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무(방첩)부대 마패 (공무집행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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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관련

2011. 6. 13.

특무·방첩부대 '마패' 갖고 다녀

[중앙일보] 입력 2006.04.17 04:30

                / 수정 2006.05.29 00:33

 

50 ~ 60년대 막강 권력

"동작 그만, 나 특무부대원이야."

 

국군기무사령부가 16일 인터넷 홈피(www.dsc.mil.kr)에 공개한 기무부대 전신인 특무부대 및 방첩부대원들이 사용했던 '공무집행 메달'

 

왼쪽 두개는 1950년대 사용하던 진짜 공무집행 메달이고

오른쪽 두개는 1955년 검거된 무장간첩 김태진 일당이 위조한 메달

 / 통일외교팀 기사참조 / 정치 / 2006.4.16

 

 

1950 ~ 6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육군 특무부대와 방첩부대원들이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차던 '마패'(사진)와 비슷한 메달을 갖고 다녔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군기무사령부는 16일 인터넷 홈피(www.dsc.mil.kr)에 마련된 '사이버 역사관'을 통해 육군 특무부대와 방첩부대원들이 사용했던 '공무집행 메달'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

 

 

육군 특무부대는 방첩부대→보안부대→보안사령부로 개칭됐다가 91년 국군기무사로 바뀌었다.

 

50년 특무부대 창설 때부터 방첩부대 시절인 67년 12월까지 사용됐던 이 메달의 앞면에는 '육군특무부대' '육군방첩부대'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뒷면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라고 돼 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마패'와 버금가는 공무 집행력을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메달은 때론 권력 남용의 도구가 됐다. 민간인과 간첩이 위조하기도 했다. 이 메달은 방첩부대가 증명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부대원들에게 발급하면서 사라졌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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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첩부대(1960년 7월 ~ 1968년 9월) 당시 개조된 메달과 67년 12월 1일 부터 사용된 최초의

   부대원 신분증 <사진=국군기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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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공개한 '그때 그 시절'…마패야? 메달이야?

 

5, 60년대 특무부대-방첩부대 자료 80점 홈피 공개

 

1955년 9월 검거된 북한 무장공작원 김태진 일행이 위조해 소지하고 있어 더 유명해진 '특무부대 메달'이 16일 일반에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마련된 ‘사이버역사관’에 기무부대 전신인 특무부대 및 방첩부대원들이 사용했던 ‘공무집행 메달’ 산진 및 관련 사진 80여장을 처음 공개했다.

 

특무부대는 한국전쟁 이후 대공전담기구의 확대 필요성에 따라 1950년 육군본부 직할로 독립하여 공비소탕, 간첩검거 등의 업무를 맡았으며, 이후 방첩부대→보안부대→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등으로 불리다가 1991년 현재의 명칭인 '국군기무사령부'로 바뀌었다.

 

특히 50~60년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던 특무부대원들이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차던 마패와 유사한 ‘메달’을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메달은 1950년 부대 창설 이후 67년 12월까지 사용됐다. 메달 전면에는 ‘육군특무부대’’육군방첩부대’라는 글자가, 뒷면에는 ‘K.A CIC’(Korea Army Counter Intelligence Corps)라고 새겨져 있다.

 

K.A CIC라는 글자 밑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를 넣어 당시 특무 및 방첩요원들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느끼게 한다.

 

이 메달은 특무부대에서 방첩부대로 이름이 바뀐 뒤 1967년 12월 증명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부대원에게 발급하면서 사라졌다.

 

기무사 관계자는 “당시 특무부대원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업무수행에 편의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신분증 대용으로 메달을 가지고 다니도록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다음은 '기무사'가 공개한 사진자료]

 

▲ (좌) 특무부대 당시부터 사용(50년12월8일)된 공무 집행 메달

   (우) 55년 9월 29일 검거된 무장  간첩 김태진 일당이 소지한 특무부대 위조 메달,

   이로 인해 메달이 교체됨

 

▲ 부대의 뿌리는 美 군정청내의 남조선 국방사령부 정보과(1948년 5월~ 1950년 10월)로부터 출발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서울 종로 소공동 소재 특무부대(1950년 10월~1960년 7월)청사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특무부대(1950년10월 ~ 1960년 7월) 교육대 제 1기생 수료 기념 사진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특무부대(1950년10월 ~ 1960년 7월) 당시 美 CIC 요원이 부대원들에게 교육을 실시한 후 단체

    기념촬영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특무부대(1950년10월 ~ 1960년 7월) 당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교육대 방문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1960년 11월 25일 간첩체포 유공자 특진식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1966년 6월 27일 파월 백마사단 지원 방첩대 편성 신고식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1968년 1월 22일 청와대 기습 무장공비 김신조의 기자회견 장면 <사진=국군기무사령부>

 

▲ 1968년 10월 울진,삼척 지역 침투 무장공비들의 공작장비 <사진=국군기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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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라면 조선 영조 때의 박문수(1691-1756)를 맨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일화는 우리 민담에도 잘 소개돼 있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탐관오리를 혼내는 이야기들이 많다.

 

따스한 인정에 가슴이 뭉클하고 예지에는 무릎을 탁치게 만든다. 암행어사라는 말은 조선 명종(1550) 때 처음 사용됐다. 그러나 실제 암행어사가 파견된 것은 이 보다 앞선 중종(1509) 때였다.

 

전국 8도 수령 방백에 대한 감독은 사헌부 소관이지만 당시 교통기관 등이 발달하지 못해 임금이 비밀리에 어사를 임명했다.

 

어사의 대표적 증표는 역참에서 역마를 징발할 수 있는 패찰이다. 어사가 수령의 비리를 탐지한 뒤 부하와 역졸을 지휘해 관청 삼문에서 '암행어사 출도'를 외치고 마패를 들이대면 산천초목이 떨었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마패

 

이런 마패 기능을 가진 공무집행 메달을 국군기무사령부 전신인 육군특무부대와 방첩부대원들이 갖고 다녔다고 한다.

 

16일 기무사에 의해 공개된 이 메달의 뒷면에는 K A CIC(Korea Army Counter Intelligence Corps)라는 글자가 있고 그 밑에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라고 새겨져 있다.

 

왼쪽 두개는 1950년대 사용하던 진짜 공무집행 메달이고

오른쪽 두개는 1955년 검거된 무장간첩 김태진 일당이 위조한 메달

 

 

이 메달은 1950년부터 1967년 12월까지 사용됐다. 기무사 측은 '부대원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업무상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마패 메달'로 인해 공안사건 등과 관련,절차의 정당성이 무시돼 인권 유린 등의 폐해가 적지 않았음을 짐작케 해 준다. 1955년 9월 검거된 무장간첩이 '위조 마패'를 갖고 있었다니 섬뜩하기 그지 없다.

 

'마패 메달'은 과거의 유물로 창고에 보관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 수사 권력기관의 목적 지상주의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인권 개선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창고에 있는 '유물의 망령'이 되살아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패 메달'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다. pch@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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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마패' 검찰 배지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앞으로 일선 검사와 수사관들은 압수수색이나 체포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검찰 배지를 `마패'로 활용하게 된다.

 

이 배지는 경찰과 달리 제복이 없는 검찰의 특성상 국민들이 잘 알아볼 수 있는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둥근 모양의 배지 안에는 검찰을 상징하는 방패 문양이 그려져 있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수사관들이 배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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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모양의 배지 안에는 검찰을 상징하는 방패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한글로 `대한민국 검찰', 영어로 `Prosecution Service'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배지는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수사ㆍ집행 분야의 검사와 수사관들에게만 지급돼 이날부터 전국적으로 활용된다.

압수수색ㆍ체포ㆍ조사와 같은 공무를 수행할 때만 사용할 수 있으며 업무 외 시간에 사적인 용도로 쓰다 적발되면 대검 예규에 따라 징계를 받게 된다.

그동안 압수수색 또는 체포에 나선 검사나 수사관들은 대상자에게 목걸이 형태의 검찰 신분증과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함께 제시했다.

검찰 배지가 막강한 권위를 갖는 만큼 비정상적 방법으로 구하거나 가짜로 만들어 검사나 수사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기 위한 장치도 갖춰졌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모든 검찰 배지에 고유 관리번호와 사용자가 직접 지정하는 비밀번호가 지정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검찰청 대표번호(1301)로 전화해 검사가 밝힌 소속과 신분, 배지 관리번호를 말하면 된다.

검찰 배지는 상표법상 업무표장으로 등록돼 부정한 목적으로 위조하거나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면 형법상 공기호 위조ㆍ행사 혐의로 처벌을 받는다.

대검은 "검찰 업무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고 검찰공무원에게 최고 법집행기관에 부합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배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