된 것은 바이러스 대유행 시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최근 가난한 이들의 부고 소식에는 집과 관련한 문제가 중첩되어 있었다. 지난 연말 동대문 여관 화재로 기초생활 수급자이자 시작장애인인 50대 남성이 사망했다. 2019년 8월에는 전주의 여인숙에서 발생한 화재로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11월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에서도 일곱 명이 사망했다. 여관ㆍ여인숙, 고시원에서 사망한 이들은 하룻밤 머무는 여행객도,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도 아니었다. 장기 투숙객이나 장기 입실자로 호명되는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가난한 이들은 그 일터에서 다행히 생존해 돌아온 집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고단한 삶의 휴식처야 할 집은, 이들에게 ‘장기방’, ‘달방’이라고도 불리는 여관, 여인숙이었고 고시원, 쪽방이었다. 행정 조사에서 ‘주택이외의 기타거처’로 분류되는 이들의 ‘집 아닌 집’은 가난한 1인 가구의 마지막 잠자리였다. 정부는 이런 비주택에 37~39만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과 중첩된 가난한 이들의 부고는 그 시설의 열악함에만 있지 않았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 불안정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민간임대시장의 전월세 값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주거권)를 발탁할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삼키고 있다. 밀린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던 송파구 반지하방 세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은 지 7년이 지났지만, 그 이후로도 비슷한 부고는 끊이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의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라는 기사에 동전의 양면처럼 밀린 월세가 따라붙는 것은, 그 ‘사회적 타살’의 한 가운데 마지막 잠자리조차 안정되지 못하는 이들의 심각한 주거비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살 만한 집에 살 권리는 ‘짐’이 되어버린 ‘집’에 짓눌려 버렸다.

 

 

주거 불평등을 부추기는 공급만능론

 

소득과 지역, 점유형태 등의 측면에서 주거 안정성의 위협을 느끼는 가구가 증가하며 주거 불평등이 심화되고, 가난한 이들의 집 문제가 목숨까지 앗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집은 부동산으로 호명되며 상품화되고 있다.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된 주택은, 공인중개사무소 유리벽에 붙은 A4용지에 진열된 상품으로 전시되어 소비를 유혹하고, 주식 거래 중개처럼 주간단위로 발표되는 주택 가격 동향은 지금 놓치면 안 된다고 패닉바잉(panic buying)의 공포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집의 투기적 상품화가 가속화되면서 문재인 정권의 주택 정책에 대한 분노가 다양한 갈래로 표출되었다. 결국 대통령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주택 문제와 관련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주거 문제에 대한 사과는 집 없는 이들의 고통과 가난한 이들의 주거 불평등에 맞닿아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과와 함께 내놓은 해법은 부동산 시장주의자들의 공급만능론 주문을 따랐다. 정부는 ‘공급 쇼크 수준’이라며, 규모와 속도를 내세운 도심 개발로 분양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2.4 주택공급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모든 가구가 한 채씩 집을 갖고도 남는다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1), ‘공급부족론’은 주거 문제 해결의 주문처럼 따라붙어 각종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주의 공급만능론자들의 진단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의 급격한 집값 상승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최근 5년간 서울․수도권의 주택 공급량은 그 전 5년 동안보다 더 늘었다. 공급이 늘어도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 이유는 근래의 집값 상승이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에 대거 투입되면서 불러온 투기적 수요의 증가 때문이고, 이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핀셋 규제로만 대응한 정책의 실책 때문이다. 현 시기 공급 주문은, 살 만한(live) 집에 대한 공급 주문이 아니라, 투기적 목적으로 살(buy) 집의 공급 주문이었다. 역대 정부마다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한 주택 공급 대책을 끊임없이 쏟아냈지만, 정책의 목적은 주거권 보장이 아닌 부동산 경기 조정이라는 경제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내 집 갖기’를 실현시켜 줄 것 같은 공급정책은, 집 부자들의 주택 수를 늘려주는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공급만능론은 주거 문제의 해법이 아닌 주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주문일 뿐이다.

 

1) 기존 주택보급률은 2002년부터 전국 100%를 넘었고, 1인 가구를 포함시켜 보완한 신(新)주택보급률로는 2008년부터 100%를 넘었다.

 

전월세 임간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공공임대주택의 확대

 

도시에서 열악한 주거와 높은 주거비로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주거정책은,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라는 것이 분명하다. 분양아파트 위주의 주택공급으로 집값이 안정된다 해도, 집은 기본적으로 비싸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노동 소득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집을 구매하기란 불가능하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주거권적 접근의 정책이, 그래서 중요하다.

작년 7월 뒤늦게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을 포함하는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었고, 블랙마켓으로 방치된 임대차 거래에 대한 ‘전월세신고제’를 도입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세입자 권리가 30년 만에 일부 도입되었지만, 기한 없는 갱신권을 보장하는 해외사례와 달리 1회의 갱신권만 보장하고, 신규 임대차를 통제하지 않았으며, 공정임대료제도2)는 빠졌다. 전월세신고제의 본격적인 시작도 올해 6월 이후로 미뤘다. 부족한 세입자 보호 장치는 민간의 전월세임대주택 시장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한국 정부가 ‘착한 임대인’만 찾고 있을 때, 유럽 국가들에서는 임대료 미납에 따른 강제퇴거 금지(퇴거 모라토리움)나 임대료 동결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했다. 이러한 즉각적인 정책이 가능했던 것에는 기본적으로 민간 임대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장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의 전월세 임대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갖기 위해서도,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은 중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는 주거권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정책이다. 100년 전부터 사회주택을 공급해 온 서구 복지국가보다 많이 뒤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 이후 공공임대주택은 주거복지 실현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어 왔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거의 보장은 저소득층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의 전월세 임대주택 시장에서 적절한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거나 최저주거기준 이하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공공임대주택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왔다. 민간의 높은 전월세를 감당하기 버거운 이들의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소요가 높아, 도심의 공공임대주택 경쟁률은 몇십 대 일, 심지어 몇백 대 일에 이르기도 한다. 역대 정권마다 공공임대 주택 공급을 주요한 주거복지 정책으로 제시해 왔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는 전체 주택의 5% 수준에 불과하다.3) 지금 획기적으로 공급해야할 집은, 사고파는 투기적 분양 아파트가아니라, 장기 공공임대주택 이어야 한다.

 

2) 독일, 프랑스 등에 도입되어 있는 공정임대료 또는 표준임대료 제도는, 민간의 임대주택에 대한 다양한 정보(유사한 종류, 크기, 시설, 위치, 임대료, 경제적 환경, 지역 생계비지표 등)를 토대로 공정(표준)임대료를 산정하고 세입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공정(표준)임대료는 임대료관련 분쟁 발생 시에 법적 근거로 활용되며, 임대인이 임대료를 인상하려면 표준임대료 기준 등에 따라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공정(표준)임대료 산정에는 세입자 대표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등을 통해 결정한다.
3) 전체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2018년 기준 7.5%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5년 10년 후 분양되는 임대주택과 민간의 전세주택을 임차해 공급하는 전세임대주택을 제외하면 5% 수준이다.

2021.2.18. 동자동 공공주택공급에 대한 쪽방 주민 참여 보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이원호]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

 

최근 아파트 소유자들이 ‘집값 수호’에 대한 욕망으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며 낙인을 강화해 공급을 가로막고 있다. 한편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질 좋은 중산층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기본주택을 비롯한 최근 중산층 공공임대주택 논의에서도, 그동안의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저소득층의 집단화에 두는 경향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질적 개선과 도약이 필요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며 주거안정을 누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낙인을 전제로 해 중산층 임대주택 정책을 정당화하는 전략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공간을 빼앗는 역진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슬럼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아무런 권리도 부여하지 않고 수혜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방치해 왔던 것이 문제였다. 가난한 이들이 꿈꾸던 집인 공공임대주택이 질적으로 개선되기 위한 여러 방안과 가능성과 책임을 뒤로 하고, 중산층 임대주택을 통한 계층혼합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그들의 집과 마을(단지)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서, 그 곳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부여된다면 어떨까? 최근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면서 쪽방 주민들이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쪽방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비록 열악한 쪽방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그 안에서 이미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유대의 자치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다. 이들은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이러한 주민들의 참여와 자치적인 운영의 권리가 보장되고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집 때문에 삶이 짓눌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거권 보장은 쫓겨날 걱정 없는 적절하고 안정적인 집을 공급하는 것에도 있지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소유하지 않았어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공동의 통제권, 그 집과 동네를 함께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온전한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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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슈 - [질라라비/202103]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 / 이원호

■ 보통의 인권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집을 넘어 집에 대한 권리 이원호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코로나19와 주거 불평등의 심화 2021년 새해가 되면서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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