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꿈 유토피아꿈

유토피아 2009. 12. 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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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섬  파랑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  물속을 거니네! 물위의 팍 유토피아숲에는 아침 햇볓 정기 받아 오는봄을 반기는가 ?

 

파랑도 물 과  땅 과  하늘은  황금알 을 잉태하며  봄 여름 거쳐 

또 다시 일천년을 무레방아처럼 돌고 돌며 쉴새없이 튕겨내는 물방울처럼

일천년 이상을 온누리 인류에 황금알을 낳으려 는가? 

물속과 하늘에 황금 알 빛나고 호반의 거위는 낳은알 거두러 가는가 ?

 

  팍 유토피아 나무 숲  그 꿈이 구현되는 초 자연적 풍경 아 !!

 

 

 

 '낙원예감'의 새 품종…열매 50종 맺는 신비의 나무

                                        


"'유토피아 숲' 으로 위기의 지구 구한다"



유실수 육종 연구로 반세기를 바친 박교수 박사가 최근 수원에 있던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을 경기도 양평 파랑도로 이전해 유토피아 숲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1960년대 초부터 호두나무·밤나무 신품종을 육종하고 새로운 접목 기술을 개발해 식량난 타개에 이바지했던 老교수가 이제 새로운 숲으로 지구의 위기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가 전하는 인생론과 유토피아 숲 이론.


강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기도 양평군 대심리의 용문사 가는 길을 달리다 보면 오른쪽 강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나온다. 팔당댐의 담수로 인해 만들어진 섬으로, 중앙선 철도인 신원 역에서 국수 역으로 가는 터널이 있는 산줄기의 산허리 낮은 곳이 물에 잠겨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이 바로 유실수 육종 연구로 한평생을 보낸 박교수(朴敎秀·69·전 동국대 교수) 박사가 최근 ‘유토피아 숲’을 만들겠다고 나선 곳이다. 그는 1960년대 초부터 호두나무·밤나무 같은 신품종을 키우고 접목하는 기술로 산림녹화와 보릿고개 타개책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육종학자다.

바지선을 타고 봄바람이 살랑대는 섬에 들어서자 그는 직접 지었다는 섬의 이름 ‘파랑도’에 대한 설명으로 운을 뗀다.

“파랑도는 청정지역이라는 뜻입니다. 물에 이는 파도는 소용돌이치면서 공기 중의 산소를 안게 되는데, 이로 인해 물속의 산소량이 증가합니다. 제가 만들 유토피아 숲의 청정산소 방출량이 극대화되고 청정수가 소용돌이치니, 이 섬은 맑은 청정지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 수원에 있던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의 연구단지를 이곳 파랑도로 이전하기 시작했다는 박 박사는 이 섬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그는 기자를 9만 평 남짓한 이 섬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했다. 섬 동쪽을 둘러보며 박 박사는 분노했다.

“과거 토사 채취 때문에 파랑도 전체 3분의 1 정도의 토사가 유출되었습니다. 이런 토사 채취 때문에 매년 섬 전체 둘레가 2∼3m씩 침식되고 있습니다.”

박 박사는 유토피아 숲을 만들기 이전에 침식되는 부위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거대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를 섬 둘레에 심을 계획이다. 또 가능하다면 파랑도 외에 양평군 대심리·국수리·신원리의 한강과 도로 인접 지역에 종합연구단지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고 밝혔다.

이 섬에 조성하려고 하는 유토피아 숲은 어떤 개념인지 궁금했다. 유토피아 숲의 핵심 개념은 크리아일리노엔시스(Cryillinoensis)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나무’다. 박 박사는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 일대에서 이 나무를 발견해 지난 40여 년 동안 계속 품종을 개량하고 있다.

2만 년 전 처음 뿌리내린 유토피아 나무

2만 년 전 지구가 빙하기에서 벗어나면서 육지의 판(板)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때 이 지역에 난대성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그는 원래 열대성이던 이 식물이 지구 북쪽으로 퍼져나간 사실을 처음 알아내고 변이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복합 다기능 신품종으로 육종한 것이 ‘유토피아’라는 설명이다. 이 이름은 그가 지상낙원을 그리며 직접 붙인 것이다.

이 나무는 다 자라면 지름 3.5m, 키는 38∼40m에 이르는 거대목이 된다.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 탄소동화작용과 물을 머莩?능력, 토양 정화 기능이 다른 품종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또 한번 심으면 1,000년 이상 건재하며, 여기서 열리는 열매는 피부 노화 방지와 회춘, 면역계와 신경계 강화뿐만 아니라 단백질·지방·탄수화물 등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다고 한다.

이제 이곳 파랑도가 유토피아 나무의 묘목을 생산하는 본거지가 된다. 여기서 키워낸 유토피아 나무 묘목을 한국의 산야에 심어 새로운 산림혁명을 이루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밤나무에는 밤만 열립니다. 감나무에는 감만 열리죠. 하지만 유토피아 나무는 50여 종의 서로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 숲이 조성되면 여기서 열리는 열매로 식량·의약품·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고, 목재 및 바이오 에너지·산소를 1,000년간 지구에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의약품으로 활용할 목적이면 의약품 성분이 함유된 열매를, 화장품이나 식품 원료로 쓸 목적이라면 이에 맞는 특수 성분이 들어있는 열매를 마음대로 열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숲은 또 자원고갈, 자연환경 파괴, 자연재해 같은 지구의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숲 조성뿐만 아니라 이 섬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갖는 다양한 식물을 육종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생물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섬에서 육종 기술을 통해 수십여 가지의 기능성 성분을 갖는 품종을 육종해낼 것입니다.”

파랑도에 자리 잡는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은 1965년 경기도 수원에 처음 설립되었다. 이 연구원의 최고 후원자는 고 박정희 대통령. 연구기관이라면 국가연구소가 전부였던 시절,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민간 연구소가 절실하며 무엇보다 농업과 산림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통령은 이 연구원을 전격 후원했다.

유실수과학원은 민간 연구소이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중앙정부정책수행기관으로 설립되어 ‘재특(재정자금특별회계)자금에 의한 15년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융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연구원에서는 유실수와 특수 품종의 원종을 세계 각국 대학 및 전문 연구기관에서 도입해 재배하고 유전자은행을 만들어 신품종 육종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박사의 그린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마을운동을 말해야 한다. 그는 축시법(縮時法)을 연구개발해 1년생 나무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함으로써 1960년대 농가의 소득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그의 연구 결과가 학계에 발표되자 정부는 이것을 가난한 농어촌의 소득증대 방안으로 채택했다. 박 박사는 이 조치가 새마을운동의 씨앗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 박사는 연구 결과를 농민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유실수종의 유대 접목법을 천연색 영화로 제작해 전국 각 행정기관을 통해 배포하고 상영했다. 또 이 영농기술에 관한 전문서적을 만들어 새마을운동의 교과서로 쓰도록 했다. 이와 함께 그를 찾아온 전국 각지의 독지가들에게 이 신품종과 육종 기술을 전수해 1∼2년 사이에 산지의 묵은 밭에서 엄청난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페니실린으로 목숨 건지다

밤나무가 전멸할 위기에 놓여있던 1950∼60년대, 박 박사가 개발한 밤나무혹벌에 강한 신품종 밤나무 같은 유실수 대량 증식과 개발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0년대에는 청와대 지하 상황실에서 인구증가와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난 대책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또 1972년에는 과학기술정책과 보급에 헌신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가 유실수를 육종하는 데 몰두하게 된 계기는 열두 살 때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었다 1주일 만에야 깨어났다. 10개의 트럭 바퀴가 짓누르고 간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왼쪽 대퇴부는 부러졌고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의사로부터 살기 위해서는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죽기를 작정하고 단식했다. 며칠을 굶었을까? 다시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는 구세주 같은 처방을 냈다.

“이게 페니실린이라는 거다. 이 약 한 방울이면 다리를 안 잘라도 된다. 미군부대에서 어렵게 구해 왔다. 너를 위해 이 한 병을 다 쓰겠다.”

죽음에서 살아난 순간 그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자신을 살려낸 의사처럼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 痼寬? 아니면 가난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해 우장춘 박사 같은 학자가 되어 그들을 기아에서 구할 것인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2만 평의 농지를 소유했던 우리 집안이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했어요. 그때 닥쳐온 지독한 가난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주변에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죠.”

부지런한 성미로 야생마처럼 동네를 활보하던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평생 뿌리내릴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당시 산에는 밤나무와 호두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고 한다. 또 집집이 감나무나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이 열매를 팔아 버는 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이 산을 통째로 입도선매하는 바람에 돈은 전부 그들 몫이었다.

어린 박교수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국토의 70%에 이르는 산에 아름드리 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따면, 적어도 굶어 죽을 가난은 면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고추나무처럼 나무 키를 작게 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누구라도 쉽게 배불리 따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옥천농업학교에 다니던 그는 그런 꿈을 실현할 기회를 우연하게 잡을 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한국전쟁 통에 피난 와 있었는데, 그로부터 접목법을 배웠던 것이다. 그 후 친구집 복숭아 과수원 2,000평을 연구소 삼아 접붙이기에 나선 그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감나무 한 그루에 여러 종류의 감이 열리게 하는 ‘아접’에도 성공하자 그는 고향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유실수뿐 아니라 닭·돼지·토끼 등 수천 마리의 가축을 기르며 중·고등학교에 다닌 그에게는 ‘대학생’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고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풀을 베고 과수원과 가축 돌보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야 했기에 학교에 번번이 지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큰아버지는 대목(大木)이어서 그의 집에는 이런저런 연장이 굴러다녔고, 그는 이것을 이용해 쟁기 같은 농기구를 곧잘 만들어 쓰고는 했다.

박 박사는 이때 갈고 닦은 솜씨로 연구원에서 쓰는 6종의 농기계를 직접 개발했다. 그 중 2개는 특허출원 중이다. 당시 농장 일꾼들은 나무 가꾸는 일은 물론 기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난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충북대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온기도 없는 자취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공부에 매달렸다.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었기에 배고팠지만 그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죽음’과 ‘성공’ 외에는 관심을 끊고 살겠다고 작심한 터여서 욕도 많이 먹었다. 연구비로 몇십 억 원을 날리는가 하면 가족은 젖혀두고 얼마 남지 않은 땅까지 팔아 연구에 몰두할 때는 염치없고 냉혹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졸업 후 농촌진흥청 임목육종연구소에 근무할 때도 그는 극심한 견제와 질시를 받았다. 기능성이 있는 특용수와 유실수를 연구하겠다고 연구팀장으로 들어갔는데 수십 개 연구팀 전부를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텃세와 따돌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연구비를 타는 방법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새마을운동과 연결

그는 만 2년이 지나서야 연구소 생리를 터득했고, 어릴 때부터 희망하던 ‘고추나무 키만 한 유실수’에 맞먹는 ‘난쟁이 나무’를 개발했다. 이를 필두로 수많은 연구실적을 쏟아내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이 시기 그의 연구가 새마을운동과 연결된 것이었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그의 집 지하 30평 공간은 약리학·분자학·유전공학·생물공학 등 신품종 나무를 개발하기 위해 섭렵한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가득하다.

“관련 학문을 통합해 연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전공 분야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공부는 할수록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자나 후배 같은 젊은 학자들과 많은 것을 토론하고 가르칩니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오늘날에는 자만은 곧 낙오를 의미합니다. 젊은이들의 번쩍이는 착상과 토론하는 노련한 석학 원로가 큰 것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원로 석학일지라도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서재에서 박 박사는 ‘미래에 산다’는 제목의 30년 전 <동아일보> 기사 하나를 꺼내 보였다. 유력 학자들의 미래 예측을 담은 기사였다. 거기서 박 박사는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지는 날, 미래의 과일 애호가들은 자기가 원하는 빛깔·크기·향기·영양을 갖춘 맞춤식 과일을 한껏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던 기록이 있다.

박 박사는 1960년대부터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을 이야기했던 학자다. 그의 예측이 현실화되는 지금 박 박사의 유토피아 숲 건설의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


2005.05.06 10: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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