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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 2009. 7. 22. 04:52

내가 제주도에 내려가고 얼마 안되어서이다.

친구가 없어 적적하고 외로웠던 나는 수소문하다 서울경기 향우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동년배는 아니지만 몇살 위에쯤의 그나마 몇몇사람을 알게 된 후다.

 

향우회의 한 선배가 어느날  찾아와서는 혹시 저 집좀 빌릴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 집은 우리농장에서 관리사로 쓰던 집이었고 새로 집을 지은 후라 당시는 비어 있었다.

 

무슨일이냐고 묻자 향우회에 소속되어 있던 자기 친구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어려워져서 다시 내려오게 되었는데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며

혹시 우리 관리사에서 일년쯤 살 수 있다면 대단히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많이 배운 분은 아니지만 성격도 괜찮고

나름 세상사는 연륜을 배울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러시라고 했다.

 

비어 있고 또 까짓 일년쯤이라는데 어쩌랴? 싶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쯤 지나 그 분이 이사를 왔다 이사랄 것도 없이 단촐한 식기류 몇개하고

이불 짐 밖에 없다.

 

 이 형이 들어오자마자 말 몇마디 하면서 곧바로 말을 깠다

물론 몇살 위니 까는게 당연했지만

제주도에서 사람하나 사귀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서슴없이 친해지는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성은 나와 같은 윤씨고 이름은 또 당시엔 된통 싸우고 헤어졌던 어떤친구와 같은 이름이다

그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묘하기도 했는데...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당시는 초봄이었는데 자기가 우리집 마당에 과수원 방풍수로 쓰이는 삼나무를 잘라서

정자를 만들어 줄테니까 나보고 도우란다. 그러면서 돈은 없으니까 필요한 자재도 내가 사야 한단다.

 

그러마고 했다

 

사실 마당 한켠에 정자를 짓고 싶었지만 몇군데 견적을 받아보니 당시 돈으로 삼사백이 훌쩍 넘었다

작은 과수원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싶어 못했는데 지어주겠다니 이게 웬떡인가 싶기도 했다.

 

삼나무 몇개를 잘라 껍데기를 벗겼다

이 삼나무가 봄에 물오를때만 껍데기가 잘 벗겨진다 그때가 지나면 잘 벗겨지지도 않을 뿐더러 자른후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벌레가 끼어 파먹기 때문에 온통 구멍이 송송 난 이상한 나무로 바뀌고 만다. 

 

삼나무를 벗기는데 이틀 또 이틀쯤 말렸다.

먼저 지붕을 만든다 흔히 나무 정자에서 보듯 팔뚝보다 약간 더 두꺼운 나무 몇개를 골라 서까래로 원형으로 빙 둘러 틀을 만들었다

그 다음엔 과수원을 뒤져서 가장 큰 나무 네개를 골라 잘라 말렸다.

그것 네개를 기둥으로 삼고 바닥에 땅을 좀 파 시멘트를 붓고 그 위에 큰 나무 네개를 기둥으로 삼아 박았다.

 

네개의 기둥위에 처음에 만든 서까래 원형을 둘이 낑낑대며 올렸다.

얼기설기 세워진 기둥을 땅에서 일미터 조금 안되게 안쪽으로 조금 파곤 그곳에 다시 네개의 나무를 끼워 고정시키니 보기보단 꽤 탄탄하단 생각이 든다.

 

그 후엔 서까래 위에 나무를 사이사이에 몇개 더 끼워넣으니 그럴듯한 정자가 되지 먼가?

거기다 마루까는 판자를 몇개 사다가 바닥을 깔고 지붕엔 베니다 올리고 아스팔트싱글을 붙였다.

그 후에  니스칠을 하니 그럴듯한 정자가 완성된다.

 

처음 정자가 완성된 날 우리 식구 모두와 그집 식구들 그리고 향우회 활동으로 알게된 선배들 몇몇이 모여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그 정자는 내가 멕시코로 온후 재작년엔가? 가서 팔았을때까지도 쌩쌩했다.

습도가 높은 제주도에서 이십년이 넘도록 기둥하나 안썩고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제대로 지었다는 얘기지...

 

이 선배가 진짜 들어온지 며칠 안되었을 때 그러니까 정자를 짓기전 문제를 일으켰다.

우리집에서 가볍게 모여 식사를 했는데 얘기끝에 추자도로 낚시하러 갈건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거다.

 

우리는 깜짝 놀랐지

 

"아니 형은 망했다면서 주머니에 그렇게 돈이 많아?"

"돈? 없어! "

 

그럼 먼돈으로 추자도에 낚시를 가겠다는거야?

 

"망한건 망한거고 해야 하는건 해야 하는거야 돈이야 또 벌면 되는거지 뭐..."

 

형수가 느릿느릿 얘기한다 집에 가진돈이 모두 백오십만원, 추자도에 보름정도 낚시가는데 필요한 돈은 칠십만원

 

아하핫~!!

 

난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으로 이해되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오셨다 아내는 그 얘기를 냉큼 어머니에게 했고 또 엄마는 아버님께 그 말씀을 드렸다.

 

엄마도 와이프도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묻는다.

 

"얘 혹시 사람을 잘못 들인거 아니니?"

 

나는 할말이 별로 없었다 그런 생각이 나도 안드는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엄마!  사람이 망하면 가장먼저 패닉현상에 빠져 자기가 할일과 해서는 안될일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자기 자신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것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대단하기도 한거지.

만일 내가 그런상황에 빠져도 난 저렇게 태연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이게 내가 그때 당시에 마음속으로 수십번을 곱씹어본 말이었다. 

 

그 형은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다.

물론 그 후에도 난 여러번 그 형을 도와주었고 그 와중에 적지 않은 오해도 있었지만  살다보면 그런건 늘 있기 마련이고 지금 제주도를 떠난 후에 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남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요즘 살기가 어려워진 때에 생존경쟁이란 화두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 부터도 요즘은 쉽지 않다 한국만 경기가 나쁜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쁘니 어쩔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자리에 있던 또 어떤 상황에 마주치더라도 자신의 심지를 잃지 않고 꾿꾿하게 자신이 해야 할 역활을 중단없이 해 가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어깨가 무거우면 단돈 백오십만원을 들고서도 그 절반을 털어 추자도로 낚시를 갔던 그 형의 당당함을 떠올린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당당함이 아닐까?

 

 

 

로드와일러와 도베르만 잡종에서 열두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다

두마리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라졌고 한마리는 어떤집에 분양을 가서 아홉마리만 남아있는데

아침에 우유를 줄 때마다 이넘들 한자리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넘들 보면서 새삼 생존경쟁이란 기분이 치열하게 드는건 나뿐만은 아닐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