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제사 차례가 아닌 "절사"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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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절 방/제사의 종류

2014. 2. 9.

명절제사 <茶禮:다례><차례>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식 발음의 영향이다.

 

일본사람들이 <>라는 글자를 <: ちやレイ챠레이, 체아레이 >로 읽고 조선음은 다(da)였다.

 

차례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 바로 잡기에는 늦은 감이 들지만, 우리말 <절사>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에게 음식을 접대할 때의 궁중용어가 다례(茶禮)였고 다례를 행하는 관청은 태평관(太平館)이었다.

 

太宗實錄. 太宗元年辛巳三月癸卯條有曰 上如太平館, 與使臣, 行茶禮.

<임금이 태평관으로 가서 (중국) 사신에게 다례를 행했다> / <>는 왕이 갈자다.

 

중국 사람들은 평소에 잎을 다려서 마시기에 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는 반드시 잎물(茶水)이 놓여지게 되었다.

 

조선왕조 궁중에서 중원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 온갖 먹거리가 올라가게 된다.

 

그들 먹거리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잎을 끓인 물이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국 왕이 차이나 사신을 대접하는 것을 두고 다례(茶禮)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 뒤 만국사신(萬國使臣)이 오게 되자 <다례> <茶禮床 다례상>이라는 말이 없어졌고 나라를 잃게 되자 다례(茶禮)라는 궁중용어도 없어졌다.

 

잎을 끓여 마시는 풀을 <>라고 하고, 그 글자 소리를 da라고 했다. 경북 고령군에 다산면(茶山面)이 있다. 달성군 지묘동에 다천정(茶川亭)이라는 경주최씨 재실이 있다. 정종시대 정약용 호가 <茶山>이다. 차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광복후 리희승이 일본말백과사전 <廣辭苑 광사원>을 베끼기하여 <국어사전>이라고 했다.

 

<茶禮:다례><차례>로 적었다. 여기서 일본소리 <ちやレイ 체아레이. >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말이 우리나라의 말을 엉망으로 망쳤다.

 

각설. 을미년에 왕비 민씨가 시해되었다. 비애왕은 민비를 시해한 주동자를 <弘吉淵夏 四賊>이라고 민비 묘지에 기록했다. 홍길연하 4적 가운데서 일본통이 유길준이다. 비애왕은 유길준을 민비시해 우두머리로 지목했다. 유길준 하수인이 일본 낭인(浪人)이었다. 유길준 무리를 체포해서 민비원수를 갚아주려고 비애왕이 창덕궁에서 아라사공관으로 파천했던 것이다.

 

유길준은 일본으로 달아났다. 원수를 갚아야만 민비를 매장할 수 있다는 것이 토왜의병들 요구였다.

 

2년 동안 빈소를 궁중에 두고, 민비에 대한 특별제사를 별다례(別茶禮)라고 했다.

 

일본귀족으로 흡수된 리태왕(李太王)1919122일에 죽었다. 19197월에 리태왕 유고를 출간하려고 총독 長谷川好道가 일본왕에게 <책이름을 어떻게 하오리까>했다.

 

왜왕이 <李太王 遺著로 하라>고 해서 <李太王 遺著 珠淵選集>으로 출간되었다. 실국시대 조선학자 로석은 <주연선집>을 읽고 <悲哀王遺稿題曰珠淵選集>이라고 하고 독후문을 지었다. 그곳에 <茶禮>라는 말이 나왔다.

 

고려시대에 나온 문집에 설날 아침에 조부모, 부모에게 올리는 세배(歲拜)가 있을 뿐, 제사가 없었다.

 

조선시대에 나온 문집에서도 설날세배가 있을 뿐 제사가 없었다. 설날 제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고 하니, 1895년 을미년 음력 8월 민비가 시해되고, 유길준 무리가 병신년부터는 음력을 폐지한다고 했다.

 

양력을 사용한다고 건양(建陽)이라고 했다. 1895년 음력 1117일이 양력 11일이 된다고 미리 알렸다.

 

다짐제사(誓祭)

 

이때 <음력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집 만이라도 음력을 굳게 지키겠습니다>라는 다짐제사(誓祭)를 설날에 올렸던 집이 나오게 되었다. 경북 성주군 벽진면 징기마을 수촌리 려촌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끌었던 선비가 수촌(守村) 려진규(呂軫奎)였다. <내가 나라를 지킬 재주가 없으나, 우리마을은 내가 지키겠다>고 하고는 자기 호를 <守村>이라고 했다.

 

세배를 올리고 난 뒤에 다짐제사를 올리고는 이름을 원조절사(元朝節祀)라고 지었다. 세배후 사대합설(四代合設) 무축단잔(無祝單盞)하라고 시켰다. 로석려구연(老石呂九淵)이 수촌문인이다. <로석집>에 아래와 같은 제목이 나왔다.

 

1 從陽曆謂之曰建陽, 是可笑也(건양이라는 말은 우섭다)

2 丙申倭曆亂曰捨陰曆而取陽歷之亂(왜달력란)

3 丙申元朝歲拜禮畢後也, 行誓祭家始出焉(다짐제사집이 나왔다)

 

3번 글에서 <悲哀王三十三年 乃丙申也. 元朝行誓祭家始出焉. 所出處乃星州樹村里也. 是誓祭之儀則歲拜禮畢後, 奉四代合設而行祭也. 始終男女共拜焉. 祝無而矢之曰吾家固守陰曆. 是言, 乃其矢言也. 我師樹村翁, 欲避倭禍而名之曰元朝節祀

 

나라를 지키지 아니하고, 일본에게 넘겨준 왕을 비애왕이라고 한다.

 

실국시대 <東國歲時記>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이 일본간첩이 조작한 책이었다.

 

실국시대 일본총독이 수촌리(樹村里) 사람이 미워서 마을이름을 해평동(海平洞)으로 바꾸었다. 수촌리 뒷산과 앞내(前川) 모두 바다처럼 평지가 되라는 저주로 지은 이름이 海平洞이었다.

 

광복 후 경북도지사 김상조(金相祚)199041일부터 수촌(樹村)이라는 옛날 이름으로 시행한다고 했다. 고마운 도지사였다.

 

<명절제사>라는 말에서 줄인 말이 절사(節祀)이다. <절사>라는 말이 중국말이어서 사용하기 싫은 사람은 <설날제사> <설제사>라고 하면 된다. 일본사람 소리 <차례>는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죽기 만큼이나 듣기 싫은 소리가 <차례>이다.

 

세배꾼이 절을 하면 어른들이 답으로 하는 말이 <어른 모시고 과세 잘 했던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절사를 잘 모셨던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른모시고><세배를 먼저 올리고>라는 말이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는 배달겨레의 뿌리깊은 말입니다.

 

절기나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제사. 추석의 절사를 모시다.

 

겨울 한철 중엔 대보름 대목은 설 대목 다음으로 큰 절사라 장사꾼들은 이때 한몫을 잡으려고 안달이게 마련이었다.

 

(*<대보름 대목은 설 대목 다음으로 큰 절사라><대목=절사>라는 말이 되기에 <절사><>으로 바꾸어 <대보름은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라 대목 장이면>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라는 말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지내오고 있는 제사에는

 

1. 개인집에서 지내는 <기일제사(줄여서 기제또는 기제사’)>

2. 명절날 아침에 지내는 <명절제사(줄여서 절사’)>

3. 집안문중에서 음력 시월 보름에 지내는 <시월제사(줄여서

    시제또는 '시사')>

4. 같은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빌고자 정월 대보름날에

   지내는 <동리수호신제사(줄여서 동신제’)>,

5. 같은 업(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안녕과 풍요를 위하여

    지내는 <원렵풍어제사(줄여서 풍어제’)>,

6. 이 밖에 비가 내리를 기원하는 <기우제>, 높은 산에 올라서

   지내는 <산신제>, 상례에서 쓰는 <발인제>,<성복제>,

    <평토제>,<로제>

7. 향리 유림들이 향교(각지)에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지내는 <향교()제사 (줄여서 향사‘)>,

8. 궁전에서는 왕손들이 종묘에 지내는 <종묘제사(줄여서

    묘사’)> 등뿐만 아니라,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제>, 정월

     대보름날 물가에서 올리는 <용왕제> 등이 있습니다.

 

때문에 배달겨레는 명절제사 <절사>를 두고 <차례>라 한 적이 없습니다.

 

<茶禮>는 아무리 소리내어도 <다례>일 뿐, ‘차례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추석절사>라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自今秋夕節祀, 令內官爲之宜當...

(이제 추석절사(秋夕節祀)부터는 내관이 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고...)숙종 34(1708) 813" 처럼 쓰인 말입니다.

 

그리고 <추석제사>를 줄인 <추석제>라고는 했으나 <추석차례>라는 말은 없습니다.

咸興則歲凡三十二, 別大祭曰十月四月, 正朝別小祭, 二月曰春節祭, 六月曰半行祭, 七月曰秋節祭, 八月曰山祭秋夕祭, 十一月曰冬節祭冬至茶禮, 而朔望祭, 正朝秋夕, 惟不疊行

 

永興則歲凡三十一, 別大祭別小祭朔望祭, 如咸興禮, 正朝爲小祭, 春節不祭, 秋夕用望祭儀

正祖實錄19(1795) 428日 戊申

 

함흥에서는 해마다 모두 32차례의 제사를 올리는데, 별대제(別大祭)10월과 4월에 올리고, 정조(正朝)에는 별소제(別小祭)를 올리고, 2월은 춘절제(春節祭), 6월은 반행제(半行祭), 7월은 추절제(秋節祭), 8월은 산제(山祭)와 추석제(秋夕祭), 11월은 동절제(冬節祭)와 동지(冬至) 다례(茶禮)를 올리고, 삭제(朔祭)와 망제(望祭)는 정조와 추석 때만은 중복해서 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는 물이 탁하여 차잎을 넣어 다린 물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례로 나온 것이 <다례>였고 <다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절차 중에 <헌다(獻茶)>가 있을 뿐입니다.

 

일본은 중국말 <茶禮 다례><ちやレイ 챠레이, 체아레이>로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茶禮(ちやレイ)> 는 일본사람 신촌출이 지은 백과사전광사원에는 없으나, ○○이 그것을 6년에 걸쳐 뒤치다시피 하여 만든 <국어○○><차례>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차례>라는 말이 교과서에 실리기는 1970년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국어>의 첫단원 <추석>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추석>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들에는 벼가 익어갑니다.

감도 익어갑니다......때때옷을 입었습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냈습니다.

 

나이가 40대 중반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학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을 가르쳤지만 집에서는 어른들이 <절사>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배워와서 <차례>라고 하면, 어른들은 어디서 희한한 말을 주워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꾸짖었습니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는 배달겨레의 뿌리 깊은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말 소리 <차례>라는 말을 사전에 올린 것이었습니다.

국민학교 교과서가 퍼뜨리는 실행을 했습니다. 방송매체가 부추겼습니다.

그래 놓고 <민족주체성>, <전통문화 계승>이라 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절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차례> 뒤에는 [일본식 발음]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

 

뼈대있는 어른들은 여전히 설과 추석 명절제사를 <절사>라 하며 후손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명절제사를 <차례>라 하지 않도록 모든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를 바로잡는 문화 활동입니다.

 

출처 : http://korean.go.kr/09_new/minwon/qna_view.jsp?idx=42244

본문에 있는 내용은 원문을 일부 각색(脚色)하여 등재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