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철망너머 궁예의 꿈이 잠들어 있다. / 후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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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태봉국 (궁예)

2013. 11. 9.

DMZ 철망너머 궁예의 꿈이 잠들어 있다

 

<6.25 60주년 특별기획-철원 DMZ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다>

"후고구려의 수도 ´태봉국도성´ 발해 포함 대제국 건설의 기지"

 

이충재 기자

 

 

"DMZ(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이 단일민족임을 뜻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DMZ 내 유적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는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철원 DMZ 취재에 동행한 국방문화재연구원 이재 원장(66)은 힘주어 말했다. <데일리안>은 지난 20일 긴장이 감도는 최전선을 찾았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목마다 우리군 초소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탄창과 대검을 결합한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란이 끊이지 않던 이곳에 '피흘린 역사'의 반복을 틀어막고 있는 이들이다.

 

비무장지대 중부전선 / 최진연 기자

 

DMZ1953년 정전협정 이후 군사분계선의 남과 북으로 서로 2km씩 물러나 군사 시설과 무기배치 등을 금지하기로 한 완충지역이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교전으로 폐허가 됐던 DMZ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300개에 가까운 초소가 세워져 서로 감시의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DMZ는 서쪽으로는 임진강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으로부터 시작하여 북쪽으로 장단군과 연천군 북단을 지나 김화와 평강 사이의 철원평야를 관통하고 있다. 이는 다시 화천 양구일대의 백암산과 해안분지 북쪽을 돌아 동해안의 고성 남쪽으로 연결된다.

 

특히 ´천연의 역사박물관´DMZ는 그 안에 태봉국도성, 김화지구 전투유적 등을 품고 있다. 이곳의 문화유적 가운데 시선을 모은 것은 후삼국시대 궁예가 쌓은 ´태봉국도성´이다. 철원읍 풍천원 들판 위, 그곳은 현재 누구도 갈 수 없는 DMZ 중심에 자리했다.

 

 

비무장지대 중부전선 / 최진연 기자

 

철원군 홍원리 평화전망대에 오르자 해발 200~300m 위 용암대지에 펼쳐진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발길이 닿지 않은 수풀사이, 태봉국도성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궁예가 수도를 송악에서 이곳으로 옮긴(905) 뒤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여 발해일대를 포함하는 대제국 건설을 꿈꾸던 곳이다. 지금은 남북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이 도성을 가로로 가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옛터를 눈으로만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읍지 주위의 태봉국도성은 이중의 방형으로 설계되었다. 외성의 둘레는 12.5km, 내성은 7.7km 정도이며 대개는 토성이지만 문지(門址) 등 필요한 곳은 토석혼축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 전체가 DMZ 내에 위치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던 까닭에 연구자들은 자료수집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비무장지대 내 태봉국도성 / 최진연 기자

 

이 원장은 수차례 이곳을 답사했지만, 6.25한국전쟁 때 격전장이어서 도성을 모두 답사할 수는 없었고 개략적으로나마 도성의 흔적을 찾아봤다고 한다. 이 원장은 손으로 멀리 도성이 자리했던 곳을 가리키며 "언젠가는 남북 간의 대립이 해소되어 공동으로 태봉국과 그 도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곳을 남북이 함께 조사를 하는 작업을 통해 남북 간의 갈등을 줄이고 향후 화해를 도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태봉국도성의 남북공동조사를 위해서는 도성 주변에 매설된 지뢰를 공동으로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작업은 DMZ의 성격과 기능을 결국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곳을 지칭하는 ´궁예도성´이란 표현은 궁예를 폄훼한 고려, 조선시대의 지리서나 일제시대의 지도에 나오는 말로 ´태봉국도성´이 옳은 명칭이다.

 

병자호란 유일한 승리 ´김화지구전투 지구´ 한국전 때 폐허로

 

DMZ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또 다른 유적은 김화읍 생창리의 성재산 일대에서 벌어진 ´병자호란 김화지구 전투´에 관한 유적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최대격전장이었고, DMZ가 김화읍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현재 옛 모습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은 폐허의 도시로 되어 버렸다. 지금은 우거진 수풀에 가려, ´피흘린´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태봉국도성 모형 / 최진연기자

 

´김화지구전투´는 병자호란 때 조선이 쟁취한 유일한 승리다. 지금도 그 유적지가 성재산 산자락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화지구전적지는 북쪽의 평안도 관찰사 홍명규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뿐만이 아니라 남쪽의 김화읍의 군민이 같이 손을 잡고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친 대 회전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남북이 힘을 모아 북쪽 대륙의 공격을 막아낸 셈이다.

 

이 원장은 "김화지구전투는 유일한 승리를 거둔 역사에 기록할 의미가 있는 전투"라며 "아군전사자들의 집단 무덤인 전골총(戰骨塚)이나 유림장군대첩비 및 홍명구를 기리는 충렬사, 또 이곳에 인접해 있는 성재산성 등이 잘 남아있는 만큼, 이에 대한 체계적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군사분계선 내 암정교 / 최진연 기자

 

철원 평야는 역사적으로 전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자, 교통 요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로가 놓였다. 태봉국도성 내 오른쪽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경원선 철도는 남북의 관계가 원활해지고 상호협조 분위기가 이루어질 경우, 원산과 서울을 잇는 것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동북지역의 도시들과도 연계될 수 있다.

 

또 철원에서 갈라져 금강산으로 이어졌던 '금강산전기철도'는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일제 말기와 한국전쟁 막바지 철 공급이 달리자 필요에 따라 철로를 뜯어다 썼기 때문이란다.

 

 

끊어진 금강산 전기철도선 / 최진연 기자

 

현재 철도의 존재를 증거로 남은 것은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철원군 정연리 ´금강산철교´.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하부에 상판은 최근에 복원했다. 철원군 관계자에 따르면 "당장이라도 열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교량으로 철원군에서 ´안보관광지´로 개발하여 등록문화제로 지정됐다.

 

아울러 옛 철원의 관문인 '승일교'1948년 북한이 주민을 강제 동원해 다리의 절반을 놓았고, 한국전 이후 미군과 아군이 나머지 구간을 연결한 남북합작 다리다. 현재는 낡아 못 쓰게 돼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쳤다는 설과 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고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고자 이름 붙여졌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또 다른 한국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는 ´암정교´는 당시 폭격으로 상판이 붕괴된 채 앙상한 틀만 남겼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뜯어진 콘크리트 사이로 녹슨 철심이 드러났다. 다리 중간엔 ´위험´이란 푯말이 10여개 붙어있다. 암정교는 철원과 금강산을 연결한다. 이 원장은 "일제시대 만들어져 파괴된 다리로 민족이 피를 흘리며 만든 것"이라며 "'북으로 가는 길'이란 상징을 지닌만큼, 이를 복원하여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이재 국방연구원장 / 최진연 기자

 

답사 취재 내내 DMZ는 적막이 감돌정도로 고요했다. 철원군 전적지관리담당 박종용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화로워 보이는 땅"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피흘리는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과 북이 서로 총구를 겨눈 장면과 아군이 되어 청나라 군대와 맞선 전장이 평화로워 보이는 땅 위에 펼쳐졌다. 같은 민족이 피를 흘리며 만들어 놓은 서글픈 유산이었다.

[철원 = 데일리안 이충재 기자/사진 = 최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