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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2014. 11. 12. 11:42

문관 무관 관복[조선시대 전통 복장] 3



잊혀져가는 우리 복식(服飾)내용을 3번째로 선보입니다. 이 조선시대자료를 수집해 북한에서 그림으로 책자를 펴낸 인물은 충남 공주출생인 북한화가 고(故)리팔찬(이조복식도감/조선 문학 예술총동맹출판사 발행/1962년)으로 다음번엔 궁중에서 입던 예복 등을 소개하겠습니다.


북한자료는 옛 자료발굴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남한자료와 비교하는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이 조선시대 복식은 전문용어로 인해 어르신네들도 모르는 글귀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필자를 포해 일반인인 장년이나 청소년 등에게는 더욱 생소한 단어이며, 용어 풀이가 힘든 경우가 있겠음양해바랍니다.


* 전복 :이조초기 문무관의 편복(便服/ 평상시 입는 옷)이었으나 1894년(고종 31년/갑오경장-개혁)때
광수의(廣袖衣/폭이 넓은 소매)를 폐지하면서부터 관리들의 통상 예복으로 되었습니다.  두루마기위에 전복을 껴입고 실띠를 띠었습니다.









* 갑옷 1,2,3,4 : 조그만 쇠 패쪽에 수은을 입힌 다음 가죽 끈으로 엮어서 만든 갑옷을 수은갑이라 합니다.수은 대신 옷 칠을 한 것을 유엽갑이라고 합니다. 쇠 패쪽을 단 모양이 용의 비늘과 같은 것을 용린갑이라합니다.

 

두정갑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푸른 면포를 거죽에 하고 쇠 비늘 엮은 것을 안에 댄 다음 쇠 광두정을 겉에서 들이박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비단을 거죽으로 하고 연록비를 안에 댄 다음 황동 광두정을 겉으로부터 박은 것입니다.

 

두두미갑은 비단에 연록비 안을 받치고 백은 광두정과 황동 광두정을 섞어가며 박았는데 푸른 것과 붉은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투구는 쇠로 만드는데 투구전이 있는 것을 첨주라 하고, 첨이 없는 것을 원주라고 합니다.



* 관복(官服): 관리의 제복. 관디 즉 단령(團領/조선시기 관원이 입던 깃을 둥글게 만든 옷)을 입고, 흉배(胸背 / 문무관이 입는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던 학이나 호랑이를 수놓은 표장)를 붙이고 각 띠 즉 품대를 띠고 사모를 쓰고 목화를 신으며 손에는 홀을 듭니다. 

 

관디는 겉깃이 둥글고 무는 터졌는데 앞무 머리가 넓어서  뒷무를 덮습니다.  옷감과 빛깔은 직품에 따라 다르며 흉배는 문부 직품을 표시하며

띠도 역시 직품을 표시합니다.  사모는 1∼3품은 협각사모(挾角紗帽), 4∼9품은 단각사모(單角紗帽)를 썼습니다.




* 무관 융복(戎服): 철릭(옛 무관 공복의 하나)을 입고, 전대를 띠고 주립(朱笠/붉은 칠을 한 갓)을 쓰고 수혜자를 신는 차림을 융복이라고 한다. 철릭은 허리아래를 넓게 하여 잣 주름을 잡아 단 것이 특색입니다. 무관의 편복이자 예복이지만 전시와 왕의 출행에 배종할 때는 문관도 입었습니다.  15세기 이전에는 일반입는 평상시 의복이었다고 합니다.



* 무관군복: 무관 최고의 복색입니다. 왕의 출행 시에는 대신 이하 문관들도 이 복색을 하고 따랐습니다. 동다리 위에 전복을 껴입고 전대(纏帶)를 띠고 환도(還刀)를 차고 등채를 들며 산수털 벙거지를 쓰고 수혜자(水鞋子)를 신었습니다.




* 조복(朝服): 관리들이 조하 때 입는 예복입니다. 청삼에 홍상(紅裳/붉은 치마-붉은 바탕에 검은 선을 둘렀음)을 두르고 홍삼을 덧입고 앞에는 폐슬,  뒤에는 환수, 옆에는 패옥(佩玉)을 늘이고 품대를 띠며 금관을 씁니다. 금관의 량 수 등은 직품에 따라 다릅니다. 신은 목화(木靴)를 신었습니다. 조복에 쓰는 금관은 당초문양과 목잠(木箴)이라는 비녀가 도금되어 있어 여기서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는 말이겼습니다.



* 더그레/호의(號衣)/군복:군인들이 입던 군복인바 각기 빛을 달리해 소속 영문(營門/병영)을 표시하였으므로 호의라고도 부릅니다.



* 작의:작의는 검은 바탕에 흰 실로 바둑판모양의 줄을 놓은 더그레입니다. 나장-금부나장(禁府羅將/ 군아사령의 하나)이 착용하던 웃옷입니다.


* 사모(紗帽),복두(幞頭): 관원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검은 색의 가벼운 비단으로 된 것(사모)을 지칭합니다.  사모는 직품에 따라 겹뿔, 홀뿔의 구별이 있었으며, 사모 뒤에는 좌우로 뻗어 나온 잠자리 날개 같은 뿔(사모뿔)을 말합니다.    지금은 흔히 구식 혼례식 때 신랑이 씁니다. 복두(幞頭)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썼는데, 주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썼습니다.




* 전립(戰笠)과 옥로(玉鷺)증자:전립은 병자호란이후 무관이 쓰던 벙거지를 말합니다. 붉은 털로 둘레 에 끈을 꼬아 두르고 상모, 옥로 등을 달아 장식했습니다. 털을 이겨서 만든 모자로 군복차림에 썼으며, 공작 깃 상모를 달고 패영(貝纓/산호, 호박, 수정 등을 꿰어 만든 갓끈)을 달았습니다.    

 
옥로는 관찰사, 절도사, 외국에 가는 고관이나 사신들이 갓 꼭대기에 옥으로 해오라기 모양을 만들
어 달든 장신구인데 이것을 옥로증자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입(笠)에는 평량자(平凉子)형의 평량자(패랭이) ·초립(草笠) ·흑립 ·옥로립(玉鷺笠) ·
전립(氈笠, 戰笠) ·백립과 방립형의 방갓 ·삿갓 등이 있었습니다.




*금관(錦冠), 제관: 금관은 조복을 입을 때 씁니다. 품계에 따라 양의 수가 다릅니다. 5량은 일품관이 쓰며, 제관은 제복을 입을 때 쓰는 것으로 그 제도가 금관과 같습니다. 다만 현란한 금장식이 없을 뿐입니다.        

출처 : 사색의 향기--송광호 컬럼

정말 유익한 내용이에요! 감사합니다