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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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기타

2011. 12. 1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11일 폐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호흡기 상태가 좋지 않아 최근 위독한 상태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달 9일 호흡곤란으로 입원해 이틀 뒤 한쪽 폐 전체를 들어내는 흉막-전폐절제술을 받았다. 그는 이달 5일 왼쪽 폐에도 급성 폐 손상이 생겨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박 명예회장은 이후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유지해 왔다. 병원 측은 "폐나 호흡기 상태가 전반적으로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포항제철 재직 당시 특강에 나서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정치인 박태준' 누구인가

유명을 달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신화를 이룩한 `철의 사나이'일뿐 아니라 `정치인 박태준'으로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4선(11, 13∼15대) 국회의원에 구 민정당 대표위원, 구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 등이 그가 남긴 정치적 흔적이다. 다만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육사 6기 출신으로 1961년 5ㆍ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잠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박 명예회장은 대한중석사장을 거쳐 1968년 포항제철 사장을 맡아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신념으로 불모지였던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박 명예회장이 정계에 본격 입문한 계기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참여한 데 이어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민정당)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포항제철 회장을 유지하면서 박 명예회장은 11, 13, 14대 등 3선 경력을 쌓았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며 정치 전면에 섰다.

그러나 민정당 대표 취임 후 며칠만에 이뤄진 `3당 합당' 이후 시련을 맞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악연 때문이다.

박 명예회장은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밑에서 최고위원직을 맡았으나,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의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YS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박 명예회장은 14대 대선 직전인 1992년 10월 민자당을 탈당했고,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더 큰 난관에 직면했다. 같은 해 3월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그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97년 5월 포항 보선 출마를 위해 귀국할 때까지 4년여의 `망명생활'을 해야 했고, 같은 해 7월 포항북구 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19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의 이른바 `도쿄 회담'을 계기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한 뒤 야당 후보 단일화 협상이 타결되자 같은해 11월 자민련 총재직에 취임했다.

자민련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지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자민련의 목표이자 `DJT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의 연결고리였던 내각제 개헌이 유보되는 좌절감도 맛봐야 했다.

영욕을 거듭한 끝에 박 명예회장은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1월 `새천년 첫 총리'로 발탁됐다.

박 명예회장은 총리 취임과 동시에 `경제 총리'로서 의욕을 불태웠지만, 불과 4개월만에 낙마해야 했다.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지자 사퇴한 것이다.

총리직 퇴임 이후 박 명예회장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꾸준히 점쳐졌지만, 그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며 끝내 현실 정치를 외면했다. (서울=연합뉴스)

 

 

<박태준 별세> 청암이 꿈꾼 복지, 출발은 인본주의

                                                                                       2011-12-13 18:06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청암)이 그렸던 직장의 모습은 안정적인 생활조건을 마련해 우수한 인재가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회사 창립초기 제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주택단지 부지를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인 주거안정에 공을 들였다.

 

청암은 사원주택과 학교, 그 밖의 편의시설들을 모드 짓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직원들의 주택은 커녕 공장을 짓기에도 빠듯한 것이 당시 형편이기 때문.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설 ‘철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신용대출을 위해 직접 주요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번번이 거절을 당하기 며칠, 마침내 한일은행에서 20억원의 신용대출을 받게 됐다. 겨우 숨통이 트인 셈. 순간 고민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금 조달도 불투명한데 이 돈으로 불쑥 사원주택을 지을 것인가.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인 인본주의대로 밀고 나갔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신속하게 부지 선정에 나섰다. 당시 만연했던 부동산 투기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부지를 선정하고 일을 추진해야 했다.

 

출퇴근 거리, 단지 규모, 주거 및 자연환경, 교통편, 교육시설이나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 등을 고려했다.

 

결국 박 회장은 효자지구를 낙점했다. 효자지구는 쓸모 없는 야산에, 일부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꺼림칙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을 타일렀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에 양지바른 야산 치고 묘지 없는 곳이 있던가?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명당을 찾아 묘를 쓰지 않나. 이곳은 명당이 틀림없어!”

 

포항제철은 효자지구 66만㎡을 매입하고, 1968년 9월 10일 부지조성 공사에 들어갔다. 정부관료들은 “나랏돈으로 공장은 안 짓고 쓸데없는 짓 한다”며 공격했고, 언론들은 “포항제철이 제철소보다는 땅투기에 관심이 많다”고 매도했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맹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박 회장은 여론의 뭇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차로 독신자를 위한 생활관(영일료)을 완공하고 사원주택과 함께 학교, 음악당 등 문화시설, 내빈 영접을 위한 청송대와 백록대 등을 차례차례 지어나갔다.

 

특히 청암은 사택보다는 자가주택 정책을 선택했다. 회사가 좋은 조건의 장기대여금을 지원해 ‘내 집 마련’을 도와준 것이다.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던 야산은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포항과 광양의 주택단지는 세계 여러 나라 주택개발 사업의 모델이 됐다.

 

박 회장의 판단대로, 주택문제가 해결되자 포스코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으며, 높은 자부심과 애사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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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ㆍ주식도 없는 청빈의 삶…

인재양성 위해선 사재도 물쓰듯

[철강신화 지다 - 인간 박태준]

 

타계직전엔 병원비 내기도 어려울 정도

대한중석 1년만에 흑자로… 능력 입증

41세에 포철 사장 취임 철강 인생 시작

사원주택 건립등 복지에도 남다른 관심

 

김광수기자 bright@sed.co.kr

입력시간 : 2011.12.14 02:21:05수정시간 : 2011.12.14 14:50:38

 

일본 미쓰비시는 포항제철이 일류 철강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사의 설비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특별한 선물을 제안했다.

 

박 명예회장이 해운회사를 설립하면 미쓰비시은행이 돈을 출자해 화물선을 건조하고 화물 알선도 책임지겠으니 그 수익금을 전액 박 명예회장이 관리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이 돈을 개인이 받을 수 없으며 포항공대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수익금 전액을 장학재단에 들어가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박 명예회장은 '화물선 건조자금은 미쓰비시은행이 좋은 조건으로 융자하고 융자금의 95%를 상환할 때까지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겨우 50억원의 포항제철 자금을 들여 거양해운을 만들었다.

 

'장기융자 95% 상환' 조건은 자신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이를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후 거양해운의 수익금이 포항공대로 들어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박 명예회장의 청렴함과 인재양성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이처럼 개인적인 치부(致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는 타계 직전 자비로 병원비를 조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아왔다. 김명전 장례준비위원회 유족 측 대변인(삼정KPMG 부회장)은 13일 "(박 명예회장) 본인 명의로 된 집이나 주식(포스코주식)도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의 신화를 이룩한 '철의 사나이'로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었다. 그는 국가 기반을 다진 거물 경제인이자 정치에도 몸담은 4선 국회의원으로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며 '정치인 박태준'으로의 족적도 뚜렷하게 남겼다.

 

고인은 1927년 경남 양산 출신이다. 1933년 만 6세의 나이로 모친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했다. 1945년 와세다대 공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광복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했다.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2학년까지만 학업을 마치고 다시 귀국했다.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6기생을 마친 뒤 한국전쟁 등을 거쳤고 육군대학 5기로 입교해 수석 졸업(1954년)하기도 했다. 부인 장옥자씨를 만난 것도 그 해다. 맞선을 본 지 한 달여 만에 결혼한 그가 부인에게 처음 받은 선물이 경제학 원론 서적이다. 그가 인생에서 경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순간이다.

 

군인의 삶을 걷고 있던 박 명예회장은 1961년 5ㆍ16 쿠데타 이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같은 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돼 경제인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개발독재'와 '산업화'의 양면을 그리는 대한민국의 성장 드라이브를 주도하는 시발점이 이때다.

 

박 명예회장은 1963년 6월 한국일보에 연재된 이병철의 '우리가 잘 사는 길'을 읽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76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대한민국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외자 도입에 의한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뜻을 같이했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박태준은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박정희로부터 대한중석 사장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한중석을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놓은 박 명예회장은 일본을 오가며 철의 중요성을 느꼈고 종합제철소 건설의 꿈을 키운다.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영문명 POSCO)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철강인으로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후 박 명예회장은 일본 철강업계의 선진기술 도움과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아 포철의 일관제철소 사업을 이끌어 한국 철강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인은 '철강왕'으로 한국 철강산업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포항제철을 경영하며 사원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최고 수준의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박 명예회장은 사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을 포함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설립했으며 1986년에는 포항공과대학교를 세웠다.

 

1981년 포철 초대회장에 취임한 그는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을 통해 탄생한 김대중 정부 시절(2000년) 공동정부의 자민련 몫으로 국무총리에까지 올랐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했다. 1974년 가을 관세법 위반혐의로 가택수색이 진행돼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 장롱에는 이불과 옷이 전부였으며 금고에는 집문서와 패물 몇 가지, 해외출장의 흔적으로 남은 푼돈만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9일 병세가 악화돼 입원해 몇 차례 수술을 받으며 회복되는 듯했으나 이달 초 다시 상황이 나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끝내 13일 눈을 감았다.

 

전문가들은 고인의 사인인 폐질환의 원인으로 석면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인의 젊은 시절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석면이 다량으로 쓰였는데 고인이 워낙 활발한 현장 경영을 펼쳐 석면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피소드

박태준은 최형우 의원과 동향(경남 동래)이자 정파를 뛰어넘은 우정으로 유명하다. 10월 유신 당시에는 옥중에 있던 최형우를 대신해 그가 최형우의 모친을 돌봤다고 하고, 문민정부 출범 이 후에는 최형우가 그를 대신해 기장에 거주하는 그의 모친을 돌봤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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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제철소 건립을 위한 "전초 기지 롬멜 하우스" 를 나서는 박정희(제일 앞 우측)와 측근들. 당시 박태준은 포항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사원 주택단지까지 지어 놓았다. 여기서 박정희는 박태준 앞에서 "이거 남의 집 다 헐어 놓고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건가" 라는 푸념을 던질 정도로 상황은 암담했다.

 

특히 지난 1969년 “한국의 종합 제철소 건립은 타당성이 없다”는 세계은행(IRBD)의 보고서 내용을 뒤짚은 장본인이 바로 박 명예회장이다.

이후 IBRD J 자폐 박사는 박 명예회장에 대해 “우리가 한국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면, 박태준이라는 변수를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1970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 1기 착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김학렬 부총리가

 파일항타 버튼을 누르고 있다.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포항제철 건립식 당시 박정희와 박태준.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강력한 지원을 해 주었다. 포항 제철은 초기부터 정치계로부터 온갖 인사 청탁과 납품 로비에 시달렸는데 이런 애로 사항을 접한 박정희는 직접 "종이 마패" 를 만들어 박태준의 사업에 일체의 정치 사회적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권 위임 약조를 해 주었다.

 

박태준은 오직 제철소 건설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제철보국(製鐵報國·제철로써 나라에 보답한다)', '우향우 정신'(포철을 성공하게 하지 못하면 오른편 영일만에 모두 빠져 죽자는 각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에 매진했고, 기둥 하나가 잘못 세워질 때마다 가차없이 폭파시키는 그의 완벽주의 속에 제철소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포철 건설현장에 열세차례나 방문했었다는 朴正熙대통령과 陸英修(육영수)여사와 朴泰俊(박태준)회장.

    오른편 뒤는 金正謙(김정겸)청와대 비서실장

 

 

1976년 5월 31일 포철 제2고로 화입식에서 직접 불을 당기는 박정희 대통령. 자본도 기술도 없이 추진한

   제철사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25년 후 포철은 조강 규모 2천8백만톤의 세계2위 철강회사로 성장

   한다.

 

1973년 6월 9일 포스코 1기 고로에서 첫 쇳물이 터져 나오자 만세를 부르고 있다. 포스코 제공

 

1972년 10월3일 박태준 사장이 포항종합제철에서 생산한 첫 열연제품에 '피와 땀의 결정'이라는 기념 휘호를 적고 있다.

사진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시찰하는 박태준 회장 모습

 

광양제철소 준공식 참석한 박태준
1987년 광양제철소 준공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안내하는 박태준 포철 회장(오른쪽)

 

 

코트에 중절모를 쓴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조각상(사진)이 개교 25주년을 맞은 포스텍 노벨동산에 세워졌다.

박태준 동상 건립위원회는 2일 대학본부 내 노벨동산에서 박 회장의 가족들과 포스코 전, 현직 회장, 이상득, 이병석 국회의원, 박승호 포항시장,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동상 전면에는 "鋼鐵巨人 敎育偉人 朴泰俊 先生" (강철거인 교육위인 박태준 선생)란 글씨가 새겨져있다.

동상은 노자와 네덜란드 여왕 등을 조각한 중국 난징대 우웨이산 교수가 조각했다.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부인 장옥자 여사

 

 

【서울=뉴시스】김기태 기자 =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부인인 장옥자 여사

  와 아들이 1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박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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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사회장 결정, 청조근정훈장 수여 ‘국립현충원 안장

논의중’      2011-12-14 12:12:23

 

지난 12월 13일 별세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박태준 회장 유족 측 대변인인 김명전 삼정 KPMG 부회장은 12월 14일 빈소에서 박태준 회장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고 밝혔다.

 

김명전 부회장에 따르면 박태준 회장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17일 발인하기로 결정됐다. 구체적인 장례절차 등은 14일 중으로 김남석 행정안전부 1차관 등과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회장에 대한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는 아직 논의 중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정부는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인사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새로 수여했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인사가 사망했을 경우 사회 각계 대표가 자발적으로 모여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사회 명의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사회장은 국가장과 같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절차와 방법, 장지 등을 결정 및 거행한다. 정부에서는 장례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한편 포스코 측은 서울 포스코센터와 포항과 광양 제철소, 일본 사무소 등 총 7곳에 박태준 회장 분향소를 마련했다.

 

[뉴스엔 글 김종효 기자/사진 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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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훈장 [勤政勳章]

 

근정훈장은 1952년 1월 15일에 신설된 것으로 당시에는 4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등급인 청조소성훈장(靑條素星勳章), 2등급인 황조소성훈장(黃條素星勳章), 3등급인 홍조소성훈장(紅條素星勳章), 4등급인 녹조소성훈장(綠條素星勳章)이었다.

 

이처럼 4등급으로 구분된 근정훈장은 1963년 12월 14일 다시 5등급으로 등급 조정이 되면서 5등급에 옥조소성훈장(玉條素星勳章)이 신설, 추가되었다. 1967년 2월 28일에는 근정훈장의 등급별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등급은 청조근정훈장, 2등급은 황조근정훈장, 3등급은 홍조근정훈장, 4등급은 녹조근정훈장, 5등급은 옥조근정훈장이다.

 

근정훈장의 제식(制式)은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은 대수(大綬)에, 메달은 정장(正章)·부장(副章)·약장(略章)·금장(襟章)이며, 2등급인 황조훈장은 중수(中綬)에, 메달은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과 같다.

 

3등급인 홍조근정훈장은 중수에, 메달은 정장·약장·금장이다. 4등급인 녹조근정훈장과 5등급인 옥조근정훈장은 각기 소수(小綬)에, 메달은 3등급인 홍조근정훈장과 동일하다. 이상의 근정훈장의 수여대상은 군인·군속(軍屬)을 제외한 공무원에 한한다.

 

근정훈장은 공무원(군인 ·군무원 제외)으로서 직무에 정려(精勵)하여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1등급의 훈장은 대수(大綬), 2 ·3등급은 중수(中綬), 4 ·5등급은 소수(小綬)로 되어 있고, 정장(正章) ·부장(副章) ·약장(略章) ·금장(襟章)이 있으나, 다만, 3 ·4 ·5등급의 훈장은 부장이 없다.

 

현행 상훈법(1967년 공포)이 시행되기 전에 수여한 청조소성훈장은 청조근정훈장(1등급)이, 황조소성훈장은 황조근정훈장(2등급)이, 홍조소성훈장은 홍조근정훈장(3등급)이 되었다.

청조근정훈장 (1등급)

 

 

옥조 근정훈장 5등급

홍조 근정훈장 2등급

청조 근정훈장 1등급

 

■ 훈장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훈장의 종류는 12종으로 돼 있지만, 훈장의 종류간에는 우열이 없다. 다만 같은 종류의 훈장간에는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순위가 나뉘어지지만, 우리 나라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은 등급이 없다.

▲ 무궁화대훈장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은 그 수여대상자가 대통령과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만 받을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의례적으로 대통령이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서 신임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해왔다.

전통을 깨뜨린 인물은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취임당시 "아무런 공적이 없는 상황에서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5년 임기를 마친 뒤 공적을 인정받고 정당하게 훈장을 받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훈장은 의례적으로 받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적을 기초로 받아야 명예를 높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5년 임기를 마친 뒤 실제 훈장을 받을 수 있을 지에 주목된다.

이후 노대통령은 2008년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 건국훈장

건국훈장은 '건국 또는 국기를 공고히 한 자'가 수여대상이다.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등급이 나뉜다.

▲ 국민훈장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분야 유공자가 받을 자격이 있으며, 무궁화장(1등급)과 모란장(2등급), 동백장(3등급), 목련장(4등급), 석류장(5등급)이 있다.

▲ 무공훈장

전시나 비상사태 때 전투에 참여한 무공자에게 수여되며, 태극(1등급)과 을지(2등급), 충무(3등급), 화랑(4등급), 인헌(5등급)으로 구분된다.

▲ 근정훈장

근정훈장은 공무원들이 받는 훈장으로 사립학교 교원도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받을 수 있다. 청조(1등급)와 황조(2등급), 홍조(3등급), 녹조(4등급), 옥조근정훈장(5등급)으로 등급이 구분된다.

근정훈장은 재직기간이 33년이상인 자에게 수여되며 공무원 직위에 따라 훈장의 등급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훈장의 등급비교는 의미가 없다.

일반공무원의 경우 장관급 이상이 청조근정훈장을 받으며, 1급이상 차관급까지 황조근정훈장, 2∼3급 공무원이 홍조근정훈장, 4∼5급 공무원은 녹조근정훈장, 기능직과 고용직을 포함한 6급이하 공무원이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 보국훈장

보국훈장은 국가안전보장 유공자인 군인과 군무원이 받으며, 통일장(1등급)은 대장이, 국선장(2등급)은 중장, 천수장(3등급)은 소장과 준장 및 군무원1급, 삼일장(4등급)은 영관급과 군무원 2∼4급, 광복장(5등급)은 위관급 이하와 5급이하 군무원이 받는다.

▲ 수교훈장

수교훈장에는 광화대장과 광화장(1등급), 흥인장(2등급), 숭례장(3등급), 창의장(4등급), 숙정장(5등급)이 있으며, 국권신장이나 우방과의 친선유공자가 받을 수 있다.

▲ 산업훈장

납세자의 날이나 수출의 날 등 국가산업발전에 공이 큰 사람이나 기업이 받는 훈장이다. 급탑(1등급), 은탑(2등급), 동탑(3등급), 철탑(4등급), 석탑(5등급)으로 구분된다.

▲ 새마을훈장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유공자가 받는 훈장으로 자립장(1등급), 자조장(2등급), 협동장(3등급), 근면장(4등급), 노력장(5등급)이 있다.

▲ 문화훈장

문화예술 발전의 유공자가 받는 훈장으로 금관(1등급), 은관(2등급), 보관(3등급), 옥관(4등급), 화관(5등급)이 있다.

▲ 체육훈장

우리나라 체육발전 유공자가 받는 훈장이며 청룡장(1등급), 맹호장(2등급), 거상장(3등급), 백마장(4등급), 기린장(5등급)으로 나뉜다.

▲ 과학기술훈장

과학기술훈장은 과학기술발전 유공자가 받는 훈장으로 창조장(1등급), 혁신장(2등급), 웅비장(3등급), 도약장(4등급), 진보장(5등급)이 있다.

■ 포장의 종류

포장은 훈장의 다음가는 훈격으로 등급이 없으며 종류는 12종이다. 포장에는 건국포장, 국민포장, 무공포장, 근정포장, 보국포장, 예비군포장, 수교포장, 산업포장, 새마을포장, 문화포장, 체육포장, 과학기술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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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훈장의 종류 : http://blog.daum.net/yescheers/859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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