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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초일커버(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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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전자우편외 기타

2018. 9. 24.

정약용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초일커버(FDC)


발행일 : 2018. 9. 14    우표번호 : 3339     디자인 : 여유당과 목민심서    인쇄 및 색수 : 평판. 5도

전지구성 : 4 x 4     디자이너 : 유지형    용지 : 평판원지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Cartor)

  우정사업본부는 다산 정약용 선생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이해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우표는 여유당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공받은 목민심서 필사본으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기념인 = 포천 : 정약용 해배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표 실학자이자, 개방과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한 개혁가입니다. 1762년 지금의 남양주에서 태어난 그는 실학자 이익의 서적을 통해 실학을 배웠으며, 22세에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규장각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원화성을 건설할 때 거중기를 개발해 공사기간을 대폭 줄였고, 정조의 화성 행차 시 배다리를 설계해 한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이렇게 선진 기술과 새로운 사상에 관심 많았던 그는 정조의 남자라 불릴만큼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습니다.

관광인 =경기조안 : 정약용 선생묘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묘는, 1972년 5월 4일 경기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능내리에 정약용을 모신 유택인 여유당(與猶堂)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묘는 부인 풍산홍씨와 합장한 원형의 묘로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다. 비신에는 2열로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씨 지묘(文度公茶山丁若鏞 淑夫人豊山洪氏 之墓)’라고 씌어 있다. 비좌는 높이 31.5㎝, 너비 129㎝, 두께 90㎝이며, 비신은 높이 179㎝, 너비 69.5㎝, 두께 34.2㎝이고, 옥개석은 높이 62㎝, 너비 119㎝, 두께 81㎝이다. 묘역 앞에는 1959년에 세운 묘비 2기와 자연석에 여유당이라 쓴 비가 서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1년(순조 1년),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됩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동서고금의 학문을 정리하고 실학을 집대성해 최고의 실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집니다. 정전론·여전론 등 파격적인 토지 개혁론이나 마을 단위 공동 노동체 건설을 주장했고, 형법, 기술, 의학, 경제, 정치, 국방,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5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한 중앙 정치 제도의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공정한 사법제도의 개혁방안을 담은 <흠흠신서>, 그리고 지방 정치제도의 개혁안을 담은 <목민심서>가 있습니다. <목민심서>는 1818년 3월 완성되었습니다.

남양주시다산문화제추진위원회

  남양주시는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이해2018 남양주 정약용의 해로 선포하고, 정약용의 인본주의와 애민사상, 실사구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남양주문화원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 중 가장 중요한 문화사업이 바로 다산문화제이다. 다산문화제는 조선 후기 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선생의 업적과 실학사상을 기리는 지역축제이다. 그 내용으로는 관내 유치원, 초.중.고교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술, 백일장, 휘호,사진촬영대회를 개최해 인재발굴과 문화예술 반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관내 유관기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민에 봉사하는 다산목민대상을 선정, 수여하여 다산의 얼을 받들고 있다. 또한 다산사상강연회를 개최해 지역민에게 다산의 사상을 전파하고 시민축제로 승화시켜 전통예술공연, 각종 전시회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산연구소

   유네스코(UNESCO)는 180여 개 국가가 가입된 유엔 산하 최대 기구로, 교육ㆍ문화ㆍ과학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국가 간의 상호 이익을 도모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네스코 기념 인물은 그 정신에 부합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유네스코는 2012년에 전 세계에 걸쳐 기념 인물 선정 작업을 했고, 그 결과 네 사람이 뽑혔습니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프랑스 사상가, 1712~1778)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프랑스 작곡가 1862~ 1918),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독일 작가, 1877 ~ 1962), 그리고 다산입니다. 다산은 음악을 비롯해 미술ㆍ문화ㆍ학문ㆍ교육 분야도 다 포함되는 분이죠. 어떻게 보면 다산이 유네스코의 정신에 가장 부합된 논리를 전개했던 학자이자, 사상가, 철학자, 문학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중기와 녹로(도르래)를 만들어 수원서을 쌓는 공정을 단축하는데 크게 고헌하였다. 그 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동부승지·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 신부의 변복 잠입 사건이 터지자 형 정약전과 함께 이 사건에 관련되어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801년(준조 1)신유박해 때 경상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백서사건이 일어나 이 해 10월 다시 전라남도 강진으로 옮겨졌다. 이 후 오랜 유배생활에 들어가며 조선사회의 현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여러 사상과 학문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1818(준조 18)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마현마을 고향집으로 돌아와 저술생활로 평생을 보냈으며 1836년(현종 2) 75세로 생을 마쳤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경서학에 전념, 실학의 대가가되어 「목민심서 」48권, 「경세유표」49권, 「흠흠신거」30권 등을 쓰면서 정치·경제 등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능내리의 다산유적지에 있는 정약용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 7호)는 발치 아래를 감싸고 돌아 흐르는 두물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능내리의 다산유적지는, 발치 아래를 감싸고 돌아 흐르는 두물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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