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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그 씁쓸했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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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2018. 10. 25.


가을 햇살이 따뜻했던 날, 두번째로 근무했던 학교에 가보았습니다. 첫발령을 받은 학교가 행정구역상으로는 시내라고해도 4등급짜리 변두리 농촌학교였고 두번째로 발령을 받은 학교는 시내 안에서도 변두리였던 2급지 학교였습니다. 제일 좋은 등급을 받은 학교를 1급지 학교라고 불렀는데 교사들이나 교감, 교장 할 것 없이 모두들 서로 그런 곳으로 전출가려고 안달을 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주변인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중심인이 되지 못하고 주변으로만 겉돈것 같아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1980년에 이 학교로 처음 전근을 갔습니다.


 

젊었던 날이라 체육관련업무를 맞게 되었는데 첫학교에서도 그런 업무를 맡았습니다. 다행히 요즘말로 하면 체육담당 부장교사가 따로 계셔서 보조일만 하면 되었던 것이죠.


  

당시만해도 학교장이나 교육장은 작은 황제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인사권과 재정권을 갖고있으면 부하 장악은 식은죽 먹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모셨던 그 어른은 행정가로서는 유능했을지몰라도 인격적으로는 절대 존경할 수 없는 분이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제가 갖는 생각과 내리는 평가가 절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당시 퇴근시간은 오후 6시였는데 방학을 앞둔 겨울철이 되면 저녁 5시만 되어도 교실안이 컴컴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실내온도는 냉장고 안처럼 싸늘해져버렸습니다.



전력사정이 좋지 못했던 시절인지라 오후 다섯시가 되면 교실안에서조차 형광등을 켜지 못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교사들은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매일 교무실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교사는 업무성격상 책을 가까이해야하는 직업이지만 수십명의 교직원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잡담하도록 놓아둘 수 없으니 매일 회의를 가졌던 것이죠.



회의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업무 협의가 아니라 교장 교감을 비롯한 관리자들의 일방적인 업무지시 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특정 교사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강압과 지시가 판을 치던 암울한 시기였었죠.



당시의 학교는 단순한 관료조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기를 써가며 죽을동살동 모르고 승진에만 매달렸습니다. 선배교사고 후배교사고 동료선생이고간에 모두 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했고 익숙해졌으며, 경쟁했고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몰두했다는 느낌만 가득합니다.  



그러기에 상장 한장과 표창장 하나에 목숨을 걸고 뛰었으며 수우미양가 5단계로 이루어지는 교사들의 근무평정 점수에 모두들 한없이 민감했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런 시스템 속에 엮여있었던 것이죠.



정말 모처럼 옛날에 근무했던 교육현장에 찾아갔어도 좋은 추억보다는 씁쓰레한 기억이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동료교사 한사람은 나중에 교육장까지 승진했습니다. 그런 분들은 젊었던 날부터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이제 사십대 후반과 오십줄에 접어드는가 봅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 가운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도 등장했으니 그리 허무하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의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벌써 이 세상을 하직해버린 아이가 유난히 많이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특수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받아야할 아이였는데 일반학교 일반학급에 편성되었으니 그 아이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