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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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우리의투쟁141117] ‘민주노조 괘씸죄’ 앞에 멈추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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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토론·매체]/언론기고

2014. 11. 17.

‘민주노조 괘씸죄’ 앞에 멈추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오늘, 우리의 투쟁] 공공운수노조 대전일반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신순영(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4.11.17 18:17

뉴스민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301&thread=14r01r04

미디어충청 http://www.cmedia.or.kr/2012/view.php?board=total&nid=80125&s_mode=all&s_arg=%EC%88%98%EC%9E%90%EC%9B%90%EA%B3%B5%EC%82%AC

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86556&page=1&category1=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빛을 잃은 개살구,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구조조정 한파는 이전까지의 방만하고 부도덕한 기업 경영의 관행이, 마치 노동자의 안정적인 고용에서 비롯된 것인 양 잘못된 과녁을 향했다. ‘일자리는 정규직’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정부가 앞장서서 흔들기 시작했고, 정규직이라는 말 앞에 ‘비’자를 붙인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허울 좋은 구조조정의 총구는 공공부문으로 제일 먼저 향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순위의 희생양이 되었다. 환골탈태해야 할 고위관료와 임원들의 안위는 여전했지만, 말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깊은 불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2000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수천 명의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고,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이 분신으로 저항했다. 벼랑으로 내몰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조금씩 알려졌고 여론이 들썩였다. 사회적 압박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정부는 2004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우체국과 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 일부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일정 부분 개선되었다. 


그러나 2006년 발표된 2차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는 상시 업무에 대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을 별도의 직군으로 신설해 정규직화를 대신했고 이마저도 선별적 전환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더불어 합리적 외주화의 원칙을 마련한다는 명분하에 사실상 모든 업무를 외주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정부는 이미 1998년 ‘공공부문 경영혁신 지침’을 통해 소위 비핵심업무에 대한 외주․용역화와 민간위탁화를 강제하고 이행실적에 따른 예산상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던 터였다. 2006년에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관의 업무를 소위 단순업무와 핵심업무로 임의 분류하고, 무분별한 간접고용 확산의 활로를 열었다.


참여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저임금과 차별이 상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와 삶이 개선될 여지를 원천 봉쇄하는 밑그림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 대책의 방향을 충실히 따르면서 외주화 가능한 업종을 확대했다.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장에서의 실효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9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를 계기로 현장에서는 오히려 계약해지와 해고가 빈발하는 형편이다. 공약했던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거의 모든 고용정책을 동원하면서, ‘공공기관 정상화’의 미명하에 공공부문 노동자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질 낮은 시간제 및 초단시간 일자리 확산을 위한 무리수를 강제하는 전시행정이 도를 넘고 있다. 


2004년 처음 발표된 이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해를 거듭할수록 노동권을 제약하는 형태로 퇴보해왔다. 정규직인 양 호도하는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간극을 공고하게 만들면서도 개인별 평가를 통한 전환으로 착시효과를 발휘한다. 그나마도 총액인건비에 기초한 예산 부족을 핑계로 회피하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는 손을 놓고 오히려 외주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대책의 영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공성의 훼손으로, 결국 모두의 삶을 옥죄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  2014.5.31.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선포 결의대회’ [출처: 공공운수노조/연맹]



“우리 일만 하겠다”며 만든 노동조합으로 이루어낸 변화들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한국수자원공사 본사의 용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청업체의 용역으로 일하면서도 한국수자원공사 직원들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일상적으로 따라야 했던 노동자들이 참다못해 2010년 1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십 수 년을 일하는 동안 감히 꿈꾸지 못했던 노동조합을 결성할 당시 이들에게 가장 절박했던 것은 “우리는 우리 일만 하겠다”는 당연한 요구였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 한국수자원공사의 시설관리와 미화 노동자들에게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나무 심기나 울타리 세우기 등은 당연한 것이었고, 분기별로 출장 행사에 동원되어 천막과 의자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등의 잡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사택은 물론 직원의 집에까지 불려가 보일러나 각종 고장 수리를 해야 했고, 미화 노동자들은 ‘높으신 분들’이 이사를 하게 되면 싱크대와 주방 청소를 해야 했다. 매년 1월이면 7층짜리 건물에 입주한 부서 전체가 사무실 배치를 바꾸는 이상한 연례행사에도 이들의 노동력은 당연하게 쓰였다. 용역업체의 현장소장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절, 이 모든 일들은 원청인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의 말 한 마디로 벌어지는 것이었다.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이 견딜 만하게 느껴질 만큼, 원청이 당연시하는 부당한 업무지시는 고달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용역이라고 하지만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는 처지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고용 불안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개인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었다. 현장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이자 노동자들은 마침내 돌파구를 찾았다. 90명가량의 비정규직 중 시설관리와 미화 부문을 중심으로 한 36명이 2010년 1월 19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평생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던 노동조합을 만들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본부장이 잘 지내보자며 회식 자리를 마련했고, 성심껏 마음을 다해 일했던 보람과 자부심이 노동자로서 새롭게 체감되기 시작했다.


물론 전에 없던 긴장도 찾아왔다. 관행으로 굳어져온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 없었고, 묻어두고 외면했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은 필수였다. 원·하청의 중층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숨죽였던 노동자들은 그간 당했던 이중의 착취를 걷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2011년에는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낸 교섭응낙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하청 노동조합의 원청 상대 교섭청구권이 인정되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구석진 건물 지하에서, 폐지와 쓰레기 더미 곁에서 잠시 지친 몸을 쉬고 급하게 식사를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실이 생겼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노조 결성 이후 원청은 용역업체를 분리하고, 약속했던 노조사무실 제공은 차일피일 미뤘다. 2012년 여름, 콜센터에서 전화상담 업무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가입해 조합원이 54명까지 늘어났다. 노조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 이행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원청은 파업 무력화를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이들의 현장 출입을 제지하는 조합원들을 업무방해로 고발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두 달여의 파업은 소폭의 임금 인상과 노조사무실 제공으로 마무리되었다. 파업 기간 제기된 소송은 지속되는 절반의 승리였고, 원·하청과 노동조합 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   2013.5.21. 수자원공사지회 중식 선전전 [출처: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예외의 ‘특별한 사정’은 민주노조


2012년의 장기파업은 빛과 그늘을 남겼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잡부처럼 부리면서도 유령 취급했던 한국수자원공사 건물 지하에, 민주노총 현판이 내걸린 어엿한 노동조합 사무실이 생긴 것은 가장 큰 성과였다. 하지만 파업 기간 대체인력 저지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을 업무방해로 무더기 고발한 원청은 소 취하를 끝내 거부했다. 장기화된 파업으로 노동자들은 지쳤고, 파업 기간 임금 문제는 연말까지도 말끔히 해결되지 못한 채 크고 작은 잡음을 빚어냈다. 투쟁의 피로와 후유증이 누적된 채 벌금과 재판으로 2013년이 흘러갔고, 연말이 되자 새로운 용역업체가 들어왔다. 


그리고 2014년 1월 1일 비정규직 노동자 10명이 해고되었다. 2014년 1월 1일부로 용역계약을 체결한 미화 부문의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가 면접 이후 7명에게 문자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시설관리 부문의 (주)두레비즈는 면접 이후 계약 유지 여부를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3명을 해고했다. 면접은 업체와 노동자 간의 얼굴을 익히는 형식적인 상견례로 불과 2~3분 간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잠시간의 면접이 10명의 노동자를 삶의 나락으로 밀어내는 운명의 시간이 되었다. 해고된 10명 중 9명이 노동조합의 지회장을 비롯한 집행간부와 열성 조합원이었다. 이들이 노조를 결성하기 전 길게는 십 수 년부터 짧게는 사오년씩 일하는 동안,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노동자가 ‘계약 해지’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새해 벽두부터 투쟁이 시작되었다. 폭설과 한파 속에 농성천막을 치고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함께 원직복직을 결의하며 눈물의 삭발식을 진행했다. 원치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투쟁을 통해, 인생 중반을 넘어 만난 노동조합의 의미는 다시 새로워졌다. 스스로 선택한 노동조합으로 인해 일터에서 내몰렸지만, 난생 처음 함께 싸워 얻어낸 권리와 자존을 내팽개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다시 싸움에 나섰다. 엄동설한의 노숙농성과 단식투쟁이 이어졌고, 지역의 민주당사와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무실을 점거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도록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원·하청은 굳건히 공조했고 기세등등하게 투쟁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2012년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상시·지속적 업무 담당자의 무기계약직 전환기준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에서는 별도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마련한 바 있다. 업무 외주화의 경우 ‘계약 과정을 개선하고 발주기관의 관리·감독 등을 강화함으로써 용역근로자 근로조건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용역계약 체결에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의 집단해고는 명백하게 정부 지침을 위반하는 사례다. 용역계약서에 고용승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국수자원공사도 인정했고, 그렇다면 합당한 사유 없이 10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용역업체와 원청이 계약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수자원공사는 법률 자문을 핑계로 시간을 끌고 계약해지 사유가 아니라는 결과를 내세워 책임을 외면하며 1년을 다 보냈다. 구속력도 강제력도 없는 데다 모호하고 추상적이기까지 한 정부의 ‘보호’ 지침이 오히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셈이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용역업체의 계약 체결에 있어 이전과 달라진 ‘특별한 사정’은 노동조합 설립뿐이다. 



▲  2014.1. 집단해고 이후 노숙농성 [출처: 수자원공사지회]



승리할 때까지, 다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


연말이 다가오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직면한다. 한 달 일해 받은 임금으로 다음 한 달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당장 내년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연말이 악몽처럼 반복된다. 1년 혹은 2년 단위의 계약 만료가 연말에 도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한해를 정리하고 ‘근하신년’의 인사를 나누는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체념하고 살다보면 갈수록 삶이 피폐해지고, 권리를 찾아 일어서면 모진 시련을 통과해야만 한다. 


2014년의 시작과 함께 해고된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다시 겨울을 맞는다. 당장의 생계가 목에 차오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해고 싸움은 남은 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혼란일 테고, 싸움의 하루하루는 살얼음판처럼 불안하고 두려운 걸음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럼에도 더 이상은 그대로 살 수 없어 스스로 뭉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용기를 낸 노동자들, 그 앞에 놓인 시간이 고립무원의 막막함뿐이라면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라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말잔치를 벌인다. 힘없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무수한 항목들 사이에는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속으로 권리와 의무와 책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위기와 편법을 만드는 대책의 저 편에서 돈과 법과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준비를 하고,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 대책은 오히려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깨닫게 만드는 가늠자가 될 뿐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지금껏 다시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민주노조라는 ‘괘씸죄’에 걸렸기 때문이다. 무권리의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이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도 답을 얻을 수 없는 간접고용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고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싸움도 쉽지 않은 시기, 두려움 속에서 길어 올린 용기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으로 채워온 노동자들의 긴 시간에 응원을 보낸다. 어렵사리 이어온 싸움이 연대의 결실로 마침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수자원공사지회 농성천막 [출처: 수자원공사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