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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936년 西安사변 주역 張學良 육성녹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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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歷 史 文 化

2010. 10. 8.

 

[특집]1936년 西安사변 주역 張學良 육성녹음 공개

 

 

“연금당했지만 蔣介石 존경…周恩來는 믿을만한 사람”

金基哲기자 kichul@chosun.com
   입력 : 2002.06.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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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안사변 직후 연안으로 돌아온 저우언라이(오른쪽에서 4번째)를 환영하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저우언라이 왼쪽이 마오쩌둥이다.

     

    중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시안사변’(西安事變)의 진상이 주역 장쉐량(張學良)의 육성에 의해 밝혀졌다. 작년 10월 100세의 나이로 타계한 장쉐량은 생전에 구술 녹음을 통해 시안사변을 일으킨 동기와 사건의 주인공인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 공산당 지도자 조우언라이(周恩來)에 대한 평가, 시안사변후 장제스와 동행을 자청한 이유 등에 대해 사건 발생 반세기 만에 상세하게 밝혔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희귀본·사본 도서관은 5일 장학량의 육성 기록과 일기, 편지, 사진 등을 공개했다.

    장쉐량이 시안사변에 관해 발언한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쉐량은 1936년 12월 시안사변 직후 50여년간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과 그 후계자들에 의해 연금됐고, 1990년 풀려난 후에도 극도로 발언을 아꼈기 때문이다. 이번 장쉐량의 육성기록 공개는 유족들과의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 유족들은 컬럼비아 대학측과 장쉐량 타계 이듬해의 생일이 있는 6월에 공개하기로 합의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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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통합위해 蔣介石풀어준후 同行

    국민당 정부 전복되리라곤 예상 못해”

    컬럼비아大교수들과 3년간 인터뷰? 분량 4800쪽 달해

     

    덩샤오핑 아들 덩푸팡이 2000년 장쉐량이 만년을 보낸 하와이를 방문,위로하고 있다.

  • 장쉐량의 구술 녹음은 연금해제 직전인 1990년초와 1991년~1993년 컬럼비아대 교수들에 의해 이뤄졌다. 아사히 신문이 소개한 장쉐량의 구술 과정은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한다. 1990년초 타이페이를 방문중이던 탕더캉(唐德剛) 전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연금상태이던 장쉐량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왔다는 것. 탕 교수는 “(당시)장쉐량은 타이완 당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타이페이 교외의 장쉐량 집앞에는 무장 경관이 지키고 있었고, 장쉐량은 “감시받고 있다”며 떨었다는 것. 탕 교수는 15회에 걸쳐 구술작업을 진행했으나 갑자기

    중단됐다. 타이완 언론에 인터뷰 사실이 알려지자 장쉐량이 겁냈기 때문이다.

    탕 교수도 타이완 당국의 압수를 우려해 인터뷰를 수록한 테이프 10여개를 커다란 과자상자에 숨겨 미국에 가져왔다. 장쉐량의 구술 녹음은 1991년 이후 것만 48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시안사변만 약 400회 가량 언급할 정도로, 이 사건 전모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시안사변’은 중국 국민당 정부군측인 동북 군벌 장쉐량이 1936년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일(對日) 항전보다 공산군 토벌에 주력하자 17로군 사령관 양후청(楊虎城)과 함께 시안의 화칭츠(華淸池)에 장제스를 감금하고 내전 중단 및 항일 전쟁에 나서도록 압박한 사건. 당시 공산군은 장제스의 토벌작전으로 궤멸위기에 놓였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위기에서 벗어났다.조우언라이의 중재로 풀려난 장제스는 약속대로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전쟁에 나서 일본을 패퇴시켰다. 하지만 항일전쟁에서 세력을 키워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1949년 중국 본토를 장악하게돼 ‘시안사변’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이념적 지형을 바꿔놓은 세기의 사건으로 발전했다.

     

     

    “國共합작 오래 지속하지 못해 실망

     


    蔣介石살해 안한 공산당도 민족정당”
    작년 100세로 별세? 유족과 합의따라 1년후 생

     

    일때 자료공개

     

     

    장쉐량의 ‘시안사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비판적이다. 그는 “서안사건은 애국적 행동이었다. 하지만 국·공(國·共)합작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은 실망이다. 장제스 정부가 전복되리라고는 생각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장쉐량이 남긴 장제스와 조우언라이에 대한 인물평도 흥미롭다. 시안사변 당시 장제스의 목숨은 경각에 처했었다.

    사건 주역인 장쉐량이 그를 풀어줄 경우, 반역죄로 사형당할 지도 모를 운명이었고, 국민당과의 내전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공산당은 그와 철천지 원수 사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제스 총살설 등이 연일 신문 지면을 도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쉐량은 조우언라이의 중재 아래 장제스를 풀어줬다. 장쉐량은 “중국을 통합할 수있는 것은 그(장제스)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풀어줬다”며 장제스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장제스에 의해 50여년간 연금됐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회고했다. 시안사변을 중재한 조우언라이에 대해서도 “믿을 만한 인물이다. (내가)살해되지 않은 것은 그의 덕택”이라며 감사했다.

     

    장쉐량이 시안사변에서 풀려난 장제스와 함께 난징으로 동행, 호랑이 굴에 제발로 걸어들어간 이유에 대해서도 그간 갖가지 설이 분분했다. 장쉐량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자로서 가야만한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장제스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장제스를 살해하지 않은 공산당에 대해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덩샤오핑 아들 덩푸팡(鄧樸方)이 2000년 장쉐량이 만년을 보내던 미국 하와이를 방문해 중국에 돌아올 것을 요청했으나, 장쉐량은 거절했다. 장쉐량이 컬럼비아 대학 측과 구술기록을 남기고, 관련 자료를 모두 기증한 것도 중국이나 타이완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장쉐량의 육성 녹음 이외에 장쉐량이 장제스와 그의 부인 송메이링(宋美齡)과 주고받은 편지, 일기 등에서도 새로운 사실이 공개됐다.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컬럼비아 대학의 연구자들이 송메이링이 장쉐량에게 보낸 편지를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이 플라토닉 연인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장쉐량을 수십년간 연금했던 아버지 장제스와 달리 장징궈(蔣經國)는 장쉐량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기위해 노력할 정도로 장쉐량과 친밀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컬럼비아 대학 희귀본·사본 도서관은 5일(현지시각)부터 사전 예약한 연구자들에 한해, 장쉐량 육성기록 등을 공개한다.

     

    인터넷 홈페이지 href=http://www.columbia.edu/cu/lweb/indiv/r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