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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2105] 싸우는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 오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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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소식·이슈

2021. 5. 15.

■ 살아가는 이야기

 

싸우는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오춘상 • 길벗한의사회, 철폐연대 후원회원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기에 노동자 건강에 관한 글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니 쉽게 여기고 그러겠노라 했다.

그런데 말이다.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자꾸 걸리는 게 있어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을 붙였다.

싸우는 노동자!

불의한 세상과 싸우는 노동자!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수작에 저항하여 싸우는 노동자!

해고를 일삼는 자본에 주눅 들지 않고 맞짱 뜨는 노동자!

 

‘싸우는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로 제목을 정했다.

 

“싸우는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진료실에서 아픈 이들에게 묻는 공통된 말이 있다.

음식을 잘 먹는지, 소화가 잘 되는지, 똥오줌을 잘 누는지, 잠을 잘 이루는지 등이다.

아픈 이와 처음 만날 때 주로 묻는 말들이다.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하는 가장 기준이 되는 말들이다.

이 기준들에 잘 맞으면 큰 병 없이 건강한 몸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이런 기준에 잘 맞았음에도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전혀 없진 않지만….)

진료를 하다 보면 입맛이 좋아졌다거나 이루지 못했던 잠을 몇 시간 더 잘 수 있게 되었거나 변을 잘 누게 되었다거나 하면서 몸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호소하는 불편(병)이 아님에도 먹고 자고 누는 일이 좋아지면서 낫는 수가 있다는 말이다.

 

길 위에서 싸우는 노동자들 대부분 오랜 노숙농성으로 몸이 많이 상해 있다.

만성피로, 수면장애, 소화불량, 전신 또는 부분 신경통 및 관절증(염증 통증) 등은 신기하게도 대부분 기본으로 달고 있다.

대부분 진료실에서 오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싸우는 노동자들에게도 먹고 자고 잠자는 일은 마찬가지로 건강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우선 잘 먹어야 한다.

건강에 좋은 먹거리로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먹어야 한다.

대부분 농성장이 큰길 가에 있어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잠은 음식만큼 중요하다.

우리 몸은 깨어있는 동안 만들어 낸 찌꺼기(피로물질)를 잠든 사이에 해결(해독), 회복하는 일을 한다.

잠을 얼마만큼 깊이 잤느냐에 따라 이 일의 성패가 결정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무겁고 상쾌하지 않다면 이 일이 잘 안된 것이다.

밖으로 내보내야 할 찌꺼기들이 몸속 구석구석에 쌓여가는 것이다.

만성피로의 원인을 따져 보면 잠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깊은 잠이 중요한 이유다.

 

싸우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몇 있다.

 

2021.1.31. “청와대 노숙단식 41일,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의료진ㆍ인권단체 기자회견 모습. [출처: 한경아]

 

#1. 단식, 당장 멈추게 하고 싶은

 

“정홍형, 김우 마지막 두 사람이 구급차에 실려 녹색병원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단식이 매듭지어지는 순간 처음으로 연대를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 ‘김진숙 복직을 위한 리멤버 희망버스’ 청와대 단식단을 지켜보면서 나의 한계를 느꼈다.

한 사람, 한 사람 한계 상황에 부딪쳐 떨어져 나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고생했다, 복식 잘해라 정도였다.

이렇듯 단식농성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이탈(목숨과 관련된) 싸인(혈압과 혈당 맥박수 체온)을 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 수치들에 초조해하면서 억지로 버티지 말자, 힘들면 그만하자, 너무 무리하면 후유증 남는다, 몸무게가 15% 넘게 빠지면 위험하니…

하루 이틀이 열하루 열이틀이 되어갈 무렵 아직은 견딜 만하겠지만 조금 더 지나면 힘들 테니 지금부터 이러저러한 수칙을 잘 지키자… 뿐이다.

어느새 스무 날을 넘기고 한 달을 향해 가고 있을 땐 한겨울 추위와 그늘막 하나 세울 수 없는 청와대 앞마당에서 온몸으로… 뙤약볕에 드러난 얼굴이며 손이 온통 거멓게 그을린 단식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무기력한 말이 전부였다….”

 

다시는 단식농성장에 안 가겠노라고 마음먹고 썼던 글(일부)이다.

잘 먹게 하고 부족하면 약으로 채워주는 일이 의사로서 자연스럽고 당연함에도, 단식농성하는 이들에게는 부자연스럽고 당연하지 못하다.

단식을 그만두게 해야 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최선인데 그 최선을 뒤로 미루고 밥 굶는 일을 전제로 한 의료연대를 하게 된다.

힘들고 아프면서도 아닌 척하며 연신 괜찮다며 수십 일을 버티는 단식자들의 옆을 지키는 일 또한 피가 마를 일이다.

단식농성장을 찾는 일은 여느 농성장을 연대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연대를 지속할수록 단식자의 힘듦과 공감, 공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과의 싸움에 허기와의 싸움이 얹혀 단식자의 고단함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40일이 넘어가면, 몸무게의 15% 이상이 빠지면 목숨이 위험하게 된다.

실제로 단식 45일을 넘기다가 목숨을 잃은 아일랜드 교도소의 기록이 있다.

그래서 40일이 다가오거나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졌을 때에는 하루하루를 초긴장하며 보낸다.

단식자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까지도 언론도, 자본도, 권력도 단식을 멈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40일을 훨씬 넘기는 극한 단식에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48일 동안의 청와대 앞 단식에도 김진숙은 일터로 돌아오지 못했잖은가?

 

2018.4.15. 박준호, 홍기탁 파인텍 해고 노동자 두 사람이 고공농성 중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 위로 건강검진을 위해 오르는 필자의 모습. [출처: 오춘상]

 

#2. 고공농성, 다시는 안 올라가고 싶은

 

“… 지난 1월 14일 이후 91일 만에 다시 굴뚝 위 두 사람을 만났다.

지난 이틀 동안 머리가 아픈 걸 누구한테 말도 못 꺼내고,

이리저리 한약과 양약을 잔뜩 챙겨 먹고 새벽까지 뒤척거리다가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다행스럽게도 두통은 사라졌다.

11시 5분 철문이 열리고 나선계단을 올라간다.

간밤에 진땀을 흘리고 잠을 설쳤던 때문인지

벌써부터 숨이 턱까지 차고 몸이 온통 땀으로 젖었다.

숨을 돌리고 직선으로 뻗은 사다리를 오르려고 위를 올려다 본 순간

저기 하늘과 가까운 작은 동그라미에 그보다 작은 검은 동그라미 하나

둘 중 누구의 얼굴인지 여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얼굴을 확인했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위에서 검은 손이 대꾸한다….”

 

2018년 4월 15일 두 번째로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을 오르고 돌아와 쓴 글 일부이다.

고공농성장에 연대를 할 때마다 학교 다닐 때 노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은 지기(地氣-땅기운)를 받고 살아야 건강하다. 요즘 사람들은 고층빌딩에서 일하고 고층아파트에서 잠을 자니 땅기운을 받지 못해 소화기(消化器; 소화와 관련된 장기, 기관) 질환에 걸리기 쉽다.’며 높은 층 좋아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고공농성은 농성자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일이다.

고공을 향하는 이들은 오히려 땅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해 철탑을 오르고 굴뚝 위에 매달린다.

공동체와 격리된 채 수십, 수백 일을 하늘 위에서 흔들리는 것이다.

농성자의 몸과 마음 모두 흔들리는 철탑, 굴뚝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다.

고공의 그곳은 건강을 위한 그 무엇도 제대로 갖출 수 없는 공간이다.

먹고 입고 배설하는 일이 모두 투쟁이 되는 곳이다.

건강을 생각하기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아래로 내려와 땅을 밟아야 비로소 상식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2017년 11월에 시작한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농성은 아래에서 여럿의 단식과 심지어 굴뚝 위의 단식에 이르러서야 2019년 1월에 굴뚝 위에서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단식농성과 고공농성 모두 건강과 반대되는,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방법이기 때문에 걱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자본과 권력을 향한 분노로 많은 이들이 연대를 하게 된다.

단식하는 이들이 밥으로 배를 채우지 못하는 허기를 연대자의 온기로 채워 준다.

저 높은 곳에서 하염없이 흔들리는 농성하는 이들에게 연대는 땅과 이어진 생명줄이며 곧 땅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된다.

연대는 또한 해고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

해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깔고 누운 그 때 그 시간부터 그이들은 죽음의 시간을 맞게 된다. 언제 어느 때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복직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버텨내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연대가 절실하다. 구덩이에 빠진 수레를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게 하듯, 연대는 해고 노동자가 죽음과도 같은 해고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데 앞과 뒤에서 당기고 밀어주는 힘이 된다.

그래서….

연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모든 싸우는 노동자들이 연대 덕분에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던가.

연대는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밥이고 잠이고 보약인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으로 발언의 매듭을 짓는다면,

나는 ‘끝까지 건강하게 투쟁!’하자는 말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당부한다.

투쟁의 결실을 건강한 몸으로 받아 안을 수 있도록, 싸우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끝까지 건강하게 투쟁!

 

#덧붙임

 

1.

나는 나 편하자고 연대한다.

한두 번 연대로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고

한두 번 다녀오는 것으로 생색만 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서

일단 연대를 시작하면 끝까지 함께 하려고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내 맘 편하자고 연대한다.

 

2.

명진 스님의 글을 보면

“…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는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하는 확실한 순간이다. 연대를 뜻하는 불어 ‘솔리다리테(solidaarite′)’는 라틴어 솔리둠(so′lidum)에서 왔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동체 속에서 함께 머무를 뿐 아니라 공동으로 책임지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3.

잠깐 사이에 (내) 혈압이 142/92 82(회/분)에서 123/77 75(회/분)로 바뀌었다.

1시간쯤 책을 열중해서 읽고 난 다음 잰 혈압이 높은 기록이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깊은숨을 쉬면서 잰 혈압이 정상으로 나온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의 심호흡에 고혈압에서 정상혈압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깊은 호흡은 교감신경을 안정되게 하여 혈압을 낮추고 맥박수도 줄어들게 한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며 귀가 먹먹하고 자꾸 입이 타들어가고 가슴이 답답할수록 아랫배에 힘을 주고 깊은숨을 쉬자.

가슴에서 나오는 한숨이 아니라 아랫배 깊이 들어갔다 나오는 깊은숨은 생명을 살리는 숨쉬기다.

날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깊이 쉬도록 하자.

화나 스트레스로 기운이 위로 오르면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간다.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면 혈압이 올라간다.

반대로 하체(골반, 다리)를 단련시키면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 아랫배에 힘이 붙는다.

아랫배에 힘이 실리면 혈압이 떨어진다.

 

http://workright.jinbo.net/xe/issue/73648

 

투쟁/이슈 - [질라라비/202105] 싸우는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 오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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