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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중도 요령이 필요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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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내반 아이 일류만들기

2013. 12. 3.

 

한참 오래전에 쓰다가 중단했던 글을 이어서 쓰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꾸중하는 방법에 관해 쓰다가 중단을 해버려서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쓰다가 만 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상자 속의 글을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은 조금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이나 막대기로 아이들을 안때려본지가 이미 이십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입니다. 큰소리조차 별로 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 저를 대충 아는 다른 선생님들은 참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단 일년만이라도 함께 동학년을 하며 생활을 해본 분들은 제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보고 수긍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말로 해도 기가 막히게 말을 잘 듣는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듣는다는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아이들이란 주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말합니다. 교사는 자기만의 독특한 화법과 카리스마를 가져야한다고 다른 글에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이들 심리에 대해 이해를 하고 어느 정도의 카리스마만 가지고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잘못하여 꾸중할 일이 있을때에도 교사가 가진 지위를 가지고 억누르려고 하지도 말고 짜증을 내지도 않으면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꾸중하는 방법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전담교사가 수업을 하는 시간이 되어서 교실을 비워주고 학년연구실에서 석유난로의 화력을 가장 약하게 해둔채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이십여분이 지났을때 출입문 밖에 우리반 여학생 두명의 얼굴이 비치길래 눈짓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했습니다. 학습에 열중해야할 아이가 연구실까지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우리 학급안에 어떤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학습태도에 문제가 생겨서 쫒겨났을 것입니다. 

 

담임교사가 자기반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때는 교장실에 아이를 보내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만, 전담교사가 학급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때는 일반적으로 담임교사에게 보내옵니다. 아마도 그런 경우일 것이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들어온 아이들 두명의 표정이 크게 상기된 것이 아니었는데다가 약간은 배시시 웃음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그런 판단을 한 것이죠.   

 

 

"어? 여기까지 날 찾아왔네. 어쩐 일이야? 그건 그렇고 이리와서 난로곁에 앉으렴. 너희 둘의 표정을 보니 틀림없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서 쫒겨났구만. 자,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왜 쫒겨났는데? 혹시 떠들었니?"

 

아이들의 이야기인즉 수업시간에 옆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연구실로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사유만으로는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안될 것입니다만 일단은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이럴때 교사가 미리 지레짐작을 하여 화를 내는 내는 것은 사태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와 이야기 잠시 했다고 여기까지 가라고 했겠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보렴."

 

하지만 둘의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였고 내용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다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속으로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한 사실이 있습니다만 아이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 법입니다. 많은 교사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이런 이야기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학부모입장에서는 어떤 사건이 생겼을 경우에 자기 자녀들의 이야기만 듣게 되므로 다른 아이들이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식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성질이 급한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이야기만 듣고 학교에 항의전화를 하거나 심하면 교무실이나 교실에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좀 쉬었다 가도록 하려무나. 교실보다는 여기가 한결 따뜻할테니 불을 조금 쬐고 가기 바란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푹 쉬고 갈래? 아니면 조금 쉬었다가 교실에 다시 가서 전담선생님께 사과를 드릴래?"

"교실에 가서 선생님께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이 잘한게 별로 없는 모양이구나. 가서 사과드리고 나머지 시간동안 집중해서 수업을 하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조용하게 책을 보는 이 멋진 즐거움을 너희들이 깨어버린 셈인데 이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할래?"

"선생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깨달았으면 된 것이다. 이제 교실에 가렴."

 

두 아이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교실로 향했습니다. 다시 책을 보고 있는데 한 십여분 뒤에 이번에는 남자아이가 한명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네가 왔구나. 어떤 일로 쫒겨났니? 그보다가 먼저 이쪽으로 와서 앉기 바란다. 춥지? 자, 앉았니? 이제 네가 여기까지 온 사연을 한번 들어볼 차례다. 무슨 일이 있었니?"

"부근에 있는 친구들이 너무 웃겨서 저도 모르게 웃다가 쫒겨났습니다."

"단순히 웃었다는 이유로 쫒겨날 수가 있니? 그래 웃겼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뭐지?"

"선생님보고 뭐뭐 같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선생님을 보고 뭐라고 했는데?"

"저팔계라고 했거든요."

"그건 좀 심했네. 더구나 수업시간에 그런 소리를 하면 되나?"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다. 일단 네가 잘못한 것은 맞네. 그런데 병원에 오래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퇴원 하셨니?"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시니 느낌이 어떻든?"

"너무 좋았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병원생활을 제법 오래 하셨습니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신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넌지시 아버지 이야기를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더 많이 잘못했구나.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위의 친구가 지껄인 말 한마디때문에 킬킬거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잘한 일은 아니네. 어쩔래? 교실에 가서 선생님께 사과드리고 수업을 할래? 아니면 여기서 종이 울릴때까지 기다릴래?"

"사과드리고 수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더라도 네가 열심히 해야되는 게 맞는 일 아니겠니?"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는데 마침 종이 울렸고 조금 후에 전담선생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수업시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노라고 말씀을 하시길래 사태를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사건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아야 그 진상을 알 수 있다는 진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이 떠들기에 뒤에 세워두었고 계속 이야기를 하길래 담임선생님께 가보라고 했는데 왜 자기들이 담임선생님 앞에까지 가야되는지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돌하다면 당돌한 것이지만 어찌보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아까 그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상황은 모조리 다 생략했던 것이죠. 남자아이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킬킬거리고 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시간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쥐죽은듯이 조용하게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앞 시간에 3명씩이나 담임선생님 앞으로 가게 되었으니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 나름대로 짐작해서 대비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아이들을 한번 훑어보고 난 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쇠는 벌겋게 달았을때 두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번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니? 이야기를 한번 해보렴."

아이들은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만 있다는 것은 자기 죄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다. 그게 싫으면 아까 있었던 일을 다시 재연해보도록 하자. 처음에 왔던 여학생들부터 재연해보기로 하자."

 

아이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조금씩 재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으흠, 사건이 그렇게 된 것이로구나. 그런데 말이다, 선생님께는 왜 그렇게 따지고 들었니?"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알았구나. 다음에는 연구실에 왔던 남자 누구누구가 재연을 해보기로 하자."

 

 

아까 연구실에서 제가 보던 책속에는 시드니 포이티어라는 흑인 영화배우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아프리카 계통의 검은 피부를 가진 분들과 대화를 할때 결코 사용해서는 안되는 용어는 니거(nigger)와 니그로(nigro)라고 합니다. '검둥이'라는 뜻으로 비하해서 부르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담임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전담선생님의 외모를 두고 특정 인물과 비교해서 부르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이들 전체를 대상으로 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뒤에 벌칙으로 오후에 남아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던 것이죠. 

 

 

사건을 일으킨 아이들을 불러세워서 교사가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네가 한 행동에서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니?"

"선생님께 버릇없이 행동을 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그정도 대답이 나왔으면 다 된 것이죠.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인격적으로 대하여 점잖게 다루어줄때 고분고분해지는 법이며 자기의 잘못을 쉽게 깨닫는다는 것이죠. 잘못을 깨닫고 수긍을 하면 그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되 가벼운 벌칙은 꼭 주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마음가짐과 평소의 언행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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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