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로신 2007. 11. 5. 16:49

 

30여년 전, 내 손님들은 온통 불만투성이였을 거다.

먼저, 남자가 헤어 디자이너를 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불쌍하다’ ‘남자가 왜 이런 일이나 하고 있느냐’는 등 많은 고객들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피했다. 미용실은 금남의 집으로 인식되던 때이니, 남자 헤어 디자이너에 대한 편견으로 나의 설 자리는 작디 작았다. 내 머릿속엔 “기술을 키워서 편견을 이기자”란 생각만이 가득했다. ‘기술만이 살 길이다’란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내 귀에 한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용실의 그 남자 왜 그렇게 담배 냄새가 지독하니. 굉장한 골초인가 봐. 비위가 다 상할 정도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 깊숙한 곳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단순히 내가 남자인 게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런 것도 고객에겐 평가의 대상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쥐고 있던 담뱃갑을 구겨 버렸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가치의 담배도 입에 물지 않았다.


그 시절 나를 거절한 고객들은 모두 내 스승이 됐다. 그로부터 나는 “온 세상을 만족시켜 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됐다. 까다로운 고객일수록 더 정성을 들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할수록 보람은 늘어갔다.

이렇게 노력한 끝에 국내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란 수식어를 얻었다. 옆에서 보기엔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가 됐으니 손님과의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기대치가 높고 까다로운 고객들이 많아져 종종 언쟁을 벌이곤 했다. 탤런트, 가수, 영화배우 등 헤어스타일이 밥벌이를 좌우하는 까다로운 스타들도 만났다. 국내 어떤 헤어 디자이너를 찾아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찾아왔다는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곤란한 일은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이 젊은 연예인 사진을 들고 와 똑같은 스타일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이와 얼굴 생김새가 전혀 다른 사진을 들고 온 손님에게 사진과 똑같은 헤어 스타일을 해준다고 한들, 손님이 만족할 리는 만무했다. 한 사람 사진을 들고 온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각각 다른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는 연예인 사진을 몇 장씩 들고 와 “앞은 탤런트 김모씨 스타일로, 뒤는 가수 이모씨 스타일로, 옆머리는 영화배우 박모씨 스타일로 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원하는 대로 해줄 수도 없고, 안 해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젊은 연예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를 하지만, “당신 얼굴로는 머리를 그렇게 한다고 사진처럼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통해 “전문가 입장에서 말씀 드리자면 손님의 얼굴을 살릴 수 있는 헤어 스타일은 그보다는…”이라며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의 나이와 체형에 맞춰 개성 있는 스타일을 예로 들어 설득하면 대개는 이해를 해줬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자기가 가지고 온 사진대로 해달라고 우기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손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손님이 가져온 사진 그대로 했다가는 나중에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 손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개중에는 “왜 내가 시킨 대로 머리를 자르지 않았냐”며 돈을 못 내겠다고 해 “이번에는 무료로 모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보낸 고객도 있었다. 그분은 결국 다시 찾아왔고, 내게 헤어 스타일을 전적으로 맡기는 단골 손님이 되었다.

유명 CF 감독 A씨의 피를 본 일도 있었다. 커트를 하다가 실수로 귀 끝이 배어서 피가 난 것이다. 깜짝 놀란 A씨는 큰 소리를 질렀고, 피를 본 미용실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국내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란 사람이 저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란 말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나는 곧장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전적으로 제 실수입니다”라고 말하자, 고맙게도 A씨가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후로도 A씨는 내 고객으로 남아, 몇 번이고 내게 머리를 맡겨주었다.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후의 사과에 따라 손님이 어떻게 되는지를 배운 일화였다.

내게 가장 감동을 준 고객은 만삭의 임산부였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고객이기도 하다.

“보시다시피 얼굴이 못생겨서 고민입니다. 내일모레면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데, 세상에 나와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실망할까봐 걱정돼서 가장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인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에 있어서 헤어 스타일이 70%를 차지한다”는 내 지론을 들고 찾아왔다고 했다.

아이를 처음 만나기 위한 모습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고, 가장 여성스러운 모습이 연출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 박준·박준 뷰티랩 대표
나는 평소에 이렇게 말하곤 한다. “못 생긴 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개성이 없거나, 스스로를 연출하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라고. 고객이 스스로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한, 개성을 찾으려고 하는 한, 아무리 까다로운 요구라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고객의 요구가 까다로울수록 그 요구를 실현시켰을 때의 내 만족도 커진다. 고객의 행복해 하는 표정을 거울을 통해 읽을 때, 나 역시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해진다. 이런 것이 전문가가 도리어 까다로운 고객을 반기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