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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으로 엮는 테마여행...... 3. 임진왜란(壬辰倭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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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으로 엮는 테마여행(관광인 테마작품)

2021. 10. 14.

관광인으로 엮는 테마여행...... 3.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을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전쟁 초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것은 왜란이 일어난 선조대에 이르러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중쇠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정치적으로는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에 계속된 정쟁으로 인한 중앙 정계의 혼란, 사림 세력이 득세한 선조 즉위 이후 격화된 당쟁 등으로 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군사적으로도 조선 초기에 설치된 국방 체제가 붕괴되어 외침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군국기무를 장악하는 비변사라는 합의 기관을 설치했으나, 이것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명량 해전(鳴梁海戰)

  1597년 9월 16일 전남 울돌목.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이 바다를 덮었다. 예비 함대 70척도 뒤를 따랐다. 조선 수군의 세력은 불과 13척.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싸움의 결과는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킨 조선의 압승. 한산대첩과 더불어 사상 최고의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의 개요다. 조선 수군의 승전 요인은 명장 이순신의 존재. 빠르고 급변하는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할 줄 아는 지략과 불굴의 의지, 경영자적 마인드가 승리를 이끌었다.

명량 해전(鳴梁海戰)

울산성 전투(蔚山城戰鬪) 와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

  조선의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부총병 양호(楊鎬)는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울산의 가토 기요마사 중 누구를 먼저 쳐야 할 지 의논했는데 울산이 일본군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1598년 1월 29일(1597년 음력 12월 23일) 가토 기요마사의 1만 5천명의 군사가 지키는 울산왜성을 공격했다. 조명연합군은 새벽시간 때에 압도적인 숫자로 사면에서 성을 공격했지만 성을 지키는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을 했다. 1598년 10월, 조선 경상도 사천 사천선진리성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시마즈군 7천 명이 약 4만 명의 조명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울산성 전투(蔚山城戰鬪) 와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

노량 해전(露梁海戰)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이었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은 11월 왜장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왜선이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다. 200여 척의 배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이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순신은 도주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여 포위되었던 명의 장수인 진린을 구하고 적을 추격하다가 왜적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순신의 유언으로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노량 해전(露梁海戰)

의병 및 승병 활동

  의병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한마디로 관군의 무능으로 인하여 국토가 일본군에 의하여 짓밟히고 많은 생령(生靈)이 죄없이 쓰러져가자,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 향리를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자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의병은 신분적으로 보면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어, 의병 활동을 벌이는 기간에는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병장은 대개가 전직 관원으로 문반 출신(文班出身)이 압도적으로 많고 무인들은 소수였다. 그리고 덕망이 있어 지방에서 추앙을 받는 유생들도 있었다. 이 중에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다시 벼슬에 들어간 사람도 있으나,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장도 있었다. 

의병 및 승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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