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산책) 펼쳐 보지도 못하고 꺼져버린 등불! 효명세자의 의두합, 애련지 일대/창덕궁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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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국내여행/서울시 여행

2013. 1. 11.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한 효명세자의 의두합, 애련지

          일대/창덕궁 후원

 

               역사의 현장!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단순히 "경치가 좋다,

             설경이 환상적이다" 하는 것은 고궁산책을 하는 멋을 반감하는 것이 아닐

             까 생각해 봅니다. 창덕궁 후원의 두번째 코스는 애련지, 의두합 주변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조선왕조 제22대 순조왕의 세자 효명이 개혁의 꿈을

             키우며 공부하였던 곳입니다.   

 

               조선왕조의 명군 반열에 있는 정조대왕은 외척과 세도가들의 폭정으로 부터

             왕권을 강화하며, 개혁의 정치를 펴 백성을 도탄으로 구하기 위한 꽃을 피웠지

             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이유없는 병에 걸려 승하하고, 어린 순조(11세에 왕위

             에 오름)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이후 대왕대비 정순왕후의 대리청정으로 정조의 개혁정치는 물거품이 되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힘을 받아, 순조가 정치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에 충분한

             주변환경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정조의 영민함을 빼닮은 효명세자에게 19세의 어린 나이지만, 대리청정을 명한

             순조왕은 대왕대비와 세자의 대리청정으로 보낸 나약한 왕이었지만, 꿈만은 세자

             로 하여금 왕권을 강화하여 세도가의 폭정을 견제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

             길 바랐을 것입니다. 

                

                 의두합, 기오헌으로 들어가는 금마문.

 

               또하나의 출입구인 볼로문은 돌로  만들었는데, 문을 달았을 것으로 보이는

             돌저구 자리가 하부에 보입니다.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1809~1830)는 총명하고 인품이 높아 18세에 

               대리하여 정치를 지휘하다 22세에 요절한 왕자였다.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났으며 이름은 영, 자는 덕인, 호는 경헌이다.

               1812년 순조 12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의

               딸을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이 때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

               게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에 노력했으나 대리청정 4년 만인 22세에

               죽는다. 이때 그의 외척인 조씨 일파가 대거 등용되어 안동 김씨일파와 정

               치적 세력 투쟁을 벌임으로써 정국이 혼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된

               다. 아들 헌종이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뒤 익종에 추존되었으며 1899 고

               종에 의해 다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 었다. 능호는 수릉으로 경기도 구리

               인창동에 있다. 

 

               두합으로 통하는 금마문과 맞은 편에는 창경궁으로 통하는 영춘문이 있습니다.

 

                 숙종때 만들어진 애련지와 애련정.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고,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있어도 맑고 깨끗함이

               은연히 군자의 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까닭을 밝혔다 합니다.    

 

               연못에 두 기둥을 걸쳐 설치된 애련정.

               연꽃이 만발한 애련지와 가을에 단풍이 든 주변 경치는 빼어난 절경을

             보였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개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2세에 요절한 효명세자 !

               조선의 명군은 세종대왕,정조대왕으로 생각되는데 효명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명군의

             반열에 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효명세자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인물이나, 할아버지정조대왕을 빼 닮아 영특하고 학문에 밝았다 한다. 19세의 나이로

             부왕 순조의 명에 따라 대리청정을 시작한 세자는 안동 김씨 등 세도세력을 약화시키고

             개혁정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유를 알 수없는 병에 걸려, 정조임금  닮은 꼴의 생을

             마감하는 효명세자는 군주에 등극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왕이 된다.하지만 그의 대리청정

             3 년은 조선왕국을 희망에 부풀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색깔도 입히지 않고, 화려한 장식도 없는 수수한 건물로 효명세자는 공부와 

               사색을 즐기곤 했다.           

 

               의두합 바로 옆의 건물은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데,궐안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다.

 

                펼쳐 보지도 못하고 꺼져버린 등불이었으나 그 불빛 만큼은 누구라도 돌아보게

           할 만큼 찬란하지 않았나 생각하며, 그 불빛이 세상을 추었다면 조선의 역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또 한번 생각합니다.

 

                천재는 요절을 많이 하는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갖고 있는 재능과 꿈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좌절하는 건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이런 천재성을,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힘이 되도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환경이 조

             성되면 국가도 발전하고, 세상도 아름다운으로 가득 차겠지요.

 

                위  치  :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후원내 의두합,애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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