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비평

양문석 2016. 11. 2. 13:28

박근혜의 자해행위, 이판사판
-겨우 했다는 정국수습 기획이 김병준 총리 내정인가

박근혜는 지금 국정에 실오라기 한 올 만큼의 관심도 없다. 오로지 남은 임기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함으로써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도와준 최순실 일가가 그 동안 형성해 논 수천억원 대의 재산을 지켜주고 최소한의 벌만 받도록 도와주는 '빽'이 돼고, 자신도 대통령직을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탐하다가 저질러놓은 각종 불법 탈법행위의 흔적을 지우거나 무마하기 위한 술수. 그 술수가 '고작' 총리 교체고 정국 수습책이란다. 이판사판이다.

...

작두 위에서 칼춤이라도 추며 발광해서 잘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인 이판사판. 나라와 국민은 없다. 하기야 언제는 있었던가마는.

 

'신의 한수' 운운하며 김병준이 참여정부 출신 인사라서 야당에서 협조의 의무감이 작동하는심적동요를 일으켜 박근혜정권의 생명 연장에 도움을 줄 수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현명하다. 지금 은 참여정부 출신이든 국민의 정부출신이든, 그 누구든 그 어떤 꼼수든 '박근혜 하야' 아니면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는 정국이다.


또한 참여정부출신 김병준을 총리로 기획한 '김기춘과 떨거지들'의 이런 꼼수는 결정적인 오판에 기반한다. 이미 지난 9년동안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배신행각에 참여정부에 지지를 보냈던 지지자들은 차고 넘칠정도로 '내성'이 쌓여있다. 아시다시피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배신행각'이 젼혀 새로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 일상이지 않은가.


유엔총장 반기문 외교장관 윤병세 등 현 정권의 앞잡이 노릇하는 '현역들'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당시 검찰총장 임채진 등이 노무현대통령이 직접 임명장을 준 장관급 인사들이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차관 큰 별 달고 새누리당에서 공천받아 국회의원 하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이미 김병준도 반기문 윤병세 류의 변절자 반열에 스스로 걸어갔고 이는 참여정부 지지자들의 분노를 더 키울 뿐이지 야당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기획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뿐이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시대의 변절자 민심의 배신자'를 미끼로 삼아 현 정국을 돌파하고자 하는 천박한 기획력에 조롱의 미소를 보낸다.


또 하나의 오판은 '선무당게이트'정국에서 '하야'가 전제되지 않은 거국중립내각을 여야의 대타협으로 발표해도 정치권 전체 또는 야당은 치명적인 역풍 맞을 상황인데 특정인물 한 명 총리 내정으로 현재의 선무당게이트를 돌파하겠다고 나선 박근혜와 그 주변의 오만방자하나 무뇌수준의 일차원적 기획력에 실망이다.


하기야 최순실 일가의 기획력보다 못하여 현 정권 내내 최순실의 심부름이나 했던 김기춘과 그의 떨거지들이니 이런 기획 이상 더 뭘 바라겠냐마는.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다시한번 '역시나'를 확인 다시한번 '역시나'를 확인하니 씁쓸할 뿐이다. 그래도 40년 이상을 종종 나라를 좌지우지해 왔던 인간들인데...


정신차려야 한다. 아직도 지키려고 부리는 꼼수는 당신들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터. 참담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한 국민들에게 머리풀어 무릎꿇고 이실직고함으로써 청와대를 떠나라. 이것이 '선무당게이트'를 최소방어율로 마무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누구 말대로 '드러난 사실'이 부끄럽고 '드러날 사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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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석 2016. 10. 11. 14:46

오늘 점심 때, 친한 친구와 함께 했다. 그 친구에게 '구걸'을 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그 친구 왈 '형은 꼭 빌려 준 돈 받으러 온 사람처럼...'하며 웃으며 갈군다. 내가 그 친구에게 보상해 줄 방법은 거의 없다. 구걸해서 받아도 보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그 무엇은 없다. 그래서 왜 그 친구가 나를 도와 줘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좀 도와 주라'고 했다. 좀 더 괜찮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만들려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받았으면 갚아주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 격언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격언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내가 오늘 점심을 같이 한 친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격언이다. 적용할 수 없는 격언이다. 내가 얻어 먹은 공짜 점심은 그냥 공짜일 뿐이다. 왜냐면 지금 나의 상황은 그 친구에게 점심을 사 줄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받고 주는 관계가 아니라 그 친구는 그냥 주는 것이고, 나는 그냥 받는 것이다. 그리고 받은 것을 나는 다른 이들에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게 베푼 것을 받은 이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베풀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좀 더 괜찮은 공동체가 아닐까.


삶은 소신과 구걸의 양면이 있다. 소신있게 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거지처럼 살아가는 것. 안빈낙도를 일상에서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의 안빈낙도일 뿐이다. 공동체가 아닌 홀로 살겠다면 괜찮은 방법이다. 또 하나는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경제적 바탕을 가짐과 동시에 소신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둘 다 어렵다.


명예를 가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이 사회에 작은 디딤돌이 되고, 이 시대의 작은 징검다리가 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디딜돌이 되려해도 징검다리가 되려 해도 그 바탕에는 현재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경제적 받침대가 있어야 한다.

 

나의 문제가 아닐 경우, 많은 이들은 돈을 택하든지 명예를 택하든지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이들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희구할 뿐이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은 돈이 있으면 한다. 지금보다 자기자신에게 좀 더 자랑스러울 수 있는 명예를 추구한다. 이것은 돈이냐 명예냐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욕망이고 욕구이다. 이런 욕망과 욕구가 틀린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아니다. 자연스런 것이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지 않았고, 다섯개의 떡으로 수천명이 한 끼 식사를 하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고, 풍랑이 치는 바다를 향해 파도여 잠잠하라며 신의 영역을 슬쩍 보여주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기독교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예수의 목적은 돈과 명예가 아니었다. 사람의 아들로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기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바탕이 존재했기 때문에 자기의 소신대로 살 수 있었고, 소신대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돈과 명예 중 하나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둘 다 갈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 갈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현재의 일상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것이다. 희망은 욕망이요 욕구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다. 희망을 갖는 것이 욕망의 발로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래서 나도 꿈꾼다. 희망 또는 욕망과 욕구가 있다. 좀 더 나은 경제력과 좀 더 나은 영향력을 통해서 좀 더 나은 나의 삶과 우리의 삶과 이웃의 삶을 희망한다. 잃어가는 욕망과 욕구의 본질을 자극해서 좀 더 괜찮은 공동체, 우리가 그토록 비난해 온 지금은 공동체가 아니라 좀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꾼다.

 

그렇다면 좀 더 나은 공동체는 뭘까. 많은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는 '치열한 경쟁'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서울 등 도시의 삶을 상당히 설명할 수 있는 주장일 수는 있다. 처절한 경쟁과 치열한 속도전은 극히 일부의 삶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나만의 발견은 아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국도를 달리다 보면 넓은 들판이 보일 때, 그 곳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 꿈꾸는 공동체는 전적으로 삶의 질을 제고하는 목적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쟁과 속도가 적고 더딘 사회. 나의 구걸과 나의 자체 생산으로 인한 그 무엇으로 베풀 수 있고, 나로부터 받은 이들이 그 주변에게 베풀어 가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며, 그런 사회를 구현하고자하는 이들과 함께 또 다른 경쟁과 속도전에 나서야 하는 딜레마.  그 딜레마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운명에 따라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면 구걸해야 한다. 구걸은 아름다울 수 없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고 우아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 필요성이 절박할 수록 구걸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기대어 부끄럽고 상하는 자존심을 달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꿈꾼다. 비록 지금의 구걸이 나만을 위한 나의 가족만을 위한 구걸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이웃이 함께 하는 좀 괜찮은 공동체를 위한 구걸이고, 그 구걸의 결실을 작은 공동체로부터 실현하고, 그 공동체의 크기를 확장해 나가야 함을. 나는 꿈꾼다. 그래서 구걸은 소신을 실현하고 확장하는 하나의 수단임을 스스로 마음 속에 새긴다. 내게 베풀어 준 이들에게는 항상 감사함을, 내가 베풀 수 있게 해 준 이들이 있기에 내가 베풀 수 있음을. 기억하며 나의 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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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

양문석 2016. 3. 22. 12:00

더민주당, 13선의 정실공천

-정당민주화 투쟁이 필요한 때


어제 오늘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의 행태를 보면 더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노골적인 반민주적 리더십을 목도한다. 더민주당의 대표와 중앙위원회 간의 거지발싸개보다 더 지저분한 갈등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으로 문재인 전 대표인들 김종인 대표의 저런 피아구별이 안되는 리더십,’ ‘공천과 사천 그리고 자천의 의미파악조차 안되는 리더십을 예상했을까.

 

더 심각한 것은 김종인 대표의 박근혜대통령보다 더 심한 독선과 오만한 정치행태이다. ‘무슨 저런 인간이 새누리당도 아닌 더민주당 대표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다. 당 대표가 자기 문제로 당을 선거 직전에 사분오열시키고, 언론에 자신이 당 대표로 있는 당과 당원을 비난하며 당 지지율을 갉아 먹는 해당행위를 보고 있자면 기가 막힌다. 또한 대놓고 해당행위를 하는 당 대표에게 질질 끌려가는 더민주당 중앙위원회를 보면서, ‘~저리해도 되는 구나~’하는 정치판의 신세계를 접한다.

 

그럴 정도로 당당한가? 언론을 향해 더민주당과 당원을 비난하고, 수틀리면 그만둔다며 협박하는 더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그렇게 할 수 있을만큼 당당하게 당을 운영해 왔는가? 툭 하면 말 바꾸고, 툭 하면 야권 인사들 모욕하고, 심지어 낙천시키면서까지 낙천자를 조롱하는 전형적인 꼰대로서 당대표. 그 동안 독불장군 개선장군 점령군 사령관의 가장 안 좋은 행태만 나열해 왔던 김종인 대표. 그리고 김종인 대표를 삼아 호가호위하는 ‘3선이들도 꼴불견이기 마찬가지. 박영선 정장선 홍창선.

 

김종인과 박영선 정장선 홍창선이 더민주당을 말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종인 대표의 정당독재체제 구축을 실무적으로 보좌하고 있는 비대위원 박영선, 총선기획단장 정장선, 공천관리위원장 홍창선.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전략공천이 횡행하고 있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13이들의 정당민주주의 훼손 사례를 각각 하나씩만 짚어보자.

 

김종인 대표는 정청래 의원을 자르는 결기를 보였다가 지지자들의 반발이 일자 정청래 의원의 제안으로 손혜원 홍보위원장을 공천한다. 정청래 의원의 꼼수가 통한 것이다. 지역구 자체가 부동산인 줄 아는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다. 그 중 정청래 의원 또한 그런 인식으로 지역구를 바라보는 정치인이었다. 부동산 주인이 잠시 외유하는 동안 임대인에게 4년 동안 관리를 맡기는 행태가 그것. 잘린 정청래 의원의 제안으로 손혜원 홍보위원장을 전략공천했다는 것 외에, 왜 손혜원을 마포을에 전략공천했는지에 대해 당 공식 창구에서는 어떤 설명도 없었다. 컷오프 당한 정청래 의원의 손혜원 추천이 전략공천의 공식명분이면, 지역구를 부동산으로, 현역의원을 주인으로, 임대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는, ‘인증샷을 찍어주는 공천이다. 김종인 대표의 정실인사 정실공천의 끝장판이다. 하기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올리는 김종인 대표가 공천 사천 자천의 의미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배적이지만.

 

10년 동안 지역구에서 선거를 준비하다가 느닷없는 전략공천으로 경선한번 치르지 못하고 주저앉아 단식투쟁하면서 경선을 요구하는, 정청래 의원이 지역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꼼수를 둘 정도로 정청래 의원을 위협했던 강력한 경쟁자인 마포을의 정명수 예비후보. 19대 때 정청래 후보에 박빙의 표차로 당내경선에 패배했던 정명수 예비후보가 손혜원과 경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하는 사진을 보면 정당민주주의의 붕괴현장을 성수대교 붕괴현장을 보는 듯 처연하기 짝이 없다.

일찌기 오영식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의 경우, 박영선 의원이 당권 근처에 다가가는 순간 낙천은 확정적이라는 소문이 횡행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역임한 다선 의원이 예언했던 것이 바로 박영선의원이 당권에 진입하면 오영식의원은 낙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내 던졌던 오영식 의원은 3선 이상 50% 정밀심사 대상에 올랐고, 결국 낙천의 고배, 정치보복의 쓴잔을 들이켰다.

 

분당을에서 여러 해 동안 표밭을 일구고 있던 더민주 예비후보도 경선 한 번 못하고, 느닷없는 손학규계 후보에 의해 주저앉았다. 손학규계 정장선 단장의 작품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여기 또한 전략공천에 대한 설명이 없다. 어떤 명분이나 상징성이 있어 경선하지 않고, 전략공천한다거나 설명이 있어야 하는 데 없다. 수년 동안 분주히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은 망연자실이다. 점령군사령관 김종인 대표 귀에 다 끊임없이 속삭일 수 있는 위치인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의 어이없는 사천(私薦)이고, 자파공천이니 사실상 자천(自薦)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자신의 보좌관 출신이자 새누리당 의원비서관 출신을 더민주당 청년비례대표에 공천하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저열한 권력행사인 사천을 하려다가 들켜서 모든 공천에 공신력을 훼손을 시킨 장본인이다. 해당행위자가 더민주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이다. 아무도 이 해당행위자를 윤리심판원에 제소하지도 않는 게 신기하다.

 

지금 벌이지고 있는 13선의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밀실공천 정실공천을 보면 이제는 정당민주주의가 시대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의 진흙탕 개싸움은 원래 그렇다치고, 소위 민주주의를 밥 먹듯이 되뇌며 민주정당을 표방하는 그 이름도 더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공천관련 사천 자천 작태를 보면, 지금부터 더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더민주당 내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치열한 자기고민과 투쟁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