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소장 마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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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관련

2012. 4. 24.

조선말기에 마패도 일부 가짜가 유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적종류로 약간 작은 형태의 마패도 있었구요.

 

흔히 마패하면 암행어사의 전유물로 생각하시는데 그건 조선후기때 이야기고 지금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공직자의 출장여비로 마패를 주어 교통편인 역마를 이용하게 한것 이 주목적 이었습니다.

 

이러한 용도로 쓰인 마패들이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데 일부 가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의심되는 마패는 전시품의 앞 뒷면을 확인만 할수 있다면 답은 바로 나올수 있지만 시중에는 이미지 단면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비교해 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당시 마패의 부정사용이나 분실시에 처벌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마패를 주식(양식)과 바꾸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고 암행어사가 임지에 도달해서 임무수행을 하고 복귀할때까지의 생존율이 30% 미만으로 볼때 상당수 마패가 분실된 것을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실제 필요한 인원보다 많은 숫자의 암행어사를 선발하여 임지로 보냈고 그 연령대도 20대 초반의 체력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위주로 선발하였지만 임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다음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 임지로 떠나는 도중 얼어죽거나 굶어죽거나 들짐승의 공격을  받는 경우.

- 산적에게 잡힐 경우.

- 임지의 수령에게 그 신분이 노출되어 수령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하거나 탄핵

   당할 경우.

- 마패를 비롯한 암행어사를 증명할 수 있는 물품을 망실할 경우.

 

현재 여러 곳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마패에 대한 자료를 올려드립니다. 일부 진위여부에 관심이 가는 마패가 있는데 단면의 이미지라서 평하기는 그렇고 뒷면까지 확인할 수 있다면 사진 감정정도는 해볼 수 있는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윤자호(閏字號) 3마패 (위조방지 윤자 : 밀납 추가 삽입)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글자 하나는 밀납으로 특수하게 본을 만들어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예) "0자호 일마패" 등의  0의 글자가 일반글자 주물형태가 아닌 뒤에 별도로 만들어 붙였습니다.

      윤자호, 숙자호 등등 입니다. 위와 같은 형태가 아닌 것은 100% 가짜입니다만,

      특별한 형태가 있다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분들 과는 이야기 하기 싫습니다. 

 

처음 0자호 글자는 주물사 제조법으로 만들고 0은 처음 주물시에 글자를 넣지

않고 이후에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글자 하나를 밀납주조 방식으로
윤,지,숙,추,황,유 자 등을 바탕면에 특수하게 본을 만들어 추가 글자를 만들어

붙인 것입니다.

 

 

3마패 (삼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9.7 , 지름 : 11.2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校) / 연세대(연세대) 유물번호 : 금속(금속) 841888-000 <정의>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발달과정/역사>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 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 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 원종때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 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충렬왕2)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감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0년(태종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 뒤《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마패의 재료는 나무·철·구리 등이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 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사용되었다. 마패의 앞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뒷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패에 앞면에 말의 수, 뒷면에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넣었다. 『경국대전』의 마패 발급절차에는, 중앙의 경우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보고나 진상 등 필요한 때에 사용하였다.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마패는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앞면에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숫자를 표시하는데 이 마패에는 세 마리가 있다. 뒷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기는데 ‘尙瑞院 閏字號三馬牌 擁正元年正月 日’라고 찍혀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 1981.

 

지자호(地字號) 5마패 (위조방지 윤자 : 밀납 추가)

 

5마패 (오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10.2 , 지름 : 11.7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校) / 연세대(연세대) 유물번호 : 금속(금속) 841890-000 <정의>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발달과정/역사>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 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 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 원종때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 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충렬왕2)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감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0년(태종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 뒤《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마패의 재료는 나무·철·구리 등이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 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사용되었다. 마패의 앞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뒷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패에 앞면에 말의 수, 뒷면에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넣었다. 『경국대전』의 마패 발급절차에는, 중앙의 경우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보고나 진상 등 필요한 때에 사용하였다.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마패는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앞면에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숫자를 표시하는데 이 마패에는 다섯 마리가 있다. 뒷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기는데 ‘尙瑞院 地字號五馬牌 天啓四年三月 日’라고 찍혀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 1981.

 

 

 

1마패 (일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최대지름 : 11.3 , 두께 : 1.0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校) / 전북대(전북대) 유물번호 : 전북대(전북대) 001553-000 <정의>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

 

<발달과정/역사>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관찰사·절제사·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지름이 10 cm 정도되는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연호·연월일과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 새기고, 한 쪽 면에는 말을 새겼는데, 말의 수가 1마리부터 10마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 급마규정(給馬規定)에 따라 지급하였다.

 

<참고문헌>

 

엔싸이버 백과사전, 2004

 

 

 

1마패 (일마패)

유물명칭 : 마패(馬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10.3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국립2(國立2) / 민속(民俗) 유물번호 : 민속(민속) 001007-000

 

출장중인 관원에게 필요한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한 둥근 패.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尙瑞院)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마패의 재료는 나무·철·구리 등이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 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사용되었다.

 

마패의 앞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뒷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패에 앞면에 말의 수, 뒷면에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넣었다.

 

『경국대전』의 마패 발급절차에는, 중앙의 경우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보고나 진상 등 필요한 때에 사용하였다.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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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패 소장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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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나무(나무) 크기 : 지름 : 6.7 , 두께 : 1.5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국립2(國立2) / 민속(民俗) 유물번호 : 민속(민속) 000680-000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한 마패(馬牌).

 

삼마패는 삼마패(三馬牌)는 정이품(正二品)이상의 관원들에게 발급되던 마패로서, 마패의 한 면에 세 마리의 말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관원(官員)들의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에는 역마(驛馬)가 이용되었다. 관원들은 역마의 상서원(尙瑞院)에서 발급한 마패(馬牌)를 증표로 제시하고, 각 역참에서 역마를 지급받았다.

 

마패의 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한면에는 사용자의 관등의 고하에 따른 마필(馬匹)의 수효가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에는 자호(子號)와 연월(年月)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木造馬牌)·철제마패(鐵製馬牌)·동제마패(銅製馬牌)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나무를 재료로 마패를 제조하였으나 파손이 심하여, 세종 16년(1434)에는 철제로 제작하게 하였으며, 《경국대전》 반포시기에 이르러서는 구리로 상용화 하기에 이르렀다.

 

왕족의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에 한 면에는 말의 수, 다른 면에는 `馬`자만을 사용할 숫자대로 새겨 넣어 사용했다.

 

지방행정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마패는 암행어사의 상징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마정사(남도영, 한국마사회마사박물관, 1996)

 

〈유사관련용어〉

마패, 역참제

 

 

 

1마패 (일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9.4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출토지: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 명문내용: 尙瑞院 閏字號一馬牌 雍正八年六月 日. 소장처 : 공립(公立) / 인천시립(인천시립) 유물번호 : 인천시립(인천시립) 000659-000

 

마패는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를 가리키는 것으로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이 마패는 말을 2마리 징발할 수 있는 일마패(一馬牌)이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尙瑞院)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 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시대 원종(元宗) 때에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충렬왕 2년(1276)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규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태종 10년(14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 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木造馬牌)·철제마패(鐵製馬牌)·동제마패(銅製馬牌)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세종 16년(1434)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되었다.

 

마패의 일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일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일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마패의 발급절차는 1410년 4월이 기록에 의하면 의정부(議政府)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주고, 출사(出使)하는 관원은 승정원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중앙의 경우 무릇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帖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 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발마하게 하고,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쌍마)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었으나, 중종 6년(1511) 12월의 기록에 보면 상서원의 서리(胥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과 같이 마패를 도둑질하여 기마(起馬)의 목적 이외의 주식(酒食)과 바꾸어지는 사례가 허다하였으며, 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 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一馬牌 擁正八年六月 日)`이라는 명문과 함께 상서원인(尙瑞院印)이 새겨져 있다. 일마패이므로 후면에는 말 두 마리가 양주되어 있다.

 

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서 자호 즉, 연호를 바꾸어야 하였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개조되었다. 그리하여 영조 6년(1730) 6월 영의정(領議政) 홍치중(洪致中)이 마패의 개조 문제를 논하는 가운데 당시 사용되고 있는 마패의 총수효를 살펴보면 각 지방에 160여개, 중앙에 500여개, 모두 670여개의 마패를 주조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패에 관련된 일화는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하고 돌아온 자객(刺客) 홍종우(洪鍾宇)가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마패를 훔쳐 서울까지 도망쳤던 일이 최후의 사건이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마패는 옹정 8년(1730)에 제작된 일마패(一馬牌)이다. 마패의 한면에는 `상서원 윤자호일마패 옹정팔년육월 일(尙瑞院 閏字號)

 

 

2마패 (이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11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출토지: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 명문내용: 尙瑞院 閏字號二馬牌 雍正八年六月 日. 소장처 : 공립(公立) / 인천시립(인천시립) 유물번호 : 인천시립(인천시립) 000658-000 3D유물 :

 

마패는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를 가리키는 것으로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이 마패는 말을 2마리 징발할 수 있는 이마패(二馬牌)이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尙瑞院)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 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시대 원종(元宗) 때에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충렬왕 2년(1276)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규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태종 10년(14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 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木造馬牌)·철제마패(鐵製馬牌)·동제마패(銅製馬牌)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세종 16년(1434)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되었다.

 

마패의 일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일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일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마패의 발급절차는 1410년 4월이 기록에 의하면 의정부(議政府)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주고, 출사(出使)하는 관원은 승정원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중앙의 경우 무릇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帖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 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발마하게 하고,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쌍마)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었으나, 중종 6년(1511) 12월의 기록에 보면 상서원의 서리(胥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과 같이 마패를 도둑질하여 기마(起馬)의 목적 이외의 주식(酒食)과 바꾸어지는 사례가 허다하였으며, 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 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二馬牌 擁正八年六月 日)`이라는 명문과 함께 상서원인(尙瑞院印)이 새겨져 있다. 이마패이므로 후면에는 말 두 마리가 양주되어 있다.

 

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서 자호 즉, 연호를 바꾸어야 하였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개조되었다. 그리하여 영조 6년(1730) 6월 영의정(領議政) 홍치중(洪致中)이 마패의 개조 문제를 논하는 가운데 당시 사용되고 있는 마패의 총수효를 살펴보면 각 지방에 160여개, 중앙에 500여개, 모두 670여개의 마패를 주조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패에 관련된 일화는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하고 돌아온 자객(刺客) 홍종우(洪鍾宇)가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마패를 훔쳐 서울까지 도망쳤던 일이 최후의 사건이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마패는 옹정 8년(1730)에 제작된 이마패(二馬牌)이다. 마패의 한면에는 `상서원 윤자호이마패 옹정팔년육월 일(尙瑞院 閏字號)

 

 

 

목조 1마패 (일마패)

유물명칭 : 일마패(一馬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크기 : 지름(지름) : 5.5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敎) / 고려대(고려대) 유물번호 : 고박09(고박09) 000059-000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 원종 때에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충렬왕2)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규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0년(태종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철제마패·동제마패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뒤 《경국대전》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되었다.

 

마패의 일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일면에는 자호(字號)와 년·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일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마패의 발급절차는 1410년 4월의 기록에 의하면 의정부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주고, 출사(出使)하는 관원은 승정원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중앙의 경우 무릇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帖文)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발마하게 하고,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雙馬)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었으나, 1511년(중종 6) 12월의 기록에 보면 상서원의 서리(書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과 같이 마패를 도둑질하여 기마(起馬)의 목적 이외의 주식(酒食)과 바꾸어 먹는 사례가 허다하였으며, 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 대개 자호 즉 연호를 바꾸어야 하였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개조되었다. 그리고 1730년(영조6) 6월 영의정 홍치중(洪致中)이 마패의 개조 문제를 논하는 가운데 당시 사용되고 있는 마패의 총수효를 살펴보면 각 지방에 160여개, 중앙에 500여개, 모두 670여개의 마패를 주조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마패 (오마패)

유물명칭 : 오마패(五馬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지름) : 10 , 두께(두께) : 1.1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敎) / 고려대(고려대) 유물번호 : 고박09(고박09) 000058-000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이와같은 마패의 연혁은 고려 원종 때에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충렬왕2)에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규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0년(태종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철제마패·동제마패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1434년(세종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뒤 《경국대전》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되었다. 마패의 일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일면에는 자호(字號)와 년·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일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마패의 발급절차는 1410년 4월의 기록에 의하면 의정부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주고, 출사(出使)하는 관원은 승정원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중앙의 경우 무릇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帖文)를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마패를 발급한다고 하였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발마하게 하고, 군사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雙馬)를 이용, `긴급사(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었으나, 1511년(중종 6) 12월의 기록에 보면 상서원의 서리(書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과 같이 마패를 도둑질하여 기마(起馬)의 목적 이외의 주식(酒食)과 바꾸어 먹는 사례가 허다하였으며, 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 대개 자호 즉 연호를 바꾸어야 하였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개조되었다. 그리고 1730년(영조6) 6월 영의정 홍치중(洪致中)이 마패의 개조 문제를 논하는 가운데 당시 사용되고 있는 마패의 총수효를 살펴보면 각 지방에 160여개, 중앙에 500여개, 모두 670여개의 마패를 주조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마패 (삼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최대지름 : 11.7 , 안지름 : 9.7 , 두께 : 1.0 작자/필자 : 미상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웅진출판주식회사) 소장처 : 학교(學校) / 경북대(경북대) 유물번호 : 소장유물(소장유물) 000650-000

 

<정의>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

 

<발달과정/역사>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관찰사·절제사·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지름 10cm 정도의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연호·연월일과 ‘상서원인(尙書院印)’이라 새기고, 한 쪽 면에는 말을 새겼는데, 말의 수가 1마리부터 10마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 급마규정(給馬規定)에 따라 지급하였다. 마패는 조각된 말의 수에 따라 1마패, 2마패, 3마패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영조 때에는 암행어사에게 3마패를 주로 주었고, 고종 때에는 주로 2마패를 주었다.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마패는 어사가 인장 대용으로 사용하였고 어사출두 때는 역졸이 손에 들고‘암행어사 출두’라고 크게 외쳤다.

 

이 마패는 세 마리의 말이 새겨진 삼마패(三馬牌)이다. 앞면에는 세 마리의 말이 표현되어 있다. 뒷면에는 상서원인과 함께 천계(天啓) 4년 3월의 연호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웅진출판주식회사)

 

 

 

5마패 (오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길이(길이) : 10.6 , 지름(지름) : 9 작자/필자 : 미상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출토지: 충청남도(忠淸南道) () 소장처 : 공립(公立) / 대전향토(대전향토) 유물번호 : 향사역민(기증1)() 000226-000

 

명칭 : 마패 표준어명칭 : 마패

재질 : 놋쇠

크기 : 길이 10.6cm x 직경 9.0cm

 

<정의>

격마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개설>

 

나라일로 지방에 가는 관리가 역에 있는 말을 빌어 쓸 수 있는 패가 마패이며, 한 마리를 새긴 단마패에서 열마리를 새긴 십마패 까지 있다.

 

<역사>

 

마패의 연혁은 고려 원종 때의 포마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 (충렬와2) 에 포마차자색을 설치, 다루가치의 규제를 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0년(태종10) 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을 실시하였으며, 1414년에 공역서인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마패법은 그 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 ·관찰사 ·절제사 ·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 ·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다.

 

지름이 10 cm 정도되는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연호 ·연월일과 ‘상서원인(尙書院印)’이라 새기고, 한 쪽 면에는 말을 새겼는데, 말의 수가 1마리부터 10마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 급마규정(給馬規定)에 따라 지급하였다.

 

또한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마패는 어사가 인장 대용으로 사용하였고 어사출두 때는 역졸이 손에 들고 ‘암행어사 출두’라고 크게 외쳤다.

 

조선 후기 상하이[上海]에서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하고 돌아온 자객(刺客) 홍종우(洪鍾宇)가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마패를 훔쳐 서울까지 도망쳤던 일은 마패에 얽힌 최후의 사건이다

 

 

2마패 (이마패)

유물명칭 : 마패(馬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기타(其他) 크기 : 지름 : 8.1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소장처 : 학교(學校) / 군산대(군산대) 유물번호 : 군산대(군산대) 000602-000 <정의>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

 

<개설>

출장중인 관원에게 필요한 역마의 지급을 규정한 둥근 패로 발마패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는데, 상서원(尙瑞院)으로 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역사>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 ·관찰사 ·절제사 ·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 ·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마패의 종류는 나무,철,구리 등이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하여 세종 16년(1434) 2월에 철로 제조하였으며, 그 뒤 경국대전 반포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사용되었다. 마패의 앞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뒷면에는 자호(字號) 와 연월일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을 찍었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패에 앞면에 말의 수,뒷면에 사용할 숫자대로 마(馬)자만을 새겨 놓았다.

 

이 마패에는 앞면에 상서원(尙瑞院)지자호이마패(地字號貳馬牌)천계사년삼월 일(天啓四年三月 日)이라는 명문과 상서원인(尙瑞院印)이 찍혀있다. 뒷면에는 말이 두마리가 그려져있다.

 

<참고문헌>

 

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마패 (이마패)

유물명칭 : 마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너비 : 9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참고문헌 : 문경새재박물관 도록 18쪽, 고려사, 태종실록, 세종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영조실록, 증보문헌비고, 경국대전, 대전통편, 역제(허선도, 한국군제사, 육군본부, 1968), 조선전기의 교통?통신(남도영, 서울육백년사 1,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조선시대 향촌사회사(정진영, 한길사, 1998), 조선후기 향촌사회연구(최홍규, 일조각, 2001),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한국역사연구회, 아카넷, 2003), 소장처 : 공립(公立) / 문경새재박(문경새재박) 유물번호 : 문경새재박(문경새재박) 000066-000

 

<정의>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

 

<개설>

마패는 둥근 동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표면에 1~10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상서원인(尙書院印)의 자호와 연월일이 새겨져 있다.

 

<역사>

고려시대의 포마법의 실시와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 원종 이후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마패를 발마패(發馬牌)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이 주로 역마를 이용하기 위해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증표로 마패가 이용되었다.

 

마패는 고려 원종 때에 포마법(鋪馬法)을 실시하면서 구체화되었는데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6년(충렬왕 2)에는 포마차자색(鋪馬箚子色)을 설치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의 규제를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0년(태종 10)에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이 실시되고 이어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법제화되어 <경국대전>에 기록되어있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철제마패?동제마패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파손이 심해 1434년(세종 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이 반포될 무렵에는 구리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마패의 한 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러나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한 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馬’자만을 새겨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였지만, 마패에 관한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 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3마패 (삼마패)

유물명칭 : 삼마패(三馬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 지름 : 7 용도/기능: 군사(軍事) / 표식제식(標識制式) / 표식장(標識章) / 기타(其他) 명문내용: 尙瑞院 閏字號三馬牌 擁正八年 六月日(상서원 윤자호 삼마패 옹정팔년 육월일) 소장처 : 법인/사립(法人/私立) / 전쟁기념(전쟁기념) 유물번호 : 1992(1992) 106029-000

 

<정의>

마패(馬牌)는 관원(官員)이 공무(公務)를 수행할 때, 말을 이용할 수 있는 증표(證票)이다.

 

<발달과정/역사>

황동(黃銅)으로 만들었으며, 한 면에는 관원의 품계에 따라 규정된 마필의 수, 다른 면에는 자호(字號)와 년 월, 그리고 전서체(篆書體)로 `상서원인(尙書院印)`이라는 네 글자를 새겼다. 우리나라에서 마패 제도가 시행된 것은, 고려 원종(元宗) 15년(1274)부터 이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들 모두에게 마패를 지급했는데, 병조(兵曹)에서는 직급에 따라 증명서를 발급하고, 상서원(尙瑞院)에서는 마패를 지급하였다. 또한 각 도의 관찰사와 절도사에게는 모두 역마를 동원할 수 있는 발마패(發馬牌)를 지급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본 유물은 복제(複製)한 것으로, 앞면에 말 한 마리가 양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尙瑞院 閏字號三馬牌 擁正八年 六月日(상서원 윤자호 사마패 옹정팔년 육월일)`과 상서원 인장이 양각되어 있다.

 

<제원>

지름 : 7cm

 

* 마패(馬牌) :

대소 관원이 공사(公事)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證憑)으로 사용하던 패.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 관찰사, 절제사, 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 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다.

 

지름이 10cm정도 되는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연호 연월일과 `상서원인(尙書院印)`이라 새기고, 한 쪽 면에는 말을 새겼는데, 말의 수가 1마리부터 10마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 급마규정(給馬規定)에 따라 지급하였다. 또한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마패는 어사가 인장 대용으로 사용하였고 어사출두 때는 역졸이 손에 들고 `암행어사 출두`라고 크게 외쳤다.

 

조선 후기 상하이[上海]에서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하고 돌아온 자객(刺客) 홍종우(洪鍾宇)가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마패를 훔쳐 서울까지 도망쳤던 일은 마패에 얽힌 최후의 사건이다.

 

* 연호(年號) :

임금의 재위 연대에 붙이는 칭호. [`광무(光武)` `융희(隆熙)` 따위.] 다년호. 원호(元號).

 

* 병조(兵曹) :

고려와 조선 시대의 육조(六曹)의 하나. 무선(武選) 군무(軍務) 의위(儀衛) 우역(郵驛)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음.

 

* 상서원(尙瑞院) :

조선시대의 관청.

조선 개국년인 1392년 창설한 상서사(尙瑞司)를 1466년(세조 12) 개칭한 것으로, 새보(璽寶) 부패(符牌) 절월(節鉞)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관원으로는 정(正:정3품 당상관) 1명을 두되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가 겸직하고 판관(判官:정5품) 직장(直長:종7품) 각 1명, 부직장(副直長:정8품) 2명을 두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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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유물명칭

마패 (馬牌)

국적/시대

한국(韓國) 조선(朝鮮)

재질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크기

길이 : 10 cm / 너비 : 8.6 cm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사회제도(社會制度) 신표(信標) 마패(馬牌)

소장기관

학교(學校) / 전주대(전주대) /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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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馬牌). 조선 1434년. 성암 고서박물관 소장

 

O 유물명칭 : 마패 연대 : 조선시대(1624년) 크기 : 경 11.8cm (출처 : 숙명여대)

 

 

O 유물명칭 : 마패

-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 재질 : 금속(金屬) / 동합금제(銅合金製)

- 크기 : 지름 : 9.4 cm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 사회제도(社會制度) / 신표(信標) / 마패(馬牌)

- 출토(소)지 :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 명문내용 : 尙瑞院 閏字號一馬牌 雍正八年六月 日.

- 소장처 : 공립(公立) / 인천시립(인천시립)

 

O 유물명칭 : 마패

- 크기 : 지름 : 11 cm

- 출토(소)지 :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 명문내용 : 尙瑞院 閏字號二馬牌 雍正八年六月 日.

- 소장처 : 공립(公立) / 인천시립(인천시립)

 

O 국가지식포털 마패 재질 : 銅, 크기 : 길이 10.6cm x 직경 9.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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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조세박물관

 

소장처 ?

고려대학교 박물관

대구 국립박물관 소장 4마패, 5마패, 3마패

대구 국립박물관 소장 5마패

대구 국립박물관 소장 4마패

철도박물관(鐵道博物館) : 경기도 의왕시 위치 (한국철도공사 산하 박물관)

철도박물관 십마패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오마패

국립중앙박물관 오마패

 

문경옛길 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 사마패

 

경찰박물관 마패

고궁의 보물 책자

유물상세정보

 

유물명칭 : 마패(馬牌)

제어번호 : cp0322031009

시 대 : 조선

재 질 : 금속(金屬)

규 격 : 두께:0.7cm 경:9.7cm

구조특징 : 상서원. 서기1601년. 선조34년 유자호이마패

만력 29년 7월 일 상서원 인 .낙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글자 하나는 밀납으로 특수하게 본을 만들어 조금씩 다르게 제작 惟(유)

유물에 나타난 문양

 

유물상세정보

 

유물명칭 : 마패(馬牌)

제어번호 : cp0322031010

시 대 : 조선

재 질 : 금속(金屬)

규 격 : 두께:0.7cm 지름:9.5cm

구조특징 : 상서원 서기 1730년 영조6년 숙자호삼마패

옹정8년6월 일 상서원 인

 

 

위조방지 글자 宿(숙)

 

유물상세정보

 

유물명칭 : 마패(馬牌)

제어번호 : cp0322031011

시 대 : 조선

재 질 : 금속(金屬)

규 격 : 두께:0.7cm 지름:9.6cm

구조특징 : 상서원 양자호이마패

옹정8년6월 일 상서원 인

 

 

유물상세정보

 

유물명칭 : 마패(馬牌)

제어번호 : cp0322031012

시 대 : 조선

재 질 : 금속(金屬)

규 격 : 두께:0.8cm 지름:9.8cm

구조특징 : 상서원 서기1775년 영조31년 생자호일마패

옹정20년11월 일 상서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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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관인으로 만든 벽사부 말부적은 악귀 퇴치용으로도 사용

되었다.

 

이는 일반마패보다 지름이 1cm이상 작고 상서원인 관인을 정품

마패와 다르게 만들었다.

 

例를 하나만 들면 상서원인의 尙자 진품은 아래가 자 형태지만 흔히 보는 가품과 부작(벽사부) 마패는 자 형태를 하고 있다.

 

다른 글자도 진품과 비교하면 다른 형태로 되어 있으며 시중유통 가품 마패는 글자 형태가 진품관인과 비슷한 서체가 없다.

 

                     

진품 마패 자형       부작 마패 ㅌ자형     시중유통 가품 ㅌ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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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관인 벽사부 (暗行御史 官印 辟邪符)

 

 

 

 

 입체부(立體符) > 벽사부(僻邪符)

 

 

제 목 : 2마리마패부작(二馬牌符)

                                                 분 류 : 입체부(立體符) > 벽사부(僻邪符)

                                                 사용연대 : 조선(1780년) 수 집 1976년

                                                 형 태 : 입체부 크 기 지름 9.3 cm

                                                 소장/출처 : 김민기(민속학자, 화가)

 

마패는 암행어사의 증명패이다. 부패한 관리를 천명으로 다스려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고 악인을 감옥에 압송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의 "관인벽사변증설"에서 관인이 찍힌 문서를 집안에 두면 잡귀가 집안에 들어 올 수 없다는 믿음을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마패는 악귀, 사귀, 병귀등을 잡아 압송하는 퇴귀 벽사부로 쓰인다. 복제품으로 부작을 만들었다.

 

 

                                 제 목 : 3마리마패부작(三馬牌符)

                                 분 류 : 입체부(立體符) > 벽사부(僻邪符)

                                 사용연대 : 1624년 수 집 1985년

                                 형 태 : 입체부 크 기 지름 3.1 cm

                                 소장/출처 : 김민기(민속학자, 화가)

  

 

 

                                     제 목 : 5마리마패부작(五馬牌符)

                                     분 류 : 입체부(立體符) > 벽사부(僻邪符)

                                     사용연대 : 조선(1780년) 수 집 1985년

                                     형 태 : 입체부 크 기 지름 8.5 cm

                                     소장/출처 : 김민기(민속학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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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 직인 문서와 유척 (鍮尺)

 

마패는 왕의 명을 받은 사신임을 증명하는 패로서 암행어사의 문서에 직인으로도 사용을 했습니다.

 

 

조선시대 왕명을 비밀리에 받고 민정을 살핀 임시적 관직이 암행어사 였는데, 인조 때부터 제도화되어 젊은 조신(朝臣)을 국왕이 직접 임명하여 봉서(封書) ·사목(事目) ·마패 ·유척(鍮尺) 등을 수여하였다.

 

봉서는 남대문을 나서야 뜯어 볼 수 있고 그때서야 누가 무슨 도의 암행어사로 가는지 신분표시와 임무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암행어사의 증표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패와 유척으로 마패는 당시 교통 수단인 말을 빌리는 증표로 사용되었고, 어사는 소지한 마패에 조각된 말의 수량만큼 역마를 빌릴 수 있었다.

 

 소지와 암행어사의 판결 (所紙)  조선 필사본(筆寫本) : 문경옛길 박물관

전라도 장선읍 서면 구암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올린 송사로 암행어사가 가지고 있던 마패 직인 사용

 

 

 

 

 

 李鎭璜이 암행어사에게 진정한 문서 1점


李鎭璜이 집터가격의 분쟁에 대해 암행어사에게 진정한 문서로 암행어사의 수결이 있는 귀중한 문서이며 마패가 찍혀 있다.  <크기> 208.0×32.0㎝

 

 

암행어사 마패인이 다수 날인된 咸豊四年의 <장흥부각면구폐절목(長興府各面救弊節目)>으로 겸임행강진현감과 암행어사 조헌섭의 수결이 있는
표지 포함 5장 분량의 완전한 상태의 큰 첩문서이다.  <크기> 27.5×42.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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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형기구들 되,밀대, 자, 저울

 

병부 주머니와 마패

 

유척은 순수한 구리로 만든 자인데, 조선시대 국가가 인정하는 도량형 제도상 척도의 표준이다. 이것은 국가를 운용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유척
조선시대 놋쇠로 만든 자. 파견된 암행어사들은 유척을 지니고 다녔다.

유척은 한 자 길이의 구리자로 지방관아의 되와 말, 형구의 규격을 재는 도구다.

 

 

       

                국립고궁박물관 유척                                           유척

조선시대 놋쇠로 만든 자이다. 유척은 제작된 솜씨가 매우 정교하며 다른 면에도황종척·주척·영조척·조례기척·포백척 등이 새겨 있다. 조선시대에 도량형 표준을 점검하는 도구로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녔다. 다섯가지 표준척도를 한 개의 사각기둥에 적절히 배치한 것은 관에서 척을 제작하여 관청과 각 지방에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조선전기는 척의 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관에서 鐵尺 등을 보급하자는 논의가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암행어사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는 군사를 움직이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집안간의 송사나 분쟁에 대한 판결을 하기도 하였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인장처럼 사용하였는데, 집안의 송사를 판결하면서 여러 번 마패로 직인을 찍었다.

 

 

 

이것의 내용은 어떤 집안에 조선시대의 음서제도에 의한 벼슬을 내리는 것에 관해 그 집안의 장손이 자신이 받아야 된다는 송사를 하자 암행어사가 이 벼슬은 장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칭송하고 나라에 공이 많은 차남의 집에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결을 적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패를 직인으로 사용하였다. 


마패의 역사와 마패 직인 문서 

http://blog.daum.net/yescheers/8597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