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배낭여행, 초등교육, 경주, My Way, 영화, et cetera

학교 - 그 찬란했던 추억들 4

댓글 0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2019. 7. 9.

1999년 새학기를 맞아 전근을 갔습니다. 저번에 근무했던 신설 학교에서의 과로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있었습니다. 특히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었죠. 과로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린 것이 두번이나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르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새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을 희망했습니다만 나중에 보니 의외로 3학년을 주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임지 학교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배려가 아니었던가 싶었습니다. 새로 발령받아간 학교의 교장으로 계시는 동료분께 특별히 부탁을 드려서 가장 부담이 없는 학년과 업무를 맡도록 힘을 써준 것이죠.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학년 담임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학교가 시내 학교를 제외하면 규모가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 학교였는데 사실인듯 했습니다. 직원이 많은 학교에 가서 존재감 없이 조용히 묻혀살고 싶었습니다.


같은 학년을 맡은 동료교사들이 모두 여선생님들이어서 청일점 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 생활지도와 합동 체육시간 운영, 운동회 연습같은 야외활동은 거의 도맡아 했었는데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공문처리가 거의 없는 업무를 맡았길래 수업이 끝나면 약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교과전담교사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의 시기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6학년 담임을 하면 주당 32시간 수업이 당연했지만 3학년은 그보다 훨씬 수업시간이 적었으니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저학년 담임이 그렇게 편하고 좋은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안강역에서 내려 2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데다가 경주에서 안강까지 가는데 30분 정도만 소요되었으니 기차 통근하는 재미가 워낙 쏠쏠해서 자동차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오가는 기차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니 너무 흐뭇했습니다. 퇴근후에는 기차 시간에 맞춰 교실에 남아서 책을 더 볼 수 있었으니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학습훈련을 시켜 마음껏 발표를 할 수 있는 토의학습의 모형을 적용해보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어떤 장학사분이 저학년 아이들도 토의학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직접 우리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으니 날아갈듯이 기뻤습니다.


요즘 같으면 수업장면을 촬영하여 동영상을 만들어 유투브에 올려 지도기법을 공유하고 토론해보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땐 그런 플랫폼이 없었고 장비가 부족했기에 공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전임지 학교에서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여 수업하는 것에 대해 눈을 떴다면 1999년에는 완전히 눈을 뜬 셈이 되었습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도가 터졌다고나 할까요?




이 학교에서 아이들 영어연극지도에도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 아이들에 비해 아무래도 외국어에 관심이 적은 시골학교 아이들이지만 영어연극 공연을 통해 아이들에게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제 자신 또한 그런 기법획득에 눈을 뜰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준이 도시지역 아이들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학년초에 학습훈련을과 생활지도를 완벽하게 시켜두어야하는데 지금까지는 2주일이면 모든 것이 끝났지만 거기서는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그나마 성취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학년초마다 과로로 인해 몸살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