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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최저임금, 일자리 논쟁과 지불능력 논쟁을 뛰어 넘어 안정된 삶의 권리로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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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성명·입장

2022. 5. 23.

최저임금, 일자리 논쟁과 지불능력 논쟁을 뛰어 넘어

안정된 삶의 권리로 이야기하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2022.5.23)

 

 

 

새로 임명된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두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에 공감한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무엇보다 새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선거운동 기간 최저임금의 업종 및 지역 차등 적용을 언급한 바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 최저임금 개편 등에 대한 구체 언급은 제외되었으나,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의 수준과 결정 방식의 변화는 예정되어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쟁과 노동자들의 투쟁도 거세질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경영계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

 

최근 경총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최저임금 미만율이 역대 두번째로 높다고 주장하며,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을 문제삼았다. 지난 정부에서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역으로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을 낳았고, 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액의 조절, 특히 지역ㆍ업종별 차등 적용 제도화를 통해 인상의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미만률은 바로 최저임금 제도를 위반한 비율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지만,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감독보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낮춰서 법 위반을 없애자는 주장이 더 크게 나오고 있다. 사회적 시선이 임금을 지불하는 사업주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게 ‘지불능력이 없는데 최저임금을 자꾸 높이는 것은 결국 일자리를 없애고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오래되고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 반복된다.

 

자본의 이러한 주장은 지난 정부에서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불거진 것만은 아니다. 이미 경총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최저임금에 대한 요구는 지난 십수년 간 동일했다. 경영계는 경제위기 상황이 예고되던 2007년 당시, 2008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교섭에서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시한 이후로 지속해서 동결 또는 삭감안을 제출해 왔다. 2017년 단 한 차례 2.4% 인상안을 제시했을 뿐이며, 2009년(-5.8%), 2019년(-4.2%), 2020년(-2.1%) 세 해에는 삭감안을 제시했고, 그 외 모두 동결안을 제시했다. 불안정한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자본의 방식은 늘 가장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임금으로 고착시키는 것이었기에, 꼭 최근 몇 년 간의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작은 사업장 지불능력 약화와 저임금화의 주범은 대자본

 

물론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실제 경영의 압박을 느끼는 작은 사업장이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고용없이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경영계가 주장하듯 일자리 몇 십만 개 감소와 같은 형태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던 2018년 일자리 수는 오히려 늘어났고, 그 이후의 일자리 감소는 코로나19 위기와 구분되어 산정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저임금 탓을 하기는 힘들다. 이미 코로나19 이전에도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원청의 단가 인하 압박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수수료, 자영업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의 압박 등이 자영업자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인 문제나 여러 임금 압박의 배경은 쉽게 무시되고, 최저임금 문제는 지불능력이 없는 사용자와 더 많이 받고자 하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인 것처럼 흘러가 버린다. 대자본과의 관계에서 하도급업체나 가맹점 등은 힘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마땅한 장치를 갖지 못한 채 낮은 단가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올해 하반기에야 시행된다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해 중소기업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대중소기업간의 힘의 불균형은 뿌리 깊은 문제이다. 최저가 입찰은 사회 곳곳에서 안전을 위협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지만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다. 아래로의 계속된 비용 전가는 비용을 떠넘기는 것으로 위험과 책임도 함께 떠넘긴다. 정작 대자본은 뒤로 숨고, 최저임금위원회 교섭테이블에는 대중소기업의 사용자들이 나란히 앉아 함께 최저임금 인하와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일면 다양한 주체의 대화와 교섭의 장으로 보이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임금 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자본의 목소리가 여과없이 펼쳐지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최저임금 결정 과정 내내 대자본은 뒤로 숨고, ‘지급하는 자’의 ‘비용’ 부담에 대한 인식만 크게 키워진다. 그리고 이 ‘비용’의 논리가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는 ‘생계비’로서의 임금을 자꾸만 앞질러 간다.

 

지불능력을 우선시하는 논의속에서 수치로만 전락한 생계비 기준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보장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최저임금이 단순히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오로지 사용자의 지불능력만이 강조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가 이러한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담아 낼 수 있겠는가. 사실 이는 최저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만큼 받는 것이라거나 일한만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허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인식을 뒤덮고 있고,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했던 성과ㆍ숙련 중심의 임금체계, 임금피크제 도입 시도, 문재인 정부의 직무임금체계 도입, 그리고 새 정부가 말하는 세대상생임금체계 등 다양한 말로 표현되지만 이는 모두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 지급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에 바탕한다. 임금이 곧 노동자의 생계비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고, 합리적인 차등, 그를 통한 저비용 실현이 주된 논점이 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에서도 이런 논리는 그대로 반복된다.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차등을 주장할 때도, 연령에 따른 차등을 주장할 때도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들은 저임금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당연하게 한다. 업종ㆍ지역 차등적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사업자의 자본의 지불능력을 취약하게 하는 구조는 외면되고,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노동자가 문제로 여겨진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생계비 기준을 검토한다. 하지만 이는 수치로만 존재할 뿐 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며, 그 기준 자체도 한계적이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생계비를 활용한다.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2021년 최저임금위원회 교섭에서 경영계는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생계비의 중위값(약 185만원)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노동계는 중위값이 아닌 실태생계비 208만 4천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생계비를 두고도 해석의 차이가 있다. 노동계는 단신근로자 생계비가 아니라 가구생계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최저임금 결정시 가구생계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의 임금에서 여러 생활의 요소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주장이다. 또한 실태생계비라는 지표 자체도 한계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검토되는 생계비 통계는 전년도의 기준이고, 실제 적용될 최저임금은 다음 해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 격차도 있다. 무엇보다 실태생계비는 실제 사용한 생계비이기 때문에 사회의 표준적인 생활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 힘들 때는 있는대로 졸라매고, 형편이 나아지면 올라가는 실태생계비의 불안정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생계비 기준과 관련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너무 척박하다.

 

최저임금 결정에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보장’이라는 관점

 

임금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대립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또한 그 대립이 지나친 임금의 저하를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취지로 설정하는 것이 최저임금 제도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최소 수준은 무엇인지, 그 삶의 기준들을 가지고 최저임금에 대한 입장이 논의될 때에야 의미있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계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생계비가 아니라 자본의 지불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니 차등방안이 논의된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차등적용’을 논할 수 없음에도, 최저임금이 하향압박을 받고, 업종이나 지역,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차등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바로 모두의 권리이고, 그 인간답다 할 수 있는 삶의 수준을 함께 높여 가는 것, 그를 위해 필요한 임금 수준을 논의하는 사회적 과정이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이 조금은 진전된 방향으로 이끌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촉발되던 2000년대 초반, 최저임금 당사자인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를 상대로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며 투쟁했었다.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일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 투쟁이 곧 자신의 임금을 올릴 수 있는 투쟁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확산과 함께 비정규직 임금은 최저임금이라는 공식은 더욱 굳어졌고, 지금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여전히 최저임금위원회의 교섭은 자신의 임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한 때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투쟁을 국민임투로 명명하기도 했을만큼,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수는 많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의 공방이 담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생계 문제는 비추어지지 못했다. 주로 노동조합이 없는 작은 사업장,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이 최저임금에 묶여 있다. 그 뿐 아니다. 최소한의 생계 보장에서조차 벗어나 있는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역할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일자리의 위협이나 경제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한 책임 전가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존엄한 삶의 기초로서 최저임금제도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임금은 기업주가 벌어들인 것에서 얼마를 나누어 줄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존엄한 생활을 위한 임금은,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자본이 당연하게 보장해야 할 의무이며, 노동자의 권리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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