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관모 김제권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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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이야기

2012. 9. 4.

 

 

자랑스러운 우리 종인을 소개합니다.

 

문화촌 뉴스

http://www.uc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

 

두 개를 위해 버린 삼천 개의 보석
전통관모 김제권 명인
 
  2010년 01월 12일 (화) 21:36:26 박명현 기자  pmh@ucnnews.com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이 되는 것이 '의식

주(衣食住)'인데, 먹는 것이 제일 먼저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의주(食衣住)’라 하지 않고 '의식주(衣食住)'라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이나 집보다, 옷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나

하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옷(복식)은 지역적인 환경 아래에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오면서

각 시대 상황에 맞게 변천 적응하여 왔다.

 

이러한 우리나라 전통 옷(복식)의 발달에 발맞추어 전통관모와 각종 장신구도 

함께 발달하여 왔는데, 그 중에서 관모(官帽)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관모

(官帽)는 머리에 쓰던 쓰개의 한 종류로 신분과 격식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관모에는 정자관, 사모, 익선관, 패랭이, 흑립, 갓모, 삿갓 등이 있다.”

라고 표기하고 있다.

 

   

▲ 9차 대한명인에 추대된 김제권 명인(오른쪽)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벽화

,

문헌을 통하여 얻어

지는 자료에 의존하여 그 시대에 사용되었던 관모와 장신구를 발굴하여 현대에

재현한다는 것은 아마도 눈 감고 코끼리를 더듬어 그려내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의 옛 것을 복원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힘에 겨운 작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이는데, 그 힘겨운 작업을 삼십오 년째 하고 있는 전통관모 분야

김제권(54) 대한명인을 만나 보았다.

 

전통관모와 장신구를 만드는 기술을 처음 배우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요.
1973년에 보원물산 이성무 선생님께 옥 공예품 및 보석 가공 기술지도를 받았고, 1976년에 이석재 선생님께 호박, 비취옥, 산호 가공 기술과 족두리, 화관 및 관모

기술을 전수받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장신구를 본격적으로 만들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1993년에 족두리를 만들었는데, 족두리에 들어가는 호박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어요.

호박은 천연색이라 시간이 가면 색깔이 변해가요. 한달 내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레이저 처리를 합니다. 원석을 진흙에 싸서 고구마 굽듯이 구우면 자연적으로 색깔이 변하여 호박이 만들어지지요. 처음에 호박 원석을 구하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호박 원석을 20kg 구입하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두 개를 만들어 달랬는데, 10개를 만들어 갔더니 색깔이 모두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다시 20개를 만들고 하다 보니, 고증대로 만들었는데, 맘에 안 든다 하여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3,000개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3,000만 원 어치를 만들게 되었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작품을 의뢰하신 교수님께서 걱정을 하시는 거에요. 제대로 된 거

개 만들려다 3,000개씩이나 만들었으니 돈이 한두 푼도 아니고 큰일 났다고

걱정을 많이 해 주셨어요.

그때 ‘유교복식문화연구원’에 계신 어느 학자분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많이

만든 호박을 가지고 족두리, 반지, 귀거리 등 전통복식분야에 응용하면 많이 팔릴

것 아니냐, 그럼 한복을 많이 입게 하자." 해서 한복의 날을 제정하고 한복을 많이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전통관모 공부를 하시면서 영향을 많이 받으신 분은.
공방 운영을 하고 계시던 유희경 박사님을 만나 많은 지도를 받았고요, 복이 많았

던지 성균관대학교 한국궁중복식연구원 유송옥 박사님의 운현궁 고종 명성후

가례복식 복원 및 재현에 참여하게 되어 관모, 가체, 여러 장신구 등 고증 연구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당시 한복을 만드는 분들이

실력은 출중하지만, 학벌이

낮아서 무학력도 있고, 중학

졸업한 분도 있고 했는데, 한 가지 연구가 끝나고 나면

연구팀이 해체되고 해서

혼자서는 계속 연구하기가

어려워 대학 강의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성균관대

유송옥 교수님께 문의 드렸

더니, 대학에 40명 이상이면

학과를 개설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복디자인을

하는 이들을 모아서 성균관

대 궁중복식연구원에서 수료

를 하였지요.

그 후 방송대학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위해 성균관대와 단국대 디자인과에 많이 입학하여 대학

을 졸업하는 계기가 되어 한복디자인 계통에 학사, 석사, 박사분들이 많이 탄생

하게 되었지요.

그 동안 유송옥 박사님과 의리를 갖고 19년간을 함께 호흡하며 연구를 하여왔는데,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책을 쓰는데 큰 보탬이 되었어요. 복식을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관모를 연구하게 되는데, 관모에는 보석, 금, 은이 들어가고, 매듭 자수

도 들어가기 때문에 함께 연구하다 보니 한복의 발전과 자수 매듭 분야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졌어요. 처음에는 복식하시는 분들이 서양 복식으로 많이들 가셨다가

다시 한복 디자인 분야로 복귀하여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여러 대학으로 파생되어

한복의 복식 발전이 이루어진 거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회도 많이 하시는지요?

 

 

 

 
 

아시아권만 아니라 중동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이스라엘에서 패션쇼 전시회를 하러 갔었는데, 그 당시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에 힘 입어 드라마에 나오는 장신구를 만든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저도 참가하게 되었는데, 전시회 강당에 관람객이 너무 많이 몰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어 감사패를 받기도 했었어요.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할 때에는 ‘화관’을 보고 관심들을 많이 보여서 ‘화관’ 속에는 소우주가 들어있다고 했더니, 모두들 놀라는 모습이더군요. ‘화관’에는 그 모습이 해와 달을 뜻하고 소우주가 담겨있으며 왕비가 쓰는 거다. 하나하나에 천지인 사상이 들어 있으며,

대나무 다섯개는 변하지 않는 절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왕의 왕관 ‘크라운’

은 오대양 육대주를 의미하지만, ‘화관’은 헤어캡(모자)이 아니고 ‘화관’이다.

 

한복도 투피스가 아니라 ‘한복’이다. 한복과 함께 한국 문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것이 ‘화관’이라고 설명해 줬더니 박수를 치고 대단한 호응을 받았지요.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도 많이 참여하셨지요?
주몽, 대장금 드라마 등 MBC, SBS, KBS 사극 드라마 뿐만 아니라 사극 영화에도

제작 참여를 많이 했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주취칠적관’을 200년을 써

왔는데 자료가 없어서 학자

분들도 이론상으로만 알았지 실제 본 적이 없어서, 영국에

가면 있다고 해서 가보니

청나라 시대 것이라서 중국의 황주를 거쳐 심양에 가 봐도

없어서, 명나라 때에 시작한

것이라서 남경에도 가 봤더니 역시 없었어요. 다시 북경에

가서 정릉을 찾아갔더니 명나라 태종왕이 묻혀 있는데,

자료가 거기 있었어요.

황제는 12류, 왕비는 9류인데, 황제의 아들 군왕은 9류를

썼더군요.

조선의 왕은 ‘주취칠적관’

이라 해서 진주보석의 푸른색

 

으로 장식된 7류의 관으로, 붉은색 의 옷에 일곱 마리의 봉황새가 들어가 있는

왕의 옷에 맞추어 쓰는 관이다 하는 것을 찾아냈지요. 그것을 찾기 위해 중국에

3년을 다니면서 찾아냈어요.


작품을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관모의 종류가 400여 가지가 되어 분류가 어렵고, 왕실에서 사용되는 것은 50여

가지로 분류되며, 문무백관들이 쓰는 것도 많은데 이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만드

는 사람이 두 명 밖에 없어요. 그만큼 만드는 사람이 없는 실정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서울시 문화재과에서 적지만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있어서

정부에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외국 나가서 만나는 분들이 당신은 한국에서 어떤 위치냐고 물어보면 떳떳하게

한국의 명장이라고 대답합니다.

앞으로 바램이 있으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해 나가고, 유행에 묻히지 말고 끊임없이 이어나가길

바라는데, 보석이나 공예업계를 보면 20대의 젊은 분들이 없어서 가슴이 아픕

니다. 맥이 끊어지지 않아서 꾸준히 연구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고 해서 정부에서도 좀더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 줘야 잘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김제권 대한명인은 누구인가?

<주요 경력 및 수상>
- 1973년에 보석장신구가공에 입문
- 1976년 이석재 선생으로부터 관모 제작 수리 사사
- 서울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관모 연구 계승자
- 행정자치부 전통문화예술 신지식인상 수상
- 국립박물관 한국복식학회 전통복식장신구 제작 참여
- 궁중복식연구원 장신구연구원 및 운영이사
-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복식분과위원장
- 한국매듭협회 부회장
- 대한민국 전통문화예술 신지식인
- 대한민국 전통관모 명장
- (사)대한명인회 전통관모 부문 제9차 대한명인
- 현 보미장신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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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본관 : 안산

 

현) 보미전통민속장신구 대표 http://cafe.daum.net/kjekwon

 

(사)한국궁중복식연구원 장신구연구원 및 운영이사

운현궁 고종, 명성황후 가례복식 장신구 연구원

행정자치부 전통문화예술 관모 신지식인 제 04-87호

서울시문화국 사라져 가는 관모 연구계승 03, 04, 08 선정자

(사) 대한민국 전통관모 명장  제08-101호

(사) 대한민국 전통관모 대한명인  제09-237호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전문가과정 전통장신구 출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과 한국전통복식장신구 출강

 

 

보미장신구  http://cafe.daum.net/kje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