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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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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실체교류

2022. 1. 12.

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광명소하 : 이원익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서 왕의 피난길을 선도하고 군사를 모아 적군과 싸웠으며, 1593년 평양탈환 때 공을 세우고 변무사(辨誣使)로 명에 다녀오는 등 큰 활약을 하여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훈되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고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이원익 선생묘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원익은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의 3대 청백리로 꼽혔을 만큼 청렴결백한 관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청렴함이 드러난 일화는 '조선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인조 9년(1623년) 정월 10일, 임금이 승지 강홍중을 보내어 이원익을 문안한 뒤 "그가 사는 집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강홍중은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무너지고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재상이 된 지 40년인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니, 청렴하고 결백하며 가난에 만족하는 것은 고금에 없는 것이다.

광명소하 : 이원익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내가 평생에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 공로와 덕행뿐이 아니다. 이공(李公)의 청렴하고 간결함은 모든 관료가 스승삼아 본받을 바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5칸짜리 집 한 채를 이원익에게 하사했다. 하지만 이원익은 "신을 위해 집을 지으니, 이것도 백성의 원망을 받는 한 가지"라며 수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 관감당(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0호)은 이원익이 은퇴한 후 인조가 사액과 함께 하사했으나 이원익이 네 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는 5칸짜리 집이다. 계속된 사양에 인조가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신민이 보고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니, 경은 굳이 사양하지 말고 거기에 살라"라고 하자 이원익이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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