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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202110] 기후정의운동 “체제전환 없이 기후위기 대응 없다” /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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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투쟁소식·이슈

2021. 10. 14.

■ 보통의 인권

 

기후정의운동 “체제전환 없이 기후위기 대응 없다”

 

김선철 • 기후정의활동가

 

 

 

1. 기후위기?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라는 표현은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 ‘기후위기’라는 표현은 아주 낯선 단어였다. ‘기후위기’라는 단어에는 무언가 긴급함이 담긴 것 같았는데 딱히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정부가 ‘한국판 뉴딜’과 함께 ‘그린뉴딜’을 발표하고, 연말에 ‘2050 탄소중립 추진계획’을 내놓으면서 이게 무언가 심각하긴 한 거구나 싶은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지나쳤을 장마도 기후변화로 인해 ‘역사상 가장 길었던 54일 장마’라 하니 느낌이 다르다. 날씨 예보에도 기후변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지난여름 TV 화면을 가득 채웠던 전 세계 각지의 홍수, 폭염, 산불 소식을 보면서 감이 오는 것도 같다. “아, 이런 거였구나….”

 

사실 TV 화면에서 보는 다른 나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무더위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고 폭우를 걱정한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나 냉방의 호사를 즐길 수 없는 이들에게 여름은 더 혹독했다. 지난여름 폭염으로 땡볕에서 일하던 십수 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폭염에 외출을 삼가라는 말에 푹푹 찌는 집안에 있다가 장애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산업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고도 한다.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과 경기 침체로 벌써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두 배의 속도로 일자리를 잃었다. 저녁 뉴스는 추석 연휴에도 새벽 인력 시장에 나오는 이들을 취재하고 오랜 방역을 버티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보도한다.

 

뉴스를 봐도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다.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에 목숨을 걸 것처럼 말하고 지자체나 기업들도 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나서는데 이게 도대체 제대로 가는 것 같지가 않다. 지자체들마다 그린뉴딜을 말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 무엇인가를 새로 짓겠다는 토건 사업이다. 노동자 피 빨아먹으며 환경 파괴를 일삼던 악덕 기업들은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말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 한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포스코는 삼척 맹방해안에 석탄발전소를 짓는다 하고 석유화학산업의 선두주자 SK는 ‘탄소중립 휘발유’를 내놓겠다 자랑한다. 재생 에너지 확장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산의 나무를 베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벼농사 포기하고 태양광 발전을 한다. 당연히 땅을 갈아 생활하는 농민들은 반대한다. 정부는 끊임없이 ‘포용’을 말하는데 삶이 나아지는 느낌은 전혀 없다. 집값, 전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나와 상관없는 주식시장은 쉼 없이 팽창한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덮쳐올지 조금씩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은 드는데, 그래서 나도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데, 조금 검색하다 보면 곧바로 벽에 가로 막힌다. IPCC 제1실무그룹의 6차 보고서가 어떻고 난리를 피우는데 찾아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들여다봐도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온갖 수치가 가득하고 CCUS니 하는 영어 단어까지 더해 머리가 아프다. 2030년 NDC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35% 이상이니 40%니 하는데, 목표가 높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기후위기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따라갈 수가 없으니 주눅 들고 죄책감마저 드는 것 같다. ‘기후정의’니 ‘체제전환’이니 하는 말들에 혹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2. 기후정의!

 

기후위기와 관련해 혹시라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았다면 혼자가 아니다. 기후정의운동을 하다 보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다들 기후위기, 기후위기 해서 책 찾아 공부해봤더니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아 주눅 든다는 노동자,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농토를 지키고 있는데 ‘수용성’의 대상으로, 태양광 사업의 ‘비용’으로 전락해버려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농민, ‘미래세대’라며 치켜세우지만 정작 정부 정책의 액세서리로 소비되는 것을 역겨워 하는 청(소)년, 정작 폭염과 홍수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정책상 아무런 고려도 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과 빈민. 이 모두 우리 사회에서 기후위기가 이해되고 다뤄지는 방식이 협소하고 편향되었기에 나온 문제들이다. 기존의 주류적 접근은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면서도 기후위기를 초래한 근원적 원인은 건드리지 못하고 다수 민중을 대상화시키고 타자화한다.

 

기후위기 담론은 오랫동안 녹아내리는 북극 얼음과 죽어가는 북극곰, 높아지는 해수면과 기후재난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의 실상을 알리는 것에, 그리고 2050년, 2030년과 같은 연도까지 줄여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산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후운동가들은 어떻게, 어떤 기법을 써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고민을 했고 정부 위원회에도 참여해 왔다. 그러다 보니 기후운동은 어느 정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처럼 되어버렸고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은 해법은 전문가들에 맡긴 채 에너지 절약, 플라스틱 줄이기, 분리수거와 같은 일상적 실천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후나 환경 밖에서 사회운동을 하던 이들도 접점을 찾는 것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2021.09.02. ‘탄중위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모습. [출처: 탄중위해체공대위]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갈수록 정부 정책이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 삼아 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춘 채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서민들을 배제하는 기조를 명확히 해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가기 시작했고, 탄소중립위원회의 친기업성과 반민주성, 온라인 교육 몇 차례와 이틀에 걸친 회의를 하면서 ‘숙의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정부 정책의 본질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기업 지원과 대기업 권력 강화에 의존하는 정부와 국회의 ‘탄소중립 녹색성장’은 기후위기를 가져온 현 체제의 연장만을 꾀할 뿐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은 불가능하며, 지금 시기 절실한 신속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현 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가 없는 행위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기후정의’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주류 기후 담론은 기후위기가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책임’임을 강조하지만 기후정의는 이런 프레임은 잘못된 것임을 말한다. 작년 유엔 환경회의는 국제사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구인 일인당 평균 배출량이 연간 2.1톤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2019년 전 세계 소득 하위 50%는 이미 그 1/3도 안 되는 0.69톤을 배출하고 있고 중상위 40%는 5.3톤을 배출하고 있었다. 90%의 인구만 보면 조금의 노력만 기울여도 2.1톤 목표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상위 10%는 목표치의 12배가 넘는 23.5톤을, 상위 1%는 30배가 넘는 74톤을, 그리고 상위 0.1%는 목표치의 100배가 넘는 216.7톤을 배출하고 있었다. 누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큰지를,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상위 10%라 하면 한국을 포함해 큰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들을 말한다. 실제 2019년 한국의 일인당 탄소배출량은 12톤가량으로 최상위권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모든 한국인들이 그만큼의 배출을 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우 발전과 산업, 수송 등에서 전체 탄소의 80% 가량이 배출된다. 반면 아파트와 상가를 포함한 가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모든 국민이 집에서 전기와 도시 가스를 끊고 탈문명화된 삶을 산다 해도 한국이 배출하는 탄소의 10% 남짓 밖에 줄일 수 없다. 반면 포스코라는 기업 하나가 한국이 배출하는 탄소량의 12%를 차지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 어디를 봐야 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이런데도 정부는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의 탄소 배출을 규제할 생각은 안 하면서 모두의 문제이자 책임이라는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더 큰 부정의(injustice)는 이렇게 문제를 유발하는 놈 따로,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 따로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정의는 정부의 소위 ‘탄소중립’ 정책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누구는 조금이라도 더 정부 정책을 진전시켜야 한다며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한 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주류 환경단체 중심으로 이끌어져 왔던 기후운동판 외곽에 있던 노동자, 농민, 청년, 장애인, 소수자 등이 참여하는 ‘탄중위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대위’가 출범했고 기후정의운동의 방향타를 제시하려는 ‘기후정의선언 2021’과 같은 팸플릿도 발간되었다. ‘체제전환을 위한 청년시국회의’ 활동가들은 9월 17일 ‘청년의 날’ 행사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별관 입구 안에 들어가 교육, 고용, 주거, 성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기후정의가 청년정책’이라며 기후정의를 실현할 것을 외치다 열두 명이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하였다.

 

2021.09.17. ‘체제전환을 위한 청년시국회의’ 활동가들이 ‘청년의 날’ 정부 행사에 앞서 정부서울청사로 기습 진입해 규탄시위를 벌였다. [출처: 청년시국회의]

 

바야흐로 한국 사회 기후운동은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초기 기후운동은 ‘기후위기 직시하라’, ‘지금 당장 행동하라’, ‘탄소중립 실현하라’와 같이 정부와 국회의 행동을 촉구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녹색성장’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추진계획이 기후위기를 가져온 현 체제의 연장을 꾀할 뿐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책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지금 시기 필요한 급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현 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가 없는 행위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전에는 무언가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모였다면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이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의 핵심에는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증대되는 사회 불평등과 민주주의 퇴행이 성장과 이윤만을 좇는 이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기에 체제 전환 없이 모든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기후정의의 문제의식이 있다.

 

 

3. 기후정의운동

 

자본주의가, 기업들이 기후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사실은 기후운동판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주류 기후운동 활동가들도 세계 100대 기업이 지구상 탄소배출의 71%를 배출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기후변화 말고 체제변화’ 같은 피켓을 든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변화의 내용은 탈자본주의적이지도, 탈체제적이지도 못하다. 입으로는 ‘담대한 전환’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부나 탄중위의 논의에 개입해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수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려는 경향을 보이기 일쑤고 ‘체제변화’를 말하지만 정작 판을 뒤엎자거나 기업을 직접 규제하자는 요구를 내거는 것조차 주저한다. 현재의 질서를 벗어나야 기후위기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현재의 질서를 흔들고자 하는 시도는 ‘현실 정치’의 논리를 앞세워 무력화하려 한다.

 

이런 와중에 화석연료산업을 통해 이윤을 축적해왔던 기업들은 기존의 화석연료산업에 더해 ‘녹색산업’에까지 진출하며 이전보다 더 큰 이윤을 축적하고 있고, 정부는 기후위기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과 자본가들을 ‘기후위기 해결사’인 양 치켜세우고 있다. 포스코 CEO 최정우는 환경부의 ‘고고 챌린지’에 참여해 일회용기 사용을 줄여 기후위기 극복에 기여하겠다 기염을 토하고, 현대자동차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듯 2035년부터 유럽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 자랑한다(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시켰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탈플라스틱을 요구하지만 대기업들이 무제한으로 생산해 내는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도 없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무서운 것이 없어 산업 전환을 위한 정부의 지원에 더해 노동자 해고까지 쉽게 해 달라 요구한다.

 

전대미문의 기후위기를 유발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과 재산과 건강을 빼앗은 기업들에 책임을 물어 벌하기는커녕 그들의 기세 살려주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강도 살인을 한 범죄자가 앞으로는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겠다 하니 돈 주고 지원해주는 모습과 어떻게 다를까(그런데 기업들이 나쁜 짓 계속하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니 사실은 더 나쁘다.)? 기후정의는 이런 부정의한 사회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선언이며 기후정의운동은 부정의 당사자들이 사회적 권력의 확대를 통해 이 현실을 뒤엎고 지구의 생태적 범위 안에서 사회적 필요에 따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그리고 차별과 배제가 없는 보다 평등하고 공존적인 사회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깃발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고, 취지는 좋은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되묻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미 해외 기후정의운동에서 통상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정부들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책 내용이기도 하다.

 

그레타 툰베리나 그가 주도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한국 기후운동판에서 엄청 유명한데 ‘기특한 십대’ 수준의 인식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주장이 너무 급진적이어서일까? 툰베리가 종종 하는 말 중의 하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지금의 체제가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 체제가 본디 설계된 대로 너무 잘 돌아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는 기후위기 극복도, 불평등 극복도 없다고 한다. 독일의 십대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석탄 말고 자본주의를 불태워라’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했고 지난 5월 초국적 화석연료기업 셸(Shell)의 주주총회를 앞두고는 사회화된 에너지 민주주의, 정의로운 전환, 셸이 초래한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법적, 경제적, 정치적 수단 등 가능한 모든 수를 동원해 셸을 해체’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셸이 자신의 사업으로 인한 기후위기 영향을 알면서도 숨기고 무해한 척 행세했던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2021년 9월 24일 글로벌 기후파업 포스터

[출처: Fridays For Future 인스타 포스트 https://www.instagram.com/p/CQ02B4WhBUf/?utm_source=ig_web_copy_link]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주도한 9월 24일 글로벌 기후파업 슬로건은 #체제를뒤엎자(#UprootTheSystem)였는데, 이들은 역사적으로 부정의한 체제를 통해 이득을 봤던 부유한 엘리트들이 기후위기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배상할 것과 북반구가 급격한 배출량 감축을 이룰 것, 공정한 백신 공급, 부채 탕감 등을 주장했다. 작년 여름, 독일 의회는 2038년 탈석탄 로드맵을 법제화했다. 한국의 기후활동가들은 이를 보며 부러워했으나 며칠 후 기사들은 독일의 기후정의활동가들은 우리와 다른 입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정부와 의회의 탈석탄 계획을 환영하기는커녕 기민당과 사민당을 점거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집권 기민당 당사를 덮은 거대한 검은 천에는 ‘석탄산업과의 검은 거래’를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들이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범인데 이들을 벌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전환 보조금을 지급하냐는 이유에서였다.

 

유럽 국가들과 정치 제도나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는 되려 더 급진적인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하원에서는 노동자의 정의를 확장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을 보장/보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상원에서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들어 2000년 이후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들에 향후 10년간 5,000억 불(한화 약 600조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 동시에 한화 4,100조 원이 넘는 예산안을 통해 돌봄 노동 확장, 4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무상 보육/교육과 공공 의료보험 혜택 확대,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전력 기업들에게는 재생에너지 확장 의무를 지우고 지키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게 하는 정책도 포함하고 있다. 정의40(Justice40) 정책을 통해 공공재정 투자의 40%는 가난하고 소외된 (주로 유색인종) 커뮤니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도 수립했는데, 수혜 커뮤니티의 시혜성이 아닌 역량강화(empowerment)에 강조점을 두었다.

 

물론 이런 정책이 체제 전환까지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담대한 전환’을 말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주장과 이 정도의 정책은 생각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를 유발한 이들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기후위기를 가져온 체제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당사자들에게 사회적 권력이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보다 생태적이고 평등한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운동. 다른 곳에선 이미 진행 중인 담론과 정책이 이제 한국에선 새로운 운동의 깃발로 세워지고 있다.

 

http://workright.jinbo.net/xe/issue/75092

 

투쟁/이슈 - [질라라비/202110] 기후정의운동 “체제전환 없이 기후위기 대응 없다” /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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