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국 상징유물의 하나인 태봉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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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태봉국 (궁예)

2013. 10. 19.

 

일제강점기 당시 철원군 홍원리, 중강리 풍천원 일대에 세워졌던 궁예도성 앞 대형 석등을 촬영한 희귀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최근 문화재청은 철원군의 요청으로 당시 국보 118호로 지정됐던 궁예도성 석등 등 4장의 흑백사진을 공개했다.

 

 

일제때 촬영된 궁예도성의 석등 당시 국보 118호로 지정

사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규모가 상당합니다. 석등의 조각 표현도 뛰어난 장인 솜씨입니다. 이 석등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합니다. 부근에 매몰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 또 다른 궁예의 석등 

 

▲ 사진은 강원 철원군 홍원리 풍천원 일대에 있던 궁예도성 외성의 모습. /철원군청 제공

 

 

▲  사진은 강원 철원군 홍원리 풍천원 일대 궁예도성 남문에 있던 석등의 원거리 모습으로 일제때 국보 118호로 지정됐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철원군청 제공

이 사진과 관련, 향토사학자인 김영배(80) 선생은 “1947년 어운인민학교 교사시절 학생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을 때 본 석등으로 궁예도성 내성인 궁전 앞에 있었던 것이라며 높이 4m 규모의 화강암으로 제작됐으며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국보로 지정됐다고 증언했다.

 

김 선생은 덧붙여 당시 궁예도성 남문 앞에도 훼손이 심한 높이 2.8m 거북이 형상의 석등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석등은 2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사진 속의 석등은 둘레에 나무 막대로 보호대를 설치한 것으로 미루어 일제가 국보로 지정한 직후 촬영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 천년 풍상을 겪으면서 토성의 흙이 무너져 내리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방치돼 있으며 석등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모습이다.

 

궁예도성은 후삼국시대인 904년 궁예가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해 건립한 태봉국의 왕궁을 호위하는 성으로 밑부분은 석축으로, 상단 부분은 토축으로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성은 현무암으로, 내성은 토성으로 쌓았다는 설이 제기되는 등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무장지대 내 궁예도성을 탐방했던 육군사관학교 이재 교수 등 학자들은 궁예도성이 평지에 흙으로 쌓은 내·외성 2층 구조로 내성은 7.7, 외성(현무암)12.5에 달하며 현재 내·외성 일부와 석등, 봉장리 귀부 등 주요 유물이 방치되고 있다며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철원군은 최근 개관한 평화전망대 전시실에 이번 사진들을 확대 제작해 전시할 방침이다.

 

철원 남방한계선에서 바라본 태봉국도성 동벽의 흔적(원 안). 휴전선과 경인선 철로가 동서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궁예도성의 석탑(국보 제118- 1940730일 지정)

                      현재 국보 제118호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

태봉국의 수도인 `궁예도성'(弓裔都城) 명칭은 `태봉국도성' 개칭

 

궁예도성의 위치 : 철원군 북면 홍원리

                                (안보관광시 경유하는 월정역 전망대 앞)

 

석탑이 있었던 곳 : 철원군 북면 중강리 봉상동 성 남대문 앞

설치추정년도 : 서기904(궁예가 철원으로 천도시)

규모 : 높이 280cm 재료 : 화강암

석등 : 국보제118(1940730일부)

         현재 국보 제118호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

 

이 석등은 궁예가 904년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풍천원, 홍원, 월정, 중강리) 토축으로 외성 4,370m 내성 577m를 쌓고 그 안에 궁전을 건립하고 통치하였다.

 

도성은 1천년이 지난 오랜 풍상 속에 파괴되어 유지만 남아있다.

성내의 어수정과 봉상동의 석등만은 일제 말기까지도 잘 보존되어 왔다.

 

서기 194073일자로 일제하에서 국보 제118호로 지정 받은 바 있는 중요한 문화재였으나 6.25동란으로 인하여 어수정과 석등은 유지조차 확인할 수 없게 파괴되었으며 지금은 휴전선 비무장지대내에 위치하여 확인할 길이 없다.

 

태봉국 도성 내 석등 (일제강점기 촬영,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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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궁예도성 태봉석등 재현···12일 공개·점등식

철원/최문한 기자 승인 2012.10.11 14:32:19

 

재현된 태봉석등이 태봉제 행사장 특설무대위에 세워져 있다.

 

【철원】통일신라 말 궁예가 대동방제국 건설을 꿈꾸며 철원을 중심을 세웠던 태봉국 상징유물의 하나인 태봉석등(해방전 국보 제118호)이 11일 제30회 태봉제가 열리는 철원종합운동장 특설무대에 그 모습이 우뚝 서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원래모양으로 재현된 태봉석등은 철원문화원(원장 양원석) 석공예교실 박성기 강사(부흥석재 대표)를 비롯한 5명의 수강생들이 문헌과 사진자료 등 고증자료를 근거로 1달여간의 작업을 통해 현무암으로 높이 2.8m의 조형물로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태봉석등은 당시 철원평야 풍천원(현 철원군 홍원리 일대)에 조성했던 궁예도성 북쪽에 위치한 태봉궁궐인 포정전(布政殿) 앞에 세워져 궁예왕의 위엄과 태봉국 궁예도성의 웅장함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재 유물로 전해지며 태봉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써 현재 학술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철원군은 12일 오후 태봉제 개막행사에서 태봉석등 공개와 점등식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