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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2104]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의 양상과 우리의 역할 /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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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소식·이슈

2021. 4. 9.

■ 보통의 인권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의 양상과 우리의 역할

 

홍명교 • 플랫폼C 활동가

 

 

 

지난 2월 1일 아침. 수십 대의 군용 장갑차가 미얀마 의사당을 향해 진격했다. 매일 아침 의사당 앞에서 줌마 댄스를 추던 킹 흐닌 와이(Khing Hnin Wai) 씨는 바로 등 뒤에서 역사의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날 개회할 예정이었던 미얀마 연방의회(상원)는 열리지 못한 채 해산됐다.

이후 3월 22일 현재까지 50일간 미얀마는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군부가 다시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이토록 잔혹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미얀마 노동자 민중이 이토록 강경하게 목숨을 건 저항에 나서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미얀마 민중은 스스로 이것을 시민불복종운동(CDM)이라 지칭하고,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미얀마 민중과의 연대도 보다 구체적이고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양곤 시내 거리 시위 현장 [출처: Myanmar Now]

 

노동자가 주도하는 투쟁

 

군부에 맞선 저항이 본격화된 것은 2월 2일 밤부터다. 시민들은 테라스나 창문가에서 냄비 등 물건을 들고 소음 시위를 벌였다. 지나가던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며 이 행동에 동참했다. 탱크의 무게에 짓눌려 움츠려 있던 시민들은 용기를 갖기 시작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집 밖으로 나와 냄비와 그릇을 두드리고, 1988년 항쟁 이래 대중봉기가 폭발할 때마다 불리던 '세상은 끝나지 않을 거야'를 불렀다.

이튿날인 3일에는 30여 개 도시 70여 개 병원에서 의료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은 빨간 리본을 달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저항할 것을 표명했다. 미얀마 출신의 인류학자 제프리 아웅(Geoffrey Aung)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일찌감치 저항을 시작했고, 의류제조업 노동자들이 초기 대중 시위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섰다는 점도 미얀마 민중시위의 특징이다. 시위 초기 군부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19세 여성의 죽음은 수많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를 자극했다. 여성 노동운동가 마모에 산다르민(Ma Moe Sandar Myint)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역경을 무릅쓰고,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싸우고 있어요. 특히 봉제노동자연맹의 지도자는 대부분 젊은 여성들인데요. 이들은 투쟁에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며 희생하고 있어요. 심지어 이혼도 기꺼이 감수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노동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오랜 세월 군부 독재 체제를 고수하던 군부 세력은 더 이상 그와 같은 상태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미얀마는 테인 세인(Thein Sein) 정부 이후 경제 개방과 형식적인 민주화 개혁을 통해 경제 제재의 해제를 관철시켰다. 2011년 10월, 집회와 시위를 허용하는 법이 제정됐고, 사측에게만 우호적이었던 노동조직법을 노조설립과 파업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이 최초로 설립됐다. 2012년 3월에는 노동쟁의법을 만들어 제한적이나 쟁의행위가 가능해졌고 부당노동행위 역시 금지됐다. 최소 30명 또는 사업장 내 10퍼센트 이상이 가입하면 노조 설립이 가능해졌다. 미얀마를 탈출했던 노동운동가들은 하나둘씩 귀국했고, 노동운동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3년 7월 기준 등록된 노동조합은 600개를 넘어섰고, 15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조직되었다.

특히 제1도시 양곤 남서부에 위치한 흘라잉따야는 노동자운동이 가장 강력한 공단지역이다. 우리로 따지면 60~70년대의 구로공단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는 지난 10년간 조직적인 노동운동의 기운 속에서 성장한 다수의 젊은 노동자들이 있다. 초기 태업과 같은 형태로 이뤄지던 저항은 전면 파업과 공장 밖 가두시위로 바뀌었고, 정부를 대상으로 한 시위도 빈번해졌다. 가령 봉제공장의 노동자들은 아웅 산 수치 정부 시기에도 다양한 양상의 노동 정치를 펼쳐왔다. 2017년 1월엔 임금 체불에 맞서 200여 명의 파업이 있었고, 같은 해 5월에도 이 지역 노동자 350여 명이 노동법상 휴가규정, 초과근무, 최저임금 준수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2018년 봄에는 최저임금 인상안 즉시 적용을 요구하는 500명 규모의 파업도 이곳에서 있었다.

지난 3월 14일, 이곳 흘라잉따야에서 74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기업이 세운 공장과 중-미얀마 합작 공장 두 곳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나자 군이 이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가장 격렬한 저항과 강경한 진압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 봉제공장이 밀집한 흘라잉따야라는 사실은 지금 미얀마 저항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방증한다.

반면 공장주들은 미얀마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공장 생산이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도리어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항의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항쟁 초반부에 노동자들이 휴가를 얻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묵인했던 자본가들은 다시 휴가에 대한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저임금 하청 공장에서의 생산이 지연될수록 봉제공장 자본가들의 이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의류공장 경영진들은 군부와 경찰 측에 협조해 노동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있다. 공장주와 관리자들은 집정 권력이 누구든 무관심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장 정상화뿐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들은 쿠데타를 뒤집어엎고 민선 정부를 회복시키길 원한다. 군부 정권하 노동자들의 생존과 권리가 극단적으로 위협받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군부 정권에서 우리는 계속 고용주들을 정부에 고소할 권리가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예감한다. 당국으로부터 더욱 강력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될 게 뻔하다.

그 때문에 국제 노동운동 진영은 미얀마 노동자들에 연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쿠데타 직후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은 성명을 통해 군부 쿠데타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국제제조업노조연맹 역시 “미얀마 군부는 민중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택을 인정해야 하며 국제 인권기준을 따라야 한다”며, “윈 민과 아웅 산 수치 등 정치인들을 무조건 즉시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어서 2월 19일 국제제조업노조연맹은 미얀마에 하청공장을 둔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과 함께 군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제조업노조연맹과 글로벌 의류기업들은 “우리는 우리의 사업 운영과 공급사슬에 있어서 인권과 노동권, 특히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인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며, “미얀마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가 이행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미얀마에 위치한 200개 이상의 공장들에서 노동조합과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극단적 폭력이 이뤄지는 도시에서 이런 협약만으로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미얀마 봉제업에 대한 한국 자본의 투자도 적지 않다. 미얀마 한인봉제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미얀마 봉제산업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신성통상, 오팔, 미얀스타 등 83개에 달한다. 봉제와 자수, 액세서리 등 여러 부문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이 공장들에 고용된 현지 노동자들만 약 1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노동조합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얀마 민중들의 포스트잍 메시지들 [출처: Thompson Chau]

 

미·중 분쟁과 미얀마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권역에 속한 11개 국가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는 크게 대륙부 5개국과 도서부 6개국으로 나뉘는데, 미얀마는 과거 ‘인도차이나반도’라 불리던 대륙부의 가장 서쪽에 있는 나라다.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 인도와 접하고 있고, 북동쪽으로는 중국 윈난성, 동쪽으로는 라오스, 태국과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7배에 달하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이만 2,185km이다.

오늘날 이 지역을 ‘인도차이나반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제 별로 없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흔하게 부르던 지역명이기도 하다. 단순히 인도와 차이나(중국)의 사이에 위치해있다고 해서 호명된 이 명칭은 19~20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역겨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17세기 이래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출몰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 수십 년에 걸친 영국의 침략 끝에 꼰바웅 왕조는 멸망을 맞이한다. 그 후로 1886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62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고통받았다.

독립으로부터 73년이 지났지만 제국주의의 그늘 아래 미얀마의 봄은 요원하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혹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을 통해 90년대 이후 중동에 집중되었던 미국의 대외전략을 아태 지역으로 전환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시기의 전략을 조정한 것이 2017년 미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이다. 개혁개방의 성과로 세계 2위 경제대국(2019년에 이르러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퍼센트로, 미국 24퍼센트에 이은 두 번째)으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 및 차단하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 구상이다.

이에 맞선 중국의 전략이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연결고리를 넓히고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을 설립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구상해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제안하는데, 세계체제 내 중국의 일정한 역할과 수평적 관계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 그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한 국제질서를 심대하게 위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018년 무역 분쟁과 2019년 홍콩 항쟁을 둘러싼 갈등, 2020년 대만해협에서의 무력 시위 등은 모두 이와 맞닿아 있다.

한데 미얀마는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가장 뜨거운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를 봉쇄당한 중국은 ‘일대일로’의 완결을 위해 미얀마라는 통로를 통해 인도양과 아프리카로 뻗어나가 원자재와 각종 물자를 직접 옮기길 바라는데, 최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인도, 히말라야라는 고지대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파키스탄을 제외하고는 미얀마가 가장 유력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는 꽤 오랫동안 미얀마에 공들여왔다. 지난 군부 독재 시기 미국에 비해 나쁘지 않은 관계를 쌓아온 사실은 대미얀마 경제제재가 이뤄지던 시기 중국이 미얀마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2017년 9월 양국은 ‘중국-미얀마 경제회랑(China-Myanmar Economic Corridor)’ 구축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윈난성 쿤밍에서 미얀마 만달레이와 서부 벵갈만에 위치한 차우퓨, 양곤을 연결하는 약 1,700㎞에 달하는 회랑을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말라카해협(싱가포르)과 남중국해를 거치지 않고도 송유관을 통해 아프리카와 중동산 원유 수입이 가능해졌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상 일대일로의 핵심 사업이고, 중국 미래전략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얀마는 자본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중국이 대결하는 각축장이 된 걸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를 돌아보면,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라 할 만큼 국내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다. 빈부격차는 벌어졌고, 한편에서는 수억 달러의 IT자본가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난한 농민공들이 넘쳐 흐른다. 리커창 총리 스스로 고백했듯 약 6억 명(40%)의 사람들이 월 수입 1천 위안(17만 원) 미만이다. 중국 정부는 자생적으로 싹트는 노동자운동은 짓밟고 있고,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들은 모조리 체포해왔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의 대결을 ‘기존 자본주의 모델’ 대 ‘권위적 자본주의 모델’의 대결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야만의 대결 앞에서 반드시 하나의 모델을 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미얀마 노동자들의 저항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미·중 양국 사회와 달리 노동권이 보장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그렇다면 우리는 미얀마의 민주 항쟁에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무엇보다 현대 미얀마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모순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미얀마에는 인구 68%를 차지하는 버마족만이 아니라, 카렌족과 샨족, 카친족, 몬족, 한족, 로힝야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데 이들 소수민족들은 군부 독재 시기 이루어진 버마족 중심주의 정책으로 인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북부와 동부 고산지대에 다양한 소수민족 반군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들 소수민족들에는 대다수 버마족 노동자 민중처럼 군부에 대해 비판적이며 오랫동안 총을 들고 저항해왔다. 한데 각 민족들 사이에는 그 고유의 갈등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 관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로는 미얀마 민중의 저항에 제대로 연대하기 어렵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남부 라카인주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동인도 출신 이슬람교도 공동체를 지칭한다. 미얀마 식민통치 시기 영국은 미얀마에서의 농업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인도에 살던 다수의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흘러들어온 로힝야 사람들은 라카인주 일대에 살기 시작했는데, 잘못된 과정 속에서 기존에 미얀마에 살던 다른 민족들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이루어진 라카인주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은 이런 불행한 역사에서 기인한다. 한데 2015년 총선 승리로 정권을 맡은 아웅 산 수치와 민족민주연맹(NLD)은 이 문제에 대해 슬기롭지 않았다. 군부의 로힝야 학살에 대해 침묵했으며, 심지어 2019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 피고인으로 출석해선 군부의 학살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NLD의 이와 같은 과오는 그마저 실체가 불분명한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등을 돌리게 하는 불운을 낳았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군부 세력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NLD는 지난 시기의 과오에 대해 반성해야 하고, 경제 정책상의 오류나 소수민족들과의 잘못된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비록 군부에 의해 참혹하게 짓밟히고 있는 불가역적인 상황을 겪고 있긴 하지만, 새로운 비전을 통한 항쟁만이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 당선된 의회는 군부에 의해 해산됐지만, 상당수의 의회 구성원은 ‘임시정부’를 선언하고 군부에 맞서고 있다. 바로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다. 이들은 사실상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 저항의 정치적 구심 역할을 하고 있고, UN에서도 유일하게 특사로서 인정받아 목소리 내고 있다. 이들에게 모든 것을 제대로 이끌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전히 중심이 되어 저항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최근 CRPH는 소수민족 반군들과 연합하여 연방군을 구성하겠다고 공포하고 나섰다. UN 차원의 개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에서의 저항이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NLD가 소수민족들과 갈등을 겪어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이를 계기로 삼아서라도 1948년 아웅 산 수치의 부친 아웅 산 장군의 주도로 ‘연방 민주주의’를 약속했던 ‘팡롱 협정’의 정신이 회복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군인들의 총기 난사와 학살이 여전한 상황에서 그저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여전히 항쟁의 중심은 ‘총칼’보다는 노동자 총파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군부의 돈줄을 옥죄고 정치·사회적 압박을 강화할 수 있고, 군부가 틀어쥐고 있는 미얀마 자본에 맞선 힘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얀마의 민주 항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3월 22일 현재 미얀마 현지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최소 250명에 달하고, 수천 명이 구속된 상황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 사람들이 쉽게 말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들이 있다.

 

2021.3.3.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미얀마 시민들을 향한 미얀마 군경의 폭력을 규탄하고 한국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고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홍명교]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에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첫째, 대중 캠페인이다. 현지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미얀마 노동자들의 저항에 적극 연대하고, 대중적인 캠페인을 이어나가는 것은 미얀마 민중에게 큰 힘이 된다. 둘째, 미얀마 군부와 연결된 국내 자본의 투자를 철회하게 하고, 규탄 행동을 이어나가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가령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해왔는데, 여기서 미얀마 석유 및 가스공사(MOGE)에 가는 수익 중 절반 이상이 불투명한 기타계좌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이 자료를 통해 폭로된 바 있다. 셋째, 저항 세력에 대한 모금 활동이다. 현재 국내에는 미얀마 항쟁에 연대하는 여러 종류의 모금 계좌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미얀마 내 NLD 공무원들에게 가는 돈이 있는가 하면, 어디로 흘러가는지 불명확한 모금도 있다. 현지의 저항 세력과 활동가들에게 모금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대중 저항을 지속시킬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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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슈 - [질라라비/202104]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의 양상과 우리의 역할 / 홍명교

■ 보통의 인권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항쟁의 양상과 우리의 역할 홍명교 • 플랫폼C 활동가 지난 2월 1일 아침. 수십 대의 군용 장갑차가 미얀마 의사당을 향해 진격했다. 매일 아침 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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