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설 및 연구활동/지구3대위기해결

유토피아 2009. 12. 16. 00:44

▶ 육종학자 박교수 | 40년 나무연구 끝에 다기능 유실수 개발

 

 
 
 
박교수(朴敎秀·66)씨는 유실수 육종(育種) 연구에 40년 세월을 바친 끝에 ‘멀티게놈’ 육종에 성공, 다기능 식물 ‘유토피아’를 개발해낸 주인공이다.

지난해 동국대 산림자원학과 교수에서 정년 퇴임한 그는 요즘 수원시 곡반정동에 있는 1만8000여 평의 농장과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Eden Park Utopia Academy Center)을 이끌고 있다. 연구원의 영어 명칭에는 40년에 걸친 꿈이 그대로 녹아 있다. 지구 곳곳에 ‘유토피아(Utopia)’ 나무를 심어 ‘에덴동산(Eden Park)’을 만들겠다는 희망이 이제 비로소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는 인구과잉으로 포화상태고, 식량·에너지·환경이 지구를 위협하는 3대 위기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장차 이를 극복하고 청정한 물과 공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가뭄과 흉작, 폭우와 홍수, 태풍 등 이상기후에 의한 재해를 방지하며, 푸르고 쾌적한 숲을 가꿔낼 수 있는 꿈의 나무가 바로 유토피아입니다.”

박씨가 유실수 육종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12세 때 죽음과 조우(遭遇)하면서 비롯됐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미군 트럭에 빨려 들어가면서 의식을 잃었다가 일주일 뒤에야 깨어났다.

열 개의 트럭 바퀴가 짓누르고 간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왼쪽 대퇴부는 탈골됐고 뼈가 으스러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가족과 의사, 간호사가 침대를 에워싼 채 마치 시체를 대하듯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썩어들어가는 다리를 절단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자 그는 죽기를 작정하고 단식했다. 며칠을 굶었을까, 의식을 잃고 다시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게 페니실린이라는 거다. 이 약 한 방울이면 다리를 안 잘라도 된다. 미군부대에서 어렵게 구해왔다. 너를 위해 이 한 병을 다 쓰겠다”는 의사의 말이 그에겐 천상의 복음처럼 들렸던 것이다.

죽음에서 구원된 순간 그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살려낸 의사처럼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가난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 우장춘 박사 같은 학자가 되어 그들을 기아에서 구해낼 것인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2만평의 농지를 소유했던 우리 집안이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하루 아침에 몰락했어요. 그때 닥쳐온 지독한 가난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주변에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죠.”
 
배고픔 면하려 나무 연구
부지런하고 벼락 같은 성미로 야생마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평생 뿌리내릴 꿈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그 즈음이다.

당시 산에는 밤나무와 호두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또한 집집마다 감나무나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그 열매로 거둬들이는 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이 산을 통째로 사서 입도선매하는 바람에 돈은 전부 그들 몫이었다.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에 아름드리 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수확하면 적어도 굶어죽는 가난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기왕이면 고추나무처럼 나무의 키를 작게 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해서 누구라도 쉽게 배불리 따먹게 할 수는 없을까.

옥천농업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그런 꿈을 실험할 기회를 우연하게 잡을 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그가 전쟁통에 살던 동네로 피난을 와있었는데, 그로부터 접목법을 배웠던 것이다.

그후 친구네 복숭아 과수원 2000평을 연구소 삼아 접붙이기에 나선 그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감나무 한 그루에 여러 종류의 감이 열리게 하는 ‘아접’에도 성공하자 그는 고향마을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유실수뿐 아니라 미국산 닭과 돼지, 토끼 등 수천 마리의 가축을 기르며 중·고등학교를 다닌 그에겐 ‘대학생’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새벽같이 일어나 풀을 베고, 과수원과 가축 돌보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야 했기에 학교엔 번번이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가 대목(大木)이라 집에 이런저런 연장들이 굴러다니곤 했는데, 그는 이것을 이용해 곧잘 쟁기 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쓰곤 했다. 거름을 나르는 리어카도 직접 나무로 만들었다.

박씨는 그 시절에 갈고 닦은 솜씨를 바탕으로 연구원에서 쓰는 6종의 농기계를 설계하고 개발했다. 그중 2개는 특허출원중이다. 농장 일꾼들은 나무 가꾸는 일은 물론, 기계 다루는 솜씨도 ‘빠꼼이’인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쉴새없이 사람을 몰아붙이기 때문에 농장 직원들은 두 달을 못 넘기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인간이 1000년을 산다면 모를까, 겨우 한 순간인 인생에서 쉬어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린 시절 죽음 직전까지 다가섰다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인생관이다.

얼마전 지독한 몸살을 앓았던 것도 무리한 작업 때문이었다. 철공소 사람을 불러 고장난 기계를 손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게 화근이었다.

충북대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온기도 없는 자취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공부에 매달렸다.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었기에 그 시절도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죽음’과 ‘성공’ 외에는 관심을 끊고 살겠다고 작심한 터라 욕도 많이 먹었다. 연구비로 몇십억원을 날리고, 가족은 제쳐둔 채 얼마 남지 않은 땅까지 팔아치우고 연구에 몰두할 때는 “염치없다” “냉혹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기능성 열매 50종 열려
졸업 후 농촌진흥청 임목육종연구소에 근무할 때도 극심한 견제와 시기를 견뎌내야 했다. 기능성이 있는 특용수와 유실수를 연구하겠다고 연구팀장으로 들어갔는데, 수십 개 연구팀 거의 전부를 특정 명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텃세와 따돌림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연구비를 타는 방법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2년쯤 지나서야 연구소의 생리를 터득했고, 어릴 때부터 꿈꿔온 ‘고추나무 키만한 유실수’에 버금가는 ‘난쟁이나무’를 개발했다. 이를 필두로 수많은 연구실적을 쏟아내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집념과 끈기로 일궈낸 연구성과를 국내외에 발표한 논문 40여 편과 저서 20여 권에 담았다. 과학기술분야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그가 개발한 호두나무와 밤나무 등의 유실수 재배법을 보급하기 위해 7편의 기술영화를 제작했다.

농촌진흥청 연구소에 근무하던 1965년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을 설립한 그는 이곳에서 ‘유토피아’ 육종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그 결과 2000년, 영하 40℃의 극한지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의 한국형 품종 유토피아가 탄생했다. 유토피아는 첫 열매를 맺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여느 나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유토피아의 근간은 ‘크리아일리노엔시스(Cryillinoensis)’란 이름을 가진 나무다. 박씨가 이 나무를 처음 접한 곳은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였다. 2만년 전 지구가 빙하기에서 벗어나면서 육지의 판(板)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때 이 지역에 열대 및 난대성 식물이 착근됐다. 그는 원래 열대성이던 이 식물이 지구 북쪽으로 퍼져나간 사실을 처음 알아내고 변이품종의 개발 가능성을 점쳤다.

그후 40년에 걸친 연구 끝에 복합다기능 신품종으로 육종된 것이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은 그가 ‘지상낙원’을 그리며 직접 붙인 것이다.

“밤나무에는 밤만 열립니다. 감나무엔 감만 열리죠. 하지만 유토피아는 50종의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유용성이 여느 나무의 50배에 달한다는 의미죠. 가령 의약품으로 활용할 목적이면 의약품 성분이 함유된 열매를, 화장품이나 식품 원료로 쓸 목적이라면 화장품과 식품 성분이 들어 있는 열매를 마음먹은 대로 열리게 할 수 있어요.”

현재 그의 연구원 농장에는 5만여 그루의 유토피아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 다 자란 성목 400여 그루를 토대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정리해 조만간 학계에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2005년까지 기후대별로 신품종 유토피아 개발기지 완성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중국과학기술대학 석좌교수로, 중국과 연계한 동북아생명과학한림원 원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기지 물색을 위해 중국측과 협의중이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그의 집 지하 30평 공간은 약리학, 분자학, 유전공학, 생물공학 등 신품종 나무를 개발하기 위해 섭렵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 가득하다.

“관련 학문을 통합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죠. 저는 지금도 제자나 후배 같은 젊은 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오늘날엔 자만은 곧 낙오를 의미합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죠.” 

      신동아       박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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