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여경(積善餘慶) -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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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사주학)/구성학,당사주 등

2018. 1. 4.


적선여경(積善餘慶)

"적선지가 필유여경" 이라는 말은 유교 3대 경전 중 하나인 주역(周易)의 문언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적악지가 필유여앙(積惡之家 必有餘殃)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악함(불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재앙(災殃)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몰두하는 세상에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보면 이 말이야말로 의미있는 경구(警句)입니다.

*** 경구 :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善之家必有餘慶) 출전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부선지가, 필유여앙. 신시기군, 자시기부, 비일조일석지고. 기소유래자점의.)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하루아침과 하루저녁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말은 팔괴(八卦) 중에서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대한 해설을 담은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중 곤괘를 해설하는 글의 한 구절이다.


여경(餘慶)은 선한 일을 많이 행한 보답으로서 그의 자손들이 받는 경사를 말한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은 줄여서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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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四書五經) 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유교의 교육 및 교양 서적으로, 유교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책이다.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한다. 삼경에 "춘추"와 "예기"를 합해 오경이라 부르고, 합해서 사서오경이라 부른다.

 

《역경(易經)》은 유학(儒學)의 삼경 중 하나로, 세계의 변화에 관한 원리를 기술한 책이라 일컬어지며,《주역(周易)》이라고도 한다. 쓴 연대는 대략 동주 시대로 추정된다.


주역(周易)이란 : 유교의 경전(經典) 중 3경(三經)의 하나인 《역경(易經)을 말한다.

단순히 《역(易)》이라고도 하며, 이 책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으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주역의 철학상 요소

 

태극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나 삼라만상을 움직이게 하는 끝없는 우주의 순환 원리로, 이를 인격화하면 신이다.

 

음양

태극은 음양으로 양분되는데, 양은 하늘, 남자, 광명, 위, 해, 강인, 정신, 불 등을 나타내고, 음은 땅, 여자, 암흑, 아래, 달, 유약, 육체, 물 등을 나타낸다.

 

사상

음양은 음과 양으로 다시 양분되어 사상이 이루어지고 사상의학도 여기에서 나왔다.

태양 - 양으로서 양으로 작용하는 것

소음 - 양으로서 음으로 작용하는 것

소양 - 음으로서 양으로 작용하는 것

태음 - 음으로서 음으로 작용하는 것

 

팔괘

사상이 음과 양으로 다시 양분되어 팔괘가 된다. 그 이름과 뜻은 다음과 같다.

 

이진수

이름

자연

방위

가족

신체

1

111

건 (乾)

건실

하늘(天)

북서

아버지

머리

2

110

태 (兌)

기쁨

연못(澤)

삼녀

3

101

리 (離)

리별

불(火)

차녀

4

100

진 (震)

변동

번개(雷)

장남

5

011

손 (巽)

따름

바람(風)

남동

장녀

다리

6

010

감 (坎)

험난

물(水)

차남

7

001

간 (艮)

중지

산(山)

북동

삼남

8

000

곤 (坤)

유순

땅(地)

남서

어머니

 

대성괘

팔괘를 서로 겹쳐서 이루어지는 64괘를 대성괘라고 하며, 주역의 본문을 구성하는 괘이다. 제1번 건괘에서 제30번 이괘까지가 상경이고, 우주의 선천적인 생성 원리를 상징한다. 제31번 함괘에서 제64번 미제괘까지는 하경이고, 인간의 후천적인 변화와 순환 과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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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서

사서(四書) : 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

삼경(三經) :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주역이라고도 함)의 총칭.

오경(五經) :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기(禮記)》《춘추(春秋)

삼례(三禮) :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의 세 책.

춘추삼전(春秋三傳)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積善之家必有餘慶 (적선지가필유여경)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착한 일을 계속해서 하면 복이 자신과 후손에게 미친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아주 유명한 지관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 큰 벼슬아치로부터 거금 천냥을 받고 명당을 찾아주기로 하는데 아주 좋은 풍수상의 자리를 찾아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혈처가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다.

 

혈처를 찾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지 3년, 마침내 벼슬아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지관에게 천냥 돈을 다시 내놓으라 하고 능력도 없는 자가 그동안 사람을 속였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으로 물고를 내려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천냥을 갚아 주고 지관을 구한 뒤에 자기 집에 며칠 머물며 쉬게 하였는데, 그 때 비로소 지관이 보았던 명당처에 혈처가 분명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지관은 아하 명당에 혈처는 반드시 인연이 있어야 만나게 되는 것이로구나 하고는 자기를 구해 준 은인에게 혈처를 일러줍니다.

 

은인은 지관이 일러 준 자리에 묘를 쓰고, 훌륭한 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에 머물렀고, 조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었으니, 적선지가에는 필유여경이라는 말이 틀림없는 말임을 증명합니다.

 

억지로 명당 혈처를 사려던 사람은 바로 눈앞에서도 혈처가 드러나지 않았고 명당에 큰 마음이 없이 오직 생명을 구하고자, 거액을 베푼 적선가에게는 그 혈처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 냈으니, 이는 필시 조상이나 자기 대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덕을 베푼 집안이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일에 거액을 들여 명당을 찾고 왕기 서린 좋은 혈처를 구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 경비의 일부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적선을 하는 것이 뜻을 이루는 빠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남을 이롭게 함이 내가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明堂德-黃喜政丞)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 작품/설화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출처 : 디지털진안문화대전-「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전해오는 황희 정승의 탄생 배경에 관한 이야기.

황희 (黃喜) : 1363년(공민왕 12) ~ 1452년(문종 2)

본관 : 장수(長水)

대표관직 :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부사

황석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使) 황군서()이며,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였다.


개설

진안군 백운면에서 전해오는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는 황희 정승의 탄생 배경인 명당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황희의 할아버지가 곤경에 처한 어느 스님을 도와준 덕분에 명당 혈처에 조상의 묘를 썼고 황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황희는 조선 초기 50년 이상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던 대표적인 재상이다. 민중 사이에는 그의 도덕성과 청빈한 삶에 관한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는 인간미 넘치는 설화가 많이 전승된다.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 외에도 황희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설화로는 「먹물 쏟은 종도 하늘이 내려준 백성」, 「배 따던 아이들에게 배 갖다 주기」, 「면천시킨 종 아이의 장원 급제」, 「네 말도 맞다」, 「송아지와 제사」, 「검정 소와 누렁 소」, 「관기 폐기론」, 「자백의 강요」, 「멍석 방바닥」 등이 있다. 이 설화들은 주제별로 크게 타인 배려형, 청빈형, 합리적이나 엄격형으로 나눌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은 2003년 8월 15일에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원운교 마을에서 황인덕이 주민 정영수[남, 70대]로부터 채록하여 『진안 지방의 구전 설화집』[진안 문화원, 2003]에 수록하였다.

 

채록 당시 제보자 정영수는 풍수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명당에 얽힌 전설이나 지역과 관련된 인물 전설을 주로 구연하였으며, 장면이나 대화를 실감나게 살리는 구연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전설 구연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거나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나 오락성도 어느 정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결과라 하겠다.

 

내용

제주도 관찰사가 어떤 스님에게 묏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일천 냥을 주었다. 그 스님은 황곡단풍이라는 좋은 형국을 찾았으나 결정적인 혈처를 못 찾고 있었다. 먼 곳에서 보면 그곳이 명당인데 가까이 가면 혈처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다 우연히 제주 관찰사가 길에서 스님을 만났다. 관찰사는 아직도 혈처를 못 잡았냐고 따지다 ‘이런 도둑놈이 없다’고 하면서 ‘중놈 하나 죽여도 괜찮다’며 스님을 말꼬리에 매달고는 끌고 다녔다. 그 찰나에 방촌 황희의 할아버지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사연을 물은 뒤 일천 냥을 대신 갚아주었다.

 

이어 황희의 할아버지가 스님을 안으로 모신 뒤 며칠을 쉬게 하였는데, 명당 혈처가 훤하게 나타났다. 스님은 ‘주인이 따로 있구나’라고 감탄하면서 “이 자리에 묘를 쓰시오. 다만 부(富)는 없고 귀(貴)만 있소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황희의 할아버지는 조상 묘를 썼고 황희 정승이 태어났다고 한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