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웅 문용찬(文龍贊) 전몰위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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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학 방/근대현대 인물

2019. 1. 30.

호국영웅 문용찬(文龍贊) 전몰위령단(戰歿 慰靈團)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대진정보통신고와 부산대학교 금샘로 도로 개설지구 중간쯤에 위치한 "고 문용찬 전몰위령단"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비석은 금샘로 도로 공사가 착공되어 진행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금정산 등산로 오솔길 옆에 큰바위에 세워져 있어 모르는 분들이 많았는데 금샘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비석의 모습이 잘 보이게 된 것이다.

 

이 비석은 주인공 이름외에는 비석를 세운사람이나 기타 단서가 될만한 인적사항이 없어 어떤 분인지 궁금하였다.

비석 뒷쪽(배면)에 세겨진 민족해방일이라는 글에 단서를 두고 찾아 보기로 하였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몇년이나 흘렀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된 숙제를 풀어 보기로 하였다.

 

이 비석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비석의 주인공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 2.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1953. 6. 27일 25세 꽃다운 청춘에, 김화지구전투에서  전사하신 문용찬 이등상사의 전몰 위령단이다.

 

그의 위패는 국립서울현충원(43-2-119)에 있고. 이 곳의 전몰위령단 비석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아직 기록을 찾지 못하였다. 

 

이분이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을 이 동산에 위령단을 세워 그의 영혼을 위로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해 뜻있는 기관이나 아니면 가족들이 세웠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본글 댓글(2021.2.17)을 보니 부친께서 비석을 세우시고 가족분들이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고 하시네요.

 

해당기관에서 이 비석에 대한 기본 안내문을 부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한민국 부사관들의 계급은 육군은 일등중사, 이등상사, 일등상사, 특무상사로 해군은 삼등병조, 이등병조, 일등병조, 병조장으로 불렀다.

이후 하사, 중사, 상사로 불리다가 하사, 중사, 이등상사, 일등상사로, 1993년부터 하사, 중사, 상사, 원사로 개칭되었다.

1946년 1월 15일 남조선 국방경비대가 창설될 때 사병의 계급구조는 하사관(下士官)이 참교(參校), 부교(副校), 특무부교(特務副校), 정교(正校), 특무정교(特務正校), 대특무정교(大特務正校)의 6등급으로 구분되고, 병(兵)은 이등병사(二登兵士)와 일등병사(一等兵士)의 2등급으로 구분하였으나 실제 계급장은 제정되지 못하였다.

 

1946년 4월 5일 당시 미군정청 군무국의 비이숍 대경에 의하여 장교계급장과 함께 사병계급장도 고안되고 제정되었는데, 이 때의 계급장형태는 미군사병 계급장의 ∧자형(chevrons)을 거꾸로 놓은 V자형을 가미한 형태였으며 계급장의 재질은 흑갈색의 모직서지지질 바탕위에 계급표식은 붉은색모직의 멜턴지로 부착한 것이었다.

 

그 후 1946년 12월 1일에는 장교와 함께 계급호칭이 변경되면서 계급구조는 변경하지 않고, 호칭만을 변경하였는데 하사관은 하사(下士), 이등중사(二等中士), 일등중사(一等中士), 이등상사(二等上士), 일등상사(一等上士), 특무상사(特務上士)로 개칭하고, 병(兵)은 이등병(二等兵), 일등병(一等兵)으로 개칭했다.

 

1950년대초부터 6.25 동란을 거치면서 사병의 복장이 전투복일색이 되자 계급장도 전투장 차림에 부착이 용이하고, 위장에도 도움이 되도록 폭 2.5cm 크기의 약장계급장을 제작·부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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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과 대한민국 공군은 대한민국 해군과 대한민국 해병대와 1962년까지 계급 호칭이 달랐다. 육군의 경우엔 부사관 체계가 복잡한 미군의 영향을 받아 복잡했다. 해군과 해병대는 일본군 해군의 계급명인 병조를 이어받았다.

 

육군 / 공군 : 이등중사-일등중사-이등상사-일등상사-특무상사

해군 / 해병대 : 삼등병조-이등병조-일등병조-병조장

 

1962년에는 하사-중사-상사로 바뀌었다.

1989년에 상사가 구분되어 이등상사와 일등상사가 되었다.

하사-중사-이등상사-일등상사

 

1993년엔 일등상사가 원사로 바뀌었고 이등상사는 그대로 상사가 되었다.

하사-중사-상사-원사

 

2010년대 들어서 부사관 계급 세분화의 필요성이 커졌고 상사와 원사 사이에 영사를 추가하려다 백지화되었고 대신 원사 위에 선임원사를 추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사실상 무산되었다.

 

 

 

 

 

 

고 문용찬 전몰위령단

 

대한민족 해방일에 / 보국정신 단결하자

일편단심 천추환은 / 이 단우에 세겨서라

*** 천추환(千秋患) : 오랜세월 동안 품고 있던 걱정이나 근심

*** 천추(千秋)의 한(恨) : 천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품어온 한(恨,원망,억울,원통)

 

 

 

 

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이등상사 문용찬 (부산)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문용찬(文龍贊)

군별 : 육군

계급 : 이등상사

군번 : 0701561

전몰일자 : 1953-06-27

 

공훈사항

문용찬 이등상사는 1927년 10월 6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2월 25일 육군에 입대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대구·부산·제주 등의 훈련소에서 기초교육만을 수료하고 전장에 배치되었는데, 문용찬 이등상사는 제3사단 제23연대에 소속되었다.

 

문용찬 이등상사가 소속되었던 제3사단은 1952년 1월 7일 양구에서 교육 훈련과 부대정비를 실시하던 중 제6사단과 교대하여 김화지구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때부터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제한된 고지 쟁탈전을 수차례 전개하여 주저항선을 고수하고 있었다. 특히 제3사단 예하 각 연대는 방어에 불리한 산악 지형에서 악전고투했다.

 

문용찬 이등상사의 제23연대는 제3사단 예비대로서 부대정비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어 689고지전투가 끝난 4월 12일 이후로 제18연대의 일부 지역을 담당하면서 제3사단의 우일선 부대가 되었다. 당시 사단은 방어작전의 요충인 관망산을 확보하여 주저항선을 편성할 계획이었다.

 

문용찬 이등상사는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전개된 529고지전투에 투입되었다. 관망산 529고지는 적의 주저항선인 663고지와 548고지에서 감지되며, 진지 축성에 어려움이 많은 지형이었다. 적의 공격이 제23연대 앞으로 집중되자 제22연대가 우회하여 적의 후방을 역습했다. 이와 같이 시작된 고지전은 7월 2일까지 거의 매일 접전을 벌였다.

 

문용찬 이등상사는 제23연대 장병과 6월 26일 529고지를 공격하여 저녁 무렵에 탈환하고 진지를 강화했다. 그러나 27일 이른 새벽에 중공군이 폭우와 암흑을 이용해 다시 쳐들어오자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부하들을 독려하며 용전분투하던 문용찬 이등상사는 적탄에 맞아 1953년 6월 27일 25세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김화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문용찬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43-2-119)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029-ㅊ-037)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출처 : http://roknco.or.kr/bbs/board.php?bo_table=info03&wr_id=1093&page=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