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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같은 고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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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2020. 10. 7.

 

나는 고향이 두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6년을 오롯이 보낸 곳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한 군데는 청소년기 10년을 보낸 곳이 각각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향이 두 곳이라는 말은 진정한 고향이 한 곳도 없을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일 것입니다. 

 

 

 

 

고향을 놓고 말장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삶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청소년기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고향 친구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직장을 따라 객지에 살러 간 것이 1977년의 일인데, 여기에서 인격형성이 이루어지는 청소년기 십 년간을 살았고 이곳을 떠난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그 후 30여 년의 세월을 두고 출입한 곳이니 고향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나는 작은 논 앞에 서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서성거렸습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선친께서는 여기 산하가 익숙하셨을 테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강에 처음 가보고 나서 받은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에 익숙했던 모래밭은 하나도 없었고 온통 자갈뿐이었습니다. 자갈 크기와 색깔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지금은 풀로 가득하지만 그땐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온 천지가 자갈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에 살아가는 식물들도, 물속에 서식하는 물고기도, 물고기를 잡는 방법도 너무 차이가 나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 혼란은 조금씩 적응해가며 극복해 낼 수 있었지만 말씨가 다르고 친구가 전혀 없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없는 친구는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시골은 마을 단위로 살아가는 공동체여서 같은 또래가 많이 없다는 것은 친구를 만들 기회가 극히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마을에 선배는 없었고 같은 학년 남자애가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배가 두 명 있는 그런 작은 동네였으니 적극적인 성격을 지니지 못했던 내가 사귈 수 있던 친구가 그만큼 적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사실이 나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텃세가 강하게 작용을 했던 터라 다른 마을에 함부로 놀러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젊은 처녀를 만나러 남의 마을에 간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에게 여기는 제2의 고향이면서도 영원한 타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지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미니 벨로를 타고 천천히 둑길을 달려보았습니다.

 

 

 

 

아버지와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같으면 큰일날 일이지만 자전거에 달린 발전기를 손으로 열심히 돌려 생산된 약한 전기로 물고기를 잡던 기억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다가 순찰을 돌던 지서(요즘의 파출소)의 순경에게 적발되면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만.....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아마 저 풀들 밑에 자갈들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같이 멱을 감던 친구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작은 동네였지만 몇 안되던 어른들조차 모두 돌아가신 지금, 이제는 아는 사람 전혀 없는 낯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둑길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릅니다.

 

 

 

 

이제는 그런 둑길조차 만나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과 촬영지가 멀리 보입니다.

 

 

 

 

그 정도로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나에게는 충분했습니다.

 

 

 

 

아내가 근무했던 학교가 보입니다.

 

 

 

 

강에 멱을 감으러 갔다가는 반드시 이런 풍경을 보아가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의 과수원도 사라져버리고 자갈밭들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내가 자주 걸었다녔던 작은 농로도, 아내가 출퇴근길에 걸었던 길도 거의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수천 년간 변하지 않았던 산천의 변화가 최근 백여 년 사이에 휘몰아쳤을 겁니다. 2005년에 찍은 사진입니다만 이 사진 속의 풍경도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여기에 철길이 만들어진 것은 80년 전의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철길이 마을 앞을 지나간다는 사실이 천지개벽 정도로 여겨진 게 아니었을까요?

 

 

 

 

어머니께서 자주 가셨던 게이트볼 구장에 가보았습니다.

 

 

 

 

게이트볼 구장을 새로 만들어 이사를 가버린 지금 어머니가 출입하시던 옛 놀이터에는 인적이 사라지면서 풀로 덮여가는 중입니다.

 

 

 

 

어머니가 출입할 적만 해도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예전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니 인생사 모든 것들이 너무나 덧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보고싶은 어메(경상도 말로 어머니를 '어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고향이라고 모처럼 찾아왔지만 타향이나 마찬가지라는 느낌만 가득 차 올랐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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